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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현정은 79위

‘승부사’ 현정은 79위

현정은(54) 현대그룹 회장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지난해에 이어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선정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79위를 기록한 것이 저평가된 감이 없지 않다. 포브스가 현 회장을 2년 연속 리스트에 올린 이유는 2003년 남편인 정몽헌 회장 타계 후 경영권을 이어받아 어려움 속에서도 5년 연속 흑자기조를 정착시키는 등 경영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포브스가 리스트를 작성하는 동안 현 회장은 또 하나의 역작을 만들어냈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그는 8월 16일 묘향산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극적으로 만났다.

그는 돌아와 북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합의한 금강산겙낵?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 등 5개 항을 발표했다. 북한은 그의 방북 기간인 8월 13일 억류 근로자를 석방했고, 이어 육로통행 제한 등을 담은 ‘12?조치’를 해제하는 등 유화 조치들을 내놨다.

포브스가 발표한 이번 리스트에 ‘8?6 면담’이 반영됐다면 현 회장의 순위는 훨씬 올라가지 않았을까. 현 회장은 부잣집 딸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꿈 많은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국내 최대의 재벌가로 시집 가 현모양처로 살던 전업주부였다. 2003년 현대가의 며느리 현 회장이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되면서 ‘현대 드라마’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주위에선 그의 등장을 탐탁지 않아 했다. 경영능력을 믿을 수 없다고 했고, 가업은 마땅히 정씨(鄭氏)가 계승해야 한다는 논리로 압박하기도 했다. 그가 보낸 6년은 아무리 부정적으로 평가해도 ‘절반의 성공’은 된다. 2003년 취임 당시 만신창이였던 그룹은 이듬해부터 흑자전환을 시작해 6년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두 달도 가지 못할 거라 했지만, 전업주부 출신 회장은 실적으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지난해 대북사업은 금강산관광 중단에 이어 최근 개성관광까지 발이 묶이며 8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 대북사업은 ‘세계에서 가장 불확실한’ 사업이다. 그것을 감안하면 그 성패로 경영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구나 대북사업은 고(故) 정주영 선대 회장의 유지라서 그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현 회장의 친가는 대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거부였다. 증조부는 호남은행을 설립한 고 현기봉씨이고, 할아버지 고 현준호씨는 광주 농공은행과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사인 조선생명을 설립했다.

아버지 고 현영원씨는 신한해운을 운영하다 이후 현대상선에 합병돼 현대상선 회장을 지냈다. 외가도 쟁쟁했기는 마찬가지. 용문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어머니 김문희씨는 고 김용주 전방그룹 창업주의 장녀다. 전방그룹은 의류직물산업으로 국가경제를 일으킨 주역이다.


플라멩코 추던 얄개

▎현 회장은 8월 16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김 위원장 오른쪽은 정지이 현대U&I 전무이며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오른쪽은 현대아산의 최규훈 계약지원실장이다.

▎현 회장은 8월 16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김 위원장 오른쪽은 정지이 현대U&I 전무이며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오른쪽은 현대아산의 최규훈 계약지원실장이다.

현 회장의 어린 시절이 특별했다면 영화감독 눈에 띄어 영화에 출연할 뻔한 에피소드와 5학년 때 월반해 남들보다 두 살이나 어린 나이에 중학교에 입학했을 만큼 총명했다는 사실 정도다.

그는 여느 재벌가 딸들처럼 예능을 익히고, 교양을 쌓았다.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어머니 영향으로 자유분방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경기여고 시절 현 회장은 공부벌레는 아니었다. 그는 특별활동이 더 좋았다. 여름에는 교내 풀장에서 수영하고, 겨울에는 동대문에 있는 스케이트장을 오갔다. 평소엔 수예, 레이스 짜기, 동양 자수, 옷 만들기, 요리 등 가정 실습도 많이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개교기념 행사로 열린 민속무용대회다.

시민들까지 와서 구경할 만큼 큰 행사여서 공부도 제쳐놓고 몇 달씩 연습에 매달렸다. 당시 그는 플라멩코를 추었다. 열일곱 이른 나이에 이화여대에 입학한 그는 전공인 사회학 중에서도 여성학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에서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성개발을 연구한 것도 그래서다.

석사 논문도 우리나라 최초의 진보적 여성단체인 근우회를 연구한 것이었다. 여성단체 활동에 열심인 어머니의 영향이 컸지만, 여성문제를 공부하면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재벌가 딸이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습에 당시 교수와 교우들이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당시 직업 테스트를 해봤는데, 가장 적성에 맞는 직업은 기자, 안 맞는 직업이 비서로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적성 결과와는 달리 그는 기자처럼 다이내믹한 직업인이 되지 못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적성에 안 맞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전업주부가 됐다. 그것도 결코 자유롭지 않은 현대가 며느리로.


정몽헌 회장의 러브레터1975년 초 현대중공업의 선박 명명식이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현 회장은 신한해운 사장이던 아버지를 따라 행사가 열리는 울산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한 어른이 직접 가방을 받아주며 안내하기에 그냥 현대 관계자인 줄만 알았다. 저녁 리셉션에서 그는 그 어른이 정주영 명예회장이란 소개를 받고 깜짝 놀랐다.

훗날 각별한 정을 준 시아버지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이날 정 명예회장은 그를 아들 몽헌의 배필로 낙점했다. 평소 현영원 사장과 혼담을 주고받았던 터에 막상 실제로 보고 나니 맘에 쏙 들었던 것이다. 정몽헌 회장도 첫눈에 반했다. 그는 후에 “고운 얼굴에 여성스러운 정은이 맘에 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현 회장도 정몽헌 회장에게 마음이 끌렸다. 무엇보다 재벌가 아들답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현 회장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의 표현처럼 당시 정몽헌 회장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흙길 걷는 것을 좋아하는’ 문학청년이었다. 특히 현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지금은 다래가 익어갈 무렵…’식으로 시작하는 정몽헌 회장의 러브레터였다.

금지옥엽 부잣집 딸로 자란 현 회장이 다래가 어떤 열매인지 알 리 없었지만, 오히려 그런 알 수 없는 얘기가 자꾸만 편지를 기다리게 했다. 결혼에 골인한 건 성격 급한 시아버지 때문이었다. 학교도 마쳐야 하고 연애 기간도 더 길게 가지려 했지만, 정주영 회장은 서둘러야 한다며 사업처럼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데이트하고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들을 불러놓고 “오늘은 청혼했느냐”고 다그치곤 했다. 덕분에 교제한 지 1년 남짓된 76년 7월, 두 사람은 웨딩마치를 울렸다. 현대가 며느리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은 ‘부유한 노동자’라며 구두 한 켤레를 20년 이상 신을 만큼 사치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정주영 명예회장이었다.

당연히 집안 살림도 검소가 철칙이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란 현 회장에겐 여간 당혹스러운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더 힘들게 한 것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였다.

현대가는 남자가 많은 집안이라,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원칙이 엄격했다. 새벽에 일어나 시어른 밥상을 차리는 것부터 시작해 남편 출근을 돕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가사일을 거드는 사람이 있어도 밥상은 꼭 며느리가 봐야 했다. 정 명예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지낼 때는 집안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술상에 뒷정리까지 며느리가 도맡아야 했다. 딸만 있는 집에서 자란 현 회장은 여자라고 차별 받아 본 적이 없다.

하고픈 활동은 다 해보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진보적 여성학까지 공부한 젊은 며느리가 이런 집안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시아버지도 그를 며느리 가운데 유독 예뻐했다. 현 회장은 정성을 다해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을 내조했고, 삼남매를 낳아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아들과 엄마가 함께 참여하는 행사에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소박한 옷차림으로 가장 먼저 학교에 갔을 정도다. 아무도 그가 현대그룹 며느리인 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슬픔 딛고 세상과 맞서다남편 정몽헌 회장의 죽음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정몽헌 회장은 현 회장에게 모든 것이었다. 살아가는 이유이자 세상이었다. 그를 비통함과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오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비정함이었다. 그는 슬픔 속에서도 남편이 없는 세상과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정몽헌 회장의 49재를 지낸 지 꼭 한 달. 현 회장은 서둘러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식도 등기이사 등재도 생략했다. 한가하게 격식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남편이 죽음과 맞바꾼 그룹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KCC와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 취임사는 짧지만 비장했다.

현 회장은 취임 후 8명의 사장 중 4명만 재신임하고 임원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가신 청산’으로 명분을 쌓고, 분위기를 쇄신해 ‘현정은 체제’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호소했다. “정몽헌 회장의 꿈을 반드시 실현시켜 주고 싶다.” 사내는 물론 밖에서도 현 회장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여성계 인사들은 현 회장을 지키기 위한 모임까지 결성했다. 이런 지지는 현 회장 승리에 큰 힘이 돼 주었다.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현 회장은 어금니가 다 빠졌다. 현 회장은 임직원에게 보낸 글에서 “우리에게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썼다. 그는 이미 정주영처럼 강인해졌던 것일까.

2006년 현대중공업과의 경영권 분쟁 때도 한 치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현 회장은 ‘정씨 적통 문제’도 정면으로 항변했다. “정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30년을 살았고, 어떠한 경우라도 정씨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2005년 7월,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정몽헌 회장에게 금강산을 주었으니 현 회장에게는 백두산을 맡기겠다”며 백두산과 개성관광을 승인했다.

현 회장을 대북사업의 공식 파트너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현 회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북사업이 전면 무효가 될지도 모를 위기에 봉착했다. 당시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을 사퇴시킨 것에 대해 북측은 강한 유감을 표하며 금강산관광 인원을 절반으로 축소할 것을 요구하고, 롯데관광에 개성관광을 제안했다.

심지어 현 회장이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입국사무소에 들렀을 때는 핸드백을 열어 보라고까지 했다. 북측의 요구는 김 부회장의 복귀였다. 현 회장은 딜레마에 빠졌다. 실리를 좇아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원칙을 지킬 것인가.

그룹을 지키자니 대북사업이 어렵게 되고, 대북사업을 성공시키자니 그룹의 기강이 무너질 것 같았다. 현 회장은 원칙을 지켰다. “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북측은 다소 누그러진 태도로 금강산관광 협의를 해오기 시작했다.

그는 북측에 끌려 다니지도 않으면서도 끝내 사업 재개를 이끌어냈다. 한국 정부도, 심지어 미국도 힘겨워하는 북측과의 협상을 경험도 없는 여성 경영자가 성사시킨 것이다. 대북사업은 현 회장의 존재이유다.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점에서도, 남편 정몽헌 회장의 한이 서려 있다는 점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숙명의 과제다.

2006년 북핵 실험으로 금강산 관광객이 하루에 평소 1500명에서 20명까지 떨어졌을 때도 현 회장은 “단 한 명의 관광객이 있더라도 계속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그가 대북사업에서 거둔 성과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후, 백두산관광과 금강산 비로봉 관광사업 합의서가 체결됐고, 개성관광도 시작했다.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된 데 이어 개성관광마저 길이 막힌 상황에서도 그의 대북사업 의지는 확고했다. 그리고 끝내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가 침몰 직전의 ‘현대호’를 넘겨받은 지 6년. 대북송금 사건으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KCC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취임 첫해인 2003년 265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 회장은 상처를 감수하며 경영권 분쟁을 마무리하고 계열사 추스르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후 해마다 흑자를 냈다. 대외 신인도도 급상승해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의 회사채 신용등급이 2003년보다 최고 6단계나 상승했다. 글로벌 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전 계열사의 글로벌 역량 강화를 당부하자 계열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대상선은 러시아·두바이·시드니 등지에 현지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2010년까지 해외 거점을 10개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감성리더십 빛났다경영권 분쟁과 대북사업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룹을 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회장으로 취임할 때 가장 큰 결격사유로 지적됐던 ‘경험 없는 주부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현 회장은 남성적 분위기의 현대그룹을 감성적으로 바꾸는 데 리더십을 보였다.

복날엔 임직원들에게 삼계탕을 보냈다. 가족의 건강을 챙겨본 주부가 아니라면 못하는 일이다. 여직원에게, 여성에게 보내는 희망 메시지가 담겨 있는 다이어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샘플을 놓고 요리조리 돌려보며 “여자들은 이런 디자인을 좋아한다”고 수정을 지시했다. 딸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가능한 아이디어다.

임직원의 고3 수험생 자녀에겐 목도리를 선물했다. 회장이 계열사 사장단과 ‘반 고흐 전’ 관람을 가는 것도 ‘현대스럽지’ 않은 풍경이다. 취임 초부터 그의 최대 무기는 e-메일이었다. 그룹에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e-메일로 임직원을 직접 격려하고 진심을 털어놨다.

직원들은 그의 진정어린 편지를 읽으며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다. 그런 공감은 결속을 만들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생애 동안 역사에 남을 정치가, 학자, 혁명가가 될 수 있고 예술가도 될 수 있다. 그리고 기업가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부도 역사에 남을 기업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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