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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과 배려가 인간관계의 전부죠”

“진정성과 배려가 인간관계의 전부죠”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고교 후배들과 모임이 잦다. 장 사장은 후배들이 기꺼이 부르고 싶어하는 선배다. 잘나가는 자산운용사의 ‘장수’ CEO로서보다 후배들이 초대하고 싶은 선배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사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진정성이라는 그는 다음 타자로 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사장을 꼽았다.

“사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진정성입니다. 목적성이 강한 사람은 싫어요. 실전에 적용하자면 장기적 관점에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바로 일관성이죠. 또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장인환(50) KTB자산운용 사장은 “사람 관계에서는 무엇보다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한결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십 줄에 접어드니 CEO들 모임에 나가도 진정성이 있는 사람과 목적성이 강한 사람을 구별할 수 있겠더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진정성 있는 응대의 수혜자라고 털어놨다. 그는 전남 구례 산골 출신이다. 자연과 벗해 자라 그런지 대인관계에서도 순수성이 두드러진다.

“지금만큼 명성이 없을 때도 고객들이 저에게 10조원이나 되는 재산을 맡긴 건 수익률도 수익률이지만 인간 장인환의 신용을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 사람에게 맡기면 마음이 놓인다 싶었던 게지요.”

어느 벤처기업에 투자했을 때의 이야기. 하루는 그 회사 사장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 사장은 “회사가 좀 어려워질 것 같다”며 “장 사장이 투자한 걸 먼저 빼 줄 테니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 회사는 결국 문을 닫았다. “투자한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건데 투자금을 돌려준 건 어려울 때 믿고 투자한 자신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장 사장은 배려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적으로 자녀와 직원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는 CEO는 사회적으로도 존경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자기 직원들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투자의 귀재 소리를 듣는 그는 투자도 사람을 보고 한다고 했다.

CEO의 장기적인 통찰력, 조직 장악력, 비전, 해당 산업에서의 역할 등을 보면 그가 이끄는 기업의 미래가 보인다는 것이다. 재무제표는 믿을 만하지만 CEO만 보면 해당 기업의 미래가 믿음직스럽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투자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해당 기업의 리더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남들도 알고 있는 재무제표는 기본입니다. 이런 숫자는 정태적일 뿐 아니라 과거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거둔 성과는 성공적인 투자를 했다기보다 실패가 적었기에 가능했는데, 실패를 줄일 수 있었던 건 사람을 봤기 때문입니다.”

현대투신운용에서 바이코리아 펀드를 운용하는 잘나가는 헤드 매니저였던 장 사장은 1999년 설립 단계에 있던 KTB자산운용을 맡는다. 그때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사람이 KTB네트워크(현 KTB투자증권)의 경영총괄 전무로 있던 이정주 전무였다. 광주일고 선배인 이 전무의 권유로 대주주인 KTB네트워크의 오너 권성문 사장(현 회장)을 만난 그는 반승낙을 했다.

그런데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반대했다. 전남 태생인 그가 대구 출신인 권 사장과 정서적으로 잘 맞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마침 시장에서는 KTB자산운용의 설립 인가가 안 날지도 모른다는 설이 돌았다. 그는 KTB행을 번복했다.

그러자 이 전무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제주도에서 세미나를 하는데 이 전무가 마지막 비행기로 내려왔다. “승낙을 받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고 버티는 이 전무에게 그는 담담히 말했다.



“선배님, 그냥 제가 가겠습니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준으로 하면 안 가는 게 맞을 수도 있었다. 20%의 스톡옵션이라는 보상이 따랐지만 리스크가 컸다. 이렇게 출범한 KTB자산운용은 설립 10년 만인 올해 수탁자산 10조원을 넘어섰다. 실적도 뛰어나 지난해까지 매일경제가 주는 펀드 대상을 3년 연속 받았다.

펀드매니저로서 장 사장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꾸준히 교류하는 이 전무(현 부영건설 사장)는 지금도 만나면 “내가 KTB에 있으면서 가장 잘한 일이 당신을 데려와 권 회장과 엮어준 것”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저를 믿고 투자한 KTB도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고 봅니다. 권 회장과 저는 사실 고향겮봉?배경이 다르고 걸어온 길도 달라요. 그분은 벤처 캐피털리스트고 저는 전형적인 펀드매니저죠.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서로 얼굴을 붉힌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저로서는 전문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지고 회사를 이끌 수 있었죠. 믿을 만한 사람을 뽑아 전권을 주는 게 신뢰입니다. 반대로 믿지 못하면서도 함께 일해야 한다면 아주 괴롭겠죠.”



‘직원들이 떠나지 않는 회사’가 꿈KTB자산운용 임원은 거의 다 창업 멤버들이다. 안영회 부사장은 바이코리아 펀드를 운용할 때 파트너였다. 회사 설립 후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장인환-안영회 1호 펀드’를 선보였다. 직원들도 오래 다니기로 업계에서 정평이 났다. 장 사장보다 몇 살 위인 그의 운전기사와 여비서도 창업 멤버이자 주주다. 그가 자신의 주식을 나눠줬기 때문이다.

그는 기사를 주임님이라고 부른다. 물론 하대하는 일도 없다. 그는 사장과 기사는 서로 기능이 다르고 그에 따라 보상도 차이가 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수평적인 관계에 있다고 했다.

“투자회사는 수평적인 문화, 파트너십을 중시해야 합니다. 이런 문화가 뿌리내릴 때 회사가 강해집니다. 같은 자산업이지만 은행이나 재벌 기업의 문화는 수직적이죠. 저의 첫 직장이 삼성생명인데 그 시절 직접 겪으면서 배웠습니다. 수직적인 문화는 한계가 있어요. 한마디로 파트너십 정신이 있는 직원은 내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펀드매니저의 경우 몸담은 회사를 내 회사라고 생각해야 고객 돈을 내 돈처럼 귀하게 여기고 그럴 때 뛰어난 투자 성과를 올릴 수 있죠.”

펀드매니저뿐 아니다. 정규직인 그의 기사는 회사의 유일한 운전기사다. 그는 다른 임원들 차가 고장나면 알아서 카센터에 맡겨 고쳐 온다. 그래야 임원이 차 수리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자기 일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장 사장과 마찬가지로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에서 검진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검진비가 가장 비싸다는 곳이다. 장 사장은 언젠가 간호사가 “사장과 기사가 동일한 검사를 받으러 오는 회사는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우리 기사는 저보다 나이가 위니까 어떻게 보면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야죠.” 그의 집무실 옆 접견실은 직원들이 주로 이용한다. 임원들은 자기 방 없이 직원들과 섞여서 일한다.

장 사장은 창업 이래 2년에 한 번씩 전 직원과 해외여행을 한다. 지난해엔 직원 가족들까지 사이판에 다녀왔다. 이렇게 가족적으로 회사를 이끌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단적으로 가족주의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환경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그는 그래서 비용을 치르게 되더라도 파트너십을 중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 꿈이 우리 회사를 직원들이 떠나기 어려운 회사로 만드는 겁니다. 이런 회사가 되려면 직원들이 사장을 존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스스로 직원들에게 모델이 되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 회사 실적이 뛰어나니까 직원들이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습니다. 직원들에게 제가 그럽니다.

‘연봉 몇 천만원 더 준다고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려면 내 회사를 창업해라.’ 실제로 투자자문회사 사장으로 독립한 직원이 몇 있어요. 그러면 떠나서도 프렌드가 될 수 있죠. 고객 자산을 놔두고 연봉 5000만원 더 준다고 옮기는 사람은 크게 성장하기 어려워요.”장 사장이 장기 근속을 중시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장기적 투자의 철학을 유지하는 근간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가 해마다 바뀌어서는 장기 투자의 운용철학이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그는 이런 철학은 사훈으로 정해 벽에 걸어둔다고 유지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기업 문화로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회사 일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나머지는 직원들에게 위임한다. 좋은 사람을 뽑고 나서 권한을 안 주는 건 바보짓이라고 했다. 직원들이 최선을 다한 결과에 대해서는 성과가 있든 없든 CEO로서 책임을 진다. 과거 금융감독원에서 감사를 나왔을 때의 일이다. 직원들이 크게 동요했다.

그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라. 사적인 이익을 위해 한 일이 아니라면 내가 다 책임진다”고 안심시켰다. “회사가 잘되면 그 공이 CEO에게 돌아옵니다. 당연히 나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죠.”그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많은 리더가 아니라 뛰어난 팰로들이라고 말했다.

창조적인 소수의 리더를 인정하고 따르는 뛰어난 팰로들이 좋은 회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직원이 많을 때 소모적인 내부 경쟁을 지양하고 외부를 지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믿을 만한 친구가 자신이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을 하면 내 일처럼 처리해 준다. 내가 신뢰하는 사람의 성공을 나의 성공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듯했다.

장 사장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고교 동기동창이다.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거니와 동원증권에서 8년 동안 함께 근무했다. ‘장인환’은 여의도에서 ‘박현주’에 버금가는 브랜드로 통한다. 2년 먼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한 박 회장과 한 배를 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정작 가까운 사람과는 동업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끼리 동업하면 헤어지던데 그럼 친구까지 잃잖아요. 의사결정 권한을 서로 행사하려다 보면 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고교 동문 선후배들과 자주 만난다. 후배들과의 모임도 잦은 편이다. 그는 후배들이 기꺼이 부르고 싶어하는 선배다. 잘나가는 자산운용사의 ‘장수’ CEO로서보다 후배들이 초대하고 싶은 선배라는 점에서 그는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이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모임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본인이 가장 잘나간다고 생각하면 보통 모임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참석해야 모임이 활기를 띱니다. 그래서 모임이 있으면 선배들한테는 직접 전화를 걸고 가능한 한 스폰서도 자주 합니다. 저는 누구든 열 번 만나면 기꺼이 열 번 밥값을 낼 용의가 있습니다. ‘저 친구는 왜 한 번도 안 살까’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n분의 1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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