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1등은 없다! ‘거북이 걸음’으로 착착
영원한 1등은 없다! ‘거북이 걸음’으로 착착
“현대·기아차가 미국 자동차 업계의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 ‘빅3’는 물론 일본 완성차 업체에도 위협적인 경쟁자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22일 뉴욕타임스는 ‘디트로이트의 고통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작은 자동차회사들’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대형 자동차회사들이 고전하는 가운데 한국과 독일의 자동차회사들이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있다고 경계했다.
현재 현대·기아차 두 브랜드의 미국 시장 판매를 합쳤을 때 일본 닛산과 같은 7.3%까지 올라선다. 닛산은 GM, 도요타, 포드, 혼다, 크라이슬러에 이어 미국 내 판매 6위를 자랑한다. 현대·기아차의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5%였다.
특히 주목할 것은 현대·기아차의 빠른 성장세다. 8월 미국 자동차산업 수요가 전월 대비 1% 증가에 그쳤지만 현대·기아차는 동기 대비 47%나 상승해 최고 판매대수를 기록했다.
이는 제너럴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회사는 물론 일본 도요타, 혼다, 닛산의 매출이 각각 25~50%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유일하게 판매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선두주자들은 전체 자동차시장 규모가 2년 전에 비해 40%나 줄어들었기 때문에 매출이 줄었다고 볼멘소리들이다.
그들과 달리 현대차는 최악의 경기침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착실하게 전진 페달을 밟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약진이 경쟁사가 주춤한 틈새를 잘 공략한 것이라고도 지적한다. 현대차의 약진과 대비해 경쟁사의 위기는 심각한 상태다. 뉴욕타임스에 현대차의 약진이 보도된 다음 날인 6월 23일 일본의 도요타 본사에서 열린 도요타 주주총회 현장.
도요타도 휘청“와타나베 사장이 도요타를 2조2000억 엔 흑자에서 4500억 엔 적자로 돌려놨으니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일이 아닌가. 여기서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기네스북에 신청해 보고 싶다.” 한 주주가 신랄한 비판을 던졌다. 와타나베 현 부회장은 곧 냉정을 되찾고 “의견은 참고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날은 도요타가 경영위기란 점을 재차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2006년 영업이익만 29조원에 달했던 도요타는 지난해 5조7000억원 적자로 돌아섰고, 올해도 최소 작년 수준의 적자가 예상된다.
미국의 빅3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현재 미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감사 결과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등에 지원된 자금과 주택압류 사태를 완화하기 위해 투입된 자금의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하다고 지적될 만큼 이들의 경영상태는 여전히 어렵다.
만약 이들의 위기가 잠깐의 경제침체 탓이라면 우리에게 큰 기회라고 할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이들의 곤경을 세계적인 경제위기 탓으로 돌릴 수만은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보다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최근 도요타는 위기의 심각성을 스스로 인정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금융위기 탓만은 아니다“도요타는 지금 구세주에게 매달려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다.”10월 2일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은 도쿄 일본기자클럽에서 가진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의 저서 『최강기업은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the Mighty fall)』의 ‘기업 몰락 5단계’를 거론했다.
도요타는 1단계 ‘성공 체험에 따른 자신감 과잉’, 2단계 ‘규율이 따르지 않는 확장’, 3단계 ‘리스크 무시’를 거쳐 4단계 ‘외부로부터의 구원에 매달림(grasping for salvation)’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요타 위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판매량 부진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엔고 상황, 최근 도요타의 적자 원인은 이 두 가지로 정리된다.
2분기에만 판매대수 감소로 8000억 엔, 엔고로 4500억 엔 정도 마이너스 요인이 발생했다. 올해 2분기 판매대수는 650만 대로 최고치였던 891만 대에서 뚝 떨어졌고 2002년 달러당 125엔 하던 환율은 30엔이나 오른 것이다. 현대차는 올해 연간기준으로 지난해보다 10% 이상 증가한 305만 대 정도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는 지난해보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30% 이상 떨어진 환율효과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키오 사장의 지적처럼 도요타의 부진이 단지 판매량 감소와 엔고 상황에 따른 것만은 아니다. 짐 콜린스가 말한 최강기업의 몰락 수순을 밟으며 하루하루 잘못된 경영판단을 밟아 온 것이란 지적이 많다.
1995년 이래 도요타가 확대노선을 추진해 오면서 지나친 설비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연간 100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었으나 팔리는 것은 그만큼 되지 않아 일부 공장을 놀리고 있다. 도요타의 올해 생산목표는 650만 대. 현재 1000만 대까지 늘린 생산능력을 700만 대의 ‘적정수준’으로 조정해 나가고 있지만 2~3년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나친 설비투자비는 감가상각비 부담도 높인다. 설비투자액이 1조5000억 엔 가까이 간 적도 있다. 공장에서 일할 사람도 늘어나다 보니 종업원 수도 지난 10년간 10만 명 이상 늘어나는 등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 대표적인 투자실패 사례가 미국 텍사스 공장이다.
2006년 11월 가동한 텍사스 공장 개소식에서 와타나베 당시 사장은 “탄트라는 좋은 상품으로 비용도 적고 설비투자는 곧 회수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지만 12억 달러를 투자해 만든 이 공장은 지금 골칫덩어리가 됐다. 도요타는 풀사이즈 픽업 트럭인 탄트라의 물량을 늘려 트럭시장 점유율을 10% 확대하려 했으나 유가상승이 빠르게 진행됐던 2008년 여름, 판매량이 급감했다.
환율이 문제면 누가 해결하나?그 후 텍사스 공장은 3개월간 휴지기에 돌입했다. 설상가상으로 리먼 쇼크까지 겹쳐 연산능력은 20만 대지만 2008년에는 9만 대밖에 생산하지 않는 쉬는 공장이 됐다. 공장을 반도 못 써먹은 것이다. 유연한 공장운영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도 못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반면 현대차는 경기 불황으로 인기가 떨어진 픽업 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대신 고효율 자동차를 주력 종목으로 내세웠다. 유가가 상승할수록 고효율자동차가 각광받는데, 여기에 선택과 집중을 한 덕에 비용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
환율문제도 그렇다.
누구나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소방수는 있어야 하는데, 도요타는 그럴 만한 인재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듣고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동양경제’는 7월 25일자 기사에서 현재 경영진에 재무통이 없는 것을 지적했다. 도요타는 미국부터 중국, 인도 등 전 세계에 생산기지가 있고, 급료나 부품 구입대금만도 1개월에 1조 엔이 넘는 돈을 지불하는 큰 회사지만 부사장급 이상에 재무통이 없다는 것이다.
‘동양경제’는 또 혼다나 닛산 등에 비해 북미, 유럽, 신흥국 시장 등을 부사장이 담당하는 글로벌 경영체제도 늦었다고 비판했다. 한 컨설턴트는 ‘도요타가 북미시장에 진출할 때 GM과 손잡은 것처럼 중국이나 인도에서도 유력한 업체와 손잡아 노하우를 흡수할 것’을 조언하기도 했다.
반면 현대차는 2007년 12월 정몽구 회장이 인사에 앞서 “앞으로 판매 역량 강화에 포커스를 맞추겠다”며 “수익성을 창출해 내는 게 중요하고 글로벌 경영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판매, 마케팅 및 재무분야에서 가장 많은 승진자가 배출됐는데 최근의 깜짝 실적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CNN머니 인터넷판은 10월 20일 올해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유일하게 매출 증가를 기록하면서 미국이나 일본 기업을 제치고 승자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칭찬에 마냥 기분 좋아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도요타를 비롯한 강자들이 다시금 회복세로 돌아선다면 현대차의 상승무드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경쟁자의 위기가 나의 기회라면 현대차가 위기를 겪지 않는 것이 최고의 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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