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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디카·생활가전이 글로벌 간판스타”

“내일은 디카·생활가전이 글로벌 간판스타”

삼성전자가 3분기 최대 실적을 냈다. 매출 36조원에 영업이익 4조1000억원.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이 회사 제품만 11개다. 그런데 이 11개가 아닌 다른 수백 개 제품을 만드는 직원들의 심사와 각오는 어떨까? 삼성전자의 ‘베스트 일레븐’을 노리는 2등 사업부들의 주전경쟁을 알아본다.
▎삼성전자 서울 서초동 사옥.

▎삼성전자 서울 서초동 사옥.

미국의 최대 가전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에서 2009년 10월 23일 현재 46인치 LCD TV(동일 스펙)의 가격은 소니 1799달러, 삼성 1619달러다. 하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두 브랜드의 가격 차이는 최소 500달러 이상 났다.

현재 베스트바이의 패널플랫TV(LCD, PDP 등)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온통 삼성과 LG 제품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삼성과 LG는 가격으로 승부하는 브랜드였다. 적어도 미국 시장에서의 분위기는 그랬다. 지금도 소니의 고가형 모델인 브라비아 LCD TV 46인치는 세일가격이 2500달러다.



LCD TV 약진으로 자신감 얻어하지만 한국 브랜드, 특히 삼성의 약진은 미국 가전시장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삼성이 LCD TV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한 데 이어 LED TV 시장을 개척하면서, 소니는 보급형 모델을 밀기 시작했고 샤프 등 일부 일본 업체는 사실상 철수하다시피 했다.

TV, 휴대전화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시장에서 가장 뜨고 있는 디지털카메라 브랜드는 삼성이다. 뉴욕타임스는 10월 14일 ‘놀랍고도 당혹스러운 카메라’라는 장문의 기사에서 “1996년부터 11년간 벌어졌던 메가픽셀 경쟁은 12메가픽셀을 정점으로 끝났다. 이제는 부가기능 전쟁”이라며 삼성의 듀얼LCD 기능이 니콘이 내놓은 프로젝트가 부착된 모델과 함께 디지털카메라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과 니콘이 최근 새로운 기능이 담긴 혁신적인 디지털카메라를 선보이며 카메라업계의 새로운 기술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뉴욕타임스는 기분 좋은 채찍질도 한다. 삼성의 듀얼LCD 기능이 과연 경쟁사보다 50~100달러 이상 비싸야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것.

신문은 새로운 기능이 놀랍긴 해도 셔터속도 등 사진품질을 좌우하는 핵심역량에는 아쉬움이 있다며 카메라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낸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명확히 양분화된 세계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간과했다. 디카 시장은 고성능의 DSLR과 기능 위주의 콤팩트 카메라로 양분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삼성의 디지털카메라가 TV시장에서의 소니 브라비아처럼 고가에 팔린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다. 박성수 삼성디지털이미징 상무는 “카메라 기술이 어느 정도 평준화되면서 제조업체 주도의 화소수나 줌배율 등 성능중심 경쟁에서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사용편의성과 디자인 차별화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며 “삼성은 앞으로도 소비자 중심의 트렌드를 이끌어 휴대전화나 LCD TV처럼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콤팩트 부문 디카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10%, 올해 12%로 3위지만 2012년에는 20%로 1위에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대해 노근창 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콤팩트 디카 기준으로 삼성은 소니, 파나소닉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며 “매출 5조원과 2012년 세계시장 20% 점유율로 1위에 오를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디지털카메라는 삼성테크윈에서 분사한 삼성디지털이미징이 전량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사업부로 분류하는 이유는 두 회사 간 협업 때문이다. 삼성 디카가 해외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삼성전자가 글로벌마케팅을 도맡은 최근부터다. 삼성전자 내부에는 디지털카메라의 글로벌 운영을 담당하는 디스플레이 전략마케팅팀이 있다.

생산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삼성전자와의 협력 수위를 높여가는 추세다. 급기야 삼성전자는 디지털이미징을 합병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미 공시도 했다. 삼성전자 홍보실도 “삼성디지털이미징이 삼성테크윈에서 분사한 것과 마찬가지로 혹시 합병하게 된다 해도 이는 업종전문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합병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부품 기업 이미지가 강했던 삼성전자는 이제 완성품 업계에서도 품질, 가격, 수량 어느 하나 밀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1등이 있으면 2등이 있게 마련이다. 이는 1등 기업 내부에도 적용된다. 세계 1등이라는 삼성전자에서 2등 사업부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생활가전 수년 내 세계 30% 점유율 목표

삼성 고위임원 출신의 한 재계인사는 “원래 기본급이 그리 높지 않은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 1등 사업부에 근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당장 성과급의 차이가 거의 연봉 가까이 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보다는 위닝팀에 끼지 못한다는 스트레스가 특히 임원들 사이에서 무척 크다”며 “개인의 커리어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시즌이 되면 이런 차이는 더욱 커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지 어느 기업에서나 있는 일이다. 정작 삼성전자라는 1등 기업에서 2등으로 산다는 건 ‘패배감’이 아닌 ‘투쟁심’을 북돋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투자 부문에서 더욱 그렇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한 직원은 “성과급에서 차이가 나 한동안 불만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더 욕심을 내게 된 게 지금의 성공요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 출신 한 재계인사도 “삼성전자는 된다 싶은 사업에는 항상 1등, 2등을 따지지 않고 꾸준히 투자해 왔다”며 “반도체도 오랫동안 2등인 때가 있었지만 투자를 아끼지 않아 지금의 절대적인 경쟁력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삼성전자 사장단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지성 완제품 부문 사장은 9월 4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2009’에서 “2012년 디지털 황금기 진입을 앞두고 이에 대비한 절대적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또 “삼성전자의 생활가전 시장점유율이 (세계) 5% 수준이지만 수년 내에 6배 이상 끌어올리겠다”고 말해 사실상 생활가전사업부의 글로벌 톱 브랜드 육성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는 “삼성에 2등 사업군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최지성 사장은 이를 실천에 옮겼다. 생활가전사업부에서 에어컨 사업을 분리해 새 조직을 만들고 윤부근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에게 국내에서도 2위 사업군인 에어컨의 경쟁력 향상을 맡겼다. 1등을 해본 사람이 또 다른 1등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그 이유. 윤부근 사장은 LED TV 시장을 개척해 삼성전자의 TV를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2위 꼬리 떼려는 ‘용의 꼬리들’이로 인해 최근 생활가전사업부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에서만큼은 독보적인 1위였지만 세계 1위가 수두룩한 삼성전자 내에서는 그간 제 목소리를 높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박제승 생활가전사업부 전무는 “글로벌 톱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개발인력 확충, 고급제품 라인업 확대, 생산거점 개편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무는 “세계 생활가전 업계를 리드하는 혁신적인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10% 이상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3년 이내에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무는 이를 위해 생활가전사업부가 준비 중인 과제를 세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먼저 혁신적 디자인과 제품으로 삼성 생활가전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정착시키겠다는 것.

또한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신흥시장의 문화에 맞는 현지화 상품기획 능력을 높여 이 시장 점유율을 더욱 끌어올리며, 마지막으로 에너지 절감 관련 제품에서의 개발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삼성 생활가전은 중앙아시아, 동남아, 서남아 등 신흥시장에서 매년 30% 수준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품질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따고 있다. 품질 조사기관인 JD파워의 냉장고 부문에서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세탁기 부문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신흥시장에서의 스피드와 선진국 시장에서의 품질이라는 두 목표가 제대로 들어맞고 있다는 게 생활가전사업부의 자체 판단이다. 하지만 한 재계인사는 “생활가전은 기본적으로 삼성전자 내에서 열등감을 느껴왔던 부문이라 1위 DNA 이식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애널리스트도 “생활가전에는 세계적인 강자가 많기 때문에 단기간 내 톱 브랜드로 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무모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내일은 삼성전자의 간판스타를 꿈꾸는 2위 사업부들이지만, 아직은 역시 눈치가 보인다. 삼성전자의 프린터사업부는 최근 ‘1등을 1등이라 부르지 못하는’ 다소 황당한 일을 겪었다.

프린터사업부는 생활가전, 디카, PC사업부와 함께 차세대 간판스타로 떠오르는 사업부. 최치훈 디지털프린팅 사업부장(사장)은 지난 9월 5일 기자들과 대화 중 “삼성 레이저프린터가 2분기 이탈리아 시장에서 선발주자 HP를 두 배 이상 격차로 따돌리고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적절치 못한 반응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HP는 삼성의 큰 고객사이기 때문이다. 프린터가 아닌 기존 D램, 컴퓨터 모니터, LCD TV가 같은 일을 겪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확실한 1등 사업군이 아닌 이상 1등 사업부 큰 고객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아직 터부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대형 전자업체들은 서로 물리고 물린 경우가 많다. 캐논은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의 라인을 설계해 주지만 이를 통해 생산된 반도체를 대량 구매하는 고객사이기도 하다.

프린터, 생활가전, 디카가 1등을 1등이라 당당하게 부를 수 있으려면 ‘내일’이 아닌 ‘오늘’의 간판스타가 돼야 한다. 그리고 이들 사업부가 ‘오늘의 간판스타’가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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