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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남자, 흑인 여자

백인 남자, 흑인 여자

우리나라에서도 인종문제가 서서히 불거지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장가를 가지 못한 농촌 총각들이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 여성들과 짝을 지어 스위트 홈을 꾸미고 행복한 전원생활을 즐긴다는 소식이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까지 남부 16주에서 백인과 흑인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이 엄연히 존재해 가정을 이룰 수 없었다. 연방최고재판소가 1883년 ‘베이스 대 앨라배마 판결’에서, 이인종 간의 성적 접촉을 동인종 간 성범죄보다 중벌하는 규정을 가진 앨라배마 주법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법률에 근거해 이인종 간 섹스를 금지한 법률은 20세기까지 이어져 왔다. 이 법령이 폐지된 것은 한 백인남성이 위헌소송에서 승리해 가져다준 전리품이었다.

이 사건은 버지니아주에 사는 리처드 라빙이라는 백인남성이 1958년 흑인여성과 비밀리에 결혼한 것을 어떤 백인이 밀고해 사법당국이 백인과 흑인의 결혼을 금지한 버지니아주 이인종혼교금지법 위반혐의로 이 부부를 체포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버지니아주 법정은 이 이인종 부부에게 25년간 주외(州外)거주를 조건으로 금고 1년의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 법정 판결에 따라 워싱턴 DC로 이주한 라빙 부부는 이 부당한 인종차별을 연방최고재판소에 가져가 항소했다. 사건 발생 12년 만에 미연방최고재판소가 내린 ‘라빙 대 버지니아 판결’은 “이인종혼교금지법은 헌법수정 제14조에 정한 평등한 보호의 규정에 위반한다”고 인정하고, 이 판결에 의해 백인과 흑인의 결혼은 미국 전 지역에서 용인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최고재판소의 법률 폐지 판결은 이인종 간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여전히 이인종 간 결혼을 백안시하고 그 커플과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남녀 간 교제는 린치 등 가혹행위로 응징하는 백인 폭력에 의해 높은 벽에 부닥쳤다.

그 정도로 백인우월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데 분노한 사람은 존슨 대통령의 공보비서였던 그레이스 할셀이란 언론인이었다. 백인이었던 그녀는 어느 날 피부색을 까맣게 하고 흑인여성이 되어 피부가 검은 여성에 대한 백인남성의 태도가 고압적인 것을 직접 체험하고 이것을 『검은 피부는 알았다』라는 제목의 수기로 발표해 대중에게 큰 반향을 얻었다.

그것에 이어 할셀은 다시 이인종혼교금지법 폐지 운동의 모티프를 제공한 라빙 부부를 취재하고, 성혁명 이후 백인과 흑인의 성관계 실상에 관한 고찰을 담은『검은 성(性) 하얀 성』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 속에서 할셀은 이인종 간의 결혼이 합법화되어도 주위의 시선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냉랭했다고 지적했다.

그녀에 의하면 백인남성이 흑인여성과 어울리면 주위 백인들이 일제히 불쾌감을 표시하고, 그 흑인 여성에 대해 주변의 흑인남성의 눈도 냉담해져 대화를 끊었다고 했다. 백인남성과 흑인여성 커플은 실제로는 식민지 시대의 노예제도 때부터 아메리카에 존재했던 골치 아프고 만만치 않은 사회문제였다.

워낙 뿌리가 깊은 인습인지라 최고재판소의 합헌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커플을 따뜻한 눈으로 보는 자세는 아직 싹트지 않았다. 엄격히 말하면 지금도 미국 보수층에서는 인종이 서로 다른 남녀의 결혼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문제는 미국 사회에서 성을 둘러싼 최후의 타부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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