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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잔한 인생의 가을

애잔한 인생의 가을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해질 무렵 낙엽은 쓸쓸하다 /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속삭인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 낙엽이 되리니’. -레미 구르몽 ‘낙엽’ 중에서

‘그대여 / 가을 저녁 한때 /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 사랑은 왜 /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 ‘가을 엽서’ 중에서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 가고 주위는 / 자꾸 어두워 갔다 /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 곳으로, 내리고 싶다’. -황동규 ‘시월 6’ 중에서

꼭 이맘때 읽으면 가슴이 아린 시들이다. 가을바람처럼 가슴 시리게 하는 그림도 있다. 시적 감성이 풍부한 그림으로 독창적 회화 세계를 구축한 존 에버렛 밀레이(1829~96)의 ‘낙엽’이다.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낙엽에 빗대어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낙엽은 예상한 대로 쇠락, 그리고 죽음을 암시한다.

태양이 빛을 잃은 차가운 저녁 하늘, 낙엽 태우는 연기 역시 황혼기의 삶과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설정이다. 가을 저녁 같은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바라보는 인생은 이 그림처럼 스산할 것이다. 그런 심정을 실감나게 부추기는 이미지로 작가는 소녀를 등장시킨다. 낙엽을 끌어 모아 태우는 소녀들은 청순하고 예쁘다.

젊음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세월의 이미지는 가을 저녁 풍경으로 연출해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했다. 낙엽 타는 연기로 물든 가을 저녁 무렵은 가슴 저미는 풍경이다. 스코틀랜드 퍼스에 살았던 작가의 집 안마당이 그림의 무대라고 한다. 이곳의 짧은 가을은 사려 깊은 밀레이가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소재였을 것이다.

그가 황혼기 삶의 무게를 애수 어린 풍경에 담아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당시 알고 지낸 시인 앨프레드 테니슨의 영향이 컸다. 밀레이는 가을의 우울한 분위기를 좋아했는데 낙엽 타는 냄새를 ‘지나간 여름의 향내’라고 풀어낼 정도로 특히 낙엽 태우는 냄새에 심취했다고 한다.

낙엽 더미를 둘러싼 네 명의 소녀는 모두 다른 얼굴이다. 애조 띤 얼굴을 한 왼쪽 끝의 소녀는 이 일과 무관하다는 표정이고, 두 손에 움켜쥔 낙엽을 더미 위에 올려놓는 소녀는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그 옆의 소녀는 기도라도 하는 듯 눈을 감고 있어 명상적 분위기를 풍긴다.

손에 과일을 든 키 작은 소녀는 타는 낙엽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 인생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선 혹은 삶의 방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연기는 소녀들을 휘돌아 나가 어스름한 벌판에 스며들고 있다. 다른 삶이지만 결국 모두 죽음을 맞는, 인생이라는 엄숙한 진리를 뜻한다. 지평선 너머의 여명은 이 그림을 애잔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로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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