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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으로‘두 마리 토끼’단번에 잡아라

원자력으로‘두 마리 토끼’단번에 잡아라

바야흐로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다. 지구가 날로 뜨거워짐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원자력이 떠오른다.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붐을 이루고, 원전 플랜트 수출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쟁은 치열해진다. 블루오션으로 부상한 원자력 시장을 어떻게 파고드느냐에 따라 우리는 녹색성장,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단번에 잡을 수도, 모두 놓칠 수도 있다. 원자력 경쟁은 시작됐고, 우리는 전장(戰場)에 서 있다.

지구가 불붙는다. 지난 100년간 지구 기온이 평균 0.47도 올랐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영향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하면 21세기 말 지구 온도가 최대 6.4도, 해수면은 59㎝ 상승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면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고, 일본 열도가 물에 잠긴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수중 침몰도시’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원자력, 온실가스 감축 대안으로 부상세계 각국은 급격한 기후변화에 주목한다. 2005년 2월 ‘온실가스 감축’을 골자로 한 교토의정서가 발효됐다. 이 협정에 따라 유럽연합(EU)은 8%, 일본과 캐나다는 6%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면제 대상국으로 분류돼 있지만 언제 압박이 가해질지 모른다. 2차 의무기간인 2013~17년에 온실가스 감축 대상국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의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2007년)를 보면 한국의 총 배출량은 5억5800만t으로, 세계 16위다. 에너지 부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따로 떼면 4억4900만t으로 세계 10위다. 정부가 지난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4% 줄이겠다’고 결정한 이유다.

대비하지 않았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도, 품도 많이 든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보다 10% 줄이려면 최대 28조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온실가스를 줄여주는 만병통치약으로 떠오른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국가 에너지 발전량(2008년)에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0.9%에 불과할 정도다. 완전무결한 것도 아니다. 태양광에선 1㎾h당 57g, 풍력에선 14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세계 각국이 최근 청정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발전 비중을 높일 수 있는 원자력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이은철 서울대(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화력발전 비중을 낮춰야 하는데, 현재로선 원자력만이 이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이 온실가스 감축의 현실적 대안이라는 얘기다. 원자력은 실제 청정에너지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태양광보다 49g이나 적은 9g에 불과하다.

석탄(991g), 석유(782g) 배출량의 11%, 9% 수준이다. LNG(549g) 보다도 540g 덜 나온다. 공급 안전성이 뛰어난 것도 강점이다. 원자력의 에너지원 우라늄 1㎏에선 석유 9000드럼, 석탄 3000t, 물 2억2000만t이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나온다. 2000㎾급 풍력발전기 2대가 1년 동안 생산한 발전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입대체효과도 크다. 요컨대 연 원자력 발전량 1억5096만㎿h를 석유에너지로 대체한다면 25조1000억원에 달하는 석유를 수입해야 한다. 같은 양을 LNG와 석탄으로 대체하면 각각 16조1000억원, 7조9000억원어치를 사들여야 한다. 이는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7%에 이르는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력 대체 에너지는 원자력뿐”

지난해 우리는 1400억 달러에 이르는 에너지를 수입했다. 같은 기간 수출액(1109억 달러)보다 291억 달러 많은 액수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에너지 수입으로 몽땅 써버리는 셈이다.

한국수력원자력 김종신 사장은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여 에너지 수입량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세계 각국은 최근 원자력에 주목한다.

55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일본은 2006년 100년 앞을 내다보고 ‘원자력입국계획’을 세웠다. 일본의 원전 ‘백년대계’ 전략은 이미 3년 전 시작된 셈이다. 원전 11기를 가동하는 중국도 기존 9000㎿ 발전량을 2020년까지 7만㎿로 늘릴 계획이다. 1979년 미국 TMI 원전,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금지했던 국가도 족쇄를 풀 태세다.

20년간 원전 건설을 금지해 온 이탈리아는 올 2월 프랑스와 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해 원전 건설을 사실상 재개했다.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그간 원전 건설을 적극 반대했던 몇몇 학자도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그린피스 창립자이자 국제환경운동 지도자로 활동하는 패트릭 무어 박사는 “그린피스는 원자력의 이점과 파괴적 오용을 구분하는 데 실패했다”며 “원자력이야말로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적의 에너지이자 희망의 불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원자력 열풍이 분다.

2030년까지 세계 시장에서 추가 발주되는 원전은 300기에 이른다. 중국, 러시아, 인도 등과 같은 신흥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신규 원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 시장규모는 어림잡아 10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야말로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의 개막이다.

이 시장을 어떻게 파고드느냐에 따라 우리는 녹색,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눈앞에서 놓칠 수도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 원자력 기술이 세계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일본원자력산업회(2008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설비용량은 18GW로 세계 6위다.

원전 이용률은 93.4%로, 세계 평균 79.4%보다 훨씬 높다. 6기 이상의 원전을 보유한 국가 가운데 1위다. 이 이용률은 원자력 발전설비가 고장 없이 운용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원전 이용률이 높다는 것은 운전 및 정비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실제 우리나라 원전의 고장 정지율은 연 평균 1기당 1회를 넘지 않고,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무고장 운전기록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기술력도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1978년 고리 1호기 이후 건설돼 지금까지 운전 중인 울진 3, 4, 5, 6호기, 영광 5, 6호기 등 표준형 원전의 기술자립도는 95%에 이른다. 최근엔 발전용량을 1000㎿급에서 1400㎿급으로 확대하고, 수명을 20년(40년→60년) 늘린 차세대 원자력발전소 APR1400을 개발했다.

울산광역시에 건설되는 신고리 3, 4호기가 바로 신형 APR1400이다. 2013년 출시를 목표로 1500㎿급 대형 원자로 APR+도 개발 중이다. 고리 1호기가 100% 외국 힘으로 만들어졌고, 당시 우리는 모래·자갈 따위를 나르면서 허드렛일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약적 발전이다.

황주호 경희대(원자력공학과) 교수는 “1980년대 선진국들이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 동안 우리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며 “이제까지 에너지 기술개발을 위해 투자해 이만한 성공을 거둔 것은 원자력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또 “우리가 일본, 프랑스와 경쟁하고 있는 것만 봐도 우리의 기술력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쟁력을 무기로 우리는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선다. 한국전력과 한수원은 현재 아랍에미리트와 요르단·핀란드·루마니아 등에 원전 플랜트 수출 여부를 타진한다. 원전 수출이 이뤄진다면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관광명소 발돋움한 프랑스 방폐장

한수원에 따르면 원전 2기만 수출해도 27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20척을 판 것과 동일한 수출효과다. 여기에 각종 부가가치 창출까지 감안하면 경제효과는 수 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우리에겐 아직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원자력 시장은 기업들만 경쟁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세계 각국 정부도 직간접적으로 전장에 가세한다.

원전 플랜트 수주 경쟁을 할 때 물밑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질 정도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원자력 시장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며 “정부의 후방지원이 약하면 원전 플랜트 공사를 수주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득보단 실이 많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원전 기술력에 대해 세계 각국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때가 적지 않다. 대부분 우라늄을 이용해 핵연료를 만드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다.

황주호 교수는 “지금껏 우리는 원자력의 규제와 이용개발(연구개발사업)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관장해 왔다”며 “국제관계를 고려한다면 규제와 이용개발을 담당하는 부처를 분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원자력 이용개발을 관장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분리해 제3자가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넘어야 할 산은 더 있다.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해소해야 하는 것도 당면 과제다. ‘방사능 유출 위험이 있다’‘폭발 가능성이 크다’는 불안감을 하루빨리 불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발전량 비중을 늘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원자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해야 하고 새 방폐장도 지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면 예상보다 큰 진통이 따를 가능성이 크다. 경주시에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이 들어설 때까지 무려 19년 동안 갑론을박이 거듭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김종신 사장은 “사실 원자력 방폐장이 환경을 파괴한 적도, 원전의 폭발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며 “국민에게 잘못 알려진 게 많다”고 했다. 이은철 교수도 “이제부터라도 정정할 것은 정확하게 바로잡아야 한다”며 “정부와 국민의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야만 원자력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여기엔 좋은 사례가 있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촬영지로 유명한 프랑스 라아그엔 방폐장이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주민들은 이곳을 연 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만들었다. 소통을 통한 설득과 화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원자력 발전 비중을 늘리는 것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선 필연적 선택일지 모른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라도 원자력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지금은 지구가 불붙음에 따라 원자력 시장도 불붙고 있다. 오죽하면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이야기까지 나올까.

원자력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호들갑을 떨어서도, 축포를 쏴서도 안 된다. 곶감은 달콤하지만 남는 것은 작은 막대기뿐이다. 축제에 흠뻑 빠지기보다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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