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은 에너지가 아니라 지혜다”
“원자력은 에너지가 아니라 지혜다”
원자력은 특별한 게 많다. 효율성이 높고 경제적이다. 게다가 태양광을 무색하게 하는 청정에너지다. 온실가스 감축 문제가 글로벌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원자력 시장이 새롭게 조명받는 이유다. 하지만 원자력을 둘러싸곤 곱지 않은 시각도 많다. 방사성 폐기물이 환경을 파괴하고, 폭발 위험성이 크지 않으냐는 거다.
11월 20일 한국수력원자력 김종신(64) 사장을 만나 원자력의 오해와 진실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김 사장은 “원자력은 지혜의 산물”이라며 “앞으로 다가올 1000조 시장을 잡기 위해 원자력산업을 집중 성장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최근 원자력이 경제적이고 힘센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농축 우라늄 1㎏은 사과 1개 크기입니다. 그런데 석탄 3000t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내죠. 가격이 싼 것도 원자력의 강점입니다. 수력 에너지의 1㎾h당 판매단가가 134원인 데 반해 원자력은 39원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 친환경 에너지로도 각광받고 있는데요.“원자력에선 이산화탄소가 거의 분출되지 않습니다. 1㎾h당 탄산 9g이 나올 뿐이죠. 석탄(991g), 석유(782g), 심지어 태양광(57g)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청정에너지입니다.”
원자력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태양광보다 적다는 것은 놀랍다. 김 사장은 “원자력발전소엔 굴뚝이 없다”고 빗대 설명했다. 그만큼 청정에너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원자력의 에너지원은 우라늄이다. 필연적으로 우라늄 찌꺼기가 남는다.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친환경적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 문제는 우라늄 찌꺼기 등 방사성 폐기물을 어떻게 관리·보관하느냐로 보입니다.“방사성 폐기물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작업복·공구 등 방사성 수준이 낮은 것인데, 이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유형의 폐기물은 지역 발전소 내 임시저장소에서 관리합니다. 2012년 1단계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경주시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에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할 예정입니다. 우라늄 찌꺼기를 의미하는 고준위 폐기물은 발전소 아래에 설치된 ‘수조’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태양광보다 청정한 에너지, 원자력
>> 쉽게 말하면 방사성 폐기물을 지하에 보관·관리한다는 것 아닙니까?“그렇습니다.”
>> 방사성 폐기물이 유출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렇다면 환경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해수면 아래 80m~130m에 있는 암반에 동굴을 파고, 콘크리트 저장고를 만듭니다. 그 속에 작업복 등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넣은 드럼을 넣고, 다시 메우죠. 방사성 물질이 분산되지 않도록 콘크리트 구조물에 격리 보관하는 것입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관리하는 수조도 비슷한 구조입니다.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가능성은 0%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보관하는 것보다 재활용하는 게 경제적이지 않을까요? 그럼 보관·관리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옳은 지적입니다. 연탄도 덜 탄 부분을 재활용할 수 있듯이 원자력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기술적으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2013년까지 유효한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우리는 독자적으로 이를 재처리할 수 없습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서 핵 원료(플루토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교토의정서가 2005년 2월 발효됐습니다. 이 협정에 따라 일본 등 인준국들은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데요. 그 때문인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미미한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 특히 원자력 발전 플랜트 시장 규모가 커질 전망입니다. 2030년까지 1000조원에 육박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10%만 잡아도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입니까?“1979년 미국 TMI 원전사고,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미국·러시아·독일 등 선진국은 원전건설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일본·프랑스 등 몇몇 국가는 원전 건설을 멈추지 않았죠.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프랑스를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우리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라는 말입니까?“그렇다고 자부합니다.”
>>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은 쉽습니다. 일본, 프랑스도 자신들의 기술력이 최고라고 말할 겁니다. 근거가 중요한데요.“일반적으로 100만㎾급 원전 2기를 건설하는 데 60~70개월 걸립니다. 우리는 50개월이면 건설하죠. 공기가 짧으니 비용도 절반 수준입니다. 기술, 가격경쟁력 모두 우리가 우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 건설도 중요하지만 원자력발전소의 운영능력도 중요할 듯한데요.“물론입니다. 우리의 원전 이용률은 93.4%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프랑스(76%), 일본(59%)을 넘어선 지 오래죠. 이 이용률은 원자력 발전설비를 고장 없이 이용하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쉽게 말해 원전 이용률이 높다는 것은 원전의 안전관리, 운전 및 정비 능력이 탁월하다는 의미입니다.”
>> 이 정도 경쟁력이라면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한국전력과 한수원은 현재 아랍에미리트·요르단·핀란드·루마니아 등을 상대로 원전 플랜트 수출 여부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날아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첫 단추만 잘 꿰면 탄탄대로 열린다”
>> 견제가 심할 것 같습니다.“그렇습니다. 우리는 해외 원전 플랜트 공사를 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쟁국에서 이 부분을 집중 부각하죠. 일종의 네거티브 전략인데, 우리는 ‘정석’으로 맞불을 놓습니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자신하기 때문이죠.”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작은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도 전년도 실적이 필요한 법이다. 하물며 규모가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원전 플랜트 공사 수주는 어떻겠는가? 김 사장은 “첫 단추만 잘 꿰면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원전 플랜트 사업자로 선정되면 한국형 원전 수출은 그야말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 원전 수출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입니까?“해외에 원전 2기를 수출하면 평균 27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중형 자동차 16만 대를 수출한 것과 같은 효과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직접 수출효과일 뿐입니다. 원전을 수출하면 설계·토목건설·금융 등 경제의 전반적 분야에 영향을 줍니다. 가령 1000㎿급 원전 2기를 수출할 경우 생산 및 부가가치 창출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5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원전 기술자를 수출할 수 있다는 점이죠.”
>> 세계적으로 원전 전문가가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겠군요.“그렇습니다. 미국은 1979년 TMI 원전사고 후 지금까지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했죠. 그래서 원자력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미국원자력기구가 ‘미국은 향후 10년간 원자력 기술자 800여 명, 보건·물리학자 700여 명 등 신규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할 수 있는 전문인력의 부족 현상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을 정도죠. 우리나라 원전 전문가의 해외 진출은 떼 놓은 당상입니다.”
>> 원자력 전문가를 더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일 듯합니다.“정부의 원전 비중 확대 정책에 따라 2011년까지 1000명 이상의 원전 전문가가 더 필요합니다. 원전 수출이 시작되면 필요 인력은 더욱 늘어나겠죠. 올해 필요한 건설 및 시운전 인력 550여 명을 포함해 발전소 운영능력을 안정적으로 제고할 필수인력 등 총 640여 명의 증원을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독자 기술 배양해 일본·프랑스 압도할 터김 사장의 말처럼 한국의 원자력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풀어야 할 숙제도 아직 많다. 샴페인 뚜껑을 섣불리 땄다간 정작 중요한 순간에 뒤처질 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하다.
정부와 국민의 지원을 등에 업고 원자력 시장 잡기에 나선 일본·프랑스와는 다른 처지다. 오죽하면 아랍에미리트 원전 플랜트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매일 (아랍에미리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건다는 소문이 흘러나올까 싶다.
>>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대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겠죠. 그게 중요합니다. 해외에선 일본·프랑스와 그야말로 진검승부를 벌여야 합니다. 그들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선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춰야 하죠. 정부가 원전설계 핵심코드, 원자로 냉각재 펌프, 원전계측 제어시스템 등 독자 기술 배양에 나선 이유는 여기에 있죠. 일단 원전계측제어시스템 개발은 완료된 상태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검증작업을 하고 있죠. 2015∼16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신울진 1, 2호기에 우선 적용될 전망입니다.
>> 원전계측 제어시스템 관련 기술이 우리에겐 없었나요?“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기술을 확보하면 원전 1기당 1000억원의 수입대체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또 다른 핵심기술이라는 원전설계 핵심코드와 원자로 냉각재 펌프의 진척 상황은 어떻습니까?“원전설계 핵심코드는 2012년까지 원천기술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원자로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자로 냉각재 펌프 관련 기술도 두산중공업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2012년 개발 목표로 혼신의 힘을 쏟고 있습니다.”
원전설계 핵심코드와 원자로 냉각재 펌프는 사실 우리의 발목을 질기게 잡아 왔다. 특히 원전설계 핵심코드의 부재는 원전 수출을 방해하는 제약 요인 중 하나였다고 한다. 독자 설계 핵심코드를 확보하면 우리나라는 미국(웨스팅하우스), 프랑스(아레바)에 이어 세 번째 보유국이 된다. 일본은 아직 이 기술이 없다.
원자로 냉각재 펌프 역시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외화유출 논란이 많았다. 김 사장은 “이 펌프의 국산화에 성공하면 원전 1기 기준으로 135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고리 1호기가 가동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게다가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요. 목표는 무엇입니까?“1978년 고리 1호기를 건설할 때만 해도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모든 업무를 담당했죠. 우리는 모래와 자갈을 운반하는 지극히 초보적인 역할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개무량하죠. 원자력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닙니다. 지혜의 산물입니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경영기법이 접목되기 때문이죠.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해 원자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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