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런 ‘빽’ 없었지만 영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영어 능통자. 단, 58세 이하 나이 제한’. 지난 5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전통문화 체험공간 한국의 집이 낸 관장 공모에는 이런 조건이 붙어 있었다. 한식이나 전통 공연 등 한국 전통문화를 보급하는 공간이니 외국인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 하는 어학 능력이 필수적인 자리였다.
30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던 김맹녕(64)씨는 ‘이거다!’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어라면 자신 있었다. 그러나 나이 제한 규정이 걸렸지만 일단 서류를 내고 결과를 기다려 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면접 심사에 오라는 연락이 왔다.
“우리 연배에 실무 경험과 영어 실력을 갖춘 적격자가 많지는 않았겠죠”라고 김씨는 웃으면서 말했다. 영어 인터뷰까지 무사 통과한 그는 지난 7월 한국의 집 관장에 부임했다. 김맹녕 관장의 이력을 살펴보면 영어 자신감은 쉽게 이해된다. 통역장교 출신으로 대한항공에서 30여 년 근무한 ‘칼맨’이다.
회사의 특성상 직장생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냈다. 일본에서 10년, 미국 하와이에서 13년을 근무해 일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하지만 강원도 원주에서 미군 트럭에 대고 “기브미 쵸코렛 찹찹!”이라고 외치던 어린 시절부터 그는 언제나 영어 공부에 열심이었다.
중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발음의 기초를 배웠고 좋은 문장을 200번씩 받아쓰는 연습을 했다. 충주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때마침 충주비료공장이 문을 열어 많은 미국인 기술자와 관리인이 충주에 상주하게 됐다. 몇몇 직원 부인이 자원봉사로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줘 열심히 배웠다.
“부인들은 저희를 숙소에 초대해 영어 회화와 테이블 매너 등을 가르쳤습니다. ‘together’를 ‘타게자’라고 읽었던 우리 발음을 일일이 교정해줬죠. 사실 수업이 끝나면 쿠키를 선물했는데 그거 먹으려고 더 열심히 했어요”라며 김 관장은 웃었다. 이때 충주고 1년 선배인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함께 공부했다. 또 동급생 친구와 2년 동안 매일 새벽에 만나 재미교포 2세가 쓴 영어 교재를 공부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열정이 대단했어요. 원어민들이 실제로 쓰는 표현을 배운다는 게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때부터 김 관장은 책으로 배우는 영어와 실제 말하는 영어의 차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연세대를 졸업한 뒤 통역장교로 군에 입대한 그는 제1기갑여단에서 미군과의 협력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미군이 보급하는 신기술이나 장비의 안내 책자 발간이나 정례 브리핑의 통역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별도로 군사 용어를 익혔지만 동시통역을 하다 보면 당황스러운 경우도 여럿이었다. 한번은 군대 막사에 이가 들끓는다는 보고를 통역하게 됐다.
“갑자기 이가 영어로 뭔지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결국 ‘small insect that sucks blood(피를 빨아들이는 작은 벌레)’라고 풀어서 설명하니 ‘You mean lice(이를 말하나)?’라며 바로 이해하더군요.” 육군 중위로 전역한 김 관장은 유학 준비를 했다. 하지만 5남매의 장남인 그에게 유학은 사치였다. 그래서 73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김 관장의 어학 실력은 항공사란 직장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당시 한 영자신문사에서 운영하던 타임반(시사지 타임 기사 공부반)과 영작반에 3년간 출근 도장을 찍었다. 군대에서 주임상사에게 배웠던 일본어 실력을 인정 받아 일본의 오사카와 나고야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기도 했다.
그 뒤에는 조중권 당시 대한항공 사장 비서로 발탁되어 해외 출장을 수행했다. 국제 기자회견이나 비즈니스 회의에서 동시통역을 맡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일반적인 의사소통은 문제가 없지만 사자성어 같은 표현이 나오면 곤혹스럽기 그지없어요. 아전인수, 타산지석 같은 말을 대체할 영어 표현이 금방 떠오르지가 않죠.”
한번은 한 국제회견장에서 “천인공노할…”이란 표현이 나왔다. 김 관장은 잠시 고민한 뒤 “The sky is upset. The earth is annoyed”라고 간결하게 통역했다. 그는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어서 통역할 때 무심코 잘못된 뉘앙스를 전하진 않았는지 늘 되짚어 본다”면서 아찔했던 순간들을 돌이켰다.
5년여간의 비서실 생활을 마친 김 관장은 90년대 초부터 하와이 호놀룰루 지점장으로 근무하게 됐다. 영어라면 자신 있는 김 관장이었지만 곧 현지 언어의 벽에 부딪혔다. “수퍼마켓에 가면 ‘때삐오?’라고 하는데 도통 못 알아듣겠더군요. 알고 보니 ‘(Will) that be all(이게 다입니까)?’라는 간단한 표현이었죠.”
김 관장이 한국에서 배운 영어와 현지어의 격차를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곳은 골프장이었다. 업무상 비즈니스 골프를 칠 일이 많았는데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어울려 치다 보면 필드에서 어색한 순간이 찾아왔다. 표현 방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흔히 쓰는 골프 용어 중에는 ‘뻥카’ ‘도라이버’ ‘나이스 빠따’ 같이 잘못된 영어 표현이 많아요. 또 예를 들어 핸디캡 9 이하의 골퍼냐고 묻는다고 ‘Are you a single(당신 싱글인가요)?’이라고 하면 결혼 여부를 묻는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single figured handicapper’라고 말해야 정확하지요. 골프가 국제적인 비즈니스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으니 영어권에서는 어떤 골프 용어들이 쓰이는지 정리하면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8년부터 ‘김맹녕의 골프 영어’를 국내 일간지에 연재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한항공에서 은퇴한 뒤에도 골프 영어 강의와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요즘 김 관장은 2년의 임기 동안 어떻게 한국 전통문화와 음식을 해외에 잘 알릴지 고민 중이다. 그의 첫 작품은 지난 9월 출시한 ‘대장금’ 정식이다. 한복려 조선왕조궁중음식보유자의 감수를 받아 옛 궁중음식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재현한 25만원 상당의 최고급 한식 상차림이다.
그동안 110식을 팔았다. 높은 가격에 비하면 상당한 성과다. 국내외 유명 정치인들과 기업인, 문화계 인사들이 다녀갔다. 대장금 정식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 관장은 외국 손님들에게 영어 설명을 맡아서 했다. “제가 한국의 집에서 제2의 도전을 펼치게 된 건 영어 덕분이었습니다.
‘영어 능통자’라는 자격 조건을 봤기 때문에 응시했고 한국의 집을 글로벌 관광명소로 키우는 일에 든든한 무기가 됩니다. 지난 세월을 쭉 돌이켜 봐도 영어는 저의 유일한 ‘빽’이었습니다.” 인터뷰 당일도 아침 일찍 두 시간 동안 영어 공부를 하다가 왔다는 김 관장은 아직도 영어 학습의 열정이 넘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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