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해외유전 ‘전격’ 인수 … ‘3년 꿈’ 이룬 야심가

해외유전 ‘전격’ 인수 … ‘3년 꿈’ 이룬 야심가

#1. 2009년 5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이민주 회장은 영국의 유전개발회사 스털린PLC의 미국 자회사인 스털링USA 본사에서 대니얼 실버맨 CEO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민주 회장은 실버맨 CEO로부터 광구 60여 곳의 위치와 매장량 등 자산 상황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을 받고 텍사스주에 있는 광구도 직접 둘러봤다. 모회사인 영국의 스털링PLC 관계자와도 만났다. 이 회장이 스털링USA 인수를 제의 받은 지 불과 1주일 만의 일이다.

#2. 2009년 초 서울. 씨앤엠을 팔고 현금만 1조원 이상을 쥐고 있던 ‘큰손’ 이민주 회장은 자신의 자산운용을 맡고 있는 에이티넘파트너스를 통해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인도네시아 유전 지분인수를 막판에 포기했다.

이민주 회장은 국내 한 대기업 에너지사업부와 함께 이 유전을 인수하기 위해 대부분의 작업을 이미 마친 상황이었다. 당시 높은 환율 수준도 문제가 됐지만 에이트넘파트너스의 포트폴리오 구성과 관련한 중요 결단이 내려졌을 것이라는 게 이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던 관계자의 전언이다.



3년 전 이미 해외 유전사업에 관심#3. 2006년 말 영국. 거대 유선방송사업자 씨앤엠 경영자로 입지를 확실히 굳히고 있던 이 회장은 갑작스러운 출장길에 오른다. 그가 영국에 간 것은 영국 북해의 유전사업에 참여를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이 회장은 영국의 유전을 직접 방문해 보고, 관련 사업자들과도 만났다.

하지만 일단 빈손으로 귀국해 이후 2년 가까이 씨앤엠 경영에 전념했다.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이 10월 16일 미국의 석유개발회사인 스털링에너지USA를 9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지식경제부는 에이트넘파트너스가 12월 2일 인수대금을 완납하자 보도자료를 내 ‘국내에서 처음으로 민간기업이 미국 석유개발회사를 인수했다’고 직접 홍보를 도맡았다.

이민주 회장을 현금 1조원 이상을 소유한 큰손 정도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뜬금없는 소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민주 회장은 3년 전부터 에너지산업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관련 업계를 분석해 왔다. 에너지산업 전문가들과도 오랜 기간 교류를 이어왔다. 해외 광물산업에는 일부 투자를 하기도 했다.

재계 한 인사는 “이민주 회장이 에너지산업, 특히 유전 쪽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것”이라면서도 “미국 유전은 리스크는 작지만 수익률도 그만큼 낮아 금융투자 수익률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인데 왜 샀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인수 제의를 받은 후 1주일 만에 현지로 가 직접 CEO를 만나는 등 사실상 투자 결정을 내린 것은 평소 그의 경영철학과 통하는 면이 많다. 이민주 회장은 일단 합리적인 투자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일을 추진한다. 이 회장은 2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1975년 단돈 150만원을 들고 조선무역을 세워 봉제완구 사업을 시작했다”며 “하지만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는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직접 제품을 팔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민주 회장이 인수한 스털링USA는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주 지역에 1900만 배럴 규모의 60여 개 석유, 가스 생산광구를 보유하고 하루에 4800배럴을 생산해 미국 전역에 100% 판매하고 있는 회사다. 유전사업을 탐사, 개발, 생산사업으로 나누는데 이 회사는 현재 매출이 발생하는 생산사업에 속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전=탐사’로 알고 있었던 데는 국내 대부분의 유전사업이 그동안 탐사, 개발사업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자원빈국인 만큼 탐사사업에 들어가는 돈의 최대 90%까지 대출을 받고 실패하면 상당 부분 감면해주는 성공불융자 제도를 대기업 상사 등이 많이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위험 저수익의 생산사업에 해당하는 스털링USA의 매입가격인 9000만 달러는 적정한 수준일까?



금융위기로 미국 자산 급매로 나와이번 거래를 성사시켰고 기술자문사로도 선정된 에너지홀딩스그룹의 신승헌 선임 파트너는 “주식처럼 객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유전개발 역사가 100년이 넘은 미국에는 유전 거래가 시장에서 행해진다”며 “클리어링하우스, RBC 등 유전 전문 브로커리지(중개회사)만 100곳이 넘는다”고 말했다.

비슷한 매장량의 유전이 언제 얼마에 팔렸는지 확인이 가능해 한마디로 시장가격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중동과 아프리카의 유전과 가스전 탐사 개발을 주로 하며 영국 증시에 상장된 스털링PLC는 2004년 3억5000만 달러에 스털링USA를 인수했다. 일부 자산이 판매되고 당시 유가와 가스가격이 높았다는 것을 제외해도 에이트넘 구입가격의 4배 이상이다.

이 회사가 매물로 나온 지난해 초만 해도 인수가가 2억 달러로 책정됐다.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된 건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석유개발회사는 유전개발을 할 때 80% 이상이 대출이다. 영국 본사가 주업무인 중동, 아프리카 광구를 개발하던 중 금유위기로 추가대출은커녕 대출연장도 불가능하게 된 것.

문제는 유전개발의 전제조건인 개발 의무조약이다. 이는 개발사가 몇 년도 몇 월까지 시출 몇 공기를 끝내겠다는 개발진행표를 지키지 않으면 광권을 해당국에 빼앗기는 조약이다. 다급해진 영국 본사가 스털링USA를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

이번 계약에 관여한 업계 한 인사는 “석유회사는 구입시점이 아닌 그 이전 시점의 생산량부터 인수회사의 매출로 잡는다”며 “에이티넘도 스털링USA가 지난 4월 1일부터 판매한 금액을 보전 받기 때문에 실제 인수가격은 9000만 달러가 아닌 7000만 달러”라고 말했다.

신승헌 선임 파트너는 “대규모 해외 M&A에서는 이례적으로 국내 은행이 아닌 에너지업계 전문 대출은행인 캐나다의 뱅크오브몬트리올로부터 3500만 달러 상당의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에이티넘이 부담하는 액수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다.

이 과정에서 이민주 회장이 선택한 절세책도 화제를 모았다.

이민주 회장은 사모펀드를 만들어 스털링USA를 인수했다. 이 경우 정상적으로는 배당소득과 금융소득 종합과세 등으로 최대 35%나 되는 세금이 부담된다. 하지만 해외유전회사 인수에 적용되는 조세특례 조항은 2011년 말까지 종합소득 과세대상에서 배당소득을 제외토록 했다.

재계에서 이민주 회장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젠틀’과 ‘스마트’다. 이번 인수에서도 직접 미국 내 가스전, 유전을 오랫동안 공부한 그다. 신승헌 선임 파트너는 “이 회장이 미국 내 가스전, 유전 시장에 관해 공부를 무척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구체적인 숫자들도 나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 놀란 적이 많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이민주 회장은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전체 휘발유 재고량 등을 그대로 외우고 있었지만 통계적 접근이 끝난 후에는 직관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숫자를 보고 시장을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재계 한 인사는 “이 회장이 지분투자가 아닌 매출 발생 업체의 인수로 방향을 튼 것이 향후 시장 트렌드를 주도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2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민주 회장은 외환위기 직후 케이블TV 사업에 뛰어든 이유를 “제조업이 쇠퇴하고 있는 흐름을 읽었다. 방송통신 융합시대를 맞아 씨앤앰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1년 후, 그는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판다’는 투자 정석을 1조원 이상의 시세차익으로 증명해냈다. 재계가 이 회장의 이번 투자를 예사롭게 보지 않는 이유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도입? 폐지?' 오락가락 금투세 전망 속 ISA 관심 고조…투자 전략은

2“사장실은 대나무숲, 경영 혁신은 청취에서 시작합니다”

3‘AI 강화’ 잡코리아 변화에 달라진 채용 패러다임…추천·생성 효과 ‘톡톡’

4금투세 도입에 떠는 개미들…세금 부담 얼마나?

5“별걸 다 해” 얘기 들었던 지난 1년, 코레일유통을 변화시키다

6AI 활용 구인구직 시장 선도하는 사람인

7‘금투세’ 폐지두고 또 다시 줄다리기…여야 입장 차 ‘팽팽’

8‘인공지능 입는’ 구인·구직 플랫폼…“기업·이용자 만족도 높아져”

9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실시간 뉴스

1'도입? 폐지?' 오락가락 금투세 전망 속 ISA 관심 고조…투자 전략은

2“사장실은 대나무숲, 경영 혁신은 청취에서 시작합니다”

3‘AI 강화’ 잡코리아 변화에 달라진 채용 패러다임…추천·생성 효과 ‘톡톡’

4금투세 도입에 떠는 개미들…세금 부담 얼마나?

5“별걸 다 해” 얘기 들었던 지난 1년, 코레일유통을 변화시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