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86% “착한 제품 사고 싶다”
소비자 86% “착한 제품 사고 싶다”
직장인 이정연(30)씨는 커피 한 잔도 허투루 마시는 법이 없다. 공정무역 커피인지 아닌지를 꼭 확인하고 마시는 까다로운 소비자다.
“연말 선물을 커피로 하려고 매장을 찾았는데, 새해에는 나뿐 아니라 남도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공정무역 커피 원두인지 확인하고 구입했습니다.”
화장품 매장에서 만난 주부 김미선(34)씨는 자신만의 소비철학이 있다. “요즘 좋은 화장품이 한둘인가요? 저는 TV광고를 하는 대신 제품 자체에 많이 투자하는 브랜드를 선호하고, 기왕이면 친환경 제품이 피부에 좋다고 생각해요.”
직장인 이씨와 주부 김씨 등은 최근 ‘착한 소비자’로 분류되며 주목 받고 있는 소비자 집단이다. 이들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기업의 영향력, 활발한 사회공헌활동 등을 구매 기준으로 삼는다. 이른바 ‘착한 소비’라는 새롭게 형성된 구매 트렌드는 ‘나쁜 기업’의 제품 소비를 줄이고, 정의와 진심을 판매하는 기업의 제품 소비를 증가시키고 있다.
구입뿐 아니라 투자도 고려최근 국내에 소개된 『착한 소비자의 탄생』을 쓴 경영컨설턴트 제임스 챔피는 과거의 소비자보다 훨씬 더 까다로워진 기준으로 무장한 ‘착한 소비자’의 등장에 주목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비용절감을 화두로 던졌지만 과연 하청업체의 납품가격을 터무니없이 깎고 직원을 홀대하는 회사를 좋게 볼 수 있을까.
최근 급증하는 착한 소비자들은 더 이상 가격과 품질에만 신경 쓰지 않는다.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비도덕적인 일은 없었는지, 착취당하는 집단은 없었는지도 구매 조건에 포함하는 것이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지난해부터 착한 소비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며 “착한 소비는 자신이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임을 표현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착한 소비자에게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과 같은 착한 소비자는 실제로 어느 정도 존재할까. 조사결과 10명 중 9명이 착한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이코노미스트와 프레인앤리 공동설문조사에 따르면 ‘착한 기업의 제품 사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300명 중 258명이, 응답자 중 86%가 ‘나쁜 기업의 제품보다 착한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겠다’고 답했다.
남녀 모두 응답자 중 80% 이상이 착한 기업 제품을 구매하고 싶다고 했으며 20대, 30대, 40대의 응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자에 있어서도 착한 기업의 인기는 마찬가지였다. 응답자의 64%가 착한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답했다. 남성의 70%, 여성의 50%는 착한 기업에 투자의향을 밝혔다.
이처럼 착한 소비자가 늘어나자 착한 기업 또한 늘고 있다. 제임스 챔피는 착한 기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진심은 고객 기반을 다시는 핵심적인 열쇠다. 고객을 속여 어쩌다 거래를 따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약속한 품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비즈니스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심은 결국 이익이 돼 돌아온다.”
대표적인 기업이 어니스트티이다. 어떤 설탕, 시럽을 넣지 않은 유기농 음료를 파는 기업으로 지난 2년간 매년 70% 이상 매출이 증가했다. 2007년 매출은 2300만 달러로 이익은 1350만 달러였다. 몇 군데의 업계 잡지에 광고를 냈을 뿐이지만 매출을 자극한 것은 투명한 경영방식, 담백한 맛에 대한 입소문 때문이었다.
또 이곳은 최초의 공정무역 음료수를 마케팅한 곳이기도 하다. 『착한 소비자의 탄생』에서는 ‘비공정무역 제품에 비하면 가격이 떨어졌을 때조차 제3세계 농민들에게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하는 제품으로 이러한 마케팅은 착한 소비자와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데 훌륭한 조치였다’고 설명한다.
공정무역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자 스타벅스는 지난 9월부터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등 모든 에스프레소 음료를 공정무역 원두로 만들어 팔고 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공정무역 커피 원두인 ‘카페 에스티마 블랜드’의 올해 9월까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1% 증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스타벅스코리아 1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마틴 콜스 스타벅스 인터내셔널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제3의 단체로부터 유기농 재배와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공정무역 커피를 고집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매킨지가 2007년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에 가입한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한 ‘경쟁의 새 규칙 형성’ 보고서에 따르면 윤리적 소비자, 곧 착한 소비자는 해당 기업이 환경적·사회적·행정적 이슈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중요한 구매 기준으로 여긴다.
보고서는 이런 현상이 특히 식료품 업계에서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유기농 제품은 일반 제품에 비해 평균 2~3배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연간 15∼21%씩 성장하는 반면 일반 제품은 2∼3% 성장세에 그치고 있다.
착한 기업이 매출도 쑥쑥가장 이미지에 민감하다는 화장품 업계에서도 착한 이미지는 힘을 갖는다. 로레알그룹의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 키엘은 품질은 물론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착한 이미지를 갖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키엘 매출은 2배 이상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의 경우 2007년과 2008년 연속으로 화장품 브랜드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올 상반기에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선 매출 1위를 차지했다. 흔한 TV광고나 유명 배우를 모델로 쓰지 않고 거둔 결과다. 대신 키엘은 소비자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에코백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접수된 500여 점의 작품 중 본선 진출작 20점이 실제 에코백 형태로 제작돼 전시됐다.
에코백 수익금 전액은 생태시민모임과 함께 하는 ‘한국의 작은 산 살리기 프로젝트’ 후원금으로 기부돼 이 프로젝트의 시작인 인왕산 살리기에 쓰이게 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둔 소비 트렌드 조사업체 ‘트렌드워칭 닷컴(trendwatching.com)’은 2010년의 글로벌 소비 트렌드 10가지를 발표했다.
그중 착한 소비자도 빠지지 않았다. 친환경이나 자선연계 상품 같은 게 유행할 것이라는 것이다. 19.99달러짜리 이케아의 책상용 램프를 구매하면 하나 팔릴 때마다 또 하나의 램프가 유니세프에 기부되는 식이다. 다시 경기가 어려워져도 소비에 의미를 부여하는 착한 소비 열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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