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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장애인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국내 장애인 수는 300만 명이 넘는다. 이들 중 신체적·정신적으로 활동에 제약이 있는 비율은 6% 미만이다. 언제든 일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은 장애인의 일자리를 늘리고 고용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지난 12월 21일 김선규 이사장을 만났다.

미국의 사회학자 루이스 워스는 신체적 또는 문화적 특성 때문에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구분되고, 불평등한 처우를 받는 사람들을 ‘마이너리티(minority)’라고 정의했다.

인식과 제도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마이너리티다. 김선규(53)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은 “장애인 전반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경제활동 영역에서도 장애인은 ‘구분되어’진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 고용률은 지난해 말 기준 38%, 실업률은 9%다. 전체 국민과 비교해 고용률은 절반에 그치고 실업률은 3배에 이른다.

정부에 등록된 1~6급 장애인은 220만 명. 관련 기관마다 추정치가 다르지만 비등록 장애인을 포함하면 300만~450만 명 정도다. 등록 장애인은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장애 유형이 많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류머티즘 환자도 장애인에 포함된다. 그만큼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일도 많아졌다. 이 공단은 장애인이 직업생활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애인의 고용촉진과 직업 재활 업무를 수행하는 준 정부기관이다. 공단의 슬로건은 ‘잠깐의 관심보다 평생의 일터를’이다.

내년 설립 20주년을 맞는 공단은 이름을 바꿀 계획이다. 이름에서 ‘촉진’이 빠진다. 김선규 이사장은 “취업을 많이 시키는 것에 국한되는 촉진 업무는 공단 전체 사업의 10% 정도”라며 “장애인 고용과 관련된 포괄적 업무를 한다는 취지에서 공단 이름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김선규 이사장은 대구미래대학교 재활공학과 교수, 장애인고용촉진공단 고용개발원장을 거쳐 지난해 6월 선임됐다. 임기는 3년이다. 그는 “장애인에게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많다”며 “민간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국민 열 명 중 한 명은 장애인이죠?“그렇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인구의 10%가 장애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기는 한데, 미국의 경우 에이즈 환자, 알코올중독자, 마약환자 등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한 사람들까지 장애인으로 봅니다. 많게는 17%까지 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 등록률이 80% 정도로 봤을 때 300만 명은 넘는다고 보죠.”



장애인 의무고용 안 지키는 기업 많아



>> 장애인 고용 상황은 어떻습니까?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확대되면서 장애인 고용의무가 있는 정부·민간기업의 고용률이 20년 전 0.43%에서 지난해 1.73%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고용률은 여전히 낮습니다.”

장애인 고용의무제도는 시행된 지 새해가 되면 20년째다. 현재 50인 이상 사업장의 장애인 의무 고용비율은 2%. 지난 19년 동안 이 2%를 달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 제도는 법(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으로 제정돼 있다. 국내 웬만한 기업과 정부, 공공기관이 위법행위를 해 온 셈이다. 이 법을 안 지키면 벌금을 낸다. 지난해 국내 기업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지키지 않아 1580억원의 벌금을 냈다.



>> 왜 2% 룰이 안 지켜집니까?“그나마 최근에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겁니다. 대기업 참여도 많이 늘었고요. 정부 부문은 2%를 넘겼고, 민간기업이 저조한데, 좋은 기업을 지향한다면 법을 지켜야죠.”



>> 기업 입장에서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벌금을 내는 것이 인센티브가 더 크기 때문에 안 지키는 것이겠죠?“기업 CEO를 만나보면 큰 기업일수록 장애인에게 어떤 일을 시켜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2005년에 노동부 장관 입회 하에 36개 대기업과 장애인 고용 양해각서(MOU)를 맺었는데, 이후로 좀 늘었죠. 기업이 의지만 있다면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 대기업의 경우 매년 100명씩 벌써 700명 가까이 고용했습니다.”



>> 숫자보단 일자리의 질이 중요한데, 그 700명은 정규직입니까?“그게 가슴 아픈 일이죠. 대부분 비정규직입니다. 공단과 MOU를 맺고 고용된 인력이라면 정규직, 적어도 무기직 정도는 가야 한다고 봅니다.”



>> 기업 규모가 클수록 장애인 고용 비율이 낮은 것 같습니다.“솔직히 30대 대기업 때문에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대기업의 경우 1% 남짓입니다. 글로벌 기업을 꿈꾸면서 기본적인 법을 안 지켜서야 되겠나 싶습니다. 벌금 내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도로에서 속도 위반을 하는 게 바른 생각은 아니잖아요.”

▎2009년 1월 준공한 포스코 장애인 사업장.

▎2009년 1월 준공한 포스코 장애인 사업장.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2009년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을 3%로 높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초 “의무고용 제도를 공기업과 민간으로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해부터는 ‘중증 장애인 2배수 인정제도’까지 도입된다. 민간기업이 중증 장애인 한 명을 고용하면, 경증 장애인 2명을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의무고용 비율을 높이려는 고육지책”이라며 “인권 유린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장애인 고용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 의무고용 비율을 높인다고 효과가 있겠습니까?“비율을 높이면 그만큼 고용되는 장애인은 더 늘어날 겁니다. 저희 생각으로는 2011년 초면 2%를 달성하고, 2013년에 2.7%로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민간기업에서 더 열심히 해주셨으면 합니다.”



>> 여성이나 중증 장애인 고용률이 더 심각한데요.“여성, 거기에 장애가 더해지면 더 심한 차별을 받습니다. 남성 장애인보다 여성이 결혼하기가 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5~6급의 경증 장애인은 본인의 노력만 있다면 취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단은 앞으로 1~2급 중증, 여성, 고령 장애인에게 타깃을 맞출 생각입니다.”



>> 중증 장애인의 취업을 늘리기 위해 공단에서 추진하는 대책이 있나요?“이사장으로 취임하면 우리 공단이 가장 중점을 둘 부문이 중증 장애인이라고 천명했었습니다. 올해 내내 중증 장애인 고용 강화를 위해 뛰었죠. 보조 공학기를 지원하고, 중증 장애인을 돕는 근로지원인 제도 확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중증 장애인 능력개발을 위해 장애 유형별로 특화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맞춤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고용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장애인 편의시설, 직업 장비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보조공학 산업 키워야




>>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사실 법과 제도적인 부분은 선진국 못지않게 갖춰져 있어요. 하지만 사회 인식이 아직 법과 제도를 따라가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이제라도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성실하게 실천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김선규 이사장은 “장애는 분명 핸디캡”이라고 말했다. 그 핸디캡을 법과 제도, 인식의 전환으로 메워가야 한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기업인에 대해 고용은 동정이 아니라며 “장애인을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닌 우리가 함께하고 참여시켜야 할 이웃으로 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을 준비하는 장애인 중 기업에 피해를 주는 사람은 없다는 점을 사업주들이 열린 마음으로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장애인에 대해서는 “과거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장벽이 매우 높았으나 지금은 많이 낮아졌다”며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강조했다.



>> 제도 외에 장애인 고용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보조공학 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나 이상묵 서울대 교수 모두 보조공학 기술이 없었다면 인류에 기여하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보조공학 기술 수준은 높습니다. 하지만 판로가 불투명하다 보니, 많은 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현재 국회에 보조기기 관련법이 계류 중입니다. 장애인이 보조공학의 도움을 받으면 더욱더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설립 사업은 잘돼가나요?“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은 직원이 100명이라면 30%는 장애인을 고용하고, 그중 절반은 중증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장을 말합니다. 지난해에 8개, 올해 11개 사업장이 생겼죠. 제 임기 동안 최소한 30개 이상은 설립하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포스코 외에는 대기업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인데요, 내년에는 대기업 CEO들을 더 자주 만나 협조를 끌어낼 계획입니다.”



>> 서울에서 국제 장애인 기능올림픽이 개최되죠?“20011년 9월에 제8회 대회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5일간 진행되는 이 행사에는 전 세계 50여 개국 1500명의 선수단이 참여해 경쟁을 펼칩니다. 그동안 한국은 국제대회 4년 연속 우승으로 국제사회에서 우리 기능 장애인의 위상을 높여왔습니다.

서울 대회는 더욱 많은 국가에서 참여하고 기능 경기뿐 아니라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접목해 역대 최고의 축제의 장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은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478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발표한 청렴도 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장애인 고용 장려금 지급, 사업주 지원, 훈련기관 지원, 계약 및 관리 등 4개 분야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공단의 핵심 사업을 잘 챙겨왔다는 얘기다.

김 이사장은 “장애인과 사업주 등 고객이 공단 직원들의 청렴성은 인정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공단 설립 20주년을 맞아 내년 공단 내 고용개발원을 통해 ‘2020 프로젝트’를 준비할 계획이다. 10년 뒤 공단의 모습과 장애인 고용의 청사진을 큰 시야에서 그려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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