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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그들과 通하라!

20살, 그들과 通하라!


잃어버린 세대 상아탑 풍속도 상아탑 풍속도가 변한다. 꿈도, 낭만도 사라진 지 오래다. 전례 없는 취업대란에 매몰된 20대 대학생은 어깨를 움츠린다. 젊음을 저당 잡힌 채 한방 승부를 벼르는 공시(公試) 폐인이 쏟아지고, 취업난에 상처 입고 자포자기하는 청년 백수도 늘어난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역군들이 맥없이 쓰러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않은가. 해법을 찾기 위해 취업난에 시달리는 20대 대학생의 보고서를 공개한다. 대학생 문화창조 연합 동아리 ‘생존경쟁’이 도왔다.

2009년 12월 27일, 서울 소재 A대학 K교수 연구실.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퀭한 얼굴의 한 학생이 들어왔다. 용무는? 학점을 C 이하로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이 학생의 학점은 B+. 괜찮은 학점이었지만 그로선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K교수는 이유를 물었다. 이내 돌아오는 이 학생의 이상한 답변. “취직하려면 학점이 높아야 합니다. B+로는 부족합니다. 재수강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K교수는 당황스러웠다. F학점만 면하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학생은 여럿 봤지만 학점을 낮춰 달라며 제 발로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재수강하겠다며 말이다. “얼마나 미래가 불안했으면….” K교수는 씁쓸함을 곱씹었다.



잃어버린 세대의 애환희망제작소의 박원순 변호사는 “지금 20대는 절대 굶어 죽지 않는 세대”라고 말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뜻이다. 취업에 연연하지 말고 더 큰 꿈을 품으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은 이 말을 ‘극히 낭만적’이라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지 모른다. 유례없는 취업대란 때문이다.

이들의 삶은 이상을 꿈꾸기엔 너무도 각박하다. 가까운 곳 보기도 벅차다. 당장 먹을거리가 걱정인데, 무엇을 꿈꾸겠는가. ‘요즘 상아탑엔 꿈도, 낭만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서강대 전상진(사회학) 교수는 “한국 대학생 문화에선 가족·친구 등 감정적 네트워크가 사라지고 있다”며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은 취업대란에 매몰돼 삶의 방향을 잃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연세대 김호기(사회학) 교수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출생한 세대는 경제적으론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 성장했지만 취업난이라는 상대적 상실감 속에서 살고 있다”며 “그래서 내재적 불만과 공포가 많다”고 말했다. 요즘 20대를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부른다.

이는 1990년대 초반 구직활동을 했던 일본 청년층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난 ‘단카이(團塊) 세대’가 호황을 만끽한 것과 달리 이 세대는 일본의 10년 장기 불황 속에서 살 떨리는 취업경쟁을 거쳐야 했다. ‘5명 중 1명은 실업상태인’ 우리 대학생과 닮은꼴이다.

한국 대학생의 최근 화두는 단연코 취업이다.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글로벌 불황이 청년실업에 불을 지른다. 2009년 11월 현재 통계청 집계 청년 실업자 수는 32만5000여 명. 구직활동을 하지 않거나 취업준비 중인 청년을 합치면 120만 명에 이른다. 전체 청년층 980만여 명의 12%가량이 백수다.

취업한 청년이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은 물론 단기 임시직에 근무하는 사람도 많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취업난 탓인지 상아탑 문화도 많이 변했다. 남자는 서둘러 입영하고, 여자 대학생 사이에선 ‘취집(취업 차원에서 시집간다는 뜻) 열풍’이 분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는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반면 그렇지 않은 동아리는 썰렁하기 짝이 없다. 졸업을 미루고 학교에 남아 취업을 준비하는 ‘9학기 재학생’도 매년 늘어난다. 서울 소재 H대학 경영학과의 2009년(2학기) 9학기 재학생 수는 41명. 2005년보다 46% 증가했다.

이 학교 법학과의 같은 시기 9학기 재학생 수도 2005년 21명에서 3배 이상 늘어난 65명을 기록했다. 지방대에 9학기 재학생이 증가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젊음을 저당 잡힌 채 ‘한방 승부’를 꿈꾸는 공시 폐인도 속출한다. 2009년 307명을 뽑는 행정고시에 무려 1만4278명이 몰렸을 정도다. 700명을 뽑는 같은 해 7급 공무원 시험에도 4만8017명이 응시했다.



취업난 탓에 바뀐 상아탑 문화취업난에 상처를 입고 취업을 포기한 자발적 백수 역시 늘어난다. 떨어질 게 뻔한데 왜 도전하느냐는 거다. 이는 자연스럽게 루저(loser) 문화로 이어진다. 이 문화는 거듭되는 실패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도태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을 ‘잃어버린 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 쯤으로 여겨선 안 된다.

숫자만 바꾼 취업률·실업률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취업대책을 양산해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10년 후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역은 다름 아닌 지금의 대학생이다. 이들은 특히 IT 및 미디어 활용 분야에선 기성세대를 압도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IT 패권국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자산이다.

서강대 정유성(교육문화) 교수는 “우리는 지금 자라나는 세대(20대)가 기성세대를 보란 듯이 넘어선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대학생의 강점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20대 청년층이 삶의 좌표를 잃으면 한국 경제는 바다가 아닌 산으로 돌진할 게 뻔하다. 이들이 주춤하면 한국 경제의 기둥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

이들의 특성과 장단점은 뭔지, 진짜 고민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변질된 상아탑 문화를 어떻게 바꿀지 등을 세밀하게 탐구하고 연구해야 할 때다. 광운대 이종혁(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한 세대를 보기 위해선 그 내부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분석해야 한다”며 “20대 대학생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들의 특성을 분석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대 대학생의 고뇌와 애환을 살펴보기 위해 대학생 문화창조 동아리 ‘생존경쟁’과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가상인물 ‘최미래’를 만들었다. 최미래는 ‘잃어버린 세대’의 표징이자 가상의 창(窓)이다. 2009년 12월 28~31일까지 실시한 설문조사엔 전국 대학생 450명이 응했고,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1.06%포인트다.

최미래의 특성은 각 설문항목에서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한 내용을 기초로 했다. 아래의 괄호 안 숫자는 응답률이다. 최미래는 20세(23%)다. 자신의 전공에 만족하고(75%), 대학 이미지(34%)보다 전공(40%)을 중시한다. 최미래에게 중요한 것은 간판보다 실리다. 남들이 인터넷에 중독된 세대라고 비꼬지만 최미래는 한 달에 2권 이상 책을 읽는다.

교양서적보단 자기계발서(31%)·전공서적(19%)을 탐독한다. 공부 시간은 제법 길다.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3시간가량(53%) 공부한다. 요즘 집중하는 분야는 어학(44%)이다. 20대 대학생이 취업을 위해 가장 필요한 스펙으로 어학을 꼽고 있다는 것이다. 등록금은 부모(74%)가 대준다. 아르바이트(3%)엔 별 관심이 없다.

독립할 생각도 많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거나(36%), 취업하기 전까진(36%) 부모에게 기댈 생각이다. 다른 세대가 비꼬는 ‘헬리콥터 맘(자녀 주위를 맴돌며 챙겨주는 엄마를 지칭하는 말)’이 최미래에겐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신(新)캥거루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대학생은 신(新)캥거루족주머니 사정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 넉넉해 보인다. 최미래는 한 달 에 30만~50만원(43%)을 쓴다. 대부분 식비와 유흥비(95%)다. 이 중 20만~35만원은 부모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한신대 정보통신학과 권미현(22) 학생은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공부하라며 용돈을 두둑하게 주는 부모도 많다”고 했다.

취업을 희망하는 곳은 외국계 기업(46%)이다. 이유는 연봉이다. 최미래는 연 2400만~3000만원(48%)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초봉 수준이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에 취업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회사 신용도만 괜찮다면(36%) 인지도가 낮아도 갈 마음이 많다. 한편에선 청년실업이 급증하는 이유로 ‘눈높이’를 꼽지만 최미래의 의견은 다르다.

중소기업에 가고 싶어도 ‘몰라서’ 못 간다는 것이다. 한국생산성본부의 세계 일류 상품을 가진 중소기업 20곳 가운데 그가 아는 기업은 4개 이하(74%)에 불과했다. 최미래의 가장 큰 걱정은 취업(60%)이다. 낭만의 상징 ‘동아리’에 가입할 때도 취업(44%)에 도움을 주는지를 먼저 따진다. 사회를 향한 불만의 씨앗은 취업에서 싹튼다.

자신은 대학 이미지보다 전공을 중시하는데, 사회는 그렇지 않다고 날을 세운다. 취업 당락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아직도 학벌(51%)이라고 믿는다. 최미래가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자격증을 최소 3~4개(57%) 따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여기까진 약과다. 더 많은 스펙을 갖출 수 있다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쓰고 싶단다.

그는 ‘경제적 부담 탓에 남들보다 스펙을 갖추기 어렵다(65%)’고 호소하고, 이런 이유로 ‘심리적 박탈감(64%)’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이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신의 행복지수는 70~90점(42%) 사이라고 생각한다. 최미래를 통해 본 20대 대학생은 실리주의자다. 자기 일에 충실하고 호불호가 분명하다.

숱한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늘 당당하고 행복지수가 높다. 최근 혈안이 돼 있는 것은 자격증 등 스펙 쌓기이고, 걱정하는 것은 백수 전락이다. 유명한 기업에 취업하고 싶지만 중소기업이라고 마다하지 않는다. 유망 중소기업이라면 당장이라도 취업하고 싶다. 20대의 직장 눈높이 기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아니라 유망하냐 그렇지 않으냐다.

기존 분석과 다른 결과다. 지금껏 우리는 청년실업에 대한 천편일률적 대안만 제시했다. 10년 전과 지금의 대책이 다를 게 없다. 청년실업의 문제점을 20대 대학생이 아닌 기성세대의 눈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20대 대학생의 심리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기도 하다. 일례로 중소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말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다.

고학력자가 양산돼 청년실업이 증가했다는 분석도, OECD 국가와 비교해 우리의 대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분석도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대학생 200만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대학 졸업장이 별다른 프리미엄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요즘 대학생이 스펙 쌓기에 혈안이 돼 있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니던가.

대학생의 가치는 쉼 없이 바뀌는데, 관련 정책은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는 격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고용 흡수력을 높여야 한다. 요즘 대학생은 연봉만큼 기업의 안정성과 성장가능성에 주목한다. 복지는 다음 문제다.



청년실업 대책 “완전히 뜯어고쳐라”한양대 수학과 류호진(25) 학생은 “중소기업을 선택하면 직원 복지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며 “20대 대학생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복지 수준이 대기업에 미치지 못하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벤처기업 붐에서 보듯 비전이 있으면 청년은 중소기업에 눈을 돌린다. 전북대 생물산업기계공학과 황원택(26) 학생도 “중소기업의 비전이 확실하고, 재무상태 등 안정성이 높으면 취업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망 중소기업에 청년 취업자가 반드시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스스로 더 많이 알려야 한다. 인재를 기다리지 말고 발로 뛰면서 발굴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용 흡수력을 높이려면 중소기업의 힘만으론 역부족이다.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기업이 투자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획기적 방안을 내놔야 한다.

단기적 일자리 양산에 그치고 있는 청년인턴제, 중소기업 장려사업도 장기적 효과를 꾀할 수 있도록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990년대 고용 확대를 위해 토지 장기 무상제공, 법인세 면제 및 감면책을 내놨던 영국의 사례는 좋은 교본이라는 평가다. 대학 상아탑도 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전인 교육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특히 이 프로그램이 취업과 연계될 수 있도록 산학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서강대 정유성 교수는 “산학 취업연계 프로그램 도입은 대학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지금까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스스로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허울 좋은 스펙 쌓기는 더 이상 취업에도, 미래 설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쳐야 한다. 대기업 역시 ‘스펙은 스펙일 뿐’이라는 점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각 기업은 인재가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을 스펙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며 “최근엔 도전정신, 성취의식, 도덕성과 올바른 가치관, 조직적응력을 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대학생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요즘 상아탑은 좌표를 잃었다. 대학생은 먼 좌표를 바라볼 여력도, 시간도 없다. 단기적이고 효용적 가치, 당장의 먹을거리를 좇는 것도 벅차다.

바로 이게 문제다. 지금의 20대는 한국 경제를 짊어질 미래 역군이다. 그들과 제대로 통(通)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어두운 터널에 영영 갇힐지 모른다. 미래 역군을 얻느냐, 잃느냐? 한국 경제는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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