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바닥은 탈출 회복 속도가 문제다
한국 경제 바닥은 탈출 회복 속도가 문제다
국내 3대 민간경제연구소 대표가 2월 10일 장충동 신라호텔 샤론룸에 모였다. 이날 좌담회 주제는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
그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면서 거시경제 전망, 경영 컨설팅을 담당하는 국내 대표적인 기업경제연구소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드문 일이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의견에는 모두 동감했다. 반면 올해 관심이 높은 출구전략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모습이다. 참석자(가나다순)는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이다.
사회자 현재 한국 경제는 세계적인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회복하고 있습니까.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 한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경제 회복 속도가 작년 2, 3분기처럼 빠를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됩니다. 그때는 바닥을 쳤을 때 생기는 자연 반사적인 현상입니다. 아무래도 올해 1분기 이후 경제 회복 속도는 꽤 둔화될 거예요.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맞습니다. 한국 경제는 지금 회복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경제성장률은 2008년 급락하기 시작해 2009년 3분기 점차 회복됐습니다. 4분기에는 6% 이상의 성장을 보였죠. 한국 경제가 구덩이에 빠졌다가 벗어나는 모습인데요. 하지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2008년 경제성장률 2.2%, 2009년 0.6%, 올해 예상치 4.5~5%라고 하면 3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2.5%가 안 됩니다. 잠재성장률 4.5%에 비해 엄청나게 낮은 성장을 3년에 걸쳐 진행 중이라는 얘기죠.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두 분 원장님 얘기대로 한국 경제는 살아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잠정치가 0.2%입니다. 플러스 성장을 한 나라는 한국과 폴란드, 호주 뿐이에요. 경제가 회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세가지입니다. 우선 지난해 정부 주도적인 경제 회복 정책의 영향을 받았죠.
둘째,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하락했습니다. 엔화와 비교하면 확실하죠. 엔화는 달러 대비 20% 절상됐고, 원화는 50~60% 절하됐습니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출이 늘어난 거죠. 셋째, 한국 기업의 세계 경쟁력이 향상됐어요.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비롯해 LED TV,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아졌습니다.
김주현 정 사장이 얘기한 세 가지 이유와 함께 중국 효과도 빼놓을 수 없죠. 한국과 중국의 산업협력은 상당히 밀접합니다. 다행히 금융위기 이후에도 중국이 7%의 높은 성장을 보이면서 수요가 지속됐던 겁니다. 이 네 가지 요건이 지속된다면 한국 경제는 보다 빠르게 회복하겠죠.
하지만 올해는 변수가 많습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돈을 풀 수 없는 데다 올해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중국은 자산버블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요. 결국 우리 경제성장은 세계 경제 회복 속도를 따라가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김주형 다른 나라가 -3~-4% 수준의 성장을 할 때 한국이 0% 수준으로 버틸 수 있었던 점을 알면 이해가 빠를 거예요. 현재 세계시장의 물동량은 거의 25% 가까이 줄었습니다. 그나마 한국 수출은 13%밖에 하락하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수출시장 구조가 그동안 많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3~4년 전만 해도 미국 시장에 약 25% 주력했다면 요즘은 12%로 절반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대신 중국과 홍콩을 합친 시장이 29%에 달합니다. 금융위기 이후 이머징 마켓은 선진국에 비해 피해가 적었고, 그 시장에서 비중이 큰 한국 기업들이 수혜를 본 거예요.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도 한몫했고요.
그래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부 정책이 재정확대에서 긴축으로 바뀌면 성장을 이끌어갈 동력이 약해지는 겁니다. 과연 기업이 정부를 대체할 만큼 활발한 투자에 나설까요? 세계경제가 회복된 후에나 민간 소비가 늘고 투자가 증가할 것입니다.
출구전략 언제가 적당한가
사회자 정부의 재정정책이 경제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기영 김주형 원장 얘기처럼 상반기까지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하반기에 민간 주도로 전환될 것입니다. 문제는 민간 주도로는 소비나 투자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거죠.
하반기로 갈수록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상고하저 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를 출구전략으로 연결해 생각해 보죠. 현재 정부는 서서히 시장의 유동성을 줄이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남은 출구전략은 중소기업의 신용확대 및 대출연장 축소, 중앙은행 금리 인상, 재정 건전성 등 세 가지예요. 중소기업 지원 축소와 금리 인상은 상반기 중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게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입니다. 검토는 하겠지만 실제로 시행하는 시점은 일러야 2010년 하반기로 예상하고요. 재정 부분은 2011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김주형 출구전략을 하는 전제조건은 물가상승, 자산가격 버블, 성장 과열 등이 걱정되기 때문이죠. 시중에 풀어둔 자금을 회수할 때는 시장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여러 단계에 걸쳐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합니다. 금리 역시 조금씩 안정적으로 올려야겠죠.
사회자 출구전략이 경제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하는 것은 맞는데요. 현시점에서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김주형 한국은행은 이미 유동성 회수에 나서고 있습니다. 외화대출이나 중소기업 신용대출 100% 해주던 것을 조금씩 줄이고 있죠. 금리는 워낙 신호효과가 크기 때문에 즉각 올리는 건 어렵습니다. 한국 경제성장률 자체가 안정권으로 들어가고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현재 금융시장이 안정적이지 않다고 보는 이유는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와 신용이 낮은 트리플(BBB)등급 회사채 금리 스프레드가 여전히 높습니다. 스프레드는 채권이나 대출금리를 정할 때 기준 금리에 덧붙이는 위험 가중 금리를 얘기하는데요. 과거 스프레드가 4%라면 현재 8%로 늘어나 있는 거죠. 경제는 물론 금융이 안정될 때 금리를 올릴 겁니다. 아직은 금리 인상을 이용한 출구전략에 나서기는 이른 거죠.
김주현 요즘 출구전략이 너무나 과대포장돼 사람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거 같아요. 경제학원론에도 없는 얘기인데요.
정기영 하하. 군사전략이었죠.
김주현 물론 의미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식, 외환선물, 채권 등에 투자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하죠. 언제, 어디서부터 돈을 뺄지를 알려주는 신호이니까요. 하지만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을 출구전략으로 받아들이는 건 옳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거시경제 관점으로 본다면 출구전략은 금융 완화 정책에서 금융 긴축 정책으로 언제 이동할 것인가를 보는 거죠.
옮기는 시점은 수요 과잉에 따른 물가 압력이 높아질 때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공황 등 세계적인 위기 때마다 지나치게 빨리 긴축정책으로 들어선 게 문제가 됐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일본이죠. 일본 버블 붕괴 당시 소비세제 강화 등 정부의 시급한 긴축정책으로 일본은 장기침체에 들어간 겁니다.
정기영 출구전략은 그동안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여러 가지 비상조치를 정상화하는 과정이죠. 출구전략이 힘든 이유는 정확한 시기를 찾는 게 어렵기 때문이에요. 김주현 원장님이 걱정하듯 너무 빨리 시작하면 더블딥이 생길 수 있고, 너무 늦게 하면 유동성이 넘쳐나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을 겁니다.
현재 한국은행에서는 물가 상승에 대한 염려로 금리를 올리기를 원하고 정부 입장에서는 더블딥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거죠. 입장은 이해가 갑니다. 물가나 성장에 치우치지 않도록 충분한 논의를 거쳐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일부 유럽 국가 재정 위기 심각
김주현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으로 묶여 있습니다. 각 국가가 통화를 발행할 시스템이 없는 거죠. 그리스가 빚이 많다고 해서 쫓아낼 수도 없고요. 결국 프랑스 등 돈 많은 나라가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해결하겠죠.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시기가 늦춰진다면 유럽에 투자한 주요 은행의 자산이 부실화되고, 그 은행을 통해 세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김주형 맞습니다. 유럽의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는 실업률이 높은 데다 경기 침체가 오면서 대규모 재정확대 정책을 펴왔죠. 이미 부채가 높은 상태에서 빚을 더 진 겁니다.
하지만 EU는 국제통화기금 지원을 받지 않고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앞서 김주현 원장님이 얘기했듯이 문제는 이곳에 발이 묶인 은행들이 국제 자본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거죠.
정기영 그리스 등 각국 부채는 EU로 묶여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독일이나 프랑스가 나서서 해결할 겁니다. 이번 사태가 국가 부도까지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부도가 나지 않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죠. 국가 부채를 해결하는 데 장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는 EU의 소비나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할 거고요.
장기적으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 수 있어요.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서 약세를 보이던 달러가 강세로 바뀌면서 이머징 마켓에 몰려 있던 자금이 빠져나갈 겁니다. 하지만 국가 부도가 나지 않는 이상은 일시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머징 마켓, 저탄소에 주목하라
김주형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시장을 주도하면서 끊임없는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의 제조업이 몰락하면서 제조기지가 아시아권으로 넘어온 게 첫 번째 위기였고, 2001년 9·11 테러가 나면서 정치·군사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2007년 금융위기는 선진국 금융시장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경제 규모로 보면 23.5%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큽니다. 반면 성장의 기여도로 보면 미국이 뚝 떨어지고 중국과 인도가 높습니다. 현재 투자가 일어나고 고용이 생기는 곳이 이머징 마켓이죠.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중국이 세계 경제 2위로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격적인 이머징 마켓 시대가 열린 거죠.
정기영 세계적인 위기를 겪은 후 경제 질서 패러다임도 변하게 돼 있습니다. 경제 규모 면에서 성장이 빠른 이머징 마켓의 부상이 기대됩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생산기지로 생각했던 이머징 마켓이 소비시장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삼성그룹에선 오래전부터 이머징 마켓을 생산기지에서 소비시장으로 인식하고 이 시장에서 잘 팔릴 수 있는 제품을 고민했습니다.
과거 TV나 휴대전화를 팔 때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했다면 지금은 중저가로 낮추고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머징 마켓은 주요 수출전략기지로 떠오를 겁니다.
김주형 금융위기 이후 이머징 마켓이 더욱 주목 받고 있습니다. 이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저탄소 산업이 경제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한국 경제는 중화학 공업이 이끌어 왔잖아요. 조선, 자동차, 철강 분야도 세계적인 저탄소·녹색성장에 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저탄소 생산체제와 제품 기술력을 갖는 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거죠.
김주현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중화학공업이 떴고, 오일쇼크 이후 반도체·전자산업이 각광을 받았고 90년 이후에는 IT·지식산업으로 산업이 재편됐죠. 이처럼 세계적인 사건 이후에 새로운 산업이 주목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저탄소 산업 외에도 에너지, 바이오, 헬스 등이 21세기 산업으로 유망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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