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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 취임 15주년… 매출 4배, 기업가치 10배 키워

구본무 회장 취임 15주년… 매출 4배, 기업가치 10배 키워

1995년 2월 22일 오전 여의도 LG트윈타워 동관 30층 회의실. 구자경 당시 LG 회장(현재 LG 명예회장)이 사장단 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구 회장은 “지난 7년간 혁신의 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충실히 한 것으로 나의 소임을 다했다”며 “21세기에 LG가 세계 초우량 기업이 되려면 젊고 의욕적인 사람이 그룹을 맡아 이끌어야 한다”고 퇴임 의사를 밝혔다.

이날 오후 구본무 LG 회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고(故) 구인회 LG 창업주의 맏손자인 그는 구자경 명예회장에 이어 제3대 회장에 취임했다. 구 회장은 비장한 톤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21세기 초우량 LG로 만들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졌다”며 “10만 LG 임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매진한다면 우리 모두의 꿈과 비전은 가까운 장래에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역설했다.

구 회장은 재계 총수 가운데 누구보다 격의 없고 소탈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경영 일선에서의 모습은 다르다. 숱한 고비 속에서 과감한 결단으로 돌파구를 열고 뚝심으로 미래를 개척했다. 경영권을 맡은 15년 사이 LG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구 회장이 취임하기 전인 94년 30조원이던 LG의 매출액은 지난해 125조원으로, 시가총액은 6조8000억원에서 73조원으로 늘었다.

수출도 148억 달러에서 460억 달러로 불어나 글로벌 기업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94년 수치는 LG와 분리한 GS·LS·LIG그룹의 실적까지 더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GS·LS·LIG그룹을 빼고도 당시보다 월등한 성적표를 남겼다. 그는 회장에 오르기 전까지 20여 년간 실무 경험을 쌓았다.

당시 기업의 회장직 승계자는 임원급으로 회사에 발을 디뎌 경영수업을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계적으로 실무를 익혔다. LG의 주력 회사인 LG전자와 LG화학의 기획·마케팅·무역 등 주요 부서를 거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85년부터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전무와 부사장을 이어 맡으며 그룹 전반 업무를 익혔고, 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에 본격 참여했다.

구 회장은 95년 1월 부회장 시절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꿨다. 주변에서는 “널리 알려진 럭키금성을 굳이 바꿔야 하느냐”는 반대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그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외국에서도 통하는 기업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며 일축했다. 지배구조도 확 바꿨다.

LG는 2003년 3월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회사인 LG 밑에 LG전자와 LG화학을 두 축으로 묶었다. 순환출자와 상호출자 구조의 고리를 끊어 계열사끼리 소수의 지분으로 새로운 계열사를 만들어가며 문어발식으로 확장한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주주는 지주회사 주식만 보유하며 출자 포트폴리오 관리에 주력하고, 자회사는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으로 사업에만 전념하는 틀을 마련한 것이다. 친인척·동업자 간 계열분리도 주도했다. 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 오너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LIG·LS그룹에 이어, 2005년 1월 허씨 가문(GS 그룹)과도 분리했다.

3대에 걸쳐 57년간 이어진 구씨·허씨 두 가문의 동업 관계는 ‘아름다운 이별’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구 회장은 지난 2월 신임 전무와의 대화에서 “GS와 계열분리 후 내수기반이 취약해지는 거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러한 상황이 오히려 배수의 진을 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98년 2월 시작된 반도체 빅딜 논의는 99년 1월 막을 내렸다. 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포기한 직후 “모든 것을 다 버렸다”는 말로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그러나 빅딜로 반도체 사업을 계속하기 어려울 경우에 대비해 98년 말 LG전자와 LG반도체가 나눠 맡고 있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을 분리해 LG디스플레이의 전신인 LG LCD를 만들었다.

당시 정부와 현대전자 측은 LG반도체에서 LCD사업을 분리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지만 구 회장은 “이번 빅딜은 반도체 사업 빅딜이지 LCD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주장을 관철했다. LG반도체는 결국 현대로 넘어갔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20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LCD패널 판매량 기준 세계 1위에 올랐다. 반도체 사업의 대안을 미리 만든 구 회장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구 회장은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회사 비전을 달성하려면 고객에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경영자원을 집중하라고 강조해 왔다. 사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기반·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 몰두했다. 그는 95년 취임 후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해마다 연구개발 성과 보고회에 참석하며 R&D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틈나는 대로 연구소를 찾아 연구소장과 일선 연구원들을 직접 만난다. 지난해 3월엔 LG전자 서초 R&D캠퍼스 준공식에도 참석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점진적 혁신이나 개선을 위한 투자는 기본이고 5년이나 10년 후를 내다보고 고객 니즈가 변화하는 시기에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사업의 판도를 바꾸는 기반기술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 초 열린 신임 전무와의 대화에서도 “기술 자립을 못하면 생존할 수 없고 기술을 가진 기업에 수모를 당하게 된다”며 “영속 기업이 되려면 10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R&D를 꼭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구 회장은 태양전지·차세대조명·총합공조·차세대전지 등 4개 분야의 원천기술을 집중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3월 10일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에서 열린 2010년 연구개발 성과 보고회에서 그는 “LG만의 차별화된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고 독려했다.

특히 태양전지와 차세대조명 부문에 각별한 관심과 육성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그린 비즈니스 분야의 성장 가능성이 큰 만큼 태양전지·차세대조명 등은 앞으로 중점 육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회장 취임 15년 사이에 LG를 확 바꿔놓은 ‘구본무 Way’가 또 다른 여정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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