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중국
두 얼굴의 중국
지난주 초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중국 주재 외국계 회사 간부 60여 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례적으로 많은 수의 정부 각료가 배석한 이 자리에서 원 총리는 환한 미소로 외국계 회사 간부들을 맞았다. “중국에 대한 여러분의 신뢰를 강화하는 일이 중요합니다”라고 원은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중국 총리와 외국계 회사 대표들의 간담회에 외국 언론의 취재가 허용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원 총리가 이렇게 호의적인 제스처를 보였지만 주중 외국계 회사들 사이엔 냉랭한 분위기가 가시지 않았다. 원과의 질의응답에서 뇌물수수와 상업기밀 누설 혐의로 기소된 호주 광산업체 리오 틴토의 간부 스턴 후의 이야기(후는 그날 재판을 받았다)는 나오지 않았다. 중국 정부와 구글의 마찰 문제도 다뤄지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웹 콘텐트의 검열 법규 준수를 요구하며 압박을 가하자 구글은 지난주 중국 본토의 중국어 검색엔진을 폐쇄했다. 또 이 질의응답에서는 미국 IT업체 간부 중 중국 시장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주중 미국 상공회의소의 새로운 연구결과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 연구에선 미국 IT업체 간부 중 “중국인들이 외국계 업체의 중국시장 참여와 경쟁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는 느낌이 갈수록 강해진다”고 답한 사람이 2009년 26%에서 2010년 38%로 늘었다. 외부 세계를 향한 중국인들의 태도가 이중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증처럼 보이는 중국 관료들의 이런 태도는 외부 세계에 대처하는 방식을 놓고 치열한 내분이 일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부인들에게 중국의 정부 부처들은 일사불란하게 통제된 조직체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중국의 관계는 밖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덜 획일적이며 더 예측하기 힘들다.
요즘은 중국 공산당과 보안기관 내부의 강경파가 좀 더 온건하고 ‘국제적인’ 배경을 지닌 지도층보다 더 영향력을 확보한 듯하다. 최근 중국 관리들의 발언에서 민족주의적 색채가 감지되고, 어떤 사건의 배경을 서양의 음모론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중국은 최고위급의 의사결정 과정에 투명성이 부족하다.
외교부가 다른 부처의 현황 파악에 발 빠르지 못하다는 사실이 이런 상황을 한층 더 악화시킨다. 중국 외교부 관리들이 정기적으로 여는 언론 브리핑은 국제사회에 중국의 정책을 전달하는 주요 통로다. 하지만 미국의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미국 국무장관은 대통령 승계 서열 3위다)와 비교할 때 중국 외교부는 정책결정의 영향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하위에 속한다.
중국 외교부의 일부 관리는 군사·안보 부문의 상황 변화를 초기 단계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듯하다. 2007년 중국이 우주에서 위성요격 무기 실험에 최초로 성공했을 때나 최근 구글을 상대로 한 해킹 공격의 혐의를 받았을 때가 좋은 예다. 2007년 1월 미국 정부가 중국의 위성요격 실험을 비난하고 나섰을 때 중국 외교부는 답변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주중 미국 대사관의 무관을 지낸 한 인사는 그 후 12일이 지나서야 공식 반응을 보인 중국 외교부를 “자동차 불빛에 놀라 오도가도 못하고 쩔쩔 매는 시골길의 사슴”에 비유했다. 구글과 중국 정부의 마찰 이면에는 사이버 안보를 타이완·티베트 문제와 함께 중국 정부의 ‘핵심 이슈’로 만들려는 중국 강경파의 노력이 숨어 있다.
이 ‘진정한’ 권력자들은 웹 콘텐트 검열이 소련 붕괴 후 동유럽 각국의 독재자들을 몰락시킨 ‘색깔 혁명’으로부터 중국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 듯하다.
또 현재 이란에서 진행 중인 ‘트위터 혁명(이란 네티즌들은 인터넷 차단을 우회해 트위터에 접속해서 선거부정 시위 관련 속보와 동영상을 전 세계에 유포했다)’은 웹의 힘에 대한 중국 관리들의 과대망상증을 한층 더 부추겼다.
중국 정부 당국은 지난해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에서 폭동이 일어난 뒤 이 지역의 인터넷 서비스를 사실상 중단했다. 구글은 중국 본토에서 검색엔진 사업을 하는 대가로 자체 검열 법규를 따라야 했다.
이 회사는 지난 4년 동안 중국 정부의 법규에 순응했다. 하지만 검열 기준은 갈수록 엄격해졌다. 중국 정부와 구글의 마찰은 구글 네트워크의 해킹 공격 사건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2개월 전 구글 측은 해킹 공격의 진원지가 중국 본토의 학교 두 곳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구글은 이 공격이 중국 당국의 명령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중국 인권운동가들의 G메일(구글의 e -메일 서비스) 계정 파악이 공격의 목적이었던 듯하다]. 구글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어 검색엔진의 콘텐트 자체 검열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정부의 가혹한 대응을 불러일으킬 만한 처사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생겼다. 3월 23일 구글이 중국 도메인을 홍콩 도메인으로 전환하기 직전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 등 현지 언론은 구글이 미국 정보 부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비난했다. 3월 24일에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런민(人民)일보가 “미 정보·안보 기관들을 상대로 한 구글의 협조와 결탁”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 신문은 구글 사태가 “미국이 주도하는 인터넷 전쟁의 예비전”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리오 틴토 재판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중국의 일부 관료가 형사기소를 무기 삼아 대형 외국계 업체들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는 속셈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았다. 영국과 호주의 합작 기업인 리오 틴토는 중국의 수입 철광석 대부분을 공급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지난해 여름 철광석의 공급 가격을 놓고 중국의 국영 철강업체들과 길고 어려운 협상을 했다. 중국 정부가 리오 틴토의 직원 4명을 체포한 처사는 높게 책정된 철광석 가격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 보였다. 중국 정부의 연구원 후장윈(胡江雲)은 최근 “2009년 리오 틴토의 첩보 사건으로 중국 정부가 입은 손실이 1000억 달러를 웃돈다”고 주장했다.
리오 틴토의 호주인 간부 스턴 후와 세 명의 중국인 직원은 지난해 7월 첩보 혐의로 처음 체포됐다. 이들은 나중에 뇌물수수와 상업기밀 절도 혐의로 공식 기소됐다. 3월 22일 후와 그의 동료들은 뇌물을 받은 사실을 자백했다고 알려졌다(하지만 이들에게 뇌물을 준 중국인이 기소됐다는 소식은 없다).
한편 주중 호주 영사관의 한 관측통은 3월 23일 상업기밀 혐의와 관련된 재판 방청을 금지 당했다. 미국의 법률 전문가 제롬 A 코언은 이 처사가 호주와 중국 간의 영사협정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법 절차의 투명성 결여와 정당성을 둘러싼 의문이 많은 주중 외국계 회사 간부들의 심기를 갈수록 불편하게 만든다.
최근 미 상공회의소 조사에서 중국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해졌다고 말한 응답자 과반수(58%)가 “법규 해석과 사법 절차의 일관성 부족”을 주요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3월 24일 리오 틴토의 재판이 막 끝났을 무렵 한 호주 회사가 중국 국영 해양석유총공사(CNOOC)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는 20년 동안 중국에 액화 천연가스를 공급하기로 했다. 호주 천연자원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욕심이 세계 금융위기 중에도 호주의 경제를 든든하게 받쳐줬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일이다. 구글 사태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 관리들은 미국과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어색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외교부 대변인 친강(秦剛)은 구글의 중국 철수는 “누군가 이 문제를 정치화하지 않는 한” 중국과 미국의 협력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언론과 정부의 다른 부처들은 이미 이 문제를 정치화했다. “구글은 미 국방부가 보낸 트로이의 목마(첩보 공작원)”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중국 외교부는 수시로 안면을 바꾼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눈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으로 보일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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