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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은 깨지지 않았다

유리천장은 깨지지 않았다

전형적인 여성 신입사원들이었다. 세븐 시스터스 칼리지 졸업생들로 독립심 강하고, 의지가 굳으며, 생기가 넘쳤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에 처음 진출하면서 포부에 부풀었다. 뉴욕에 가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내심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출세하겠다는 야망에 불탔다.

하지만 면접에서 여성은 최고위직은커녕 중간간부에도 오르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우편물을 분류하고, 신문 기사를 철하고, 커피 심부름을 했다. 짧은 스커트를 입고 검은 테 안경을 끼고 굽 높은 구두를 딸각거리며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남자 일색인 임원들의 비위를 맞추고 상사들이 “예쁜이”라고 부르면 애교 만점인 미소를 지었다. 당시엔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 각자는 속으로 자신이 최초로 그 높은 승진 장벽을 넘어서리라고 철석같이 믿었지만 현실적인 야망은 여성이 떠벌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1969년 주변에서 여권운동이 힘을 얻으면서 그들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서로 은밀히 만나고, 화장실에서 나지막이 속삭이고, 동료의 책상 주변에서 옹송그렸다. 점심 시간에는 여자 휴게실에서 좀 더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주고받았다. 3명이 곧 9명, 결국 46명으로 불어났다. 결국 그들은 민권법 제7장을 근거로 성별 고용차별 집단소송을 낸 언론계 종사자 중 첫 사례가 됐다.

고용주는 바로 뉴스위크였다. 이 기사를 쓰는 우리 세 명(모두 뉴스위크의 젊은 여기자다)은 6개월 전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 ESPN, 지상파 CBS 방송의 심야 토크쇼 데이비드 레터먼 레이트 쇼, 타블로이드판 일간지 뉴욕 포스트에서 성추문과 성차별 스캔들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런 선배들의 투쟁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집단 담론에서 사라진 듯했다. 마침내 우리는 전 뉴스위크 여기자 수전 브라운밀러가 쓴 회고록 낡은 ‘우리 시대(In Our Time)’ 한 권을 입수했다. 책의 한 장이 그들의 성차별 항의에 할애돼 있었다. 우리는 메모장으로 그 부분을 표시한 뒤 돌려보았다.

그 대목은 그때가 요즘과는 얼마나 다른지, 또 얼마나 똑같은지를 생생히 말해주었다. 뉴스위크 여성들이 들고 일어난 지 40년이 흐른 지금 젊은 여성들은 반 세대 전과도 확연히 다르다. 민권법 9장이 제정된 이후에 태어난 우리는 평등을 위한 투쟁이 이미 흘러간 역사이며, 뭐든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고 배웠다.

우리 세 명은 대학을 수석 졸업했고, 학창 시절 운동도 잘했다. 장학금을 받았고, 수업 중엔 언제나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젊은 전문직 종사자로서 우리는 세 번째 여성 연방 대법관(소냐 소토마요르) 임명을 적극 지지했고 힐러리 클린턴이 첫 여성 대통령이 되기를 고대했다(안타깝게도 첫 여성 대통령은 탄생하지 못했다).

우리는 여성이 미국 근로자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현상을 목격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의 지원으로 지난해 말에 발표된 성(gender) 관련 여론조사는 “성별 간의 전투는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시기상조라고 느낀다.

젊음에서 오는 조바심일까? 그럴지도 모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보라. 미국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대학 졸업 1년 뒤 젊은 여성은 대학 시절 모든 과목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고도 남성 동료가 받는 연봉의 80%밖에 받지 못한다(모든 직종을 종합한 평균이다). 미국의 여성고용평등 관련 비정부기구인 카탈리스트(Catalyst) 조사에 따르면 고소득 직종에서도 차이가 크다.

여성 MBA(경영학 석사학위 소유자)는 첫 직장에서 남성 동료보다 연봉을 4600달러나 적게 받는다. 이런 고질적인 임금 격차는 오랫동안 육아 탓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10년이 지난 상태에서 자녀가 없는 여성 근로자도 여전히 남성 임금의 77% 정도만 받는다.

이번 경기침체에서는 여성 가장이 늘면서 그 23%의 차이가 어느 때보다 가계에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최근 MBA 관련 조사에 자금을 댄 컨설팅 업체 언스트 앤 영의 CEO 제임스 털리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년은 ‘약속의 10년’이 돼야 마땅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각성을 촉구하는 결과다.”

우리 각자는 수년 동안 자잘할 수많은 일에서 좌절감을 맛보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평등을 위한 투쟁이 이미 승리로 끝났다고 배웠던 우리는 그런 느낌을 성차별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문제를 우리 자신이 아닌 딴 사람 탓으로 돌리는 일은 한낱 변명에 불과하고 나약함을 드러내는 처사라고 인식됐다.

특히 1년여 전 뉴스위크의 총괄 책임자(Managing Director) 자리에 앤 맥대니얼이 올랐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더욱 철없어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도 익히 안다. 과거의 뉴스위크 ‘예쁜이’들과 비교해볼 때 우리의 불평 불만은 뭘까? 저술가 수전 더글러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튼 언론 보도로 판단하자면 여성들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룬 듯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뜻대로 안 된다고 성차별을 들먹여선 안 되지 않을까?”

일리가 있다. 그러나 친구와 동료를 만나 볼수록 직종 불문하고 똑같이 좌절하고 실망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40년 전 뉴스위크의 여직원들은 “여성은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지금은 감히 그렇게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통계를 보자. 지난해 뉴스위크의 표지 기사 49건 중 여성이 쓴 기사는 6건에 불과했다.

표지 제목도 ‘생각 깊은 남자(The Thinking Man)’라는 문구가 두 번이나 사용됐다. 1970년엔 뉴스위크 잡지의 판권란에 오른 편집부 기자 이름 중 25%가 여성이었다. 지금은 39%다. 많이 나아졌지만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뉴스위크의 영업과 편집 부문을 합치면 전체 직원의 49%가 여성이다). 역사학자 바버라 J 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젊은 여성은 열정을 갖고 직장에 들어가지만 결국 실망한다. 난생 처음 성적 편견의 벽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뉴스위크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윗분들이여,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기사에서 뉴스위크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뉴스위크가 다른 직장보다 성차별이 심하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하나의 유리천장이 부서져야 마땅했던 여직원 운동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선배들의 1970년 소송이 진공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았듯이 지금의 뉴스위크도 독특하거나 색다르지 않다. 주요 잡지에 실리는 기자명은 여전히 7 대 1로 남자 이름이 많다. 포춘 500대 기업 CEO 중 여성은 3%에 불과하다.

변호사와 정치인 중 여성은 4분의 1이 채 안 된다. 그런 불균형은 웹에도 적용된다. 광고문안 작성 서비스를 하는 인기 웹사이트 멘 위드 펜즈(Men With Pens)의 창설자는 지난해 말 자신이 여성이면서 남성 이름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남자 이름을 선택하면 자녀 때문에 집에 앉아 있는 엄마가 아니라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 전략이 먹혔다. 그녀가 남자 이름을 쓰자 매출이 두 배로 뛰었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가 어리고, 권리만 내세우고, 불평 불만이 많고, 유머 감각이 없는 여자들, 한마디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인종차별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듯이 한 회사의 최고 자리에 여성이 올랐다고 해서 성차별이 뿌리 뽑히진 않는다.

사실 여성 권리 신장에 따르는 모순적인 조짐들(지속적이고 보편화된 불평등을 뒤덮는 잘 알려진 몇몇 성공담)이 진짜 문제다. 더글러스는 그런 엇갈리는 메시지를 ‘개화된 성차별(enlightened sexism)’이라고 부른다. 몇몇 여성이 이룬 성취 때문에 과거 성차별로 간주됐던 편견이 가려진다는 뜻이다.

그 결과 젊은 여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남자들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다고 걱정하면서도 막상 기회가 주어지면 몸을 사린다. 최근 걸스카우트 조사에 따르면 젊은 여성은 ‘우두머리 행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두려워 지도자 역할을 회피한다. 다른 조사에서는 여성이 초봉을 협상하는 경우가 남성보다 4배나 드물다고 나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하버드대의 연구에 따르면 높은 연봉을 요구하는 여성은 ‘성격이 좋지 않다’고 인식된다. 따라서 채용될 가능성이 그만큼 떨어진다. 여성의 자신감을 다룬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여자를 망친다(The Curse of the Good Girl)’의 저자 레이철 시몬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대는 ‘원해요… 하지만(yes, but…)’이라는 사고방식 안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혀 있다.

예를 들면 출세를 원하지만 너무 강하게 나서면 안 된다거나 성취를 원해도 떠벌려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자신을 억제하게 된다. ‘이렇게 말하거나, 이것을 요구하거나, 이런 일을 하면 곤란하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못된 여자로 따돌림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녀 평등으로 가는 도중에서 우리 같은 젊은 여성은 목소리를 잃었다. 그래서 미묘한 성차별의 안개가 자욱한 직장에 들어가면서 좌절감과 소외감에 시달렸다. 우리의 뒤를 받쳐주는 사회적 운동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좌절을 묘사할 용어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자신감도 없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게일 콜린스는 “과거에 기존의 법과 싸워야 했던 세대는 이런 복잡한 문제에 시달리는 세대보다 성취하기가 훨씬 쉬웠다”고 말했다.

성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지금 같은 시절엔 직장에서 성별에 따른 역할을 잘해내기가 더욱 어렵다. 서글픈 진실은 여성이 최고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여성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순전히 능력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외모와 관련이 있을까? 남자가 우리 일에 관심을 보이면 우리에게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해” 출세하라고 조언한 남자 상사나 우리 중 한 명에게 윙크를 하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과자 좀 구워다 줘”라고 말한 팀장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한 젊은 동료는 그녀의 책상 부근에서 서성댄 나이 많은 남자 상사와 관련해 주변에서 놀림을 받은 사례를 돌이켰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내가 일을 잘했다면 그 사람이 도와준 덕으로 생각해야 하나? 내가 한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데 그냥 내가 예뻐서 그가 그렇게 주위에서 맴돈다고 생각해야 하나?”라고 그녀는 물었다. “너무 괴로웠다.”

1970년대의 ‘예쁜이’들이 극복한 어려움과는 비교가 되지는 않지만 요즘의 젊은 여성 세대가 직면한 도전 중 하나는 지금도 성차별이 미묘하긴 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 선배들이 뉴스위크의 성차별 소송을 제기했을 때 뉴스위크지 판권란의 가장 아래 부분은 거의 여성으로 채워졌다.

1962년 기자 지망생으로 뉴스위크에 ‘우편물 담당’으로 취직한 노라 에프런은 이렇게 말했다. “아주 좋은 직장이었다.… 남자였다면 말이다.” 물론 여기자들도 살인사건, 국무부, 1968년 대통령 선거 등을 취재했다. 하지만 실제 기사가 작성될 때는 취재한 내용을 남자 동료 기자에게 넘겨줘야 했다. “희망이 없던 시절이었다”고 브라운 밀러가 돌이켰다.

“얼마 지나면 진짜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러면 ‘기사 작성은 남자들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저녁 뉴스위크의 한 젊은 여기자가 변호사 친구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런 좌절감을 털어놓았다. 그 변호사는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에 신고하라고 조언했다. 그녀는 그 말을 들었다. 그 뒤 동료들이 하나둘 집단소송에 참여했다.

그들은 성질이 불 같은 변호사 한 명을 고용했다. 현재 민주당 하원의원인 엘리너 홈스 노턴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적절한 시기가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우리는 얌전하고 고리타분했다”고 초기 멤버 중 한 명인 팻 린든이 말했다(그녀는 뉴스위크에 기사를 쓰지 못하는 동안에도 애틀랜틱 먼슬리와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표지 기사를 썼다).

“하지만 결국은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1년 뒤 여권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자 뉴스위크의 경영진은 페미니즘을 표지 기사로 내기로 했다. 사내에서 끓어오르는 반란의 기운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들은 뉴스위크의 숱한 여기자들을 무시하고는 외부 필진에게 기사를 맡겼다. 임원 중 한 명의 아내였다.

그들은 편집 후기에서 “일류 언론인으로 여성이기도 하다”라고 썼다. 여기자들을 더는 참지 못하게 한 결정타였다. 잡지가 나오기 전날 밤 뉴스위크의 여직원들은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는 공개 서한을 냈다. 용돈을 거둬 뉴스위크를 소유한 캐서린 그레이엄 워싱턴 포스트 회장에게 그 사본을 전달하도록 동료 한 명을 비행기에 태워 워싱턴으로 보냈다.

그레이엄은 나중에 “내가 도대체 어느 편을 들어야 하지?”라고 물었다. 1970년 3월 16일 월요일 뉴스위크 여직원들이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한 타블로이드 신문은 ‘뉴스 암탉’으로 불렀다)은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임시 기자회견장에 몰려가 자신들이 만든 잡지를 치켜들었다.

밝은 노란색 표지에 적힌 제목은 ‘여성들의 반란(Women in Revolt)’이었다. 이틀 뒤 레이디즈 홈 저널의 여기자들이 농성에 돌입했고, 다른 매체의 여기자들도 그 뒤를 따랐다. 희망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그 운동을 계기로 1990년대에 직정 여성의 권리가 급속히 신장됐다. 뉴스위크 ‘예쁜이’들의 봉기 후 20년이 지난 뒤부터 자녀를 둔 여성들까지 대거 취직 대열에 참여했다.

NOW 같은 여성단체들의 회원이 급속히 불어났다. 차별철폐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의 확대로 모든 미국 여성은 교육의 동등한 기회를 갖게 됐다. ‘걸 파워’를 내세운 젊은 여성의 권리신장 운동이 YWCA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됐다. 2000년 새천년이 되면서 여성의 취업이 크게 늘어 많은 여성은 이제 소망이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더글러스가 말한 “은밀하면서도 독성이 강한 반격”이 나왔다. 9·11 사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세계적인 대불황을 맞아 성평등은 부차적인 문제가 됐다. 이제는 페미니즘이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대신 저명인사로 돌출 행동을 보이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패리스 힐튼이 미디어를 지배했다.

그 변화는 문화에 국한되지 않았다. 여성의 교육, 건강, 정치, 금융 측면의 지위를 국가별로 순위 매기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별격차 지수(Global Gender Gap Index)에 따르면 미국은 2006~2009년 23위에서 31위로 떨어졌다. 쿠바 바로 뒤고 나미비아 바로 앞이다. 미국 기업들도 여성을 돕는 정책을 도입했지만 효과는 생각보다 못했다.

WEF의 케빈 스타인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언제나 직장과 사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면에서 점수가 형편 없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미국 여성은 ‘남성적이거나 가부장적인 기업 문화’를 출세의 최대 장애물로 간주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예를 보자. 미국 여성의 4대 직종이 비서, 간호사, 교사, 출납원이다.

여성 근로자의 43%에 이르는 저임금 ‘핑크 칼러’ 직업이다. 간호사 대신 가사 도우미를 넣으면 1960년의 여성 4대 직종과 다름없다. 당시에는 구인 광고도 성별로 구분됐다. 뉴스위크의 우리 선배들은 40년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지금도 큰 변화가 없다. 올해 72세인 린든은 “우리가 그런 변화를 위해 싸웠기에 너무 서글프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실제로 선배들의 업적 때문에 많은 덕을 본다. 은밀하게 모여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전국에 나가는 언론에 필요한 취재를 한다. 기사도 직접 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동등한 직업에 동등한 임금을 약속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하지만 그런 법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현실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아직도 평등은 허구라는 뜻이다. 저술가 에어리얼 레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성에 관한 고정 관념이라는 인류 역사의 굴레를 벗었기 때문에 직장을 갖는 일만 해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여성이 ‘누가 아무리 윽박질러도 내 몫은 확실히 챙기겠다’고 생각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고도 멀다.

With SAM REGISTER and TONY SKAG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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