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억 달러 사할린 프로젝트가 온다
220억 달러 사할린 프로젝트가 온다
▎사할린 아니바 만에 있는 사할린에너지회사의 LNG 공장.
3월 28일 오후 5시(현지시간) 인천 국제공항에서 정오에 떠난 비행기가 러시아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도착했다. 이곳 시간은 우리나라보다 두 시간 이르다. 일본 바로 위에 있어 실제 비행기로 3시간 조금 넘는 거리지만 공항 주변 풍경은 마치 지구 반대편에 온 것처럼 낯설었다.
이날 기온은 영하 1도. 거리 곳곳에서 코사크 모자라고 불리는 ‘러시아 모자’를 눌러쓴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어린아이 키만큼 눈이 쌓여 있어서인지 하이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동차는 일본 브랜드가 많았고 소형차보다 주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이용하는 듯했다.
지금은 서머타임을 적용하는 시기지만 최고 영하 40도까지 기온이 내려간다고 한다. 쌓인 눈과 자작나무 숲 사이로 특색 없이 지어진 건물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제설작업을 워낙 자주 하는 탓에 겨울에는 도로 위 건널목이나 차선의 페인트가 벗겨져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다시 칠한다고. 오후 9시가 넘으면 황량하기까지 한 이곳이 사할린의 중심 도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경제지표는 겉보기와 달랐다. 세르게이 카르피엔코 경제개발부 장관은 “지난해 사할린의 1인당 국민소득(GNP)은 3만 달러였다”며 “2008년과 비교해 지역 GNP가 7% 증가했다”고 말했다. 카르피엔코 장관은 “세계적 경제위기에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사할린Ⅰ·Ⅱ 프로젝트’로 중소기업이 활기를 띠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사할린에서는 두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에너지 프로젝트다. 사할린Ⅰ 프로젝트는 생산한 석유와 가스를 다른 대륙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사할린Ⅱ 프로젝트는 1000㎞에 달하는 남북으로 뻗은 사할린 지역에 천연가스를 고루 공급하는 것이다.
사할린의 GNP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료·에너지산업이 전체 GNP의 60% 가까이 차지한다. 사할린은 석유·석탄·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 한국은 사할린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45%, 가스의 16%를 사들이는 주요 고객이다. 사할린 프로젝트에는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등 국내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사할린Ⅱ 프로젝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가스·석유를 채취하고 수출하는 사할린에너지회사의 LNG 공장이다. 아니바 만에 위치한 49만㎡ 규모의 공장에서는 지난해 14만3000㎥의 가스를 생산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동방특별가스의 파벨 고밀리예프스키 전무는 한국의 가스 운송 시스템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파이프 라인에서 먼 사할린의 소도시와 옆의 쿠릴 열도까지 가스를 운송하는 독자적 가스 충족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파트너를 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압축·액화가스를 보관하고 운반할 수 있는 용기와 설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밀리예프스키 전무는 “한국과 어떤 형태로든 합작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사할린의 석탄 채굴량은 300만t에 이른다. 주정부는 2015년까지 잠재 채굴량이 800만t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과 매일상선이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민간 석탄회사 우글레고르스크우골의 예브게니 마이어 사장은 “2008년 한국 기업으로 소유주가 바뀌면서 자산이 2배 느는 등 새로운 잠재력을 갖게 됐다”며 “경매를 통해 새 탄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투자하면 에너지 조달을 보장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뿐 아니라 수산자원 역시 사할린 경제의 효자다. 어업 관련 업체가 500여 개 활동 중이고 5~11월인 성어기에 2만 명 가까이 어업에 종사한다. 수산물 전체 생산량은 65만t 정도다. 2009년 사할린 수산물 총수출액은 3억1170억 달러고 이 가운데 8690만 달러가 한국으로 수출됐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은 연어, 송어, 명태다. 한국에는 삼태, 명태 등을 수출한다. 정부 소속 어업 전문가인 세르게이 옴은 “한국의 대구·명태 양식, 수산물 가공과 관련한 기술을 알고 싶다”며 한국 업체가 매년 9월 열리는 수산업박람회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풍부한 원재료를 양식·가공을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전략이다.
한국식 사우나 짓기 원해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차로 1시간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코르사코프의 마르키 양식장은 고요했다. 오호츠크해가 얼어 파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양식장으로 가는 길에 언 바다를 걸어가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작은 점처럼 군데군데 보였다. 양식장 관계자는 “9월에 알을 부화해 다음해 5월에 방출하면 3~6년 지나 4% 정도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방출하는 연어 새끼가 2100만 마리. 이런 식으로 연어를 양식하는 어장이 사할린에 36개다. 사할린 주정부는 한국의 건설산업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옐레나 이바쇼바 건설부 장관은 “유즈노사할린스크를 비롯한 코르사코프, 홈스크, 돌린스크, 아니바 등 주변 도시에 주택 수요가 많고 한국 업체가 한국식 사우나, 스키장, 호텔 등 다양한 시설을 짓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사할린은 아파트가 많지 않고 부동산 거래가 활발하지 않지만 잠재 수요가 크다는 얘기다. 이바쇼바 장관은 “지진지대이고 건축자재가 비싸다는 약점이 있지만 건축자재 생산을 늘려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축자재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사할린 북부에 대규모 시멘트 공장을 건설 중이라고 했다.
한 정부 인사는 인터뷰에서 ‘돈은 항상 부족하다’는 러시아 속담으로 한국의 예상 투자액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뜨거운 에너지가 차가운 동토를 녹일 수 있을지 서울에서 열릴 투자박람회에 대한 기대로 사할린은 상기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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