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얼굴의 사나이’철학자 사르트르
▎철학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민중적이면서 세계적인 담론을 이끌었던 지식인은 사르트르가 전무후무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로 다른 책과 책이 만나서 이뤄내는 하모니가 절묘했다. 최근 접한 신간 중 가장 매력적이라며 동네방네 소문 내고 있는 앨런 케이헌의 신간 ‘지식인과 자본주의’(부글북스)와, 10개월 전 나왔던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사르트르 평전’이 그러했다.
별일이었다. 지식인의 삶과 죽음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다룬 두 책은 그동안 짝을 찾지 못했던 볼트와 너트 사이처럼 꼭 들어맞지 않는가! 말하자면 총론과 각론, 일반론과 사례연구의 사이다.
2000년대 초입 방향을 잃은 한국의 지식사회에 주는 암시도 크기 때문에 상·중·하 편으로 나눠 세 권의 책을 각기 리뷰할 생각인데, 특히 ‘지식인과 자본주의’의 이런 대목을 보라. 앨런 케이헌은 19, 20세기 서구 특급 지식인들이 왕왕 보여 온, 이해하기 힘든 허위의식을 이렇게 지적한다.
“지식인들의 마조히즘이란 것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자유를 훔치(고 억압하)는 사람까지도 (당신은) 옳다고 기꺼이 말한다. 전형적인 예를 들자면 부르주아 사회에 맞서면서도 당(黨)규율에 기꺼이 복종하는 공산주의 지식인들이 있다.” (‘지식인과 자본주의’ 38쪽)
맞다. 멀리 갈 필요 없이 해방 정국에서 월북이라는 정치적 선택을 한 뒤 작가로, 혁명가로 끝내 자멸을 재촉했던 시인 임화·이용악·이태준의 경우를 보라. 20세기 최대의 지식인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더욱 그랬다. 시종 갈지자 걸음을 했다.
‘사르트르 평전’의 저자가 내린 평가처럼 사르트르는 절대적 지식인이자, “자유와 진리의 화신이자 전 지구 차원의 도덕적 권위를 가진”(56쪽) 존재인데, 스탈린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미친 짓’까지 서슴없이 했다. 이 때문에 사르트르를 다중인격 혹은 ‘두 얼굴의 사나이’로 봐야 옳다는 게 저자와 옮긴이의 일치된 판단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처럼 거대한 단절이 있을 수 있는가? ‘구토’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쓴 (자유의 화신) 사르트르가 마오쩌둥주의자들의 기관지 ‘인민의 대의’를 지지할 수 있는가?…절대자유를 추구하고 니체주의적 경향을 가진 개인주의 예술가 사르트르이면서 동시에 폭력을 선호하고 마르크스적 경향의 전체주의를 신봉할 수 있는가?”(‘옮긴이의 말’)
사실 사르트르를 포함한 서구 지식인 상당수가 소비에트 체제에 보였던 집단적인 짝사랑이란 20세기의 거대한 스캔들감이다. 그 사안은 냉전을 몰고 온 한국전쟁 직후 벌어진, 좌우파 논객이 총출동한 사상 논쟁이었다.
일테면 1954년 사르트르는 소련을 둘러보고 돌아와 “소련에는 새롭고 특별한 유형의 인간형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감격스러운 표정과 함께 선언했다. 당연히 기자들이 물었다. “그곳에도 비판의 자유가 있다고 보는가?” 사르트르가 헛소리를 거리낌없이 남발했던 게 그때부터였다.
“물론이다. 소련 시민들은 완벽한 비판의 자유를 향유하며, 소수 엘리트가 존재하지만 그들은 자아비판을 통해 특권을 기꺼이 포기할 줄 안다.” 이 발언이야말로 20세기 지식사회의 유명한 과오이자, 지식인의 자기기만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보수파들의 비판대로 소련은 스탈린 시절 이후 작가·지식인 등 250만 명의 정치범을 가둔 강제수용소를 포함해 나라 전체가 거대한 ‘굴라그의 지옥’이 아니었던가? 1930년대 말 앙드레 지드가 유명한 책 ‘소련 기행’을 통해 소비에트의 앞날을 부정적으로 예견했지만, 사르트르는 그걸 다시 뒤집었고, 그때부터 좌파 개종을 본격화했다.
사르트르의 소비에트 찬양은 지독한 자기 부정이었다. “스탈린식 공산주의란 작가라는 정직한 직업과 어울릴 수 없다”고 공언했던 게 그 유명한 자기의 책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였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심한 다중인격 혐의는 그런 표리부동한 태도 때문인데, 급기야 두 사건이 터졌다.
하나는 흐루쇼프의 스탈린 각하 운동이다. 1956년 그가 스탈린 억압 정치의 실체 비판과 함께 숱한 희생자의 존재를 털어놓았다. 그해 2월 당 공식연설은 4개월 뒤에 유럽 지식사회에 뒤늦게 상륙했고, 폭풍 같은 여론이 일었다. 후폭풍이 대단했지만, 사르트르는 마이동풍이었다. “흐루쇼프가 광기를 부린다”고 거꾸로 욕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저자가 “자유를 우선시하던 사르트르는 대체 어디로 갔는가?
모든 권력에 반기를 들었던 사르트르, 투명성의 사도이던 그는 어디로 갔는가?”고 묻는 것도 당연하다. 이 사건 뒤 ‘사르트르=프랑스 최후의 스탈린주의자’ 딱지가 붙었다. 그에게 또 다른 재앙은 작가 솔제니친의 등장이다. 그가 ‘수용소 군도’의 작가로 뜨는 와중에 사르트르는 “그는 발전의 장애물”이라며 모욕했지만, 끝내 부메랑 효과로 돌아왔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르트르에게 1950년 한국전쟁의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사르트르를 포함한 철학자 메를로퐁티, 작가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등 한때 의기투합했던 동료 지식인들이 반목을 시작했던 계기가 한국전쟁 평가다. 책상물림 사르트르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을 의심했다.
미국의 사주로 한국이 북한을 공격했다는, 당시 유럽의 지식사회를 떠돌던 괴소문의 하나인 ‘북침설’을 덜컥 믿었고, 소비에트 체제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사르트르의 그런 좌파 개종을 계기로 자신이 만들던 지식인 잡지 ‘현대’ 편집진이 두 쪽으로 갈라졌고, 메를로퐁티와도 사이가 틀어졌다.
카뮈·지드와도 그랬다. 메를로퐁티처럼 이들도 소비에트 체제를 비판하면서 좌파와 ‘거리 두기’를 하자 사르트르는 그들을 공격했다 “혼자서 객관적인 척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곤 했다. 이념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사르트르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었고, 그때마다 흔들렸다는 얘기다.
물론 ‘사르트르 평전’은 말 그대로 지식인 평전이다. 세상의 부조리와 무의미에 맞선 외로운 인간이자, 열혈 투사 사르트르의 전체 모습을 그린다. 그래서 실존주의를 주창했고, 현실의 진흙탕에 뛰어들었다는 설명이 그럴싸하다.
본래 20세기 역사 경험이란 게 좀 지독하지 않았던가! 이 와중에 사르트르는 하도 악을 쓰다 보니 “공산주의 암세포”이자 “혼자만으로 내전을 일으키는 전쟁기계”라는 비판까지 뒤집어써야 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사르트르를 우습게 볼까? 저자는 사르트르란 이름은 “하나의 깃발”이자 “세계의 탄생” 그리고 “영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일인 국가, 한 명의 국가원수”라고 추앙한다.
극대치의 찬양이다. 문학사·철학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민중적이면서 세계적인 담론을 이끌었던 지식인은 그가 전무후무하다. 문제는 1000쪽 가까운 ‘사르트르 평전’을 아무리 읽어도 사르트르와 20세기 지식사회가 완전하게 조망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미경으로 사르트르를 보기 때문이다. 별도의 망원경이 필요하다.
그게 최근 만난 멋진 책인 ‘지식인과 자본주의’다. 사르트르가 놀았던 멍석의 전체 모습, 그의 개인적 스타일에 숨어 있는 지식인의 기질을 구조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책을 함께 봐야 한다.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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