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5 타던 30대, 아이오닉 5 대신 모델 Y 택했다 [뒤집히는 차값] ②
- 수입차 24% 오를 때 국산차 가격은 33% 상승
고급화로 수익성 지켰지만 가격 경쟁력은 흔들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수입차를 타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최근 기아 K5를 타던 30대 직장인 A씨는 차를 바꿨다. 새 차로 테슬라 모델 Y를 골랐다. 전기차를 고민하던 A씨는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와 기아 EV6도 함께 살펴봤다. 최종 선택을 가른 것은 가격이었다. 원하는 트림과 선택사양을 넣은 국산 전기차의 가격이 수입 전기차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의 사례는 국산차와 수입차 사이의 가격 경계가 흐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예산에 따라 국산차와 수입차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뉘었지만 이제는 현대차·기아의 상위 트림과 수입차 기본형이 같은 가격표 위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국산차와 수입차 간 가격 변화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자동차 전문 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국산차 평균 구입가격은 2019년 3226만원에서 2024년 4306만원으로 5년간 33% 올랐다. 같은 기간 수입차는 6117만원에서 7593만원으로 24% 상승했다.
상승률 차이는 9%포인트다. 수입차 가격이 상대적으로 덜 오르면서 국산차와의 격차가 좁아진 셈이다.
실제 전기차 가격표를 보면 소비자의 고민이 더 분명해진다. 테슬라 모델 Y 프리미엄 후륜구동(RWD) 기본형은 4999만원이다. 현대차 아이오닉 5 E-Value+ 스탠더드는 4735만원으로 모델 Y보다 264만원 저렴하다. 기아 EV6 라이트 스탠더드는 4360만원으로 639만원 낮다. 기본형만 놓고 보면 국산 전기차가 저렴하지만 수입차 구매를 포기할 만큼 차이가 크지는 않다.
상위 트림에서는 가격 관계가 달라진다. 아이오닉 5 롱레인지 인스퍼레이션은 6128만원으로 모델 Y 기본형보다 1129만원 비싸다. EV6 GT-Line 롱레인지도 5700만원으로 701만원 웃돈다. 여기에 선택사양을 추가하면 실제 구매가격은 더 높아진다.
다만 모델 Y도 롱레인지 사륜구동(AWD)으로 올라가면 6699만원에 달한다. 트림과 구동 방식, 선택사양에 따라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 우위가 뒤바뀌는 구조다.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A씨가 몰던 K5의 상위 사양은 4000만원대 중반에 이르러 모델 Y 기본형과의 차이가 600만~700만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쏘렌토 하이브리드 상위 사양은 5000만원대 중반까지 올라 모델 Y 기본형보다 비싸진다.
세단도 마찬가지다. 그랜저 하이브리드와 제네시스 G80에 주요 사양을 더하면 각각 6000만원대와 7000만원대에 진입한다. BMW 5시리즈와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등에 프로모션이 적용되면 비슷한 예산에서 비교할 수 있다.
판매 흐름도 엇갈렸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기아의 국내 합산 판매량은 전년보다 약 3% 감소한 반면 수입 승용차 신규 등록은 33.2% 증가했다. 국산차 가격 상승이 곧바로 판매 감소로 이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국산차 구매자가 수입차까지 비교하는 가격대가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
터줏대감 현대차·기아, 가격 전략 시험대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차가 늘어나면서 현대차·기아의 가격 전략도 시험대에 올랐다. 최근 국산차 가격 상승은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차량의 전동화·전자화가 빨라진 데다 고사양 모델의 판매 비중을 높이는 제품 전략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차·기아로서는 당장 가격을 낮추기도 쉽지 않다.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격을 크게 낮추면 수익성과 투자 여력이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사양을 추가하며 가격을 계속 높이면 소비자가 수입차로 이동할 수 있는 비교 구간은 더 넓어진다.
최근 현대차·기아 신차에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대형 디스플레이, 디지털 키, 원격 주차 보조 등 전장·편의사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과거 선택사양이던 기능을 기본으로 적용하거나 여러 기능을 패키지로 묶는 사례도 늘었다. 상품성은 높아졌지만 시작 가격과 최종 구매가격도 함께 오르는 구조다.
하이브리드차 판매 확대도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하이브리드차는 기존 엔진과 변속기에 배터리와 구동모터 등이 추가돼 내연기관차보다 투입되는 부품이 많다. 현대차·기아의 내수 판매가 그랜저·싼타페·쏘렌토·카니발 등 중대형 하이브리드와 SUV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소비자가 마주하는 가격대도 높아졌다.
판매 차량의 구성도 세단에서 SUV로, 내연기관차에서 하이브리드차로, 기본형에서 상위 트림으로 이동했다. 고급 차종과 상위 트림의 비중을 높이면 판매량이 크게 늘지 않아도 차량 한 대당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다. 완성차 업계에서 이 같은 ‘판매 믹스 개선’은 수익성을 지키는 핵심 수단으로 통한다.
문제는 소비자가 상품성 향상과 가격 상승을 같은 크기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안전·편의 기능이 늘었더라도 원하는 사양이 상위 트림이나 고가 패키지에 묶이면 최종 견적은 빠르게 불어난다. 소비자 사이에서는 옵션 구성으로 실질적인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현대차·기아 차량에 커넥티드카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 신규 기능이 대거 적용되면서 원가 상승분이 판매가격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시장 지배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하면 당장 가격을 낮추기는 어렵다”면서도 “시장점유율이 의미 있게 하락하면 할인이나 금융 혜택을 통해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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