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저력
미국 경제의 저력
2008년의 금융붕괴, 이어진 깊고 오랜 경기침체를 지켜보면서 진보파든 보수파든 중도파든 엘리트층 사이에선 미국의 쇠퇴가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진보 경제학자로 노벨상을 받은 조셉 스티글리츠는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침체와 금융붕괴 대처가 너무 미지근해 회복은 물 건너갔을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보수 역사가 니올 퍼거슨은 미국의 과도한 부채와 방탕한 지출로 한때 막강했던 제국이 몰락 위기에 처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경제분석가를 지낸 하버드대 경제학자 켄 로고프는 미국이 제2의 그리스(재정위기로 국가파산 위협을 받는다)가 될지 모른다고 조바심을 냈다.
심지어 친미주의라던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마저 지난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미국 주도의 글로벌 자본주의를 맹비난했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후 손쉬운 대출을 기반으로 한 업계와 기관의 자산은 하나같이 반 토막이 났다. 그와 함께 미국 경제의 자존심도 추락했다.
2007년 말부터 2009년 1분기까지 9조 달러의 부(富)가 사라졌다.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한 중국·인도·브라질의 거칠 것 없는 성장이 무시무시한 위협으로 떠올랐다.
다른 불길한 조짐도 나타났다. 미국의 휘발유 값이 갤런(약 3.8L)당 4달러로 치솟고, 티파티(tea party: 오바마 행정부의 지출 정책, 특히 경기부양책을 반대하는 보수 시민운동)가 급부상했으며, 여당인 민주당의 상원 지배력이 허약해졌고, 백악관이 기이하게도 힘이 빠졌으며, 은행들은 반성할 기미가 전혀 없었고,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불완전 고용(좌절한 시간제 근로자와 구직을 포기한 사람)을 포함한 실업률이 16.9%나 된다.
설령 미국이 경기침체의 수렁으로 다시 굴러 떨어지지 않는다 해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맞게 되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2009년 NBC/월스트리트 저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생활수준이 자신보다 나으리라고 확신한 미국인은 27%에 불과했다. 이처럼 암울함이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장기적인 쇠락기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은 과장이 너무 심할지 모른다. 사실 미국 경제는 거의 모든 예상보다 강하고 빠르게 복구되는 중이다. 대다수 경쟁국보다 회복세가 빠르다.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지난 13개월 동안 70%가 상승해 1만1000선을 맴돈다.
2010년 1분기의 자동차 판매도 2009년 대비 16% 늘었다. 지난 3월엔 미국의 새로운 일자리가 제조 분야 1만7000개를 포함해 총 16만2000개나 증가했다. 달러화 가치도 올랐다. 미국은 성장 면에서 유럽과 일본을 압도하는 과거 입지를 회복했다. 경제대국 중에서는 중국·인도·브라질만이 미국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
하지만 기본 규모를 생각하면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시장예측 전문업체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저의 추정대로 미국 경제가 올해 3.6% 성장한다면 미국에서 새로운 경제활동에서 창출되는 부의 규모가 자그마치 5130억 달러다. 이는 인도네시아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다.
그런데도 왜 비관론이 만연할까? 물론 미국의 혼란한 주택시장과 방대한 예산적자는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가 간과하는 요인이 있다. 미국의 진정한 경쟁적 우위 말이다. 어느 곳이든 경제의 놀라운 반전은 대부분 신속한 대응, 악성부채를 탕감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성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이끈다.
미국이 여전히 뛰어난 분야다. 미국은 지금도 위기를 수습하고,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여 신속하고 유익하게 발전시키는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회학자로 ‘위대한 재설정: 새로운 삶과 근로 방식이 금융붕괴 후의 번영을 이끈다(The Great Reset: How New Ways of Living and Working Drive Post-Crash Prosperity)’의 저자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미국은 적응력과 창의력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국가로 복원력을 확실히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런 잠재력이 좀 더 체계적이고 전폭적으로 활용된다면 미국은 현세기 내내 경제 초강대국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 경제를 뒤덮은 자욱한 연기가 걷히고 나면 새 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승용차 4대가 들어가는 차고를 갖춘 대저택이 줄어들고 단열처리가 잘된 집이 더 많아진다.
기름 많이 먹는 대형 다목적 차량이 줄고 연비가 뛰어난 하이브리드차가 더 많아진다. 자기자본거래(prop trading: 은행이 자기자본으로 고객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투기적 거래를 하는 행위)가 줄어들고 생산성을 제고하는 소프트웨어가 늘어난다.
부채가 줄어들고 자본이 더 많아지며, 수출 상품이 많아지고 수입 에너지가 줄어든다. 무엇보다 성장을 배양하고 촉진하는 새로운 인프라와 생태계가 갖춰질 전망이다. 1990년대의 인터넷이 그랬듯이 말이다. 현재의 만연하는 미국의 비관주의는 역사적인 경제 열등의식의 산물이다. 일부 비판자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최초의 개척지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의 1609년 잔인한 겨울 이래 줄곧 하강추세였다.
당시 기아와 질병으로 정착민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19세기 대부분 동안 미국은 철도 건설에 막대한 유럽 자본의 유입이 필요했던 미숙한 존재였다. 지금 우리가 아는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부상했다. 여타 선진국의 산업 역량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미국은 어부지리로 세계의 산업, 금융, 기술 주도국이 됐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높아가는 지위를 늘 불안하게 여겼다. 1920년대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를 견학하고 돌아온 미국의 진보당 인사들은 무솔리니가 더 우수한 경제 모델을 가졌다고 확신했다. 뉴딜 시절엔 은행가와 기업가들이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미국의 성장이 불가능해진다고 우려했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소련이 기술적 우세로 냉전에서 승리한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1980년대엔 일본이 전자제품, 자동차를 수출하고 록펠러 센터와 페블비치 골프장 같은 상징적인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미국을 위협했다. 고 폴 송가스 상원의원은 1992년 “냉전의 승리는 일본”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물론 미국 쇠퇴론자들은 곧잘 오판했다. 록펠러 센터와 페블비치 골프장은 10년 만에 미국 소유로 되돌아갔다. 활기찬 전망이 주로 경제가 잘나갈 때 나오듯이(다우 지수가 3만6000선을 돌파했을 때를 기억하는가?) 장기 쇠퇴 예언은 파멸적인 추락을 겪은 뒤에 힘을 얻는다. 이번에는 비관론자들의 목소리가 2009년 3월에 절정을 이뤘다.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벤 버냉키 의장은 경기회복의 ‘푸른 싹(green shoots)’이 보인다는 언급으로 널리 조롱 받았다. 2009년 1분기 경제는 연율로 6.4%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4분기가 되자 5.9% 성장했다. 급반전이다. 규모 14조5000억 달러인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약 9개월 동안 12.3%포인트 이동했다.
파도가 거센 바다에서 180도로 회전하는 거대한 배처럼 이런 급격한 경기호전은 거대한 항적을 만들어내며 탑승객들의 구토증을 유발했다. 미국의 경제회복이 빨랐던 이유는 공공과 민간 부문이 매우 신속히 대응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일본의 정책입안자들은 신중히 숙고하며 오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금리인하, 대규모 경기부양책, 은행 보증 확대, 파산 금융사들의 국유화를 포함하는 방대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일본이 그런 부양책 시행에 12년을 기다렸다면 미국은 2008년과 2009년 단 18개월 만에 공격적인 재정 및 통화 조치를 취했다. 충격요법은 효과가 있었다. 미국의 신용시장과 금융 부문이 되살아났다.
2009년 5월 미 재무부가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를 가정해 금융사가 받을 잠재적 손실을 측정하고 재무 건전성을 평가하는 일)를 실시하겠다고 발표 이래 은행들은 자기자본 1400억 달러 이상을 확보했다. 가장 비현실적인 낙관론자들조차 4개월 안에 뱅크 오브 아메리카, 시티, 웰스 파고가 구제금융으로 받은 1000만 달러를 납세자들에게 돌려주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9년 8월 그 금융사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신속한 반사작용의 좋은 사례가 CIT 그룹이다. 중소기업 대상 대부업체인 CIT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에 잘못 뛰어들었다가 2009년 11월 1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하지만 CIT는 단 5주 만에 부채 104억 달러(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 자금 23억 달러 포함)를 전부 갚고 파산 위기에서 벗어났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메릴 린치를 이끌었던 존 테인을 새 CEO로 영입해 핵심 사업인 중소기업 대부에 주력한다. 구조조정 전문업체 졸포 쿠퍼의 설립자 스티븐 쿠퍼는 “법정 밖에서 이뤄지든 파산으로 이뤄지든 구조조정은 미국에선 쉽게 용인되는 전략이지면 해외에선 여전히 그에 따른 부담과 책임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고장 난 금융체제를 고치는 일은 시작에 불과하다. 수요가 부진한 시기엔 수익성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익을 내는 능력이다.
이 부분에서도 미국인들은 타고난 경쟁력을 가진 듯하다. 스톱워치를 들고 빅토리아 시대의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근로자들의 동작을 시간으로 측정한 과학적 작업관리기법(테일러 시스템)의 창시자 프레데릭 테일러, 공장의 조립 라인을 완벽하게 만든 헨리 포드, 총체적 품질관리 기법을 개발한 W 에드워즈 데밍, 과도할 정도로 효율적인 유통망을 확립한 월마트. 이처럼 효율성 추구는 애플 파이만큼이나 미국의 상징이다.
이번 위기에서 미국 기업들은 비용 삭감과 효율성 제고를 적극 수용했다. 2008년 4분기부터 2009년 4분기까지 생산성이 5.8% 높아졌다. 2007년과 2008년의 경우 생산성 상승률은 각각 1.7%, 2.1%에 불과했다. 이런 치열한 효율성 추구는 단기적으로 수익 증가와 고용 하락이라는 불편하고 지속 불가능한 구조를 낳는다.
그러나 효율성 강조는 머리 잘 돌아가는 회사들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된다. 매사추세츠주 니드햄의 신생기업 빅벨리 솔라는 노동력과 에너지 둘 다를 줄여주는 태양력 쓰레기 압축기를 제조한다. 그 회사의 매출이 2008년과 2009년 모두 두 배로 늘었다. CEO 짐 포스는 “시정부, 대학과 공원 관리소 같은 기관들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내려고 안간힘”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필라델피아시는 쓰레기 압축기 500대를 임대해 주당 쓰레기 수거 횟수를 17회에서 5회로 줄였다. 10년 동안 1300만 달러가 절감된다. 빅벨리의 직원 수는 50명이 채 안 된다. 하지만 급성장하는 시장의 기업들처럼 빅벨리는 간접적으로 훨씬 많은 일자리를 지원한다. 버몬트주 알링턴의 하청 제조업체 맥몰딩에선 직원 35명이 2교대로 쓰레기 압축기를 생산하느라 여념이 없다.
맥몰딩의 존 매그래스 부사장은 “부품 공급업체가 50개 이상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포함하면 추가로 180개의 일자리를 지탱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공정 전부가 미국에서 이뤄지는 빅벨리 압축기는 25개국으로 수출된다. 물론 미미한 규모다. 하지만 수천 개의 신생기업과 소기업이 국내외에서 새로 생겨나는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한다.
미국의 수출은 2009년 4월 바닥을 친 이래 크게 늘었다(2009년 4월 1217억 달러에서 2010년 1월 1427억 달러로 17.3% 증가). 보잉사는 2010년 상용기 약 460대를 조달할 예정이다(대부분이 수출). 2008년에는 375대였다. 회의론자들은 이런 모양새가 괜찮기는 하지만 갈 길은 멀다고 말한다.
물론 2007년 12월 이후 사라진 일자리 820만 개를 회복하려면 매월 17만 개씩 4년 연속 성장해야 한다. 과거의 증기 기관이나 미국의 각주를 잇는 산업도로처럼 큰 변화를 가져올 차세대의 경제적인 힘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헤아리기 어렵다. 하지만 인터넷을 생각해 보라. 래리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1992년 빌 클린턴이 당선된 대선 후 리틀록에서 열린 경제정상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즐겨 한다.
브리핑 서류와 정책 요약서 수천 장에서 오직 중요한 단어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문제의 단어는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은 직접 관련이 있는 일자리는 물론이고 온갖 새로운 사업과 사업하는 방식을 쏟아내는 매우 효과적인 산업 플랫폼이다. 완전히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건설하는 일 역시 미국이 뛰어나다.
‘위대한 재설정’의 저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재설정으로 미국은 뛰어난 개인적 혁신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시스템의 혁신이다. 토머스 에디슨과 조지 웨스팅하우스(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스 창업자)의 전기 시스템 건설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 시스템 혁신은 새로운 인프라 모델과 소비로 이어진다.”
애플은 2003년 4월 단일 상품(99센트짜리 음악 판매)으로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를 시작했다. 7년 뒤 아이튠스는 훨씬 큰 사업체로 부상했다. 아이폰, 아이팟 터치, 아이패드 같은 하드웨어 만이 아니라 오디오북, 영화, 전화벨 소리, 응용프로그램, 전자책도 아우른다. 소매업체, 영화제작사,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분석 기업, 액세서리 제조업체에게 매우 중요한 사업 기반이 됐다.
각종 기기에 필요한 케이스, 슬리브, 헤드폰의 시장은 연간 규모가 15억 달러를 넘어선다. 지난 3월 말 벤처자본 투자회사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는 응용프로그램 제작자들을 지원하려고 2년 전 만들어진 ‘아이펀드’의 규모를 2억 달러로 배로 늘렸다. 이제 두 가지 서로 연관된 시스템을 살펴보자.
에너지와 자동차 제조업을 말한다. 지난 2년 동안 주택시장과 월스트리트의 구제에 전력을 쏟아온 정책이 효율성을 통해 국가적 영업소득을 올리는 새로운 정책으로 대체됐다. 물론 ‘녹색 일자리’ 수백만 개가 하룻밤 사이에 생겨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일부 분야에선 아이튠스와 비슷한 과정이 진행 중이다.
풍력발전용 터빈을 제조하는 덴마크의 베스타스는 미국 콜로라도주에 풍력발전용 터빈 제조공장을 짓는 데 거의 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완공되면 약 2500명의 근로자가 직접 고용된다. 한편 베스타스는 알루윈드, PMC 테크놀로지, 바흐 콤포지트, 헥셀 같은 부품 제조사를 포함해 10여 개의 하청업체도 유치했다.
하드웨어 부문만이 아니다. 미국 최대의 풍력발전기지 운영업체인 리뉴어블 에너지 시스템스 아메리카스는 2008년 본사를 콜로라도주 블룸필드로 이전했다. 지난 3월 콜로라도주는 2020년까지 에너지의 30%를 신재생 에너지원에서 생산하도록 의무화했다. 만신창이가 된 자동차 업계에서도 유사한 역학이 작용한다.
특히 이 부문에선 효율성의 근소한 개선이 큰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진다. 미국 자동차의 연료 효율성을 갤런(약 3.8L)당 1.6㎞만 개선해도 연간 휘발유 61억 갤런이 절약된다(현재 시세로 치면 170억 달러 규모다).
미국승용차와 경트럭의 연료 효율성을 2016년까지 평균 갤런당 57㎞(지금은 33㎞)로 높여야 한다는 새로운 규정이 도입되면서 미국 에너지부는 대기업(포드는 공장 개조 명복으로 59억 달러의 대출을 맡았다)과 신생기업(피스커 오토모티브)에 대출과 대출보증을 제공한다. 덴마크 출신의 노련한 자동차 업계 임원인 헨리크 피스커는 고급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하려고 2007년 8월 피스커사를 설립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혁신가의 나라다. 하지만 미국에 회사를 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들도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피스커는 모험자본으로 2억5000만 달러를 유치했고,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큰돈 들이지 않고 영입했으며, 새로운 사업에 목말라하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을 공급망으로 확보했다.
지난해 10월 피스커는 그 얼마 전 문닫은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GM 공장을 1800만 달러 헐값에 인수했다. 5억2570만 달러에 이르는 연방정부의 대출보증을 발판으로 피스커는 그 공장을 개조하는 데 1억5000만 달러 이상을 쓸 계획이다. 올해 말에는 첫 작품 카르마(소매가 8만7000달러)를 출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의 생산은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낼 잠재력도 충분하다. 판매대리업체, 충전소, 액세서리,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 등을 말한다. 헨리크 피스커는 “이 산업이 발전하면 앞으로 미국의 전기 생산방식이 달라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오랜 경기침체로 주눅든 시기에는 그런 실리콘 밸리 풍의 허세가 공허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역사적인 열등의식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세계적으로 급속히 발전시키는 능력을 입증했다. 세계가 경제강대국 미국의 종언을 축하한 듯한 다보스에서도 구글이 주최한 파티가 인기 최고였다. 엘리트들은 그 파티에서 한자리 차지하려고 아우성을 쳤고 춤도 형편없이 추면서 아이폰에다 문자 메시지를 날리느라 분주했다.
그 아이폰을 누가 만들었나? 바로 애플이다. 구글과 애플은 시가총액으론 미국의 3위, 9위 기업이다. 현재 두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3980억 달러다. 닷컴 거품이 꺼졌고 엔론의 부정회계 위기가 미국의 신용을 최악으로 떨어뜨린 직후인 2002년 초를 생각해보라. 당시엔 그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합쳐봤자 기십억 달러에 불과했다.
애플이 그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당시 애플의 주가는 수익률에도 못 미쳤다. 구글은 직원 약 600명을 둔 개인 기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두 회사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부상해 미국의 수출을 주도하면서 혁신과 성장을 촉진하는 기업으로 군림한다. 시보레와 맥도널드가 한때 그랬듯이 지금은 구글과 애플이 미국을 대표한다.
미국에서 최근래 두 차례 활황은 각각 120개월, 92개월씩 지속됐다. 그처럼 미국 경제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면, 그리고 구글과 애플처럼 시장의 판을 바꾸는 몇몇 기업을 창출한다면 모든 악조건과 비관적인 예측에서도 2009년 7월 시작된 호황이 그만큼 오래 못 갈 이유가 없지 않을까?
With NICK SUMMERS and JESSICA RAMIREZ in New York
The Shape of Things to Come
“V자보다는 U형 회복세 보인다”
저명한 경제학자 4명이 말하는 미국의 경기회복 전망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루비니 글로벌 이코노믹스 의장 향후 10년 동안 미국 경제는 잠재적 성장률 수준, 혹은 이에 못 미치는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미 정부가 공격적 정책으로 위기에 대응한 결과 경제 회복이 시작됐지만, V자보다는 U자 형태의 회복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민간 수요는 아직 미약하고 가계 수입도 이렇다 할 증가세를 보이지 않는다.
주택(9·11 사태 이후 임금이 정체된 상황에서 담보 대출을 통해 경기회복을 주도)을 포함한 일부 주요 자산은 2010년에도 계속해서 가치가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계 저축은 증가하고 소비는 감소하는 현상이 향후 수 년간 지속될 전망이다. 민간 수요가 정상화되고 지속적 경기회복이 시작되면, 경기부양을 위해 무리한 지출을 강행했던 정부는 차입금 상환 연장 등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서야 한다.
엄청나게 불어난 정부 적자를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려면 세금을 인상하는 한편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이는 분명 실행하기 어려운 정책적 조합이다. 좋든 싫든, 정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비용은 향후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제러미 시겔
펜실베이니아대 비즈니스 스쿨 금융학 교수장기적 경기침체가 시작된다는 중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향후 10년 동안 성장률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평균 성장률 3.2%를 상회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 성장의 동력은 생산성이고, 생산성의 동력은 발견과 혁신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으로 세계 곳곳에서 기업가와 연구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들은 천연자원의 보존, 에너지, 의료 부문에서 난제를 해결하며, 우리 삶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줄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해 나갈 것이다.
로라 타이슨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비즈니스 스쿨 교수향후 5년 동안의 경제 성장률 예측치는 매우 다양하다. 이는 2008~09년의 대불황 사태가 그만큼 넓고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 엄청난 부가 손실됐음을 방증한다.
낙관적 전망은 향후 5년 동안 평균 3.5%의 성장률을 예측하지만, 비관적 전망은 2.5~2.8%의 성장률을 내놓는다.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선 비관적 전망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낙관론자들조차도 2015년 말까지는 실업률이 5%를 상회한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다시 말해 지난 두 번의 경기회복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경기회복에도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을 전망이다.
모하메드 엘-에리안
채권 투자사 핌코 CEO성적이 꽤 좋았던 2010년 상반기가 끝나면, 경제는 향후 4년 동안 연간 2% 수준의 성장률로 둔화할 전망이다. 그 결과 실업률은 느리게 감소하는 한편, 정부 적자의 우려는 계속되고 사회안전망이 받을 압박은 증가한다. 향후 수 년간 미국 경제실적은 만족스럽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경제위기 이후 시작된 세 가지 양상 때문이다.
첫째,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재고 순환주기와 맞물려 시작된 경기 순풍은 과도한 부채, 채무 상환, 규제 강화, 국제교역 갈등이 초래하는 강력한 구조적 역풍을 맞게 된다. 둘째, 성장과 부의 중심축이 계속해서 주요 신흥경제국으로 이동하고, 첨단 금융기법에 의존했던 국가들은 주도권을 뺏기게 된다.
셋째, 위기 이후 민간과 공공 부문에서 위험 회피 현상이 증가하며 성장 속도에 제동이 걸린다. 이는 또 다른 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불가피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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