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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어젠다 우리가 완성한다

코리아 어젠다 우리가 완성한다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는 드림팀으로 불린다. 사공일 준비위원장을 비롯한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쟁쟁한 인사가 참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만 있으랴. 음지에서 어젠다를 세팅하고, 남모르게 회의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G20 위원회의 숨은 주역 5인5색이다.

2009년 9월 말 정여진(32) 사무관은 갓난아기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무심코 본 TV에서 흘러나온 한 토막의 뉴스.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유치했습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일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올랐단다. 하지만 아직 몸조리를 해야 할 때. “아기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 욕심만 차릴 순 없잖아요. (G20 위원회에)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G20 위원회에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는 거였다. 제안이 들어올 만했다. 200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재경부 기획관리실, 국제금융국을 두루 거친 신세대 금융 관료.

글로벌 안전망의 의제를 설정할 수 있는 적임자였다. 그러나 또다시 찾아온 현실과 이상의 괴리. 고민하던 그의 뇌리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회한이 스쳤다.

어찌나 분했던가. 잘못한 것도 없이 외환보유액이 줄줄 빠져나가는 현실이 말이다. “사실 우리는 외환자유화를 추진하면서도 건전성 규제는 철저하게 했어요. 그러나 외풍에 흔들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정 사무관은 올 2월 G20 위원회에 복귀했다. 업무는 글로벌 안전망 확충 관련 의제 설정이다. G20 회원국이 공감할 만한 의제를 내놓는 게 목표다. 신흥국이 글로벌 안전망 속에서 기초체력을 잘 키웠으면 한다는 바람도 밝혔다. 그는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효율적 글로벌 안전망에 대한 의제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혜원(33) 사무관은 G20에 관해선 최고 전문가다. 그의 첫 보직은 G20 담당 부서였던 외교통상부 경제기구 환경과. 처음도 G20, 지금도 G20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를 ‘G20 메모리’라고 부른다.

김 사무관의 역할은 세르파(정상대리인)를 지원하는 것. 말이 지원이지 세르파 회의를 종합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세르파 회의에서 논의될 의제를 챙겨야 함은 물론이다. 때론 행사 기획을 전담해야 한다.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상반기에 열리는 세르파 회의 준비로 밤 9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을 정도. 그래도 피곤한 줄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에요. G20 회원국이 머뭇거리지 않고, 게다가 일사천리로 한국의 의장국 수행을 동의했다고 하더군요. 우리의 능력을 국제 사회가 인정한 셈이죠. 자부심을 느낍니다.”

김 사무관은 서울 G20 정상회의를 통해 코리아 브랜드가 널리 알려질 것으로 내다봤다. 근거는 구체적이고 뚜렷하다. “사람들에게 아는 국가를 말하라고 하면 꼭 나오는 곳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미국·일본처럼 말이에요.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됐다는 것은 이제 한국도 그런 국가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뜻 아니겠어요? 물론 당장은 아니겠지만 한국은 최고 브랜드로 발돋움할 겁니다.”

그는 이색 경력을 가지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다 행정고시를 봤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도전했단다. 마치 G20 준비위에서 일할 것을 예상한 듯한 파격행보. 그의 선견지명이 탁월하든지, 아니면 꿈은 언제나 이뤄지든지…. 답은 두 개 중 하나.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김영석(32) 사무관은 근무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업무는 G20 위원회 공식 회의 일정을 조율하는 것. 사공일 준비위원장을 비롯한 G20 준비위원 18명의 스케줄을 일일이 파악하고 조정해야 한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그날은 더 심했다. 스케줄 조율이 좀처럼 어려웠다. 그러던 중 부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다. “어머니가 위독하세요.” 김 사무관의 어머니는 그날 밤 유명을 달리했다.

“G20에 갈 것 같다고 말씀 드리니까 어머니께서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위원회 근무를 결정한 이유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더욱 혼신을 다합니다. 그래야 부끄럽지 않죠.”

G20 위원회 사람들은 요즘 주말이 따로 없다.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까지 200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김 사무관은 “가끔 녹초가 될 때도 있지만 범국가적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그는 위원회의 살림꾼으로 통한다. 후방 지원은 그의 전담 업무.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 등 범정부적 협력이 필요할 땐 어김없이 그가 나타난다. 일처리가 매끄럽지 않으면 윤활유 역할을 자처한다.

그래서 김 사무관은 긴장의 고삐를 풀지 못한다. 지원부서가 굼뜨면 위원회 살림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사진촬영이 예정된 날에도 그는 대외 업무를 처리하느라 5분밖에 시간을 내지 못했다. G20 위원회의 진짜 숨은 일꾼이다.

정효진(32) 전문관은 국제회의 기획 전문가다. 지금까지 30여 회 이상 국제회의에 참여했다. 외교통상부 전문관 시절엔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2008), 한·아프리카 포럼 장관회의(2008)도 손수 기획했다.

이런 경력을 인정받아 G20 준비위에 발탁됐다는 게 정 전문관의 설명. 그의 역할은 행사장 조성이다. G20 정상 등 각국 대표단의 동선을 꾸미는 업무도 한다. 행사장에서 표출되는 한국의 이미지가 그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에선 어떤 행사장을 만들고 싶을까. “딱딱하지 않고 실용적이었으면 해요. 한국의 대표 기술인 IT를 가미할 생각도 있죠. 예를 들면 풍속화를 3D로 구현하는 거랄까? 세계적 추세인 친환경과 녹색성장 관련 아이디어도 모으고 있어요.”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관광대학원에서 컨벤션경영학 석사를 받은 정 전문관에게 이번 G20 정상회의는 좋은 성장판이 될 듯하다. 그는 “이번 정상회의를 준비하면서 ‘경험하지 못한 게 정말 많구나’라고 생각했다”며 “G20 정상은 물론 지구촌에 한국 특유의 이미지를 남기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늘 쫓아가는 입장이었죠.” 강영수(41) 사무관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창설된 지 10년이 흐른 금융안정위원회(FSB)에서 진행되는 논의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누가 자료를 선뜻 내주길 하나. 의제를 만들려면 10년 전 자료까지 뒤적거려야 했죠.”

강 사무관은 한국이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된 것에 대해 누구보다 기쁘다고 했다. 한편으론 걱정도 된단다. 무거운 책임과 부담이 어깨를 누를 께 뻔하기 때문이다. “G20 관련 회의는 대충 논의하고 사인하지 않습니다. 치열하게 토론하는 장이죠. 의견충돌도 잦습니다. 어떤 회의는 저녁 7시에 시작해 새벽에서야 끝나기도 하죠.”

강 사무관의 업무는 G20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금융규제 개혁. 이 업무는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금융규제 개혁 분야는 세계 각국의 의견이 엇갈리기 일쑤다. 국익과 밀접하게 연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금융규제 개혁 분야를 논의할 땐 각국의 이해관계를 파악해 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헤지펀드·신용평가사 등을 규제하는 방안을 숙고한다. 효율적 금융규제책을 만들어 제2, 제3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게 그의 목표. 그러기 위해선 먼저 금융규제책이 일관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런던·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규제는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어디는 규제를 강화하고, 어디는 규제를 풀면 반칙입니다. 공정경쟁 원칙에도 위배되죠.”

효율적 의제를 설정하는 것만큼 공조의식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를테면 ‘동업자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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