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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념의 방송 시대가 열린다

새로운 개념의 방송 시대가 열린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명사로 불렸던 프리챌의 전제완 대표가 돌아왔다. ‘짱라이브’라는 신개념 방송 서비스를 들고서다. 성공과 좌절, 그리고 2년간의 구속과 5년간의 몸부림을 뒤로하고 새 길을 걷는 전제완 유아짱 대표를 만났다.

사내는 찰나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모든 것을 잃었다. 회사를 잃었고 그는 파산했다. 그리고 728일간 수인복을 입었다. 2002년 12월 14일 오전 7시였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집에서 긴급체포돼 그날 구속됐다.

죄명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 1심은 3년, 항소심은 2년을 선고했다. 그는 항소심 전날까지도 나갈 수 있다고 기대했다. 억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 격리됐다.

한때 포털 ‘빅3’로 불리던 프리챌을 설립한 전제완 대표.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선구자였다. 1999년 4월 설립된 프리챌은 2년 만에 회원 800만 명을 모았다.

하지만 수익 모델이 불확실한 가운데 진행된 막대한 투자로 회사는 자금난을 겪었다. 2002년 들어 프리챌은 유상증자와 소폭 흑자 전환으로 경영난이 해소되는 듯 보였다.

이때 전 대표는 회사 자금난을 해소하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안정적인 대주주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미 외국계 금융사와 저축은행 등에서 많은 돈을 끌어 쓴 상태였다. 그는 프리챌 매각을 위해 대형 통신회사와 접촉했다. 당시 큰 논란을 일으킨 ‘프리챌 유료화’도 선언했다.

파장은 엄청났다. 유료화 선언 후 110만 개의 프리챌 커뮤니티 중 2만 개만 남았다. 회원 수는 20만 명으로 줄었다. 그래도 ‘딜’은 원만히 진행됐다. 한 대기업과의 매각 협상은 다음 날 아침 사인만 하면 되는 단계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상황이 뒤틀렸다. 그가 긴급 구속된 것이다.

사채업자로부터 80억원을 빌려 주식대금을 가장 납입했다는 것과 그가 대주주인 프리챌홀딩스로부터 120억원을 빌려 지분 취득 등에 사용하는 등 100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였다. 나중에 재판부는 가장 납입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결했다. 하지만 업무상 배임죄를 물어 2년형을 선고했다.

그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던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구치소에 있는 사이 회사는 새롬기술에 매각됐다. 이 과정에서 믿었던 회사 임원은 그를 배신했다. 전 대표는 “당시 새롬에 정당한 가격으로 매각됐다면 내 부채가 모두 소멸해 프리챌 주주 이익이 보호되고 나 또한 실형을 살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2004년 11월 30일 출소 후에도 그는 자유인으로 살 수 없었다. 그는 엄청난 빚더미에 앉았다. 프리챌에 140억원의 부채가 있었다. 또한 새롬으로 매각된 프리챌홀딩스(나중에 호성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부도 나면서 100억원의 빚을 더 안게 됐다. 모든 지분을 매각했지만 서류상 연대 보증을 해제하지 못한 탓이었다.

연 이자가 20%씩 적용돼 매년 이자가 40억원씩 늘었다. 빈털터리가 된 그가 이 돈을 갚을 길은 없었다. 그는 결국 파산 면책을 신청했고 2008년 1월 면책 판정을 받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2008년 8월 세무서에서 통지서가 날아왔다. 1억6000만원의 세금이 체납돼 금융기관에 신용불량자로 통보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세금이 체납된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에게 영치금 통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복역 중 지인들이 보내준 것이었다. 그 돈 270만원은 추징됐다. 또한 영등포교도소 내에서 일을 하고(출력이라고 한다) 받은 급여 9만원도 압류된 상태였다.

이때 그는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6개월에 걸친 민원으로 이를 겨우 해결했다. 지난 5월 17일 그를 만난 것은 서울 양재동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한창 재기를 다지는 중이다. 7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옛이야기를 하며 몇 차례나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고 때론 책상을 내리쳤다. 하지만 새 사업 이야기를 할 때는 껄껄 웃었고 상기된 표정이었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출소하고 경제인 신분을 얻는 데 5년이 걸렸다. 아내와 이혼했고 아이들은 홍콩에 있는 지인에게 맡겨야 했다. 집안은 모두 파산했다. 몇몇 기업에 컨설팅해주고 자문료를 받아 살았다(그는 몸을 팔았다는 표현을 썼다). 몇 년 동안 혼자 조그만 오피스텔에서 기거했다.”



>> 힘든 시간이었겠다.“몇 번이나 죽고 싶었다. 나를 배신한 이들도 응징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불행히도 나를 배반하고 모반한 사람들이 모두 잘 안됐다. 한 명은 내가 학교(교도소)에 있을 때 위암으로 사망했고, 한 명은 자살했다. 또 한 명은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회복하고 지금은 일본에 산다고 들었다. 세상사가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요즈음은 새 사업만 생각한다.”



>> 새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2008년 면책을 받고 월세보증금 1000만원과 모 기업에서 자문료로 받은 1500만원으로 유아짱이라는 온라인 쇼핑몰 플랫폼 회사를 시작했다. 유명한 쇼핑호스트인 유난희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오는 6월에는 웹 기반의 네트워크 방송 플랫폼인 짱라이브가 공식 론칭한다.”

짱라이브(www.jjanglive.com)는 누구나 인터넷을 이용해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방송 서비스다. 개인 블로그나 카페에 짱라이브 방송플레이어를 갖다 붙이면 생방송 및 녹화방송이 가능하다. 실시간 개인 방송국이 무제한 생기는 것이다.



손쉬운 실시간 인터넷 방송 구현
짱라이브가 위력적인 것은 최초 방송자의 플레이어가 다른 블로그 또는 게시판에 복사돼도 최초 방송자가 변경하는 방송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실시간 중계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 연예인이 설치한 짱라이브를 10만 명의 팬이 복사해 각자 블로그에 개설해 놓으면 A 연예인이 실시간으로 올리는 방송이 10만 곳에 중계된다.

짱라이브는 웹캠 생방송, e-메일 방송, 음악 방송, 비밀번호를 부여해 특정 그룹에만 노출하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방송이 가능하다. 또한 게시판뿐 아니라 위젯(미니 응용프로그램) 형식으로도 설치가 가능해 국내에서 운영되는 거의 모든 블로그나 카페에 설치할 수 있다.

전 대표는 “다른 방송 서비스와 달리 사용자가 짱라이브 사이트를 방문하지 않고 블로그, 카페, 개인 홈페이지 등 원하는 곳에서 방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폰으로도 촬영이 가능하다. 전 대표는 직접 시범을 보였다. 그는 아이폰을 꺼내 특정 장면을 촬영하면서 해설을 곁들였다.

그리고 제목만 붙여 전송하자 그의 PC에 있는 짱라이브에서 방송이 송출됐다. 전 대표는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 등록을 마쳤다”고 말했다. 짱라이브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은 지난 19일 오전 미국 애플에 등록돼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 그는 “안드로이드폰 버전도 6월 말 내놓는다”고 밝혔다.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지난 5년 동안 구상한 것이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구상만 해오다가 유아짱을 설립하고 개발자들을 모아 개발에 전력했다. 개발자는 20명까지 늘었다. 6월에 드디어 1.0 버전이 공식 오픈한다. 지인들에게 5000만원, 1억원씩 빌려 15억원을 투입했다.”



>> 그동안 시범 서비스를 했는데 반응은 어떤가?“입소문을 타면서 3월에 짱라이브 플레이어 클릭 수가 2만 건에서 4월에는 40만 건을 넘었다. 내년이면 500억원 정도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돈은 어떻게 버나?“현재 대부분 방송이 자사 사이트로 사용자를 모아 트래픽에 따른 광고나 소액 유료 서비스로 수익을 내지만 짱라이브는 고객과 회사가 수익을 나눈다. 콘텐트를 만든 사람이 이익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다. 가령 좋은 방송을 하고 많은 곳에 네트워크로 연결된 네티즌은 방송 앞에 짤막한 광고를 붙이고 클릭당 얼마씩 광고회사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다. 그 밖에 많은 수익 모델을 개발해 놨다.”



>> 대형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어려운 기술인가?“짱라이브는 기존 온라인 방송에는 없는 새로운 개념이 열 가지가 넘는다. 기술적으로 따라오는 데 적어도 1년 정도는 걸릴 것이다. 그사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 6월 공식 출범을 앞두고 기분이 어떤가?“너무 힘든 날을 보냈다. 모든 것을 잃어 파산했고 명예가 실추됐다. 물론 경영자로서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 깊은 반성을 했다. 가족도 힘들게 했다. 난 다시 바닥에서 시작했다. 많은 사람을 잃었지만 나락에서 나를 구해 준 이도 많다. 내가 죽을까 봐 매일 아침 전화를 하는 친구, 나를 믿고 따라준 선·후배(현재 유아짱에는 전 프리챌 임원 4명이 일하고 있다)와 지인들에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인터뷰와 저녁 술자리에 동석했던 윤태중 전무는 “형(전제완 대표)을 보면서 이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며 “형이 재기하는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윤 전무는 전 대표를 따라 삼성물산을 나와 프리챌에 근무했고 유아짱 전무를 맡고 있다. 18년간 전제완 대표 곁에 있었다는 윤 전무는 술에 취한 전제완 대표의 등을 계속 보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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