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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딸 대 이어 쌀을 사랑하다

그 아버지에 그 딸 대 이어 쌀을 사랑하다

국립식량과학원의 첫 여성 수장인 전혜경(52) 원장. 몇 안 되는 여성 1급 공무원 중 한 명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그는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식량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온실로 지어진 농촌진흥청 내 벼 종합연구동은 25도가 넘는다. 30분 넘는 촬영 내내 덥다는 내색 한번 하지 않는 전혜경 원장에게서 프로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직원들에게 감사 e-메일이 온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생신에 쌀케이크를 받고 무척 기뻐하셨다는 메일부터 자신도 잊고 있었던 아내 생일을 챙겨줘서 고맙다는 직원의 사연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메일을 읽으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전혜경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그는 수원 본사를 비롯해 익산, 무안, 평창, 밀양 등 전국에 있는 372명 직원 생일을 모두 챙긴다. 1년 365일 매일 한 명꼴로 생일이 돌아오는 셈인데 대단한 열의다. 직원 가족 생일을 알려줘도 어김없이 쌀케이크와 축하카드를 보낸다. 그의 섬세한 배려 때문일까. 농진청 관계자들은 국립식량과학원이 밝고 활력 넘치는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직원들이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즐겁고 편안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문을 여는 전 원장.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국립식량과학원을 이끌고 있는 그는 농진청의 첫 여성 리더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그는 1984년 농촌영양개선연수원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농촌생활연구소 가정경영과장과 농산물가공이용과장을 거친 후 농진청 연구정책국장을 맡았다. 이후 한식세계화연구단장을 역임한 후 지난해 말 국립식량과학원의 수장이 됐다.농진청과의 인연은 특별하다.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의 전신인 농촌영양개선연수원의 초대 원장인 전승규 박사가 그의 아버지다.

전 박사는 1980년 초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난한 농민의 의식주 개선을 도왔다. 이화여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대학원에서 전공을 식품영양학으로 바꿨다. “단 한번도 아버지는 제게 식품 쪽을 공부하라고 얘기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러다 보니 식량의 중요성을 알겠더군요.”

그는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 등 선진국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쌀이라고 말한다. 자국민이 필요로 하는 식량을 100% 자급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 선박, 반도체 등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는 것. 현재 한국의 쌀 자급률은 94.4% 수준. 상당수가 식량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전체 곡물 자원을 포함하면 26%로 뚝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74%는 수입한다는 얘기다. 전 원장은 식량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식량 수급이 안 좋아질 수 있어서다. 세계 인구가 늘고 있는 데다 개도국의 육류 소비 증가로 사료용 곡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식량이 부족하면 사 오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쉽지 않다고 한다.

“쌀이 부족해 다른 나라에서 사려고 하면 잘 안 팔아요. 더 비싸게 팔기 위해서죠. 문제는 아예 식량을 수입하지 못하면 국가가 위기에 빠진다는 겁니다. 실제로 2008년 국제 곡물가격이 치솟았을 때 아이티에서는 식량 폭동으로 총리가 사임했고, 필리핀은 쌀값 폭등으로 정권이 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식량안보라는 말보다 ‘식량주권’이라고 말한다. “생명과 직결되는 먹을거리를 자급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 의존하게 됩니다. 다른 나라가 주면 먹고, 안 주면 못 먹는 거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주권이 식량입니다.”



다이어트 쌀 등 맞춤형 쌀 개발전 원장은 선배들이 마련해온 쌀 생산체계는 훌륭하다며 이제는 생산된 농작물을 안전한 식품으로 연결하는 시스템 완성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원장을 맡은 후 주력하는 연구 분야가 맞춤형 쌀이다. ‘쌀=밥’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쌀의 기능을 찾아 그 기능에 맞는 쌀로 가공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쌀로 만든 가공식품이다. 국립식량과학원은 이미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술맛 좋은 쌀 설갱벼다. 이 쌀은 2002년 국내 대표적인 벼 품종인 일품벼 돌연변이 처리과정에서 개발한 품종이다. 설갱벼가 균 배양과 발효 효율 면에서 술 빚기에 좋다는 것을 찾아낸 것.

쌀 내부에 미세한 구멍이 많아 누룩균이 잘 달라붙고, 번식도 왕성해 술맛이 더욱 좋아졌다. 2008년 이 쌀로 만든 술이 국순당 ‘백세주 담’이다. 이후 국순당은 설갱벼의 안정적인 공급과 품질 규격화를 위해 전국 190개 농가와 계약을 맺었다. 1500t 분량이다. 올해는 ‘햇반’으로 알려진 즉석밥을 위한 벼 품종이 상업화될 예정이다.

그동안 멸종 위기에 있다가 찾아낸 주안벼다. 이 쌀로 밥을 지으면 식혔다가 다시 데워도 갓 지은 밥 맛이 난다. 어린이 성장 발육에 필요한 필수아미노산이 함유된 쌀, 철분과 아연이 강화된 임산부용 쌀,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쌀 등 맞춤형 쌀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그는 미래 성장 사업도 준비 중이다.

세계적인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에 대비한 친환경 대체에너지 개발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곡물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억새를 이용한 바이오 에탄올 성과가 좋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거대 억새 1호를 개발했다. 다른 억새보다 50% 이상 더 수확할 수 있어 에너지 생산에 유용한 게 장점이다.

앞으로도 그는 쌀 속에 숨겨진 장점을 찾아내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쌀 품종마다 각기 다른 기능을 우리 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일이다. 특히 전 원장은 먹으면 약이 되는 건강한 밥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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