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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보다 재정과 구조조정

금리 인상보다 재정과 구조조정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 출구전략의 종착점일까? 금리 인상에 쏠린 과도한 관심, 그것도 지난 1년 내내 계속된 공방을 보면 그렇게 보인다.

이론상 금리 인상이 출구전략의 핵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6월 24일 선진정치경제포럼(위원장 나성린)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세계 경제위기 이후 출구전략의 방향’ 토론회는 이 점을 환기하는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는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이상우 한국은행 조사국장, 강호인 기획재정부 차관보, 김현욱 KDI(한국개발연구원) 거시경제연구부장,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이상우 한은 국장을 제외하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데 참석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에 과도한 관심이 쏠려 정작 중요한 재정 건전성 확보, 기업 구조조정, 지속성장을 위한 성장동력 전략, 금융 안전망 문제 등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토론회의 핵심 논제였다.

박원암 교수는 주제 발표를 통해 “기준금리 인상에 지나친 관심이 쏠려 있고 시장이 불안해하는 것은 정부가 중장기 재정목표, 구조조정, 새로운 금융제도 구축 등 구체적 계획을 내놓지 못하면서 신뢰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욱 KDI 부장은 “금리는 점진적으로 올리되 중장기적 성장잠재력과 관련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대내외 여건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구조조정을 상시로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상우 한은 국장은 토론자들의 금리 인상 요구와 관련해 “통화정책 방향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국내외 경제상황의 변화와 주요국의 정책 대응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그때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다만 그는 “빠른 경기 회복의 영향으로 수요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점증될 것으로 본다”며 여운을 남겼다. 다음은 토론자별 주요 발언 요지.

위기 대응 정책에 힘입어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자 우리나라도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논의해야 할 과제가 있다. 먼저 중기 재정균형 목표 달성의 신뢰다.

정부는 2009~ 2013년 재정 건전화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의문이 든다. 향후 복지지출 확대와 성장동력 창출 등 재정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세수는 줄어들 것으로 보여 몇 년 내 재정균형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나? 출구전략의 원칙은 물가안정을 기반으로 지속적이고 균형된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것인데, 재정정책은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잠재성장률이 둔화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재정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려 할 경우 물가안정 기반이 약화될 것이므로 출구전략이 일관성과 신뢰성을 잃게 된다. 출구전략과 관련된 구조조정 계획도 제시되지 않았다. 출구전략이 성공하려면 부실기업 구조조정뿐 아니라 경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시장과 공공부문의 구조조정도 적기에 시행해야 한다.

이런 계획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구조조정을 포함한 전반적 출구전략에 민간부문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언제 금리를 올릴 것인지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 정책공조 및 금융 안전망 논의가 지체되고 있다. 모든 게 불확실하다.

기준금리 인상에 쏠린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고 통화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용하려면 정부가 금리 인상을 제외한 나머지 출구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해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금리의 경우는 지난해 제로 성장에 이어 올해 5%대, 내년 4%대 성장이 예상되는 거시경제 여건 아래에서는 향후 물가상승 압력을 감안해 선제적으로 올릴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부동산 시장을 고려해 금리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자산가격 불안이 금리 인상 요인이 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거품 및 붕괴는 금리의 소폭 변동에 크게 좌우되지 않으며 금융 시스템 및 부동산정책과 더 밀접히 관련돼 있다. 통화정책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으려 하면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금리 인상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경제가 회복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배드 뉴스가 아니라 굿 뉴스다.

금리 인상을 포함한 향후 출구전략은 미리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 통화정책 방향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향후 경제의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국내외 경제상황 변화, 주요국의 정책 대응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그때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향후 통화정책 운용 여건과 관련해 성장 및 물가 상황을 보면, 국내 경기는 민간부문을 중심으로 견조한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향후 작지 않은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물가는 하반기 들어 오름세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그간 빠른 경기 회복세의 영향으로 수요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점증될 것으로 본다. 성장률과 물가 관계를 가늠하는 기준인 GDP 갭은 하반기부터 플러스로 돌아설 것으로 생각된다. 출구전략 방향에 대한 논의는 금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지속성장을 위한 해답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우선 거시 건전성 정책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또한 금융 시스템이 불안하면 통화정책의 파급 경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만큼 금융안정 없이 물가안정은 달성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금융위기 대응 능력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거시 건전성 정책 체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됐다.

각종 비상 지원대책 속에 부도업체 수는 줄어든 대신 이자보상비율 1 미만의 한계기업이 많이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에서 상당히 벗어난 만큼 앞으로 시장기능에 의한 상시적이고 자율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금융위기 극복이 궁극적으로 지속가능 성장을 지향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미래 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매우 긴요한 정책과제다.

금리 조정 시 영향을 알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금리를 올린다고 긴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반적인 효과 극대화를 위해 고민한다고 이해해 달라. 필요하면 단호하게 할 것이다.

출구전략보다는 ‘정책 정상화’가 더 적합한 용어다. 우리나라의 경우 넓은 의미의 정책 정상화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 경제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준금리의 점진적 변경이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금리정책 정상화 과정을 지금 서서히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금리정책 정상화는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 지금도 이르지 않다.

금리 2%는 위기 때 두려움에 떨었던 금리며 지극히 부양적인 수준이다. 전에 한은의 최저 금리는 3%였다. 지금부터라도 조절해 가야 한다. 속도는 천천히 갈 필요가 있다.

과거 4% 수준까지는 오르는 것이 적정하다고 본다. 그러려면 0.25%포인트씩 올려도 8번 올려야 한다. 정상 수준의 기준금리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가 불안이나 자산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 이에 사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상이 급하게 추진되면 경제에 불필요한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와 동시에 통화정책이 향후 대내외 여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금리정책은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유연성도 중요하다. 지금 금리를 올려도 상황에 따라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줘야 한다.

재정정책은 재정 건전성 조기 회복을 목표로 적극적인 세입·세출 구조조정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한편 중장기적 성장 잠재력과 관련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대내외 여건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구조조정을 상시로 실시해야 한다.

한은보다 기업이 금리 인상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 분명 지금은 비정상적인 상황인 것 같다. IMF가 제시한 출구전략의 전제조건은 금융 안전성 확보와 민간부문 자생력 회복이다.

출구전략을 시행하기 위한 금융 안전성 확보 조건은 거의 충족된 것으로 평가된다. 남유럽 재정위기와 북한 리스크 등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되고 있지만 금융 및 외환시장 지표들은 점차 안정세를 회복하고 있다.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이 하락 추세를 보이고 은행산업 건전성과 수익성이 개선되는 등 금융 시스템 안정도 대폭 개선됐다. 민간부문 자생력 회복 조건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박원암 교수 지적대로 위기 대응 정책이 과감하고 단호했던 만큼 위기 대응 정책의 부작용에도 과감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고 물가상승 압력이 증대하고 있어 실제 기준금리와 적정금리의 차이가 커지면서 저금리 문제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저금리 장기화로 부실기업 정리와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 될 경우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 선제로 금리를 정상화해 자금이 생산적 투자처를 찾아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금리 인상은 가계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민간 소비 회복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가계 부채 건전성이 높아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을 단계적으로 시행하되 이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금리 인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해외자본 유입과 원화가치 상승, 이에 따른 수출 둔화를 방지하기 위한 적정 외환보유액 유지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가계 부채 부담 증가, 소비 둔화, 기업 매출 및 투자 감소, 은행 부실 등 금리 인상에 따른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와 함께 재정 건전성 개선을 위한 출구전략도 추진해야 한다. 친서민 정책도 중요하지만 감세, 작은 정부 등 MB 정부 초기의 정책 기조로 전화하는 것이 국가 성장동력 확충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요즘 거시정책 유효성에 회의를 많이 느낀다. 경기 주기는 짧아지고 진폭이 커지면서 정책 수단의 속도와 대응 폭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 정책이 신뢰를 잃기 쉽다.

금리정책은 평균 집단을 대상으로 펼치는 정책이다. 그런데 중산층이 갈수록 엷어진다. 정책 효과를 체감하는 층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거시정책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도와 사람 심리 같은 미시정책에 관심을 갖고 수단을 개발해야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모두 금리에만 관심 있지만 재정 투입과 금리 조정을 하지 않고도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진입 규제, 공정 경쟁 등 많은 여지가 있다. 재정 건전성은 중장기적으로 지켜 나가야 한다. 경제주권 중 지킬 수 있는 것은 재정 주권밖에 없다. 안정적이고 일정한 수준으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금리는 물가 수준뿐 아니라 고용과 성장, 자산시장 등 모든 것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경기지표만 갖고 관리해서는 안 된다. 지표가 좋아져도 서민과 중소기업에 연결되지 않는다. 서민 체감경기 확보가 문제다. 정치적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건설과 중소 선박회사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데, 출구로 서둘러 나가면 과도한 주름살이 낄 수 있다.

그렇다면 출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출구전략의 대상과 방향을 잘 찾아야 한다. 녹색성장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고용을 흡수할 수 있는 산업을 키워야 한다. 질 좋은 일자리 기회가 많은 서비스업을 육성해야 한다. 특히 지식서비스업이나 사회서비스업 등에서 성장동력을 찾고 기업가정신을 부추겨야 한다.

한마디로 출구전략은 서민 체감경기와 구조조정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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