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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김연아는 ‘ 나 홀로 회사’ 왜 차렸나

박지성·김연아는 ‘ 나 홀로 회사’ 왜 차렸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자 세계적인 스타 경연장이다. 기존 스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새로운 스타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들을 관리하고 홍보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도 덩달아 바쁘다. 특급 스타는 대부분 세계적인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스포츠 스타는 조금 다르다. 대부분 직접 매니지먼트 회사를 세워 나 홀로 뛴다. 왜 그럴까?

“여기는 미국이다. 스포츠에 살고 스포츠에 죽는 나라지. 인디애나의 올해 13살인 클락 호, 국내 최고의 포인트 가드다. 지난주에 100점을 뽑았다. 한 경기에서. 올림픽 유망주 에리카, 시애틀의 댈러스, 그녀 덕분에 여자들이 덩달아 권투를 시작했다(중략). 난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다. 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니까. 난 스포츠 에이전트다.”

스포츠 에이전트의 꿈과 사랑을 다룬 영화 <제리 맥과이어> 의 주인공인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 분)의 독백이다. 그는 뛰어난 능력과 매력적인 외모까지 겸비해 모든 여성이 꿈꾸는 남자로 출세가도를 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관리하는 유명 선수는 물론 자신에게조차 위선적이었다고 깨닫는다.

그래서 돈만 밝히기보다 소수 정예의 고객에게 진실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회사에 제출하지만 곧바로 해고당한다. 제리는 자신과 함께 일할 동료를 찾지만 모두 냉담할 따름이다. 그가 담당하던 많은 톱스타는 빈털터리가 된 그에게 전속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를 따라온 선수는 단 한 명. 무명의 풋볼 선수 로드뿐이었다.

그때부터 험난한 원맨쇼가 시작되고 “Show me the money(돈 벌게 해주세요)”라는 대사처럼 무명 선수와 대성공을 거둔다.

선수, 경기 단체 그리고 팀을 대신해 스포츠 마케팅을 담당하는 개인이나 기업이 있다. 개인은 에이전트(agent), 기업은 에이전시(agency)라고 부른다. 스포츠 에이전시나 에이전트는 기본적으로 선수의 스폰서와 광고주를 구하고 캐릭터나 로고 등으로 라이선스 사업을 펼치며 선수를 대신해 연봉이나 입단·이적 협상을 벌인다.

그러나 큰돈을 벌려면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무엇보다 돈이 되는 스타 자체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 에이전시들은 대개 스타 매니지먼트뿐 아니라 이벤트·엔터테인먼트·컨설팅 사업, TV 프로그램 제작·판매, 중계권 협상,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에도 손을 대고 있다.

그만큼 돈과 조직, 그리고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선수의 실력과 상품성이 뛰어나야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할 수 있지만 이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스포츠 마케팅 회사의 뒷받침도 중요한 성공 요소다. 해외 스포츠 스타는 대형 에이전시 품에 해외의 세계적인 선수들은 대부분 IMG, 덴쓰, 스포트파이브 등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회사가 미국의 IMG. 여기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비롯해 최경주, 앤서니 김, 세르히오 가르시아, 미셸 위, 폴라 크리머 등 골프 스타만 100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마리야 샤라포바도 이 회사 소속이다.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의 사위이자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공격수인 아게로도 IMG 소속이다.

김연아는 2007년 6월 소속사를 IMG에서 IB스포츠로 옮겼다. 마크 매코맥이 1960년 세운 이 회사는 테오도르 포츠먼이 2004년에 인수하기 전까지 골프 쪽에 역점을 뒀다. 그러다 2003년 5월 매코맥이 72세에 심장마비로 죽은 이듬해 9월 포츠먼이 7억5000만 달러에 사들이면서 활동 무대를 넓혔다.

IMG 본부는 뉴욕과 클리블랜드에 있으며 30개국에 60개가 넘는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포츠먼은 얼마 전 영국 BBC월드의 인터뷰 프로그램인 ‘하드토크’에 출연해 “IMG의 현재 가치는 2004년 구입 가격의 4배인 30억 달러”라고 말했다. 에이전트 제도가 완전히 정착돼 있는 메이저리그나 유럽 축구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연봉의 5% 정도를 수수료로 매긴다.

광고 계약 등은 20%가 에이전트 몫으로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에이전시는 구멍가게 수준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이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에서는 기성용, 정대세, 추성훈, 박인비 등 20여 명이 소속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IB스포츠 정도를 빼고는 군소 업체가 난립한 상황이다.

IB스포츠보다 역사가 오래된 곳도 있지만 전문 분야가 선수나 이벤트 등에 한정돼 있어 영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와 달리 500억원 안팎의 매출로 세계 매니지먼트 업계 10위권인 IB스포츠는 미디어·협회·방송 등 종합 스포츠 마케팅을 펼치고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런데도 지난 4월 말 김연아와 계약기간이 끝나자 주가가 급락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윤석환 IB스포츠 부사장은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이 블루오션이긴 하지만 국내 관련 기업은 걸음마 수준”이라며 “연예 매니지먼트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정희윤 스포츠산업연구소 소장은 국내 에이전시의 영세성이 제도적인 허점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국내 4대 프로 스포츠인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가운데 에이전트 자격증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축구뿐이다.

정 소장은 “스포츠 구단이 여전히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에이전트 제도가 활성화하면 선수의 몸값이 뛸 게 뻔하기 때문에 에이전트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흑자 구단이 많이 나와야 선수에게 돈을 더 많이 줄 수 있고 그래야 관련 산업도 커진다”고 덧붙였다.

나 홀로 매니지먼트 회사 봇물 국내에서는 대형 스포츠 스타가 직접 매니지먼트 회사를 세우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김연아 선수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지안은 4월 26일 “김연아의 어머니인 박미희씨가 대표이사 겸 주주이고 김연아 본인도 주주로 참여하는 신설 법인 ‘올댓스포츠’를 4월 20일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자본금 1억원의 올댓스포츠는 서울 삼성동에 사무실을 마련해 IB스포츠와 계약이 만료된 직후인 5월 1일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법무법인 지안은 올댓스포츠가 김연아의 활동과 관련한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한편 김연아가 출연하는 아이스쇼 개최와 스포츠 꿈나무 육성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JS리미티드’를 세워 독립을 선언했다. 박지성은 2006년 소속사인 FS코퍼레이션과 결별하고 아버지 박성종씨 주도로 ‘박지성 주식회사’인 JS리미티드를 세웠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중간계투 투수로 뛰고 있는 박찬호는 ‘팀61’을 만들었다.

회사 이름은 자신의 등번호 61에서 따왔다. 자신의 브랜드를 이용한 마케팅으로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다. 또 야구 꿈나무를 위한 장학금 전달이나 박찬호 어린이야구 대회 등의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피트니스 Park 61’도 만들어 건강 관련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PGA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프로골퍼 양용은도 ‘YE스포츠 드림&퓨처’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양용은은 자신의 이니셜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 그는 다양한 수익사업을 벌여 어려운 환경에서 노력하는 골프 꿈나무를 돕고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탠다는 계획이다. 선수 매니지먼트와 후원뿐 아니라 골프용품 사업과 골프 아카데미 운영 등의 사업도 진행한다. 대형 스포츠 스타들 왜 독립하나? 매출에서 적어도 15%는 비용으로 쓰게 마련이라 돈 때문이라면 매니지먼트 회사 소속인 게 유리할 텐데 이들이 독립선언을 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스케줄 관리나 계약 때 자신의 의견을 100% 반영시킬 수 있다. 김연아의 어머니인 박미희 올댓스포츠 대표는 “IB스포츠는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어 김연아의 요구를 반영한 선수 관리에 한계가 있었다”며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김연아를 직접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형 스포츠 스타의 독립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김종 교수는 “김연아의 독립은 개인의 자산관리 차원일 뿐 비즈니스 파이를 키우긴 어려울 것”이라며 “김연아가 박지성이나 박찬호 등과 달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라 소속사도 세계적으로 클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판 IMG’ 키우려면… 전문가들은 업력, 사회적 인프라, 소득수준, 스타 등 네 박자가 맞아야 스포츠 매니지먼트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윤석환 부사장은 “박찬호·박세리 이후 체육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나 산업으로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며 “30년 된 프로야구가 스포츠 매니지먼트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내다봤다.

결국 돈이 문제란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한국 영화산업이 중흥기를 맞은 건 스크린 수가 늘고 좋은 시나리오도 많이 나왔지만 펀딩이 잘됐기 때문이란 분석에서다. 김종 교수는 “영화나 벤처기업처럼 성공 확률이 낮지만 스포츠 매니지먼트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이 늘어 돈이 많이 들어와야 영세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의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는 것도 방법이며, 에이전시는 해외 스타도 적극 영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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