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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이 ‘잠자던’ 벤처 깨우다

첨단산업이 ‘잠자던’ 벤처 깨우다

외식정보 포털사이트 메뉴판닷컴은 6월 16일 아이폰에서 쿠폰을 내려받을 수 있는 ‘아이쿠폰’을 앱스토어에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료 애플리케이션(앱) 아이쿠폰은 등록 12시간 만에 한국 앱스토어 다운로드 1위(3만5000건)를 차지했고 일주일 만에 누적 20만 건을 돌파했다.

메뉴판닷컴 이원우 대표는 “출시 후 다운로드 수량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예상치를 10배 정도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하루 만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알고서 다운로드를 받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메뉴판닷컴 관계자는 “매주 월요일 신규 쿠폰을 올리는데 관심이 꾸준해 현재 다운로드 30만 건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국내 아이폰 가입자는 6월 말 현재 80여만 명이다.

회사 측은 아이폰 가입자의 70%가량이 아이쿠폰을 다운로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이쿠폰은 메뉴판닷컴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던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바로 휴대성과 현장성이다. 기존에는 모든 정보를 PC에서 봐야 하고 쿠폰의 경우는 프린트를 해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갑자기 친구를 만나거나 장소가 바뀌면 쿠폰은 무용지물이 됐다. 하지만 아이폰 사용자는 지도 검색을 통해 원하는 지역에서 사용 가능한 쿠폰을 간편하게 검색할 수 있다. 또한 위치기반 서비스를 통해 유저가 있는 위치 기준으로 반경 1㎞ 내의 쿠폰을 검색하고 정보를 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이 평범한 벤처기업의 ‘팔색조 같은 변신’을 유인했다는 얘기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아이폰용 앱 개발 작업에 착수해 올 5월 초안을 마련해 6월에 등록했다”며 “철저히 수익모델을 염두에 두고 기획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향후 맛집뿐 아니라 호텔·미용실·편의점 쿠폰 등 새로운 버전을 추가할 예정”이라며 “아이쿠폰 성과를 보고 향후 안드로이드폰용 쿠폰 개발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손 안의 PC’ 스마트폰과 3D 등 첨단산업이 ‘잠자던’ 벤처를 깨운다. 관련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은 고속성장을 거듭하거나 변신에 성공한다. 이 기술력을 무기로 전장(戰場)에 다시 선 CEO도 있다. 홍익세상 노상범 대표는 그중 한 명이다. 노상범 대표는 1997년 벤처 열풍을 이끈 ‘벤처 1세대’다.

웹 에이전시 개념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주인공이다. 1997년 자신이 창업한 홍익인터넷을 단 4년 만에 국내 웹 컨설팅 업계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경영능력은 벤처 1세대 중 최고로 손꼽힌다. 하지만 2003년 불의의 부도를 맞은 뒤 업계에서 종적을 감췄다. 필리핀에서 세월을 보냈고, 카지노 사업도 했다. 포커 룸을 임대하는 단순한 사업이었다.

자포자기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추락은 실제로 쉽다. 어려운 것은 다시 날아오르는 거다. 그는 “이 말을 실감했다”고 했다. “재기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매달려도 늘 부족했던 인터넷이 지긋지긋했을 정도다. 벤처 붐을 이끌었던 그의 투철한 기업가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던 2009년 6월 노 대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스마트폰·트위터가 그와 신세계를 이어준 창(窓)이었다. 그는 이전과 다른 세상에 흠뻑 빠졌다. 덩달아 다시 코트에 서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잃어버린 기업가정신을 스마트폰과 트위터가 되살려낸 셈이다.

▎벤처기업의 새로운 산실 가산디지털단지.

▎벤처기업의 새로운 산실 가산디지털단지.



트위터가 기업가정신 되살려올 2월 그는 안드로이드폰 교육·컨설팅 업체 홍익세상을 창업했다. 7년여 만의 벤처업계 복귀다. ‘하이안드로이드’라는 기업 트위터도 열었다. 팔로워(follower)는 현재 수천 명에 이른다. 외형은 교육업체지만 진짜 목표는 따로 있다. 노 대표는 현재 앱 통합 플랫폼을 제작하고 있다. PC 관련 기초 지식만 있으면 누구든 앱을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포털 사이트에선 누구나 쉽게 카페를 만들 수 있다.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다. 카페 개설 플랫폼을 따라 하면 그만이다. 쉽고 빠르다. 앱에 이런 카페 플랫폼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개발은 거의 끝났다.

올 6월 말 시제품이 나온다. 제품이 출시되면 미국·일본 등 해외 시장부터 공략할 방침이다. 노 대표는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스마트폰과 트위터로 다시 생긴 도전정신을 제대로 발휘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1999년 프리챌로 가입자 800만 명을 확보하며 ‘인터넷 커뮤니티의 선구자’로 불렸던 유아짱 전제완 대표도 비슷한 사례다.

그가 들고 나온 카드는 ‘짱라이브’라는 유무선 방송 플랫폼이다. 구상에 5년, 개발만 2년이 걸린 야심작이다. 시범 서비스는 성공적이다. 전제완 대표는 “정식 버전이 오픈되기 전이지만 짱라이브 클릭 수가 월 40만 건이 넘는다”며 “7월 5일 개편된 짱라이브가 공식 출시되면 연내에 10배 정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짱라이브는 누구나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방송 서비스다. 개인 블로그나 카페에 짱라이브 방송플레이어를 갖다 붙이면 생방송 및 녹화방송이 가능하다. 또한 웹캠 생방송, e-메일 방송, 음악방송, 비밀번호를 부여해 특정 그룹에만 노출하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방송도 가능하다.

게시판뿐 아니라 위젯(미니 응용프로그램) 형식으로도 설치가 가능해 국내에서 운영되는 모든 블로그나 카페에 설치할 수 있다. 짱라이브는 스마트폰과도 연동한다.

전 대표는 “아이폰용 짱라이브 앱을 지난 5월 등록했고 안드로이드폰용 버전은 6월에 등록을 마쳐 누구나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짱라이브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을 한곳에 정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상을 자유롭게 편성해 방송하고 광고도 유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벤처 업계 돈 돌지만다시 벤처업계로 돌아온 전 대표는 “최근 벤처 열기는 스마트폰이 촉발한 개방화 추세와 컨버전스에 따른 사업 고도화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한 앱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반면 유무선이 통합되는 컨버전스 사업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두 가지 시장이 병존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벤처 1세대 CEO들이 스마트폰 관련 비즈니스를 들고 복귀하는 현상도 이런 차원에서 풀이할 수 있다. 전 대표는 “벤처캐피털의 신규 투자가 늘기 시작했고 지지부진했던 기존 벤처들도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벤처 붐 때처럼 무작정 몰리는 것이 아니라 내실있는 벤처 사업가들이 확실한 시장 가능성을 보고 들어오기 때문에 성과는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승산이 없던 국내 벤처의 글로벌 시장 도전도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시장이 열리면서 일부 기업은 빠른 속도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와 다른 시각도 있다. 벤처업계에 돈이 몰리는 것은 맞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은 여전히 자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주장이다. 3D 애니메이션 기업 모션팝 김병준 대표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김병준 대표는 국내 최초의 남북 합작 3D 애니메이션 ‘게으른 고양이 딩가’를 만든 주인공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딩가’와 ‘푸코’는 익살스러운 얼굴 표정으로 인기를 모았다. 캐릭터 딩가는 대한민국 영상만화대상(2001), 캐릭터 대상(2002)을 연이어 받았다. 유력 3D 애니메이션 제작자 겸 카투니스트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지난해 9월 모션팝을 창업해 벤처업계에 뛰어들었다. 핵심 사업은 3D 애니메이션과 증강현실이다.

실적은 괜찮다. 모바일 게임업체 KTH 파란에 게임 인트로 3D 영상을 납품했다. 모 회사가 스마트폰에 제공하는 증강현실 그래픽 작업도 담당했다. 최근엔 만화 『열혈강호』를 편집·각색해 게임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 열풍이 불면서 증강현실과 3D게임 영상 관련 문의가 많아졌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런 그도 불만이 있다. “여전히 신규 투자의 벽이 높고 가파르다”며 한탄했다. “3D 애니메이션과 증강현실과 관련한 남다른 기술력을 갖춘 데다 주요 상도 받았는데 왜 자금 지원에 인색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규모가 큰 기업과 달리 작은 기업이 투자를 받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는 발전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발굴하기보단 기존에 있던 수익성 모델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밤새워 만든 기획안을 가져가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니까요. 한편에선 벤처 환경이 좋아졌다지만 작은 기업은 전혀 실감하지 못합니다.”

익명을 원한 벤처 1세대 한 CEO는 “한두 명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적은 돈으로 도전할 수 있는 시장이 열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년간의 학습 효과가 있었고 국내 대기업이 아이폰에 당하면서 벤처기업과 결속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요즘처럼 국내 소프트웨어나 콘텐트 업체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언제 또 있었습니까? 신규 투자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CEO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작은 기업일수록 투철한 기업가정신과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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