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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의 왕국 에코르네스를 가다

가구의 왕국 에코르네스를 가다

▎노르웨이 시카반에 있는 에코르네스 공장.

▎노르웨이 시카반에 있는 에코르네스 공장.

스칸디나비아 최대의 가구 전문 업체 ‘에코르네스’는 안락의자 ‘스트레스리스’를 하루 평균 1300개 만든다. 국내에는 한 가지 의자를 만드는 데 전 공정이 맞춰진 가구 공장이 없다. 지난 5월 10일 에코르네스 시카반 공장에서 만난 R&D 디렉터 아베 에코르네스는 “단순화가 에코르네스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시카반은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한참 떨어진 작은 도시다. 오슬로에서 서북쪽을 향해 50여 분을 비행기로 이동하면 올레순이라는 지역이 나온다. 여기서 다시 요트를 타고 빙하가 녹아 흐르는 피오르 협곡을 지나 50여 분을 더 가면 시카반이 나온다. 1934년 창업주 옌스 에코르네스는 독일제 기계를 들여와 3명의 직원을 데리고 이곳에서 가구 생산을 시작했다.

이 지역을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베는 “창업주가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고자 시카반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베의 아버지는 창업주의 조카다. 자식이 없었던 창업주는 형제들에게 사업을 물려줬다. 현재 시카반 주민 6000명 중 1000명이 에코르네스 공장에서 일한다.

부부 또는 아버지와 아들, 딸이 함께 일하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경영진에 직원들은 함께 일하는 ‘파트너’다. 전문경영인인 올빈 톨렌 사장은 “직원들이 가능한 한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애쓴다”고 말했다. 예컨대 직원 식당에서는 호텔 주방장 출신의 요리사가 매일 신선한 해산물 요리와 빵을 내놓는다.

기자가 찾아간 5월 10일에는 자녀와 함께 식사를 하는 직원도 눈에 띄었다. 에코르네스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4만 유로(약 6000만원)다.



직원 평균 연봉은 6000만원 정도에코르네스 공장 직원 중엔 80세가 넘은 사람도 있다. 정년은 65세지만, 정년을 넘겨도 본인 뜻에 따라 더 일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공장에서는 배가 나오고 앞이마가 벗겨진 할아버지부터, 몸이 가벼워 보이는 벽안의 젊은 직원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에 집중했다. 하루에 같은 일을 1300번 하는 셈이다. 공장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하루 목표치, 생산한 양, 남은 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빈 톨렌 사장은 “수치를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인식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시카반 공장 말고도 에코르네스는 스트란다 지역을 비롯한 노르웨이에만 총 6개의 공장을 운영한다. 소파에 들어가는 원목을 자르고 가죽에 색을 입히는 작업은 로봇이 한다. 직원들은 완성된 의자를 조합하고 마무리하는 작업을 맡는다.

에코르네스는 1948년 개발한 스윙침대가 히트하면서 북유럽의 가구 회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1963년에는 본격적으로 소파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1971년부터 등받이가 뒤로 넘어가는 안락의자인 스트레스리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동차 시트가 뒤로 넘어가는 것에서 착안했다.

1960~70년대 유럽 각 가정에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이 스트레스리스 의자 생산에 동기를 부여했다. 스트레스를 없애준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스트레스리스(Streeless)’로 지었다. 시장 반응이 좋자 에코르네스는 스트레스리스 의자의 종류를 크게 늘렸다. 스웨덴과 잉글랜드의 식탁회사 등 여러 회사를 사들이고 사업을 과다하게 확장했다.

이것이 무리가 됐다. 아베는 “제품 수가 너무 많아 생산, 마케팅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너무 복잡했다”고 말했다. 결국 1990년대 초 회사는 파산 위기에 처했다. 총괄 관리자로 일하던 아베의 아버지는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에코르네스는 덴마크 출신의 전문경영인을 채용했지만, 상태는 악화됐다.

결국 아베의 아버지가 제품 개발 관리자로 돌아왔다. 그는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사업의 단순화’에서 찾았다. 가장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스트레스리스 의자 몇 가지를 골라 수익 모델을 찾자는 것이었다. 그는 제품 수를 줄이고, 제작 공정을 표준화했다. 마케팅 투자도 늘렸다. 1993년부터 다시 수익이 났다.

▎에코르네스 시카반 공장 식당에서 쉬고 있는 직원들(오른쪽). 창업주의 손자뻘인 아베 에코르네스 R&D 디렉터.

▎에코르네스 시카반 공장 식당에서 쉬고 있는 직원들(오른쪽). 창업주의 손자뻘인 아베 에코르네스 R&D 디렉터.

아베는 지난 26년 동안 에코르네스에서 일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삼촌들이 경영에 관해 토론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고, 아버지와는 수시로 회사 이야기를 했다”며 “자연스레 에코르네스의 기본부터 배우게 됐다”고 전했다. 아베에게는 남자 형제가 3명 있다. 다들 에코르네스에서 일하고 싶어 했지만, 상황이 맞지 않았다.

공부를 하고 이들이 돌아왔을 때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다. 지금 형제들은 가구 유통,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한다. 에코르네스의 소유와 경영은 철저히 분리돼 있다. 1995년 에코르네스가 노르웨이에 상장됐고, 현재 창업주 가족 지분은 10% 내외다. 창업주 가족은 상장으로 자금을 모아 회사를 살리고자 했다. 아베는 “이제 창업주 가족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설명했다.

오너로서 CEO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까. 아베는 “지금 최고의 CEO를 찾았다”고 했다. “상장을 하고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한 덕에 회사가 좀 더 프로다운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창업주 가족이 경영을 계속 맡았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임원 중 한 사람으로 아베는 지금까지 스트레스리스 의자의 기능 개선을 이끌었다. 그가 에코르네스에 대해 갖는 열정은 대단하다. 그는 스트레스리스 의자에 기대어, 또 일어나 의자의 각 부분을 만지면서 제품의 특징을 직접 설명했다. 그가 추구한 가치는 ‘편안함’이었다. 아베는 “사람들은 언제나 편안한 것을 찾는다”며 “그런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하고자 여러 기능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인기 높은 안락의자 ‘스트레스리스’예컨대 리클라이닝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이 적용된 스트레스리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스프링이 허리 곡선을 따라 앞으로 받쳐준다. 눕게 되면 자동적으로 스프링이 뒤로 젖혀져 허리를 감싼다. 손을 대지 않고 몸의 중심 이동만으로 눕거나 앉을 수 있다. 리클라이닝은 오랜 시간 가구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터득한 에코르네스만의 독창적 기술이다.

직원들과 함께 에코르네스는 성장했다. 2009년에는 488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노르웨이 시장 매출은 15%다. 2009년 기준으로 전체 수출의 57%는 덴마크·스웨덴·핀란드를 포함한 유럽, 17%는 미국과 캐나다가 각각 차지했다. 아시아 수출 비중은 6.6% 정도로 아직 작다. 그중에서 일본이 4%로 가장 높다.

유럽에서 스트레스리스 의자의 인지도는 높다. 노르웨이의 왕세자비인 메트 마리(Mette Marit)도 스트레스리스를 쓴다. 2000년대 들어 에코르네스는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02년 아시아에서는 제일 먼저 에코르네스 일본을 설립했다. 2005년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에코르네스 아시아를 설립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 한국, 호주 등에 에코르네스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을 관리하고 있다. 올빈 톨렌 사장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과 인도 시장에 진출해 미래를 준비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1999년 에이스침대가 에코르네스와 스트레스리스 의자의 국내 독점판매 계약을 체결한 후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소비자에게 시판했다. 한국에서 스트레스리스 1인용 의자의 가격은 200만원대고, 소파는 1000만원을 넘어선다. 전국 백화점 내 에이스침대 매장을 비롯해 70여 개 매장이 있다.

2009년 스트레스리스 의자의 국내 매출은 70억원 정도다. 최근에는 대기업 회장들이 홈시어터를 만들기에 적합한 소파를 구입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스트레스리스를 쓴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스트레스리스의 인기가 높다. 사무실 한쪽에 두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다.

스트레스리스 의자는 얼마 전 기네스북에 도전했다. 에코르네스 직원들이 시카반 공장 옆에 있는 긴 다리에 스트레스리스를 일렬로 놓아 기록을 세웠다. 이를 기념해 직원들은 단체 티셔츠까지 맞춰 입었다. 이 행사에 쓴 의자는 전 세계에 판매됐다. 창업주와 지역 주민의 즐거움, 열정도 함께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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