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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마트는 ‘올인’마트

할인마트는 ‘올인’마트

▎이마트 용산점을 찾은 고객들이 일주일간 시세보다 50%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봄 햇배추를 고르고 있다.

▎이마트 용산점을 찾은 고객들이 일주일간 시세보다 50%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봄 햇배추를 고르고 있다.

목요일은 대형 할인마트에 결전의 날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부분의 대형마트는 매주 목요일을 기준으로 가격을 조정한다.

보통 대형마트 이벤트는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새로 시작하고 전단지도 목요일에 한꺼번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목요일 아침이면 조사원들은 휴대전화로 조사 대상 제품 리스트를 받는다.

조사원이 웹에 가격 정보를 입력하면 경쟁사의 가격 동정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매주 있어 왔던 일이지만 올해 1월 7일은 다른 목요일과 달랐다.

대형마트 1위 사업자인 이마트가 ‘365일 좋은 품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상시할인 정책을 선언한 것이다. 현재 할인마트 매장 매출액은 이마트가 지난해 기준 11조5000억원으로 업계 1위다. 이어 홈플러스가 9조8700억원 규모, 롯데마트는 절반 수준인 4조9000억원대다.



이마트가 먼저 치고 나와가격인하 경쟁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저렴한 가격은 대형마트의 기본이다. 하지만 올 초 이마트의 가격인하 선언은 경쟁사를 놀라게 했다. 이마트의 가격인하 정책은 기존 대형마트 가격정책과 영업구조를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형마트의 가격할인 행사는 주기적으로 기획상품을 만들어 가격을 잠깐 내렸다가 다시 원상태로 환원하는 것이었다.

행사에서는 조금 손해 보더라도 행사 이후 가격을 환원해 이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마트가 최단 1개월, 최장 1년까지 지속적으로 인하한 가격에 제품을 판매한다고 나선 것이다. 이마트는 발표 후 당장 삼겹살을 비롯한 12개 생필품 가격부터 인하했다. 곧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경쟁업체가 “이마트보다 더 싸게”를 외치며 대응했다.

삼겹살이 100g에 570원까지 내려갈 때까지 ‘10원 전쟁’은 계속됐다. 마트만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은 아니다. CJ제일제당의 햇반과 해태 고향만두 등 제조사가 할인품목 생산을 중단하는 등 저항이 있었다. 삼겹살을 원가보다 낮게 파는 비정상적 가격구조로 관련 축산농가 또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급기야 지난달 24일 목요일에는 경쟁자를 겨냥한 광고까지 실렸다. 이마트는 이날 조간신문에 30개 주요 생필품 장을 봤을 때 ‘이마트는 18만9440원, A사는 21만2620원, B사는 21만1990원’이라고 광고했다. 바로 다음날 롯데마트는 반박 광고를 냈다. “겨우 30개 품목, 생색내기 가격혁명보다 롯데마트 상품혁명을 기대하십시오!”

홈플러스는 직접 가격을 조사해 지난달 27일 “최근 전국 125개 이마트 점포에서 직접 가격을 조사한 결과 이마트의 24일자 신문광고 상품 일부는 광고보다 최대 28.4%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등 광고 내용 일부가 허위였다”고 밝혔다.

이마트 측은 이에 대해 “홈플러스가 증거로 제시한 오뚜기 딸기잼은 조사가 7회 진행됐을 때 오뚜기에서 제품 가격 자체를 인상했던 것으로 나머지 3회 조사에는 오른 가격이 반영됐다”며 “허위 광고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일축했다. 이마트가 올 초 가격혁명 전략을 내세운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전략을 주도한 장중호 이마트 마케팅담당 상무는 당시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연간 1000억원 정도 영업이익 감소도 각오하겠다”고 말했다. 이마트가 1위 사업자임에도 ‘상황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묻어났다. 장 상무는 이렇게 말했다.

“5년, 10년 뒤에도 소비자들이 이마트를 찾을까, 그때도 여전히 1등일까를 생각해 보면 장담할 수 없다. 고객에겐 온라인, TV 홈쇼핑, 동네 수퍼 등 대안이 많다. 핵심은 고객과 우리의 문제지 업체 간 문제가 아니다.”그의 말처럼 현재 대형마트 시장은 1위 사업자도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지식경제부와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2010 유통산업 전망 세미나’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김성영 이마트 기획담당 상무는 “올해 대형마트 업계는 신규 출점 제한과 세계적 불경기 등으로 실질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내다봤다.

“내년에도 정부 규제 등으로 신규 출점에 제동이 걸리고 소비시장 환경도 낙관하기 어려워 다른 업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트 간 출점 경쟁은 2005년 26개, 2007년 29개, 2008년 28개 등으로 계속 증가 추세였으나 2009년에는 15개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이마트의 상시 가격인하 선언 이후 6개월, 소비자 반응은 긍정적이다. 지난 6월까지 이마트의 누적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전점(全店) 기준 10.1% 늘었다. 전체 방문 고객 수도 9.1% 증가했다. 그러나 이마트가 이 정도에 안심하긴 이르다. 대형마트 간 속사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가격 협상력을 결정짓는 규모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의 GS리테일 대형 할인마트 사업부문 인수를 최종 승인했다. 2009년 말 기준 롯데마트는 전국에 69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GS마트는 14개 매장에서 영업했다. 롯데마트가 GS마트를 인수해도 매장 수는 83개, 점유율은 21.2%에 그친다.

홈플러스(114개, 29.1%)에 이은 3위 자리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공정위가 말했듯 이번 합병으로 롯데마트가 이마트, 홈플러스 등 1, 2위 사업자들을 바짝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혁명에는 상품혁명으로

홈플러스도 이랜드리테일의 SSM(기업형 수퍼마켓) 킴스클럽마트 지분을 인수하는 내용의 MOU(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로 현재 실사 중에 있다. 규모의 경쟁은 경기 회복이 예상되는 올 하반기부터 더욱 강화될 전망이며 이것이 향후 가격전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마트 선공격, 후발 경쟁자 방어의 양상이 계속되자 롯데마트는 이마트가 주도하는 가격혁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품혁명’을 내세우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 3사의 가격에 실제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느냐”며 “가격혁명은 지금까지 항상 시도돼 왔던 것으로 이제는 상품혁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마트발 가격혁명이라는 틀을 깨는 것도 경쟁사에는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노병용 롯데마트 대표는 5월 28일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협력업체 컨벤션’에서 “고객과 협력사, 롯데마트 모두가 만족하면서 대형마트 본연의 핵심 가치에도 부합하는 상품을 선보이겠다”며 협력사에 도움을 청했다.

상품혁명이란 가격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차별화된 상품과 판매방식으로 고객만족을 높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롯데마트는 백화점이나 전문점 등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던 유명 브랜드 상품을 병행 수입한다. 중국에서 온 베이징덕, 영국산 식기 ‘포트메리온’ 등을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됐다.

판매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고객들이 선별기를 이용해 직접 참외를 고를 수 있게끔 해 재미있고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각 대형마트 경쟁력의 본질인 가격의 중요성을 여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최근 각 마트는 품목 수를 줄이는 효율화를 추구하고 있다. 발주와 진열·재고관리 등에 드는 매장 관리 비용이 줄어들면 상품 판매 가격 인하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른바 10원 전쟁보다는 매장 운영 효율화가 마트, 제조사 모두에 이익일 수도 있다. 가격인하를 위한 유통구조 개혁이 계속되는 가운데 목요일의 전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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