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은 친서민 배달·금융기관
우체국은 친서민 배달·금융기관
“딸칵, 딸칵.” 7월 27일 서울 서린동 우정사업본부 본부장실에 들어서자 버튼 음이 두 번 들렸다. 방 주인이 형광등을 켜고 선풍기를 트는 소리다. 천장을 보니 형광등 자리의 절반이 비었다. 에어컨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초 에너지 절약 계획을 발표하고 실천하는 중이다. 이날 본사 실내 온도는 28도였다. 남궁민(55) 우정사업본부장은 “시원한 바람 쐬며 직원과 고객에게 땀 흘리라 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날 인터뷰는 우정사업본부 출범 10주년을 기념해 진행됐다. 정보통신부 우편국과 금융국에 있던 이 조직은 2000년 7월 1일 우정사업본부로 통합돼 첫발을 디뎠다. 우정사업본부는 11년 연속 일반행정서비스 고객만족도 1위를 달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가시지 않은 지난해에도 1700여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10년 동안 누적 흑자는 1조5700억원에 이른다. 얼마 전에는 예산 절감 사례를 담은 『우체국 혁신 10년, 성공스토리 포스트 이노베이션』을 펴냈다. 남궁 본부장에게 우정사업본부가 지나온 10년과 맞이할 10년을 물었다.
-우체국과 혁신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재임하는 동안 무엇을 바꿨나?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아무래도 공무원 조직이라 딱딱하고 경직된 면이 있다. 새 사업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성과급을 지급해 능력에 따라 대우해주고 사업 운영에 자율성을 줬다. 윗사람이 편한 조직에서 아랫사람을 위한 조직으로 바꾸고자 했다. 저항도 있었지만 우체국 과장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벼르던 조직문화 쇄신이라 ‘할 거면 내가 해야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윗사람 편한 조직에서 아랫사람 위한 조직으로남궁 본부장은 관용차를 타지 않는다. 또 지난해 인사청탁과 얽힌 직원을 아예 승진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끊기 어려운 관행을 하나 둘 없앴다. 그는 “본사 조직뿐 아니라 전국에 퍼져 있는 4만3000명 직원에게 자긍심과 책임감을 심어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찾아주거나 강도를 잡는 등 선행한 집배원에게 직접 편지를 쓰거나 전화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올해 6월에는 60여 명의 미담 주인공에게 3박4일 여행을 포상하고, 처음으로 순직한 직원을 위한 유가족 위로금, 학자금 지원, 유가족 특채 제도를 마련했다.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요인인가?
“직원들이 긍지를 갖고 일하니 자연히 서비스가 좋아져 고객 이용률이 높아졌다. IT(정보기술)와의 접목 역시 한몫했다. 만성 적자였던 우편 부문이 2006년 자동화로 경비를 절감해 흑자로 돌아섰다. 집배원 소원이 ‘집에서 식구들과 9시 뉴스를 함께 보는 것’이라고 하더라. 배달 순서에 따라 우편물을 자동으로 분리해주는 집배순로구분기를 이용하면 한 명당 처리 시간이 1시간30분 줄어든다. 3대로 시작해 지금은 69대로 늘었다. 또 PDA 보급으로 비용을 연간 69억원 줄였다. 요즘은 등기우편물을 배달할 때 종이배달증 대신 e-배달증을 사용한다. 금융 부문도 실적이 좋아 지난해 흑자가 났다. 비슷한 시기 미국, 일본 우편사업자는 각각 38억 달러, 474억 엔 적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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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부문 성적은 어떤가?
“예금 수신고가 전년 대비 3조3585억원, 보험자산이 4조4879억원(2009년 기준) 늘었다. 현재 80조원을 운용한다. 운용 수익률은 연기금, 일반 보험회사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 펀드 판매 인가를 추진 중이고 신용카드 사업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운용 인력 보강이 과제-펀드·카드 사업 진출 발표에 민간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택배, 예금, 보험 등 기존 사업을 추진할 때도 나온 얘기다. 우체국은 친서민기관이다. 면 단위 이하 우체국이 전체의 55%를 차지한다. 일반 기업은 농·어촌까지 찾아가지 않는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카드·펀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왜 농어촌에서만 하지 대도시에도 사업하느냐’고 묻는다. 면 단위라도 우체국을 운영하려면 최소 3명이 필요하다. 경비는 들고 이용률은 낮아 거의 적자다. 그래도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주민들의 창구를 폐쇄할 수는 없다. 대도시에서 난 이익은 농어촌 적자를 메우고 보험료를 낮추거나 예금 금리를 높이는 데 쓴다.
-우체국 금융업무의 영역이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못하는 업무지만 국민이 원하면 대출도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민간기업과 경쟁관계가 아닌 보완관계라는 점이다. 정부나 일반 회사가 전국에 있는 3700개 우체국 창구를 이용할 수 있다. 현재 148개 기관과 제휴해 증권계좌 개설, 결제자금 수납 등을 대행한다. 택배회사 역시 산간벽지로 가는 물량은 우체국에 맡긴다.”
그는 금융업무 확장과 관련해 “민간기업이 농어촌까지 카드·펀드 사업을 확대하면 우린 손을 놓겠다”고 말했다. 이어 “펀드·카드 사업 진출 계획은 7월 1일 발표한 ‘비전 2020’의 빙산의 일각일 뿐인데 확대해석하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렇다면 비전 2020의 핵심은 무엇인가?
“첫째가 ‘스마트 포스트’다. 우정사업본부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를 만들어 온라인으로 필요한 업무를 거의 다 볼 수 있다. 개개인이 우체국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중소기업의 인트라넷과 연결해 창고관리, 발송업무, 통관수속 등 수출입 관련 서비스를 지원한다. 둘째로 ‘스마일 파이낸스’다. 1년에 만원만 내면 상해위험을 보장해주는 ‘만원의 행복 보험’, 특별우대금리 7%를 추가 지급하는 ‘새봄자유적금’ 같은 상품으로 서민에게 다가갈 생각이다. 다음은 ‘소셜 인프라’로 사회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누구보다 지역 주민의 사정을 잘 안다는 점을 활용해 독거 노인 돌보기, 환자 이송, 산불 예방, 공명선거 감시 등을 수행한다. 여기에 실적과 능력, 자율성을 중시하는 선진 정부기업 모델로 거듭난다는 뜻의 ‘스트롱 시스템’을 더해 ‘4S 전략’이라 부른다. 이 전략으로 2020년 예금 수신고 100조원, 보험자산 70조원, 매출 26조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조직이나 성과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금융 부문에서 운용 인력이 부족하다. 공무원 정원에 묶여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남궁 본부장은 마라톤과 테니스로 체력을 단련한다. 7년 전 시작한 마라톤은 풀 코스를 10여 차례 완주했을 정도로 매니어다. 그는 오는 10월 춘천마라톤 참가를 위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그의 집무실은 9층이다). 혁신이라는 긴 레이스를 위한 우정사업본부의 체력 단력도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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