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강해지고 흩어지면.......
뭉치면 강해지고 흩어지면.......
지난해 11월 초 대우증권 직원들은 양복에 다는 배지를 바꿨다. 기존의 ‘옥타곤(팔각형)’에서 ‘kdb’로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다. 명함과 사원증에도 대우증권 앞에 산은금융그룹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지난해 10월 산업은행과 대우증권을 중심으로 한 산은금융그룹이 출범하면서 생긴 변화다.
산은금융그룹은 7월 1일 컨설팅 업체에 의뢰해 브랜드 이미지 통합작업을 시작했다. 산은금융지주 정혜원 홍보팀장은 “소비자가 기존 브랜드를 어떻게 인지하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kdb’라는 표기는 그룹을 대표하는 워드마크로 쓰인다. 회사 측에 따르면 올해 말에 분석을 마치고 내년에 CI(기업 이미지) 통합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정 팀장은 대우증권이 ‘대우’라는 사명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정해진 것은 없지만 리테일을 강화할 계획이라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향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최근 금융 브랜드의 통합 현상이 눈에 띈다. 장대련 연세대 교수(경영학과) 는 “과거와 달리 요즘은 여러 금융 분야가 통합 내지는 겸업화 등으로 서로 연관돼 있다”며 “일관성 있는 브랜드 정책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기업들 역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예전에는 은행·증권·보험사가 소비자에게 각각의 고유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으로 영역 구분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 브랜드 통합이다. KB국민은행이 중심인 KB금융그룹은 ‘KB’를 포함하는 10개 금융 계열사(KB금융지주 포함)로 구성된다. KB금융그룹은 2008년 3월 인수한 한누리투자증권의 회사명을 KB투자증권으로 바꾸는 등 같은 해 9월 지주사가 출범하기 전부터 브랜드 통합 작업을 했다.
은행과 신용카드·생명보험 등 다양한 부문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신한금융투자는 국내 금융 브랜드 통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장 교수는 “신한은행을 모태로 LG카드(현 신한카드), 굿모닝증권(현 신한금융투자) 등의 브랜드를 통합해 원스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고 평가했다.
이영애, LG카드에서 신한 광고모델로
LG카드는 신한금융지주와 합병할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카드회사였다. 신한금융지주는 공식 합병 6개월 전에 광고를 통해 LG카드와의 합병을 미리 알렸다. 이때 기존 LG카드 모델인 이영애를 기용해 ‘나의 금융 브랜드는 신한입니다’라는 카피를 유행시켰다.
신한금융지주 김계흥 마케팅부장은 “당시 LG카드가 (신한카드와 비교해) 브랜드 인지도가 높았지만 카드채 부실 등 부정적 이미지도 있었다”며 “미래 성장력을 생각해 신한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에는 굿모닝신한증권의 ‘굿모닝’을 떼고 증권을 투자금융으로 전환해 신한금융투자로 사명을 바꿨다. 신한금융투자는 1973년 효성증권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래 쌍용투자증권(83년), 굿모닝증권(99년), 굿모닝신한증권(2002년) 등으로 ‘새로운 간판’을 달았다. 대주주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회사 이름도 바뀌었다. 이후 신한금융투자로 이름을 바꾸면서 증권사 이름에서 ‘증권’을 떼어내는 파격을 선보인 것. 김계흥 부장은 “‘굿모닝’이라는 이름은 젊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지만 중소형사라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현재 금융지주회사 1위 브랜드인 신한과 맞지 않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우리금융그룹은 ‘우리’라는 일반명사를 활용한 특수한 사례다. 우리은행은 평소 고객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이런 슬로건을 유지하기 위해 한빛은행(현 우리은행), LG투자증권(현 우리투자증권), LIG생명보험(현 우리아비바생명) 등 인수한 회사를 ‘우리’ 브랜드로 통일해 불렀다. 장대련 교수는 “은행 중심의 금융 브랜드 통합은 고유 영역을 확장했다는 것을 고객에게 알려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한다”고 말했다.
은행이 아닌 금융회사를 주력으로 금융그룹을 형성한 사례도 있다. 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자산운용·미래에셋캐피탈 등을 포함하고 있는 미래에셋그룹, 한국투자증권·한국투자저축은행 등으로 구성된 한국투자금융그룹은 비은행 금융회사를 기반으로 금융그룹을 형성했다. 메리츠화재·메리츠종금증권 등은 한진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메리츠금융그룹 소속이다.
비금융권 그룹이 기반이 돼 금융그룹을 형성한 사례도 있다.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이 중심이 된 삼성그룹, 현대카드·현대캐피탈·HMC투자증권의 현대차그룹, 롯데손해보험·롯데카드 등의 롯데그룹, 대한생명보험·한화증권 등을 계열사로 둔 한화그룹, 동양생명·동양종금증권 등의 동양그룹, 동부증권·동부화재 등이 속한 동부그룹 등이다.
고객 신뢰 높이고 영업력 강화
금융 브랜드를 단일화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고객 신뢰도를 높이는 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12월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실시한 증권사 선호도 조사에서 삼성증권·미래에셋증권·신한금융투자 등이 상위에 올랐다.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규모가 크고 안정적이라는 것이었다. ‘삼성’이나 ‘신한’이라는 대형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준 것이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모(母) 브랜드가 자(子) 브랜드에 힘을 실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지주 권세환 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하나캐피탈·하나HSBC생명 같은 개별 회사는 거액을 들여 대대적인 브랜드 광고를 하기 어렵지만 ‘하나’라는 브랜드로 통합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으로써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모회사만 자회사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권 과장은 “자회사의 전문성이 모회사로 전이돼 상호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영업력 강화도 브랜드 통합의 큰 이유다. 롯데그룹이 대한화재를 인수해 롯데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꾼 경우가 이런 사례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한화재는 롯데가 인수할 당시 오프라인 손해보험회사 10개 중 9위였다”며 “인수 후 재계 5위 롯데 브랜드에 힘입어 능력이 뛰어난 영업사원의 지원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인수 전과 비교해 롯데손보는 영업사원 수가 2배가 됐고 매출액 역시 8000억원에서 1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또 롯데제과·롯데호텔 등 그룹 계열사가 퇴직보험을 롯데손해보험에 맡기는 등 그룹의 ‘후방 지원’도 이어졌다.
‘모자(母子) 브랜드’ 간 시너지
2007년 1월 한화그룹이 인수한 신동아화재는 한화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꾼 뒤 인수 3년 만에 매출이 62% 증가했다(2010년 1월 현재). 상장기업의 상호변경 공시가 주가를 상승시킨다는 보고서(상장기업의 상호변경과 주식가치의 관련성, 포스코경영연구소, 2007)도 있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증권거래소 상장기업 중 상호를 변경한 기업을 대상으로 주식 가치와의 관련성을 검증한 결과 공시 한 달 전 이미 주가가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브랜드 통합 세계에서도 공짜는 없다. 그룹 차원의 통합 작업을 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간판 변경이다. 우리금융그룹 마케팅팀 김동경 차장은 “은행과 증권사는 지점 수가 많아 비용이 많이 들고 보험사나 카드사 등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간판도 지점당 2~5개여서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여기에다 객장 인테리어, 임직원 명함, 결재서류, 메시지 발송 이미지 등 기업 CI를 표현하는 모든 부분을 바꿔야 한다.
그럼에도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들은 “비용보다 효과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경 차장은 “서울 명동에서 가장 비싼 땅 중 하나로 알려진 우리은행 자리가 랜드마크 기능을 하는 것처럼 기업의 고유한 철학이 담긴 브랜드 교체는 고객에게 큰 소구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들은 CI 작업 못지않게 대표 브랜드를 만드는 데 열심이다. 특히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에서 이런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우리투자증권의 ‘옥토’, 삼성증권의 ‘팝(Pop)’, 현대증권의 ‘QnA’, 한국투자증권의 ‘아임유’, 대우증권의 ‘스토리’, 대신증권의 ‘빌리브’ 등이 이런 사례다. 여러 종류의 금융 서비스를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원스톱 점포도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사례로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파이낸스숍, 산업은행과 대우증권의 복합점포 등을 들 수 있다.
같은 금융그룹에 속하지만 한 브랜드를 쓰지 않는 계열사도 있다. 신한금융그룹에 속하는 제주은행이 그런 사례다. 특정 지역에서 고유한 브랜드 파워를 살리기 위해서다. 하나금융지주 권세환 과장은 “특히 피인수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높을 때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과거 한국투자증권과 동원증권이 인수합병을 할 때 동원이 이른바 ‘갑’, 한국투자가 ‘을’의 처지였지만 동원은 한국투자의 브랜드 파워를 인정해 ‘을’ 브랜드를 취했다. 하지만 다수의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통일성 있게 통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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