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論·濁·論] _ 한국 직장인의 설문 답변 스타일
[淸·論·濁·論] _ 한국 직장인의 설문 답변 스타일
한 글로벌 기업이 전 세계 법인을 대상으로 표준 양식의 질문지를 배포한 뒤 답안 작성을 요청했다. 양식을 채운 방식은 국가별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감추기 힘든 각각의 민족성이 드러난 결과였다.
미국:문항별 의미를 수차례에 걸쳐 질문하고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뒤 답을 작성해 보낸다.
일본:각 문항을 세부 항목으로 쪼개 혹시 누락됐을 수 있는 질문 의도까지 일일이 찾아낸 뒤 깨알같이 답변을 작성한다.
중국:답안 작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를 치다가 결국 마감시간이 임박해 절반은 빈 상태로 답안을 보내온다.
한국: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구조로 양식 자체를 바꾸는 ‘창의성’을 발휘해 답변을 작성한다. 결국 본사 입장에서는 통일된 내용으로 답변을 취합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상은 실제 필자의 고객사에서 벌어졌던 일로 나라마다 각기 다른 태도는 그간의 경험상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여기서도 한국인의 특성은 두드러진다. 확실히 한국 사람들은 정해진 구도 아래서 맡긴 일을 되풀이하는 방식을 불편해 한다.
일이 크든 작든 포괄적 책임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얘기다.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조직 설계의 주요 원칙으로 ‘사업 중심적 조직’과 ‘기능 중심적 조직’이 있다.
사업 중심적 조직은 단위 사업에 대한 손익 책임을 단일 지휘계통에 따라 하부로 전개하면서 권한을 위임하는 구조다. 조직원은 위임받은 업무에 대해 여러 사안을 포괄적으로 고려해 비교적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반면 기능 중심적 조직은 사업 수행과 관련한 업무영역을 분업화해 전문성을 높이는 것을 추구한다. 사업 전체에 대한 의사결정은 여러 기능 부서 간 합의를 통해 내려지고, 실행 단계에서 일사불란하고 통일된 조율이 불가피하다.
요즘 많은 한국 기업이 기능 중심적 조직으로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핵심 기능의 전문성을 극대화해 경쟁자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의 차별화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시장 지배력과 리더십 강화를 도모한다.
그러나 기능 중심적 조직이 갖는 분명한 장점에도 이 같은 변화 추진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통과 부작용이 따르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는 앞서 본 글로벌 회사의 사례처럼 다른 사람의 틀 안에 자신을 맞추는 것을 싫어하고 일에 대한 자율권을 중시하는 한국인 특유의 기질에 기인한 바 크다.
협력해야 하는 부서의 숫자가 늘어나는 반면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역할과 책임 범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되면 비효율적인 의사소통이나 부서 간 갈등이 생기기 쉽다.
조직원의 입장에서는 분업화된 업무수행 구조를 의사결정 권한의 축소로 느끼게 된다. 주인의식과 사기가 저하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자신을 인식하면서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기능 중심적 조직으로의 변신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면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전사의 업무 프로세스와 기능별 역할 및 책임을 제대로 정의하고 이에 수반되는 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달라진 조직 운영 방식의 큰 그림을 조직원이 이해하고 전문가로서 자신의 직업적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비전을 설파하고 새로운 전문분야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직무 코칭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갖고 기다릴 줄 아는 경영자의 인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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