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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안중근… 그를 되살리고 싶다

안중근… 안중근… 그를 되살리고 싶다

▎1956년생. 1993년 미국 하버드대 드라마연구원 연극분석이론 연수 1974년 민중극단 으로 데뷔 83년 연극 95년 연극 96년 뮤지컬 2009년 연극 출연 1999년~ 객석 발행인 겸 편집인. 1994년~ 돌꽃컴퍼니 대표 2002년~ 설치극장 정미소 대표

▎1956년생. 1993년 미국 하버드대 드라마연구원 연극분석이론 연수 1974년 민중극단 으로 데뷔 83년 연극 95년 연극 96년 뮤지컬 2009년 연극 출연 1999년~ 객석 발행인 겸 편집인. 1994년~ 돌꽃컴퍼니 대표 2002년~ 설치극장 정미소 대표



"대사가 너무 처집니다. 대사를 못 외워서 그런가요? 그게 아니라면 좀 더 템포를 빨리 해 주세요. 제가 지루하면, 관객은 더 지루할 겁니다.”지난 7월 13일 오후, 서울 장충단길에 있는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 객석 중앙에서 윤석화(54)는 배우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이크로 전해지는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연극 <나는 너다> 의 한 대목을 연습한 배우들의 표정이 좀 무거워졌

다. 윤석화는 그 무대에서 배우가 아닌 연출가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시작되자 그녀는 마이크로 조연출을 불렀다. 연습 때 한 순간 녹음 테이프가 씹힌 것처럼 배경음악 상태가 안 좋아졌던 게 문제였다. 조연출은 음악이 너무 길어서 빨리 감기를 했다고 했다. 그러자 윤석화가 언성을 높였다.

“넌 왜 내가 시키지 않은 짓을 하니? 음악이 긴지 짧은지는 내가 들어봐야 알 거 아니야. 난 턴테이블에 또 문제가 있나, 공연때 이러면 어쩌나 걱정했잖아. 차라리 네가 연출해!”

극장 안 분위기가 더 무거워졌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없을 듯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준생 역을 맡은 배우

송일국을 불러 옆에 세우고 연기 지도를 했다.

잠시 후 극장 밖 벤치에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틈을 내지 못해 점심을 거른 그녀는 햄버거를 사다 달라고 한 후 아이스커피에 설탕을 넣고 한 모금 마셨다. “아까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지만 확 소리를 질렀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연습이 너무 늘어졌거든요. 이럴 때는 제가 악역을 맡아야죠.” 그녀는 소심한 A형이지만 일할 때는 필요한 말을 하고 탈탈 턴다.

<나는 너다> 는 안중근 서거 100주년을 추념하는 연극이다. 안중근 의사와 그의 가족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겪었던 시대적 풍파와

인간적 고뇌를 담아낸 작품이다. 1년간의 준비작업 끝에 7월 27일부터 8월 22일까지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공연된다.

제작사가 돌연 자금 조달 문제로 발을 빼면서 공연이 무산될 뻔하기도 했다. 이때 윤석화가 나섰다. 그녀는 직접 제작에 뛰어들어 동분서주했다. 연출자로 변신한 그녀는 결국 하얼빈에 서려 있는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연극 무대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그녀를 이끈 동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100년 전 안중근 의사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 보니 숭고한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이번 연극을 포기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았습니다.”



안중근이 걸었던 길 답사그녀는 2008년 안중근 의사 추념 연극을 연출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이에 동의한 윤석화는 2009년 8월 출연 배우, 제작진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를 거쳐 중국 하얼빈과 뤼순까지 100여 년 전 안 의사 의거 당시 행적을 순서대로 답사했다.

윤석화는 연극계의 전설이다. 연극이 일반에 별로 어필하지 못했을 때 그녀를 보러 연극을 보러 갈 정도였다. <신의 아그네스> 등 숱한 히트작에 출연했다. 연극계를 대표해온 간판 배우지만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2003년) 등을 연출하기도 했다.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중생, 1인 2역을 맡을 주연 배우로 탤런트 송일국을 낙점한 것은 윤석화의 판단이다. 송일국은 연극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지만 윤석화는 백야 김좌진의 후손인 송일국보다 제격인 배우는 없다고 봤다.

이번 연극을 통해 윤석화는 관객들이 안중근의 영웅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삶과 거사의 의미,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랐다. 연극에는 안중근의 아들 안중생이 등장한다. 그는 친일파, 배신자, 변절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역사 속에서 잊혀진 인물이죠. 부끄럽다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부끄러운 것도 꺼내 놓고, 용서할 게 있다면 용서하고 화해할 게 있다면 화해할 때가 됐어요.”

그녀는 연극이 힘든 시간을 견디고 생각할 여유를 갖는 기회가 된다고 여긴다. 긴 인생에 비하면 연극이 차지하는 시간은 순간이다. 그동안 무엇을 본다고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윤석화는 “사람은 결국 찰나의 기억으로 산다”고 말했다. “어느 한순간 나를 떨리게 하는 때가 있기에 다른 시간을 견디는 거 . 연극이 그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연습에 열중하는 배우 송일국과 김아려

▎연습에 열중하는 배우 송일국과 김아려



연극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 그런데도 그녀는 활동 초기부터 지금까지 연극을 중심에 뒀다. 그녀는 연극의 생생함을 유전자처럼 간직하고 산다. 연극에서는 음악과 미술이 만나고 사람이 표현을 한다. “연극은 살아 있는 예술이에요.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배우에게 가장 큰 매력이죠. 물론 어렵긴 해요.” 배우는 철저한 연습을 통해 의미를 산 채로 전한다. “그때 감동을 느낀다면, 그것은 스크린에서 얻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죠.”

윤석화는 75년 민중극단 <꿀맛> 으로 데뷔했고 83년 연극 <신의 아그네스> 에서 주연인 ‘아그네스’ 역을 맡으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 연극은 실험극장 초연 당시 최장기 공연과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남겼다. 84·89·96년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했고 연출가협회 선정 올해의 배우상(92년),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2004년)을 수상하는 등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그만큼 화려한 인물은 없었다.

지금껏 4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1992년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가 어떤 배우인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녀는 이 모노드라마

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했다. 그녀는 자신의 연기에 가장 만족하는 작품으로 세계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담은 1998년

의 <마스터 클래스> 를 골랐다.



한국 연극계의 레전드고등학교 때 연극을 처음 접했다. 교내 음악회가 있던 날 함께 공연한 연극을 그녀가 연출했다. 교과서에 실린 희곡 한 편을 골라 공연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영어교사는 희곡작가였다. 그는 교사가 쓴 작품이 국립극장에서 공연될 때 보러 갔다. 다음으로 본 연극은 임영웅이 연출한 <고도를 기다리며> 다.

어린 시절부터 윤석화는 목표가 있으면 그것만 보고 달렸다. 초등학교 때 고무줄을 끊거나 오자미를 가져가는 남학생이 있으면 여자친구들을 대표해 그에게 찾아가 사과를 받아냈다. 한번은 말썽을 부리는 남학생 집까지 찾아갔다. 문 앞에 서서 “준석(가명)이의 어머니를 뵈러 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 학생의 누나가 나왔을 때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윤석화는 남학생의 어머니를 만나 사과를 받았다. 알고 보니 그 친구 어머니가 육성회장이었다. “집 크기, 그 어머니의 우아한 외모에 기가 죽었지만 할 말은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음악회를 못하게 한 교장을 찾아갔다. 그가 주도해서 준비를 했는데, 교장이 행사를 열지 말라고 했다. 그는 교장실로 바로 달려가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설득했다. 결국 음악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99년 공연예술잡지 월간 ‘객석’을 인수했을 때도 그는 ‘객석’을 지켜야 한다는 목적만 봤다. 객석이 폐간 위기에 처했다. 당시 윤석화가 진행하던 클래식 방송 프로그램 PD가 그에게 인수를 권했다. 처음에는 연극배우만으로도 힘들다고 했다. “나중에는 정말 객석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그녀는 객석이 창간됐을 때 객석 뉴욕특파원을 했다. 그 덕에 뉴욕에서 많은 공연을 관람했다. 율 브리너와 제임스 골웨이도 인터뷰했다.

객석 운영이 쉽지는 않았다. 계속 적자에 시달렸다. 그녀는 객석 적자를 메우고자 뮤지컬 제작을 시작했다. “객석 인수를 후회한 적도 많아요. 차라리 객석이 없어질 위기에 있을 때 그냥 모른 척할 걸 그랬다면서…. 하지만 객석을 살렸으니까 더 훌륭한 발행인이 나타날 때까지 제가 끌고 가야지요.”

그는 두 번째 만난 남자와 결혼했다. 전 중앙종금 김석기 사장이 그의 남편이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아 아쉽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여러 작품을 하면서 다양한 사랑을 경험했기에 괜찮다” 고 했다. 해피엔딩보다는 애달픈 사랑이 많은 점은 아쉬워했다.

2003년 2월 아들 수민(7), 2007년 딸 수아(4)를 그는 공개 입양했다. 방송 촬영차 입양기관을 방문했다가 아들 수민을 만났다. 유난히 많이 울어 안아줬더니 눈물을 뚝 그쳤던 아이다. 아이들은 그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다. 어린 자식들을 보살피려면,건강 관리도 일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나는 너다> 가 얼마나 흥행할지 그녀도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연극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사람이 숨을 쉬는한 연극은 어떤 형태로든 가장 끝까지 남아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연극은 사람 그 자체니까요. 어떤 메커니즘 없이도 표현되는 게 연극이거든요. 우리가 사는 것도 어떻게 보면 연극이죠.” 1시간 동안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는 바쁘게 연습실로 돌아갔다. 햄버거 봉지는 뜯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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