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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와 폭식장애는 동전의 양면

섭식장애와 폭식장애는 동전의 양면



대학에 들어갔다.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됐고, 식사는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한다. 주변은 다이어트와 마른 몸매의 찬양으로 가득하다. 마리안 커비는 결국 끼니를 거르기 시작했다. 가끔 친구들과 저녁 파티를 즐기기도 했지만, 대부분 하루를 감자칩과 탄산음료로 때웠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감자칩은 칼로리가 높으니까 하루 동안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커비는 말했다. “음식의 질은 상관하지 않았으니까요.” 잘 먹지 않으면 살이 빠지니까 오히려 금상첨화라고 믿었다.

“하루에 1200㎈ 미만을 섭취하면 몸이 망가진다는 사실은 잘 알죠. 그런데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하고, 음식 섭취를 줄이고 운동을 늘려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칼로리 섭취나 운동량 따위는 다 잊고 그냥 하루에 1끼만 먹으면 된다고 결론을 내려버렸죠.”

그런 식으로 1년을 버티던 커비는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놀러 갔다가 갑자기 졸도해버리고 말았다. 이후 커비는 자신의 식습관을 조정하게 됐고, 보다 건강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커비가 겪었던 섭식장애는 여대생들에게 흔한 질환이다.

그러나 ‘다이어트는 그만두고 자신의 몸과 화해하라(Lessons From the Fat-o-Sphere: Quit Dieting and Declare a Truce With Your Body)’를 공동 저술한 커비는 체중이 136kg이나 나간다는 이유로 섭식장애라고 진단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 년 뒤 어느 의사는 체중을 줄이라며 마찬가지로 하루에 섭취해야 할 칼로리 목표치만 처방했을 뿐이다.

섭식장애는 매우 마른 사람에게만 생긴다는 오해가 있다. 그러나 섭식장애와 지나친 통제 욕구, 낮은 자긍심으로 건강을 해치는 일 등은 특정 체중의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결코 아니다.

“발병 비율은 모든 체중의 사람들 사이에서 높고, 과체중인 사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과체중인 사람은 자신의 몸에 자긍심이 낮고, 체중 감량을 시도하거나 집착하는 경우가 많아서 살이 빠지기만 한다면 위험한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스탠퍼드 대학 소아학 강사이자 루실팩커드 아동병원 체중 연구소 소장인 레베카 피블스는 말했다.

뉴스위크가 2009년 실시한 연구에서 20대 초반 과체중 여성의 40%, 20대 초반 과체중 남성의 20%는 체중감량 명목으로 섭식장애 행동을 보였다. 임상학자들은 전체 성인의 섭식장애 환자 비율도 이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거식증 증상이 있거나 심한 경우는 겉모습으로도 판별이 가능하다. 환자 대다수가 심하게 마른 체형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린 그레페 미 섭식장애협회 CEO는 말했다.

“그러나 폭식증의 경우는 외모로 판별이 불가능하다.” 사실 과식이나 야간 폭식, ‘어디에도 분류되지 않는 식사 장애(EDNOS)’는 평균 이상의 체중에서도 나타난다. (사실 진단 기준에 체중이 포함된 질환은 신경성 식욕부진증뿐이다. 체중이 신장을 기준으로 정상 범위의 85% 이하여야 해당 질환으로 진단받는다.)



주로 비만 체중을 가진 사람들이 고통받는 폭식장애(BED) 진단 기준은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지침 5차 개정판(DSM-V)’에 포함될 예정이라고 5월 초 DSM 편집진은 밝혔다. BED는 억지 구토나 지나친 운동처럼 과식을 제거하려는 행위가 수반되지 않은 습관적 폭식이다. 제거 행위는 없지만 지나친 폭식과 함께 우울증과 불안, 기타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 누구나 두통으로 고생할 때가 있지만 두통이 생겼다 하면 꼭 편두통인 사람이 있듯이, 우리 모두가 인생에 한 번쯤은 폭식을 하지만 폭식을 할 때마다 우울증이나 불안과 같은 이상 심리를 느낀다면 그게 바로 BED다.

따라서 BED 환자에게는 식단이나 운동, 건강한 생활 방식을 단순 처방하기보다 폭식과 병행되는 병적 증상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 다행히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BED는 효과적으로 치료된다고 여성 정신건강과 식습관 장애 치료기관 렌프류 센터의 임상 감독관 더글라스 버넬은 말했다.

그러나 안 좋은 소식도 있다. 아직도 많은 임상학자들이 BED를 정확히 진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다행히 DSM-V에 BED 진단 기준이 포함되면서 이러한 어려움이 해결될 전망이다. “거식증이나 과식증 환자를 합친 수보다 BED 환자 수가 3배는 많다”고 BED협회 CEO 체비스 터너는 말했다. “환자 수는 가장 많은데, 병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공식 질환으로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질환으로 고생했던 터너는 수 년 동안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식단을 처방받고 다이어트 의지를 다지는 패턴을 무수히 반복해 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폭식을 했고, 깊은 우울감과 절망, 허무함을 느꼈다고 터너는 말했다. 그녀의 몸무게는 늘어만 갔고, 처방은 항상 똑같았으며, 그때마다 실패하고 말았다는 좌절감이 더해지며 폭식은 하나의 의식처럼 반복됐다.

BED 치료를 받고 나서야 터너의 체중과 기분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2004년 현대 신경정신의학지(Current Opinions in Psychiatry)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이어트를 시도한 적이 있는 과체중 미국인의 25%가 BED 증상을 보였다. 터너는 절대 건강하지 않은 BED 환자의 30%가 정상 체질량지수(BMI)를 보인다는 생물정신의학지(Journal of Biological Psychiatry)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터너는 BMI가 정상인 BED 환자의 경우, 이상 증세를 보여도 BED로 진단받을 가능성이 아주 작기 때문에 BED 질환과 비만 전체를 깊이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이어트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습관 장애를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다이어트를 한다고 모두가 식습관 장애 환자가 되는 건 아니다. 식습관 장애는 유전적·환경적·사회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서 발병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을 때 식습관 장애가 발병한다”고 그레페는 말했다. “이는 우리가 불안감과 강박 장애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외모를 내 의지대로 바꾸겠어’와 같은 통제 의도에서 시작된다. 날씬해지고픈 단순한 욕구 같지만, 근본적 원인은 불안과 같은 정서 장애다.”

이 때문에 섭식장애 연구자나 치료자들은 비만의 위험을 경고하는 건강 전도사들과 충돌하기도 한다. “비만을 죄악시하는 경향에 우려가 많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모든 면에서 합리적”이지만, 사람들을 섭식장애로 내모는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버넬은 말했다.

그러나 대립하던 양 진영은 최근 비만과 섭식장애의 치료법이 사실은 동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체중과 상관없이 건강한 육체의 이미지와 건강한 식습관의 결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피블스는 말했다. “활동적으로 살고, 가공식품 섭취를 줄이면서 생활 습관을 서서히 바꿔나가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유지되는 자신의 체중을 평화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번역·우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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