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의 위험한 ‘도박’
사르코지의 위험한 ‘도박’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인 카림 부두다(27)는 무장강도 혐의로 유죄판결을 수없이 받은 악당이었다. 지난 7월 위리아주-레-뱅(프랑스의 소도시)의 카지노를 점거했을 당시에는 우지 기관단총과 스위스제 돌격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경찰에 쫓기던 그는 자신이 살던 그르노블 교외의 공영주택 단지로 숨어들었다. 부두다는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그 황폐한 빈민가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그 후 사흘 동안 부두다가 숨어 있던 지역에서는 2005년 파리 교외 빈민가를 휩쓸었던 폭동과 유사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차량이 불길에 휩싸이고 젊은 폭력배들이 진압 경찰을 조롱했다. 누군가가 경찰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프랑스 폭동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경찰관 중 부상 당한 사람도 없었다. 이번에는 비슷한 폭동이 여러 곳에서 잇달아 발생하는 연쇄반응도 없었다. 폭력은 확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대응방식을 둘러싼 여파는 올가을 프랑스 정치의 향방을 가를 듯하다. 사르코지는 그르노블 총격전을 우파와 극우파의 지지를 얻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 일로 그는 프랑스 국민으로부터 대통령으로서의 신뢰를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1년 반 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
사건이 종결된 지 10일 뒤 사르코지는 그르노블로 가서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강경한 반(反)이민론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다. 2005년 이민자 폭동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사르코지는 “인간 쓰레기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일을 계기로 사르코지는 장-마리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표를 자기 진영으로 휩쓸어 갔다. 그르노블 사건은 그때와 같은 상황을 재현할 기회다. 사르코지는 그르노블 사건과 또 다른 떠돌이 이민자 폭동 사건을 빌미로 프랑스 이민자들에게 전례 없는 제재를 가했다. 게다가 그는 폭동과 전혀 무관한 집시들의 집단거주지를 폐쇄하고 그들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본국으로 추방하기 시작했다.
위험을 감수한 행동이었다. 최근 사르코지는 상황이 매우 절박해 보였다. 대통령 취임 후 첫 두 해 동안 그는 좌파와 우파를 떠나 프랑스 국민의 단합을 위해 노력하는 통찰력 있는 실용주의자로 존경 받았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집권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패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프랑스에서 절대적으로 존중돼 오던 원칙 중 하나를 깨기에 이르렀다. 그는 귀화한 프랑스인이 특정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국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사르코지는 경찰관이나 공무원을 살해하려 한 경우를 특정 범죄의 한 예로 들었다. 그렇게만 따진다면 범위가 극히 제한된다. 하지만 정치에서는 정치인이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느냐보다 사람들이 그 말을 얼마만큼 중요하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브리스 오르트푀 내무장관은 사르코지의 취지를 이해시키려고 일부다처의 죄를 범하거나 여성할례를 “선동한” 이민자들 역시 프랑스 국적을 박탈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무슬림이나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관습을 암시한 이 발언은 ‘과연 그런 일로 시민권을 박탈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자아냈지만 어떤 부류의 시민들이 목표가 될지는 명백히 보여줬다.
그 후 경찰은 집시 퇴출작전을 개시했다. 집시들의 불법 집단거주지 수십 곳을 폐쇄하고 본국 송환을 자원한 집시 수십 명에게 동유럽 본국으로 돌아가는 무료 여행권과 약간의 현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유엔과 유럽연합(EU), 유럽평의회의 여러 기구가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사실 지난해 프랑스가 ‘국가 정체성’ 토론을 시작하고, 무슬림 여성에게 얼굴 전체를 가리는 베일 착용을 금지한 이후 사르코지와 오르트푀는 중도를 넘어 완전한 우파로 돌아섰다.
프랑스인 누구에게서라도 시민권을 박탈한다는 개념은 이전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생득적 권리로 취득한 시민권이든 귀화를 통해 취득한 시민권이든, 또 법률을 위반했든 안 했든 상관없었다. 프랑스의 ‘공화국적 가치관’에 따르면 시민권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며 박탈할 수 없는 권리다. 일단 시민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국가가 그 사람의 원래 국적과 종교, 민족성을 문제삼지 못하도록 돼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200여 년 동안 잠깐의 예외를 제외하고 프랑스의 어떤 정부도 시민 등급을 A급, B급 등으로 분류한 적이 없었다. 사르코지의 그르노블 발언 이후 좌파 시사해설가들은 사르코지 정권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동조한 비시 정권에 비유했다.
사실 사르코지의 행동은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일 뿐이며 그는 타고난 냉소주의자다. 2007년 대통령 취임 후 초기에 좌파에 정치적 문호를 개방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사회당의 유명 정치인들을 내각에 기용하거나 그들에게 정치적 조언을 구함으로써 통 큰 정치인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대중운동연합이 표를 얻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대로 하락한 지지율과 10%를 웃도는 실업률, 세금 인상, 계속되는 정치자금 스캔들 등으로 궁지에 몰린 사르코지는 극우 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극우파의 지도자 르펜은 곧 은퇴할 전망이며, 점차 인기를 얻어가는 그의 딸 마린이 사르코지의 표를 깎아먹는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사르코지와 오르트푀는 어떤 계층도 사회적으로 “따돌릴” 의사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민자들과 그들의 자손을 프랑스 사회에 “불안정”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몰아가려는 게 분명하다. 사르코지는 “불법거래상과 범죄자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사르코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가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양치기 소년 같다고 말한다. 사르코지는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대신 툭하면 “전쟁을 하겠다!”고 소리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신랄한 풍자를 특징으로 하는 시사주간지 르 카나르 앙셰네는 2002년 당시 내무장관이던 사르코지가 “사회 불안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2005년 이민자 폭동 당시에는 “인간 쓰레기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이 된 후 2008년엔 “불법거래상들과의 전쟁”을, 2009년엔 “조직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 모든 호전적 선언에도 불구하고 2003~09년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사르코지가 이런저런 “전쟁”을 통해 표면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흉내를 내는 동안 폭력 범죄는 오히려 16.3% 늘었다. 또 지난달 표지에서 사르코지를 ‘깡패’로 묘사한 좌파 시사주간지 마리안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8년(사르코지가 내무장관과 대통령으로 재직한 기간) 동안 공공안전 정책이 “비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하는 프랑스인이 거의 70%에 달했다.
하지만 일부 여론조사 결과는 좌파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몇몇 조사에서 사르코지의 우익 충격요법이 프랑스 국민에게 통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보수파 일간지 르 피가로에서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이민자”들의 국적을 박탈해야 한다는 사르코지의 제안이 큰 지지를 얻었다. 경찰관을 살해했을 경우는 응답자의 70%가, 일부다처나 여성할례의 죄를 범했을 경우는 응답자의 80%가 국적 박탈을 지지했다. 집시 집단거주지 해체도 79%의 지지를 얻었다. 사르코지 자신이나 사르코지가 제시한 제안(우파와 좌파, 중도 노선을 막론하고)이 이렇게 높은 지지를 받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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