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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IT시스템 33년 노하우 수출

증시 IT시스템 33년 노하우 수출

추운 겨울날이었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아직도 차가운 거리에 있었다. 파업은 400일이 넘도록 그칠 줄 몰랐다. 김광현(57) 대표가 노조원들을 찾았다. 그의 손에는 손난로가 들려 있었다. 김 대표는 추위에 떨고 있던 노조원들에게 따뜻한 손난로를 하나씩 쥐어줬다. 김 대표는 “오랜 파업으로 지친 때였는데도 사장의 호의를 곡해하지 않고 받아줘서 고마웠다”고 기억한다.

그때 김 대표는 신임 사장이었다. 2008년 10월 20일 취임했을 때는 파업이 한 달을 넘긴 시점이었다. 파업의 불길은 거셌다. 김 대표의 전임 정연태 사장은 취임한 지 11일 만에 낙마했다. 김 대표가 찾은 해결책은 따뜻함이었다. 김 대표는 농성 중이던 노조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을 존중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입장을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존중해주십시오. 일하고 싶어서 파업하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업이 방도가 아닙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상징하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됐던 코스콤 파업은 2008년 12월 29일 종결됐다. 475일 만이었다. 김광현 대표가 취임하고 3개월 만이었다.

지난 9월 15일 코스콤은 노무라종합연구소와 포괄적인 업무 제휴 협약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코스콤은 트레이딩 솔루션 기술을 노무라종합연구소를 통해 도입했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일본 금융IT(정보기술) 솔루션 분야의 선두 주자다. 이번 업무 제휴 협약에 따라 코스콤과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정례 회의를 열고 수평적인 기술 교류를 추진하게 됐다. 해외 사업을 수주할 때도 공동 마케팅도 벌이기로 했다. 격세지감이었다. 김 대표는 “이젠 일본이 한국의 금융IT 기술력을 동등하게 바라본다”고 말한다.



노무라종합연구소와 해외 마케팅 제휴김 대표는 지난 9월 7일 일본 도쿄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열린 한국자본시장설명회에서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자본시장설명회는 한국금융투자협회가 일본 기관투자가들에게 한국 자본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일본 금융계의 관심이 뜨거웠다. 115개 일본 금융기관에서 300여 명의 CEO와 경영진이 참여했다. 김 대표는 “일본 금융인들은 한국 시장에 관심이 지대했다”고 전한다. 또 “결국 중요한 건 어느 나라 시장이 역동적인가에 달려있다는 걸 배웠다”며 “이제 중국 시장은 우리가 가지만, 한국 시장으로는 일본이 온다”고 말한다.

역동적인 한국 금융시장의 선두에 코스콤이 있다. 금융의 흐름은 흔히 피 돌기에 비유된다. 한 나라 경제의 심장은 증권거래소다. 주식시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잘 돌려면 혈관이 튼튼해야 한다. 한국거래소의 IT자회사로서 코스콤은 혈관을 짓는다. 코스콤은 혈관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다져왔다. 이제 해외에서도 한국 금융의 역동성에 주목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 기업들의 펀더멘털에 매료됐다. 피가 돌자면 혈관이 필요하지만 피가 잘 돌면 혈관도 강해진다. 코스콤이 성장하고 있는 이유다.

해외 시장에서 이미 코스콤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고 있다. 지난 7월 말엔 베트남 증권시장의 IT시스템 현대화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동남아 시장의 맹주인 베트남 경제의 심장과 혈관 확장 공사를 코스콤이 맡았다는 의미다. 인접 국가들인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는 아예 심장을 만들고 있다. 두 나라 정부와 공동 투자를 해서 증권시장을 개설할 계획이다. 중동과 아시아를 오가는 이슬람 자금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말레이시아 증권거래소의 채권시스템과 이슬람상품거래시스템을 개발했다.

김광현 대표는 “코스콤이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던 건 축적된 기술력과 조건 없는 마케팅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코스콤은 증권거래소 IT 시스템을 수주하면서 계약 조건에 명시되지 않은 더 많은 기술 지원을 해줬다. 경쟁 IT기업들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추가 수익을 얻고자 했을 내용이었다. 김 대표는 “우리는 해내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거래 당사자들도 그런 적극성에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한다.

코스콤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거래소 시스템을 수주하고 개발하면서 다른 해외 시장에도 내놓을 만한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 덕분에 해외 시장 개척에 가속도가 붙었다. 동남아시아 시장에 이어 중앙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 대상이다. 다음은 중남미 시장이다. 아르헨티나와 페루 등과 IT시스템 수출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코스콤은 더 큰 시장을 내다보고 있다. 김 대표는 “결국 목표는 미국과 유럽 시장”이라고 말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코스콤은 장기 파업으로 더 잘 알려진 회사였다. 혈관이 막히기 전까지는 아무도 혈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코스콤 대외협력단 백승훈 단장은 “한국 금융산업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이지만 밖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간혹 소식이 전해지더라도 사건 사고 소식인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고 말한다. 대외협력단 박만실 팀장은 “장기 파업의 기억이 대외적으로 지워지지 않고 있어서 지금도 코스콤 하면 그 일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이제 코스콤은 조금씩 새로운 성과들을 덮어쓰기 하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는 3000억원이다. 2011년 목표는 3300억원이다. 김광현 대표는 2020년까지 코스콤이 세계적인 IT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파업의 상처를 지우고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런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로자베스 모스 켄터는 조직 안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는 한 단계 더 높은 가치를 제시하라고 조언했다”며 “코스콤이 파업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한 단계 더 높은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코스콤은 매출 기준으론 국내 시장에서 890위 정도다. 영업이익에선 350위권 안에 든다. 영업이익률만 놓고 보면 17.7%로 1,2위를 다툰다. 코스콤은 전진하고 있다.

코스콤이 자리한 한국거래소 신관 11층엔 24시간 증권 거래 시스템을 점검하는 보안 관제 센터가 있다. 국내에서 증권 거래를 하고 있는 모든 증권회사의 IT시스템이 이 보안 관제 센터와 연동돼 있다. 직원들은 한시도 모니터 앞을 비울 수 없다. 코스콤은 혈관 확장에 매진하면서도 한편으론 혈관에 피가 잘 돌게 돌봐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래서 코스콤의 노동 강도는 세다. 그런데도 간혹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 그럴 때마다 거래자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늘어난다. 그렇지만 김광현 대표는 “시스템 안정성이야말로 코스콤의 제일 큰 책무”라고 말하면서도 직원들을 감싼다. 그는 “기계는 다운되게 마련이고 인간은 실수하게 마련”이라며 “실수는 미리 예방해야겠지만 일어났을 때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코스콤 역사상 처음 선임된 IT출신 민간 CEO다. 한국IBM과 LG CNS의 전신인 LG EDS를 거쳤다. 김 대표는 누구보다도 코스콤 현장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

지난 9월 14일 아침 김광현 대표는 임원진과 주간 회의를 가졌다. 여러 회의 안건 가운데 하나가 추석 휴일 문제였다. 김 대표는 임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징검다리 평일에 쉴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쉴 수 있으면 쉬란 뜻이었다. 그러나 임원들 누구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추석에도 해외 시장은 열린다. 국내 증시가 쉬는 휴일은 코스콤 입장에선 시스템을 수리하고 개량할 짧은 틈이다. 코스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 금융을 지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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