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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지친 몸 진한 추어탕 한 그릇을

더위에 지친 몸 진한 추어탕 한 그릇을

풍요로운 가을은 밥상도 ‘알토란’ 같다. 곡식·과일·채소·생선이 차고도 넘친다. 그래서 식보(食補)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가을에 식보를 잘하면 여름 더위에 시달린 몸을 추스를 수 있다. 긴 겨울을 탈 없이 지내기 위한 대비도 된다.



추어탕 추어탕의 추(鰍)는 가을(秋) 생선(魚)이란 뜻이다. 추어는 미꾸라지나 미꾸리를 가리킨다. 맛은 미꾸리가 낫고 성장은 미꾸라지가 빠르다. 미꾸라지는 겨울잠을 잔다. 겨울엔 살이 쏙 빠져 맛이 없다. 산란기를 앞둔 봄에 양껏 먹기 때문에 늦여름과 가을의 맛이 절정이다.

요즘은 양식 미꾸라지가 흔해져 계절에 상관없이 먹는 음식이지만 과거엔 여름철 더위와 일에 지친 농부에게 요긴한 음식이었다. 추어탕에 든 미꾸라지를 뼈째 먹으면 칼슘을 많이 섭취할 수 있다. 미꾸라지엔 칼슘의 체내 흡수를 도와주는 비타민 D도 풍부하다. 칼슘과 비타민 D는 뼈 건강을 위한 최고의 영양 파트너여서 추어탕은 골절·골다공증 예방에 이롭다. ‘칼슘의 왕’으로 통하는 우유를 마시면 설사·배앓이(유당 불내증)를 하는 사람에겐 추어탕이 대안이다.

단백질이 풍부해 원기 회복에도 그만이다. 병치레 뒤나 수술 전후 기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소화가 잘돼 위장질환 환자나 노인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한 그릇에 동물성 식품(미꾸라지나 미꾸리)과 식물성 식품(파·고사리·배추·우거지 등)이 고루 들어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성기능을 강화하는 것으로도 소문났다. 그래서 ‘서민의 정력제’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동의보감> 엔 ‘미꾸라지(추어)가 속을 보하고(補中) 설사를 멎게 한다(止泄)’고 나와 있다. 또 조선 고종 때의 명의 황필수의 <방약합편> 엔 ‘미꾸라지는 기를 더하고 주독(酒毒)을 풀고 당뇨병(소갈증)을 다스리며 위를 따뜻하게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

다. 추어탕은 경상도식·전라도식·서울식이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식은 미꾸라지를 삶아 얼망에 걸러내는 것은 비슷하나 부재료가 다르다. 경상도식엔 토란대·고사리·숙주나물, 전라도식엔 된장·들깨 즙이 사용된다. 서울식은 사골 삶아낸 국물에 두부·

버섯 등을 넣고 끓이며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으로 넣는 것이 특징이다. 미꾸라지에 한약재인 황기·인삼을 넣고 끓이면 ‘추어삼기탕’이 된다. 이 음식은 비장이나 위장이 허약해 기운이 없고 몸이 마른 사람의 ‘보약’이다.

▎가을이 제철인 전어구이

▎가을이 제철인 전어구이



버섯전골
주 재료인 버섯은 식이섬유가 풍부하면서 열량이 낮다. 100g당 30㎉가량이다. 따라서 비만·변비·당뇨병·고혈압 예방에 좋은 음식으로 평가된다. 특히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변비·대장암 예방을 돕는 것으로 알려진 베타글루칸(다당류의 일종) 함량이 높다. 버섯의 보양 효과는 선인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중국 고의서인 <신농본초경> 에는 ‘버섯은 생명을 보양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원기를 회복시키고 노화를 억제해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나와 있다. 표고·송이·느타리·석이·목이 등 여러 식용 버섯 가운데 가을을 대표하는 것은 송이다. 송이는 가을에만 잠깐 채취할 수 있는 귀한 버섯이다. 맛이 뛰어나고 산중고송(山中古松) 밑에서 자란 탓인지 솔 향이 일품이다. 우리 선조는 이 버섯을 편도에 염증이 생겨 목이 칼칼할 때 약으로 썼다. 숟가락으로 혀를 누르고, 말린 송이 가루를 양쪽 편도 부위에 골고루 뿌려준 뒤 30분쯤 뒤 물을 마시게 했다.

표고도 버섯전골의 단골 재료다. 동양요리에서 표고는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다. 표고는 환절기 감기 예방·치료에 유용하다. 감기 초기에 오한·열이 나면 표고 말린 것 8개(15g)에 물 세컵을 붓고, 반으로 줄 때까지 약한 불에 달인 뒤 하루 세 번 복용하도록 하는 민간요법이 있다. 버섯전골에 낙지까지 올리면 금상첨화다. ‘봄 조개, 여름 전복,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다. 낙지는 늦가을이 되면 살이 오르고 알이 차 맛이 기막히다.



장어백숙 ‘3월 거문도 조기는 7월 칠산 장어와 안 바꾼다’는 속담이 있다. 남해안 조기 맛이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해 비교 대상으로 7월(음력) 칠산 바다(서해안 영광 앞바다)에서 잡히는 장어를 등장시킨 속담이다. 장어백숙은 여색을 밝힌 연산군의 보양식으로 유명하다. 연산군은 껍질을 벗긴 장어를 통마늘과 함께 은근한 불로 3∼4시간 푹 끓여 낸 국물을 주로 마셨다.

장어백숙은 다음 다섯 가지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먼저 소금으로 비벼 물로 씻어둔 장어 머리와 뼈에 물·대파·양파·생강·마늘·청주를 넣고 1시간가량 끓여 육수를 얻는다 ▶육수를 체에 내려 건더기는 걸러내고 다시 끓인다 ▶끓은 육수에 얇게 썬 대추·마늘·수삼 등을 넣는다 ▶장어 살을 한입 크기로 썰어 끓는 육수에 넣고 다시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15분가량 더 끓인다 ▶소금 간을 하고 그릇에 담아 올린다. 장어백숙·구이 등 보양식품으로 즐기는 장어는 민물장어(뱀장어)와 바닷장어가 있다. 제주 천제연에 서식하는 무태장어, 전남 고창 선운사 입구 인천강에서 잡히는 풍천장어가 뱀장어다. 서식처의 수온 차가 심한 덕분에 풍천장어는 육질이 단단하다. 풍천은 지역명이 아니라 장어가 서해안의 조수 간만의 차이로 발생한 바람을 하천에 몰고온다는 의미다.

장어는 늦가을에 잡은 것이 맛·영양 면에서 최고다. 강에서 3~4년 자란 장어는 가을에 산란을 위한 원거리 바다 여행을 떠난다. 수천 ㎞를 헤엄쳐 가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티기 위해 몸에 각종 영양소를 비축한다. 이런 역동성 때문에 예로부터 장어는 스태미나 음식으로 통했다. 영양적으론 고열량(100g당 223㎉)·고단백질(14.1g)·고지방(17.1g) 식품이다. 열량은 쇠고기 등심과 비슷하다. 표면의 미끈미끈한 물질(무코 단백질)은 여름에 지친 위장 점막을 보호하고 소화·흡수를 도우며 입맛을 되살린다. 장어 전체 지방의 4분의 3가량은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 지방이다. 비타민 A가 육류의 200배, 일반 생선의 50배나 들어 있다.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야맹증 등 시력장애가 생기기 쉽고 뼈·치아 발육에 악영향을 미친다. 감기도 잘 든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 엔 “맛이 달콤하고 짙으며 사람에게 이롭다. 오래 설사하는 사람이 (장어로) 죽을 끓여 먹으면 이내 낫는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몸이 차거나 소화기가 약해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또 장어를 먹은 뒤 복숭아를 먹으면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장어 피를 정력제로 오인해 소주에 섞어 마시는 사람도 있는데 효과가 입증되진 않았다.
▎아욱국

▎아욱국



전어
한입에 먹기 ‘가을에 전어를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 ‘봄멸치, 가을 전어’ 등은 모두 가을 전어 맛을 예찬하는 말이다. 전어는 산란기인 봄·여름엔 맛이 별로 지만 산란 뒤 여름에 충분한 먹이를 먹으면서 맛이 오른다. 가을에 잡히는 전어는 살이 두툼해져 씹히는 맛이 있고 비린내가 적으며 뼈가 무르고 맛이 고소하다. 절정은 11월이다. 가을 전어 맛의 비밀은 풍부한 지방에 있다. 가을에 잡은 전어의 지방 함량은 봄의 3배다. ‘가을 전어 머리엔 깨가 한 되’란 구전은 이래서 나왔다. 다행히도 전어 지방의 대부분은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 지방이다. 가시가 많은 게 흠이지만 두툼하게 회를 썰어 뼈째 먹으면 훌륭한 칼슘(100g당 210㎎) 공급원이다. 칼슘 함량이 같은 무게 우유의 두 배다. 요리 전 미리 쌀뜨물이나 소금물에 5분쯤 담가 놓거나 술·식초 등을 넣고 조리하면 비린내가 가시고 살이 단단해진다. 가을전어는 꼬리를 잡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꿀꺽 삼켜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한방에선 전어·멸치 등 통째로 먹을 수 있는 생선을 관절 건강에 이로운 식품으로 친다. 통째로 먹으면 콜라겐을 몽땅 섭취할 수 있어서다.



아욱국
‘가을 아욱국은 막내 사위만 준다’ ‘가을 아욱국은 제 계집도 내쫓고 먹는다’ ‘가을 아욱국은 사립문 닫고 먹는다’ 같은 속담이 있을 정도로 아욱국은 우리 국민의 일상에 밀착된 음식이다. 아욱은 주로 연한 줄기와 잎을 먹는다. 맛은 서리가 내리기 전의 것이 유난히 좋다. 가을엔 배추속대와 함께 된장국에 넣어 먹는 채소다. 서양인이 최고의 웰빙 채소 중 하나로 치는 시금치보다 단백질·칼슘 함량이 두 배에 달한다. 선조들이 아욱을 ‘채소의 왕’이라고 부른 것은 이래서다. 아욱을 파루초(破樓草), 상추를 월강초(越江草)라고 부른다. 유래가 재미있다. 살림이 곤궁해 미역을 구할 형편이 못 된 산모가 대신 아욱과 상추로 국을 끓여 먹었는데, 아욱은 산모·아기에게 이로웠고 상추는 해로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욱은 더 심기 위해 다락(樓)을 한 채 허물었고, 상추는 강 건너 멀리 심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아욱국을 끓이는 법은 ▶아욱 줄기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연한 것은 그대로 쓰고 굵은 것은 잎과 함께 바가지에 넣어 으깬다 ▶잎과 줄기를 물로 씻어 푸른 물을 빼고 소쿠리에 건진다 ▶쇠고기는 얇게 썰어 양념하고 파도 채 썰어 놓는다 ▶쌀뜨물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걸러서 냄비에 붓고 쇠고기와 파를 넣고 끓이다가 다시 아욱을 넣고 끓인다. 쇠고기 대신 수염과 발을 떼어낸 마른 보리새우를 넣어도 좋다.

▎토란국

▎토란국

선조들은 가을에 먹는 아욱국은 백년손님이라는 사위에게, 그것도 막내 사위에게만 먹일 만큼 특별히 맛이 있고 몸에 좋다고 여겼다. “아욱으로 국을 끓여 삼 년을 먹으면 외짝 문으로는 못 들어간다”는 옛말도 있다. 상식하면 몸이 불어 좁은 문으로 못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전반적으로 건강이 나아진다는 것이지 살이 찐다는 것은 아니다. 아욱국은 열량이 낮아(1인분 39㎉) 비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토란국
한가위의 대표 국물 음식으로 쇠고기 양지머리 육수에 토란을 넣고 끓인다. 토란탕·토란곰국이라고도 한다. 조리법도 간단하다. 소금이 든 쌀뜨물에 껍질 벗긴 토란을 살짝 삶은 뒤 찬 물에 헹궈둔다. 이어서 그릇에 골패 모양으로 썬 다시마를 담은 뒤 쇠고기 양지머리 국물을 붓고 끓이다가 방금 헹궈둔 토란을 넣고 끓이면 완성된다. 토란의 녹말(전분)은 크기가 작아 소

화가 잘된다. 따라서 송편, 고기, 기름진 음식 등을 과식해 배탈나기 쉬운 한가위에 토란국을 먹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한방에선 토란국이 배 속의 열을 내리고 위와 장 운동을 원활하게 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주재료인 토란(土卵)은 추석부터 초겨울까지가 제철이다. 생김새가 계란 같아서 토란, 잎이 연잎처럼 퍼졌다 하여 토련(土蓮)이라고도 불린다. 토란의 영양소 중 두드러진 것은 칼륨이다. 칼륨은 혈압 조절을 돕는 미네랄이므로 토란탕은 고혈압 환자에게 권할 만하다. 토란에 함유된 식이섬유는 변비·대장암을 예방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멜라토닌은 우유·호두 등에도 들어 있는 천연의 수면 물질이다.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토란 음식을 즐긴 것은 우리 조상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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