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따러 서울로 유학 올 겁니다
MBA 따러 서울로 유학 올 겁니다
성균관대 SKK GSB의 로버트 클렘코스키 학장은 한국에 MBA를 가르치러 온 첫 번째 교수다. 2004년부터 한국에서 여러 제자를 키웠다. 그는 한국 MBA 발전에 기여한 선구자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MBA 프로그램을 시작한 KAIST 경영대학 수장도 외국인이다. 지난해부터 KAIST 경영대를 이끌고 있는 라비 쿠마르 학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한파다. 1991년 연구를 위해 한국을 찾은 것을 계기로 한국 주요 기업을 분석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MBA에 관한 주제로 대담을 요청하자 이들은 ‘한국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지 환영’이라며 흔쾌히 응했다.
한국에서 MBA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5년이 지났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부족한 점도 많다. 한국 MBA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클렘코스키 한국에서 가장 먼저 MBA를 시작한 KAIST에 계신 쿠마르 학장님께서 먼저 한 말씀 해주시지요.
쿠마르 발언권 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먼저 몇 가지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글로벌 레벨이 무엇일까요? 우수한 학생, 최고의 교수진, 글로벌 기업의 후원? 이런 요소가 있으면 글로벌 MBA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인정하는 대학의 명성은 어떻게 쌓아야 할까요? 수많은 질문에 차례로 답하다 보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시장이 변할 때마다 대학 프로그램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앞서 말한 조건을 유기적으로 충족하며 경쟁력 있는 학생을 배출해야 합니다. 한국 MBA가 여기에 도달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분야에서 발전이 계속돼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인정하는 하버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실력을 키웠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를 고쳐 나가며 명문으로 자리 잡았지요. 한국 MBA 프로그램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두 가지를 찍어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클렘코스키 IMD, 인시아드 같은 유럽 명문 MBA의 역사는 불과 30년에 불과합니다. 자국을 대표하는 MBA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유럽 각국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한국에서 참고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동문회의 활동을 들고 싶습니다. 한국은 선후배 문화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MBA도 이를 자연스럽게 활용해야 합니다. 선배들이 학교 발전을 위해 자연스럽게 기부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한국 MBA가 교육 내용에서는 글로벌 톱 스쿨과 거의 같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리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우리 학교는 미국 MIT MBA와 동일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수 수준, 강의 내용, 교육 과정이 거의 같지만 비용은 훨씬 적게 들어갑니다. 굳이 미국까지 가 MBA를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외에서 한국으로 MBA 유학을 오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늘어날 것이고 이는 프로그램의 발전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쿠마르 맞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에서 인정 받아야 합니다. 외국 MBA 못지않은 교육이 가능하다면 굳이 외국에 나갈 필요가 없겠지요. 기업에서 한국 MBA 출신자의 능력을 인정한다면 변화가 빨라질 것 같습니다. 대학이 기업과 더 많은 협력을 해야 합니다. 장학 제도의 보완도 필요하고요. 더 많은 기업이 프로그램을 인정할수록 더 우수한 학생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학장이다 보니 기업을 찾아다니며 이런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클렘코스키 한국 학생은 누구와도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성실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합니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한국 교육 제도의 특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MBA 수업은 토론 형식이 많습니다. 여기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수업 중 아무나 지적해 발표를 시키려 하면 다른 나라 학생에 비해 훨씬 긴장합니
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 비중이 큰 편이지요.
쿠마르 동의합니다. 한국 학생은 의사 표현이 약한 단점이 있습니다. 미국 학생은 수업 중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손 들고 물어봅니다. 하지만 한국 학생은 궁금한 점이 생기는 순간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합니다. 눈치 보는 게 눈에 보이죠.
클렘코스키 영어 실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잘하는 만큼 수업이 쉬워질 것입니다. GMAT 시험 공부도 권합니다. 특히 미국대학과 공동학위를 생각한다면 필수입니다. GMAT 준비 자체도 MBA에서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쿠마르 왜 MBA를 선택했는지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어야 해요. MBA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 학교 프로그램은 어떻게 활용할지, 목표까지 어떤 경로를 거쳐 도달할지 생각을 멈추면 안 됩니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나갈지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 하죠.
두 사람은 모두 미국 명문대 교수 출신이다. 성공적인 삶을 버리고 한국까지 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유는 뭘까. 단지 친한파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클렘코스키 2002년 인디애나대에 성균관대 총장님이 찾아왔습니다. 성균관대에서 준비하는 MBA를 맡아 달라 하시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대학 총장이 교수 초빙을 위해 직접 찾아올 줄 몰랐습니다. 대학 재단을 담당하는 삼성그룹은 재정적인 면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렸지요. 한국 최고의 인재를 키우는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생기더군요.
클렘코스키 학장의 계약 기간은 4년이었다. 성균관대는 다시 한번 4년의 임기를 부탁했다. 그는 자신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에서 응했다. 순식간에 7년이 지났다는 클렘코스키 학장은 한국 생활에 만족했다. 다시 2003년으로 돌아간다 해도 한국행을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성균관대와 삼성은 나에게 약속했던 모든 것을 지켰다”며 “그 덕에 한국에 올 때 목표로 했던 일을 거의 다 이뤘다”며 미소 지었다.
쿠마르 2008년 안식년을 보낼 학교로 인하대를 선택했습니다. 한국 대기업을 연구하기에 적합한 대학이었습니다. 연구 활동을 하던 중 서남표 KAIST 총장께서 차 한잔 어떠냐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만나러 간 자리에서 MBA 학장 자리를 제의 받았습니다. KAIST는 내가 가르치던 USC와 교환학생 프로그램 덕에 알고 있던 학교였습니다. 한국의 MIT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대기업에 관심이 있던 중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제의가 왔기에 기쁜 마음으로 응했습니다.
쿠마르 학장은 USC의 마셜 경영대학이 세계적 MBA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USC 경영학과를 졸업한 많은 한국 학생과 교류하게 됐다. 그가 인하대에서 안식년을 보낸 배경에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USC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쿠마르 학장은 “한국 오는 길에 대한항공에서 비즈니스 티켓을 제공해줬다”며 “이런 점까지 배려해주는 한국 문화에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 다음 더욱 인상적인 경험이 시작됐다고 한다. 교육자를 존중해주는 한국 문화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쿠마르 미국에 있을 때 교수실로 찾아오는 학생은 대부분 학점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내 점수가 왜 이 정도냐’는 항의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작은 선물을 들고 찾아와서는 가르침에 감사하다는 학생이 대부분이었지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클렘코스키 맞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당황했던 적이 많았아요. CEO 모임에 참석했는데, 저를 상석에 모시더군요.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학자를 얼마나 존중해주는지 자주 느끼곤 합니다.
쿠마르 만도라는 기업에 강연을 위해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임원이 모인 대형 회의실 중앙에 회장이 앉아 있었지요. 나를 보자 갑자기 회장이 일어나더니 자신의 자리를 권하더군요.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한국에서 교수 하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교육에 대한 정부 규제가 많은 편이다. 대학 입시부터 졸업까지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런 점들이 외국인 학장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쿠마르 학교마다 티오가 있더군요. 학생 수를 대학이 아닌 정부가 정해주는 문화가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클렘코스키 정원을 늘리기 위해 매년 많은 노력 기울였습니다. 단지 MBA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로스쿨을 보면 어떤 학교는 120명 정원이고, 다른 곳은 40명이었습니다. 어떤 의대는 매년 24명의 학생만 선발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학교에 무려 400명의 교수가 재직 중이라는 것이지요. 왜 이런 제도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학생 수가 너무 적으면 학교도 투자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어떻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쿠마르 정부 지원금에 관해 할 말이 있습니다. 지원금을 주는 과정에서 정부가 학교 정책에 영향을 주곤 합니다. 미국도 시스템은 비슷합니다. 정부 지원금을 받는 대신 사용 내역과 남은 자금의 운용 계획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보고서가 부실하면 자금이 줄어들 수 있지요. 한국은 학교에 정부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문화가 있습니다. 학장이 공무원보다 학교를 잘 알 텐데, 왜 제가 할 일을 정부에서 지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KAIST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학교다. 쿠마르 학장은 박 전 대통령을 “굉장히 스마트한 CEO”라고 표현하며 “그분은 큰 그림을 그린 다음 세부적 요소는 실무진에게 맡겼다”고 강조했다. 일을 부실하게 하면 책임을 물을 일이지 전문가에게 사전에 지나친 주문을 하는 일은 상식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클렘코스키 제 생각에 한국은 상위 교육기관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다 보니 정부가 나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원은 유한한데, 경쟁은 치열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쿠마르 창의적 사고만이 살길이지요. 대학도 마찬가지겠지요. 더욱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을 펼치는 대학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 MBA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래서 우수한 학생들은 가급적 미국 등으로 유학을 떠나려 한다. 인재가 떠나게 되면 우리나라 MBA 수준이 그만큼 떨어지고 미래도 불투명한 것은 아닐까. 외국인 학장들은 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클렘코스키 먼저 한국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도전과 성취가 이어지는 역동적인 7년을 보냈습니다. 환상적인 경험이었지요. 한국 대기업들이 글로벌 톱 브랜드로 성장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봤습니다. 대단한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은 스스로를 낮춰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국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와서 보니까 이해가 됩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 왔으니 성공했다는 것을요. 지금 미국에서 전자제품 사러 가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는 삼성과 LG 제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쿠마르 그것도 프리미엄 제품군으로 분류돼 있죠. 저는 한국 자동차 산업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난 10년 사이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이룬 업적을 정작 한국 분들은 이해 못 하더군요. 클렘코스키 한국 MBA의 미래는 밝습니다. 글로벌 기업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금융은 투명해졌고, 제조업 전반에 걸쳐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들이 학교로 찾아옵니다.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학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명문 대학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MBA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MBA가 성장하기에 최고의 조건입니다. 세계에서 존경 받는 MBA 프로그램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쿠마르 한국인은 열정적인 민족입니다. 해외 대학 교수들은 대부분 굉장히 이성적입니다. 한국에는 이성과 열정 둘 다 겸비한 교수가 참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화끈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경쟁력 있는 문화는 학문적 성취로 이어질 것입니다. 한국은 모든 것이 빠른 나라입니다. 이런 노력이 계속된다면 머잖아 한국 MBA를 찾아오는 외국인 학생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글로벌 리더가 KAIST를 선택하도록 저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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