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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老患)은 나라가 구제

노환(老患)은 나라가 구제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2008년 출범해 이제 2년여 지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자리 잡아 가고 있을까. 또 이 제도를 장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일보 출신 은퇴 언론인으로 구성된 ‘6070리포터팀’이 현장을 돌아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v2008년 7월 1일. 우리나라에 또 하나의 혁명이 시작된 날이다. 이날을 기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시행됐다. 오랜 세월 자녀의 몫이었던 치매와 중풍 같은 노인성 질환에 걸린 부모 돌보기가 공공(公共)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나라가 자녀들을 대신해 효도를 하는 셈이다. 그래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효자·효녀 보험’이라고 불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2010년 8월 현재 우리나라 노인 인구 535만 명 가운데 약 6%인 31만 명이 장기요양 인정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27만 명이 요양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노인 20명 중 1명이 요양 서비스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노인요양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45%가 80세 이상이며, 치매·중풍 질환자가 전체의 54%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여성이 71%나 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치매·중풍·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병과 노화로 거동이 불편해져 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 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보험료에 장기요양보험료율을 곱한 금액을 내면 된다. 이 보험 서비스 신청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에 하면 된다. 방문조사를 거쳐 등급이 판정되면 그 등급에 따라 장기요양기관에 입소하거나 집에서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노인요양시설에서 지내게 되면 비용의 20%를 본인이 부담하고, 재가(在家) 요양 서비스를 받으면 비용의 15%를 본인이 낸다.



간병·치료비 월 300만원에서 50만원으로노인장기요양보험은 혼자 거동하기 힘든 병자를 둔 가정과 가족을 질곡(桎梏)에서 해방시켜 줬다. 병자를 수발하던 자녀와 배우자가 정신적·육체적·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경제·사회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병자 자신도 불안과 자책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마음이 됐다. 가정은 웃음을 되찾았고 가족은 활력을 회복했다. ‘가정과 가족의 재탄생’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한국인의 생활을 어떻게 바꿨나. 우선 가정과 가족의 삶의 질을 높였다.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김찬우 교수팀이 요양 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의 가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인이 장기요양 급여를 받은 이후 96%가 경제활동의 기회가 증가했으며 76%는 사회활동이 늘어났다고 응답했다. 또 85%는 신체적 부담이, 92%는 심리적 부담이 현저히 줄었다고 답했다. 이들 가정과 가족의 삶의 질이 높아졌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또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2008년 7월 이 법 시행 당시 장기요양기관 종사자는 3만7684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26만 명으로 늘었다(2010년 8월 말 기준). 장기요양기관 종사자 중 요양보호사가 22만 명, 교육기관 종사자가 4만 명에 이른다. 제도 시행 2년 만에 20만 명 이상의 고용 창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광주광역시 광주보훈요양원의 경우 입소 인원 120명에 요양보호사 110명이 일하고 있다. 요양보호사 1인이 환자 1.5인 이하를 맡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 요양 서비스의 질적 개선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제도는 아울러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법 도입 이전에는 노인장기요양 사업의 부가가치는 5200억~1조2700억원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10년의 경우 부가가치는 3조7500억~9조1700억원으로 추산된다. 병자 수발의 질곡에서 벗어난 가정과 가족의 기회비용을 고스란히 부가가치 창출로 역산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리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병환을 앓는 노부모를 오랜 기간 정성껏 봉양하기는 더욱 힘들다. 이 어려움이 현대사회에서는 더 가중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은 의료비와 간병비 부담에 허리가 휜다. 가정은 정신적·경제적으로 피폐해지게 마련이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은 가정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우리 가족에게 구원의 불빛”이라고 말한다. 경남 울주의 한 보건진료소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변묘숙(47)씨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홍보대사를 자임한다.

변씨는 “쓰러진 아버지(82)의 병원비와 간병비로 월 300만원 들었는데, 노인장기요양보험 덕분에 간병비 부담에서 벗어났다”고 들려줬다. 변씨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어지간한 치료에도 적용돼 의료비 부담이 월 50만원으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변씨의 부친은 2008년 1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변씨를 포함한 자녀 3남1녀는 처음엔 “우리가 힘을 합쳐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자”고 약속했다. 처음엔 그럭저럭 버텨 나갔다. 하지만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병원비와 간병비 300만원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이들에게 감당하기 버거웠다.

월 200만원에 이르는 간병비를 줄이기 위해 이들은 돌아가며 시골집을 찾아 아버지를 보살폈다. 그러다 보니 회사 일에 전념하기 힘들어졌다. 네 남매는 차츰 지쳐갔다. 네 남매가 만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변씨는 “만약 이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면 아버지와 팔순을 넘긴 어머니, 그리고 나를 포함한 3남1녀의 가정은 지금쯤 경제적으로 파탄의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제도가 자리 잡으면 병환을 앓는 노부모를 모시는 자녀의 걱정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요양보호사 가운데엔 가정에서 아픈 노부모를 장기간 모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겪어 봤기 때문에 다른 가정에 힘이 되고자 나선 사람들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김은미(42) 요양보호사가 그런 경우다. 그는 만성기관지염과 폐렴으로 고생한 시아버지 병수발을 11년 동안이나 했다. 시아버지는 병세가 악화된 마지막 3년 동안에는 중환자실을 20번 이상 드나들었다. 시아버지는 6년 전 세상을 떠났다.



재활 서비스도 혜택 대상에 포함해야김씨는 2008년 신문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과 관련한 기사를 읽었다. 시아버지를 간호하던 일이 떠올랐다. 여기에 중환자실을 오가면서 본, 간병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병마와 싸우던 노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과거 자신처럼 힘들게 지내는 가정에 도움을 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마침 두 아들이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교육비 등이 더 필요해진 때였다. 그는 부산 한 여자대학의 요양보호사교육원에 등록해 한 달여 만에 자격증을 받았다.

김씨는 현재 이창호(72·가명) 할아버지를 방문해 수발한다. 이 할아버지는 10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시각장애 1급인 데다 약물 쇼크 등으로 음식물을 입으로 섭취할 수 없는 상태다. 김씨는 오전 9시 이 할아버지 집을 방문해 4시간 동안 수발한다. 김씨는 큰 솥에 물을 끓여 목욕을 시켜드린 다음 위액이 새어 나온 위관 연결 부위를 소독한다. 그 다음 휠체어에 할아버지를 앉히고, 마루로 나와 10분 정도 근육 풀기 운동을 한다. 콩을 갈아 할아버지 점심도 준비한다. 식사는 튜브를 통해 드린다. 방문 수발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은 김은미씨처럼 요양보호사가 직접 노인들을 찾아가 생활을 돌봐주는 ‘재가급여’와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시설급여’로 나뉜다. 재가급여에는 방문목욕, 방문간호, 휠체어 등 보장구 제공·대여 등이 있다. 시설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장기요양기관은 약 3500곳이고, 여기에서 8만5700여 명의 노인이 생활한다.

재가급여 대상자를 복지센터로 모시고 와 돌봐드리는 서비스도 있다. 사회복지사 겸 요양보호사인 김현숙(35)씨는 매일 아침 요양 대상 노인들의 집을 방문한다. 한 분씩 차에 태워 부산 초읍동에 있는 소망노인복지센터로 모시고 온다. 복지센터에 도착하면 우선 전날 숙직한 요양보호사로부터 센터 내에서 기숙하고 있는 노인들의 신체·행동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분석해 생활처방전을 만들고 개인별 케어에 들어간다. 장소만 다를 뿐 수발 내용은 재가 서비스와 비슷하다. 목욕을 시킨 뒤 기저귀를 교환하거나 대소변을 받아내고 간단한 치매 예방 학습을 실시한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실습차 요양원에 자주 드나든 것이 김씨의 ‘노인 공경’으로 이어졌다. 결혼 후 미술치료학을 다시 공부하면서 요양보호사 자격도 취득했다.

전호석 소망복지센터원장은 “요양보호사들의 희생정신과 노인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요양보험제도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면서 요양보호사는 ‘요양보험의 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와 역할의 중요도에 비해 요양호보사의 처우는 매우 박한 수준이다. 김은미씨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즐겁다”고 말했다. 김현숙씨는 “어려운 분을 돕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단순히 돈벌이로만 생각한다면 이런 일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돼야”그러나 요양보호사들은 입을 모아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대우가 조금만 개선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사회복지사를 겸하고 있는 김현숙씨는 한 달에 10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재가 서비스를 하는 김은미씨의 한 달 보수는 6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문제는 보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돌보던 환자가 사망하거나 또 다른 돌발적 사고로 부상을 당하는 경우, 혹은 시간별로 이동하는 일이 잦아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도 대다수 요양보호사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한편 정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육성한다는 방침을 내놓자 요양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 잇따라 설립됐다. 휴먼케어도 이런 사회적 기업 가운데 하나다. 송유정(33) 대표는 2001년 재가 간병사업을 주 업무로 하는 휴먼케어를 설립했다. 2008년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시행과 동시에 사회적 기업으로 인가 받았다.

휴먼케어는 현재 5명의 관리직과 현장 직원 100 여 명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역시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송 대표는 “지금 받는 수가가 시간당 6000원으로 월 100만원에 불과하다”며 “이 정도로는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형선(의료정책·통계센터장) 연세대 교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요양보호사의 자질 향상과 일할 의욕 고취 외에 재활 서비스 포함, 요양기관 평가체계 구축, 주치의 제도로 의료 서비스 심화 등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그러나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피폐했던 가정이 되살아나고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으며 실버산업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사회·경제적 성과를 극대화하면서 양질의 서비스를 챙겨 사회보장제도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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