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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승자, ‘저주’ 안 걸리려면

현대건설 승자, ‘저주’ 안 걸리려면

M&A(인수합병)는 결과가 아닌 수단이다. 향후 얼마만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M&A를 결과로 오판해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을 때 뒤따르는 게 ‘승자의 저주’다.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반면교사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현대건설이라는 알짜배기 기업이 매물로 나왔다. 인수를 놓고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첨예하게 맞붙었다. 명분 싸움도, 시장 논리도 다 좋다. 그러나 현대건설의 인수로 또 다른 승자의 저주가 나와서는 안 된다. 현대건설이 ‘누구’에게 가는가보다 합병 후 ‘어떻게’ 시너지를 낼 것이냐에 집중해야 한다.



◇‘승자의 저주’ 왜 반복되나=1999년 8월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건설부문이 대우건설로 분할됐다. 2006년 11월 금호그룹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한다. 대우건설 지분 72.1%를 2006년 6월 6일 최종인수후보자 선정 시 주가인 1만8000원보다 비싼 주당 2만6262원에 사들인다. 경영권 인수 프리미엄치고는 혹독했다. 총 인수금액은 6조4000억원. 금호 계열사가 2조9000억원을 자체 조달했고 나머지 지분 39.6%는 재무적투자자가 모여 매입했다.



과도한 자금조달은 위험

2008년 3월 금호그룹은 대한통운 지분 50%+1주를 4조1040억원에 인수했다. 매각 당시 대한통운의 자산가치는 약 1조5000억원. 이 두 번의 대형 M&A로 금호그룹은 몸집을 불렸지만 영업이익은 급감했다. 2006년 6288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09년 2195억원, 2010년 1분기 583억원으로 떨어졌다.

2009년 미국발 신용위기 여파로 대우건설 주가는 1만3000원대로 주저앉는다. 금호는 매입 당시 주가(3만2510원)와의 차이인 4조원가량을 물어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인수 후 3년이 지나 주가가 떨어지면 매입 당시 주가로 금호그룹이 이를 되사겠다는 풋백옵션을 걸고 재무적투자자를 구했기 때문이다. 2009년 6월 금호는 대우건설을 다시 매물로 내놓게 되고, 그룹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과도한 차입으로 M&A를 추진해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한화그룹은 2008년 10월 대우조선해양(구 대우중공업) 인수전에서 포스코, GS 등 경쟁자를 따돌리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 한화는 당시 6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대한생명 주식, 인천 부동산, 장교동 사옥 빌딩, 갤러리아백화점, 한화리조트 등 알짜배기 자산을 매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금이 부족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주 채권자인 산업은행에 인수대금 분할납입 안을 제시했지만 거절 당했다. 인수 협상은 결렬된다. 한화는 3150억원의 이행보증금을 놓고 소송 중이다.

두산그룹이 미국의 밥캣을 인수하면서 알짜배기 회사를 팔아야 했던 아픈 기억도 있다. 두산은 유리병 제조업체인 두산테크팩을 팔고, 소주 ‘처음처럼’을 생산하는 두산주류BG도 롯데그룹에 팔았다.

2004년 쌍용자동차 채권단은 지분 48.9%를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5억 달러. 상하이자동차의 인수 목적이 기술이전이라는 시장의 지적에도 주당 매각가격을 높게 써낸 곳에 쌍용자동차를 넘겨줬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상하이자동차는 투자 문제가 거론되면 국내 금융회사의 돈을 빌려 투자금으로 전환하는 행태를 보이고 기술유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자동차가 유동성 문제에 휩싸이자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발을 뺐다.

승자가 저주받은 사례들이다. 현대건설 인수전도 자칫 이런 전례를 따르지는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 재무적 건전성, 역량 등 기타 요소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가격 중심으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면 제2의 대우건설, 쌍용차가 나오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채권단은 가격뿐 아니라 비계량 지표도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M&A는 기업 규모를 키우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명확한 비전이나 전략적 시너지 효과를 제시하지 못한 채 과도한 자금조달만을 통한 무분별한 M&A는 승자의 저주로 돌아올 수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기고 보자는 식의 ‘베팅’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입증할 만한 전략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 vs 현대그룹=현대건설은 워크아웃 기업에서 국내 1위 건설기업으로 회생한 기업이다. 해외시장 인지도나 원자력발전소 시공능력 등 기술력도 세계적 수준이다. 그런 만큼 이번 인수전의 핵심은 현대건설의 발전 가능성이 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현대그룹은 약점으로 지적돼온 자금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10월 28일 이사회를 열고 3967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기로 했다. 발행주식은 보통주 1020만 주로 전체의 7%를 넘는다. 이런 대규모 유상증자는 4년 만이다. 또 계열사인 현대부산신항만 주식도 절반을 처분키로 했다. 다음달 18일까지 이를 유동화 전문회사에 2000억원가량에 매각할 계획이다. 또 현대상선 자사주 신탁계약을 4건 해지해 3788억원의 현금도 조달할 예정이다.

총 9755억원가량의 추가 유동성 확보는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실탄 확보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증권도 지난 2월 3년 만기 공모사채를 발행해 2000억원을 마련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7월 12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데 이어 다음달 1000억원을 추가 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현대그룹이 확보한 현금성 자산은 약 2조5000억원 규모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의 유상증자와 부산신항만 터미널 지분 매각은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재 3조5000억~4조원이 될 것으로 보이는 현대건설 인수자금의 부족분을 외국계 전략적투자자를 유치해 해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대그룹의 전략적투자자인 독일 M+W그룹의 역할이 어느 정도가 될지에 따라 베팅 금액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주요 계열사의 현금성 자산이 12조원에 달한다. 유동성이 풍부해 신규 회사채 발행도 하지 않는다. 현대차 한 관계자는 “현재 내부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만 기업 가치에 상응하는 수준의 인수가격이 돼야 (인수)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가격 외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현대건설을 2020년 수주 120조원, 매출 55조원대 종합엔지니어링 업체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수출기업인 현대차그룹의 특성인 글로벌에 방점을 찍은 이 청사진에는 현대건설 사업부문을 장기적으로 4개 분야로 분류해 그룹 내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와 철강, 건설로 이어지는 미래 3대 성장축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전기차 같은 친환경차, 밀폐형 원료처리 시스템 등 친환경 제철, 친환경빌딩과 원전 등 그린시티를 주도하는 건설로 에코 밸류 체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악순환의 사슬 끊으려면=현대건설 채권단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번에도 인수가격이 가장 높은 곳의 손을 들어줘서는 치열한 인수전→높은 인수가격→핵심 자산 매각→기업 가치 하락이라는 승자의 저주 악순환을 끊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M&A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수가격이다. 그러나 인수업체의 자금조달 능력과 인수 후 경영 비전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단순히 이기기 위해 여력이 되지 않거나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데도 무분별한 가격 경쟁을 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 채권단도 비가격적 요소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지만 자금 회수 등 문제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른바 현대건설의 적정 인수가격은 4조원 안팎이라지만 일부에선 그 이상을 언급하기도 한다”며 “치킨게임식 인수가격 부풀리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재무적·전략적투자자와 같은 네트워크가 제대로 기능할지도 따져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금호그룹이 재무적투자자에 풋백옵션을 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그룹이 위기에 처했던 상황에서 교훈을 얻자는 주장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우건설 재입찰 당시 참여했던 한 해외기업 컨소시엄을 두고 유령 회사가 아니냐는 말까지 있었다”며 “재무적투자자나 전략적투자자가 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채권단이 보유한 현대건설 주식은 3887만9000주로 전체 지분의 34.88%다. 여기에 경영권 인수 프리미엄을 더한다 해도 매각가격은 3조5000억~4조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 인수가격이 이 선에서 과연 얼마나 더 뛸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다. 다만 과도한 베팅 경쟁으로 가격이 높아지면 질수록 인수에 성공한 뒤 후폭풍도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불과 2~3년 사이에도 크고 작은 승자의 저주 예를 얼마든지 들 수 있다. 한 증권사 사장은 “현대건설이 이 저주의 사슬을 끊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정연 기자 ja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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