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도 패션 유행처럼 돌고돈다
“미국인들은 동물성 식품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한다. 미국인들이 프랑스인들처럼 육류 섭취를 줄인다면 건강도 좋아지고 식비도 줄어든다.”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뉴욕타임스의 일요일판)의 푸드 섹션에 실린 음식 칼럼니스트 마이클 폴런의 글이 아니다. 1856년 한 독자가 이 신문에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문제의 독자는 미국인들이 아침 식탁에 베이컨과 달걀 대신 프랑스인들처럼 카페올레(커피에 끓인 우유를 섞은 음료)를 올리는 편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음식 관련 글에는 언제나 과거를 그리는 향수가 버무려진다. 하지만 음식의 유행이란 측면에서 우리는 문화적 집단 건망증에 거듭 시달리는지도 모른다. 푸드 네트워크 등 음식 전문 방송, 분자미식학(음식 재료의 맛 성분을 분자 단위로 분석하는 방법), 절대채식주의자(vegan), 로커보어(locavore: 환경을 생각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나는 식품만 섭취하는 사람), 방목 닭, 비만세(비만을 유발하는 음식에 부과하는 세금). 최근 미국 음식 문화에 나타난 현상을 보면 사람들이 음식에 보이는 집착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강해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확실히 요즘은 사람들의 미각이 더 섬세해지고, 조리법이 더 복잡해졌으며, 건강과 영양을 생각하는 인식 수준도 더 높아졌다. 하지만 음식에 집착해 온 역사는 스패니시 크림(우유와 달걀, 젤라틴 등을 넣어 만든 스페인식 디저트)만큼이나 오래됐다. 아직 맛본 적이 없다고? 이 디저트는 1878년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끈 뒤 바라리안 크림, 포 드 크렘, 크렘 브륄레로 재해석됐으며, 지난 5월엔 푸드 네트워크의 ‘에브리데이 이탤리언’ 프로그램에서 달걀을 넣지 않은 파나 코타로 소개됐다.
이 책이 줄리아 차일드나 앨리스 워터스의 요리책과 다른 점은 여기 실린 요리법들이 공적인 성격을 띠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 매거진 초창기에 소개된 요리법은 모두 독자가 제공했다. 독자가 자신의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의 요리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그리고 자랑하는)방법이었다.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영역에 속했던 요리가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독자들은 미국 구석구석의 가정 주방을 엿보게 됐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필진이 신문에 소개할 요리법을 직접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사(時事)와 관련이 있는 요리법을 소개하곤 했다. 애들레이 스티븐슨(1950년대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미국 정치인)의 요리사가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과 우 탄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새우와 아티초크를 넣은 냄비요리’를 대접한 소식이 보도된 뒤엔 그 요리법이 소개됐다. 별로 맛이 없을 듯한 평범한 이름이었지만 독자들은 요리법을 궁금해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당시에 유행하는 음식을 소개했을 뿐 아니라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 독자는 언젠가 ‘커리를 넣은 주키니 호박 찬 수프’가 이 신문에 소개된 후 한 달 내내 미국 각지에서 열린 수많은 디너파티에서 이 수프가 나왔다고 회상했다.
“음식은 패션과 같다”고 헤서는 말했다. “사람들은 최신 유행 패션을 동경하듯 유행하는 음식을 동경한다. 이는 미국 음식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헤서는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자택에서 1400개의 요리법을 직접 시험했다. 그녀는 매일 퇴근 후 조수와 함께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가족에게 먹도록 했다. ‘줄리 & 줄리아’에서 줄리가 했던 방식이다. 1980년대에 인기가 높았던 뉴욕 맨해튼의 르 시르크 식당은 스파게티 프리마베라(신선한 야채를 곁들인 파스타)를 선보여 크게 유행시켰다. 클레이본에 따르면 스파게티 프리마베라는 당시 “맨해튼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였다. 그리고 곧 “북미 대륙의 모든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그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됐다”고 헤서는 말했다(사실 스파게티 프리마베라를 개발했다고 주장한 세 명의 요리사 중 한 명은 이 요리를 매우 싫어해 조수들이 그 요리를 할 때는 주방 밖의 복도에서 만들도록 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소개된 요리법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동시에 (그에 따라야 한다는) 부담을 주기도 했다. 헤서는 책에 이렇게 썼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칠면조를 요리할 때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소개된 대로) 끓는 땅콩 기름에 튀기거나 소금물에 절이는 요리법 중 하나를 선택했다.” 이 책에 소개된 요리법들은 한때 인기가 치솟다가 그 인기가 금세 사그라지곤 했다. 이 책을 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음식은 맛이 있든 없든 따라 먹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라스베리·식초 드레싱이 좋은 예다. 이 드레싱을 넣은 샐러드는 1980년대에 반짝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릴에 구운 야채에 산성이 강한 발사믹 식초를 듬뿍 뿌린 샐러드가 그 인기를 눌렀다. 땅콩 기름에 튀기거나 소금물에 절인 칠면조가 다른 방식으로 요리한 칠면조보다 과연 더 맛있을까? 요즘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에서는 칠면조 고기에 버터를 발라 문질러주기만 해도 육즙이 많고 바삭바삭한 칠면조 요리를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예전에 할머니들이 했던 방식이다. 할머니가 그런 방식을 사용했던 이유 역시 뉴욕타임스 매거진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책은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는 동시에 다른 누구보다도 나아지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의 욕망을 드러내준다. 20세기 중반 프랑스 요리법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현상이 좋은 예다. 줄리아 차일드와 M F K 피셔 같은 요리사 작가가 “프랑스인들의 식생활이 미국인들의 식생활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프랑스인처럼 먹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1960년대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뵈프 부르기뇽(쇠고기 찜 요리)과 코키유 생자크(조개 관자 요리), 뫼니에르 소스와 그르노블루아즈 소스 등 프랑스 요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버터 조달업자들은 신이 났다). 요즘 미국에선 이런 요리 중 어느 하나라도 저녁 모임의 메뉴로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지난날을 그리는 복고풍의 파티라면 몰라도 말이다.
한동안 미국의 식당 메뉴에서 음식 이름 앞에 유행처럼 붙어 다니던 “알 라(a la: ‘…풍의’ ‘…를 곁들인’의 의미의 프랑스어)”라는 말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줄어들었다. 이 책에서 설명한 미국 음식 문화의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꼽힌다. 지난 9월 런던에서 열린 한 음식 축제에서는 전통 프랑스 요리가 각국에서 최고의 요리로 인정 받던 시대가 끝났는지를 따지는 토론회가 열렸다. 한 패널리스트는 “프랑스 음식은 이제 매력이 없다”고 단적으로 말했다. 요즘 미국인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나는 식품을 소비하려는 욕구와 세계 각지의 진미[예를 들면 샤오롱바오(小籠包: 상하이식 만두)]를 맛보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지녔다. 또 기발한 조리법을 이용한 특이한 요리를 찾아다니면서도 어린 시절 먹던 음식[예를 들면 맥 앤 치즈(마카로니에 치즈를 얹은 요리)나 햄버거, 컵케이크 등]의 추억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헤서의 책에서 말해주듯 오늘 정말 맛있다고 생각되는 요리가 내일은 형편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10년쯤 후에 재료와 조리법을 조금 바꾸고 새로운 이름으로 나와 다시 유행하기도 한다. 낭만적인 식당에 가면 꼭 있는 디저트 티라미수를 생각해 보라. 이 디저트는 1993년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화제가 된(주인공 톰 행크스는 티라미수라는 생소한 이름을 들었을 때 섹스의 한 테크닉으로 오해한다) 후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영화 덕분에 미국인들은 이 이탈리아식 디저트의 훌륭한 맛에 새롭게 눈뜨게 됐다. 당시엔 티라미수가 없는 식당이나 카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인기가 시들해졌다. 나도 한 10년 동안 그 디저트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다시 만들었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아주 섬세하고 오묘한 맛이다.”
미국 음식 문화에 일어난 변화 중 일부는 그 효과가 영원히 지속될 듯하다. 일례로 기름지고 복잡한 맛에 익숙해진 미국인의 입맛이 예전처럼 담백하고 단조로운 맛을 즐기는 쪽으로 돌아가진 않을 듯하다. 파슬리와 밀가루 맛이 나는 치킨 앤 덤플링(닭고기와 야채가 든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떼어 넣고 끓인 음식) 같은 요리가 인기를 끌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말이다. TV 요리 프로그램과 요리 관련 블로그, 트위터 게시물이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미국의 많은 가정주부가 여전히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푸드 섹션에서 저녁 메뉴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전통적인 요리법과 혁신적인 요리법을 오락가락하며 그 다음주에 많은 미국인이 먹게 될 ‘새로운’ 음식을 소개한다. 이런 새로운 요리는 어떨까? 커리를 넣은 주키니 호박 찬 수프에 새우와 아티초크를 넣은 냄비요리, 그리고 디저트로는 티라미수. 왠지 어디서 들어 봤는데….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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