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도시 인프라에 IT를 입혀라
기존 도시 인프라에 IT를 입혀라
싱가포르 교통국은 교통혼잡이 발생하기 1시간 전에 해당 지역 교통신호에 변화를 주거나 혼잡통행료를 부과해 교통체증을 피한다. 실시간으로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IT 전문가들과 수학자들이 교통량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한 덕택이다. 현재 이 프로그램의 예측 정확도는 85~90%에 달한다. 지중해 작은 섬나라 몰타에선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의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구축에 나섰다. 25만 개의 몰타 내부 아날로그 전기 미터기를 IT 기반 미터기로 교체해 실시간 가구별 전력량을 파악함으로써 전력 활용도를 높이는 그린 프로젝트다. 세계는 지금 ‘스마터 시티’(Smarter City) 열풍에 휩싸여 있다. 스마터 시티란 교통·치안·전력·수도 등을 위한 기존 도시 인프라에 IT 기술을 입혀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보다 똑똑한 도시로 거듭나는 것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도시들은 얼마나 똑똑할까. 중앙일보와 포브스코리아는 한국IBM과 함께 보다 똑똑한 도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10월 15일 오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스마터 시티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했다. 토론자로는 신혜경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원장, 이돈태 홍익대 교수(삼성물산 디자인 고문), 이금형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안전부장, 이성완 한국IBM 스마터 시티 총괄 상무, 장도수 한국남동발전 사장, 정명원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조은희 서울시 정무부시장,최두환 KT 사장(종합기술원장) 등이 참석했다. 사회는 심상복 포브스코리아 대표가 맡았다.
사회 (심상복 포브스코리아 대표) 스마터 시티는 이미 우리 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U(유비쿼터스)-시티와는 다른 겁니까?
이성완 한국IBM 상무 기본적으론 다르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인터넷 보급률을 비롯한 한국의 IT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서울시가 세계 100대 도시 전자정부 평가에서 4회 연속 1위로 뽑힌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문제는 소프트웨어입니다. 2005년 뉴욕경찰청에서 서울경찰청의 IT 활용도를 벤치마킹하러 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가 범죄기록 조회 시스템과 CCTV를 활용해 사건을 추적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경찰은 아직도 사건이 발생하면 CCTV를 통해 촬영된 영상 정보를 며칠에 걸쳐 일일이 검색합니다. 반면 뉴욕시에선 CCTV에 지능형 영상분석 소프트웨어를 구축해 기존 검색 시간을 최대 30분의 1로 줄였습니다. 총성이 울리면 발생위치는 물론 총의 종류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덕에 뉴욕시의 범죄율은 날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IT기술로 보다 안전한 도시를 만들고 있는 사례입니다. 아이폰이 우리 생활에 혁명을 일으킨 것처럼 필요한 정보를 알아서 골라주는 똑똑한 IT가 도시를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바일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갈 때 주도권을 뺏겼지만, 스마터 시티에 대한 대책은 하루라도 빨리 준비해야 합니다.
이금형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 현재 CCTV 관제센터에선 한명이 수십 대의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어 범죄 예방기능까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화면 속 이상징후, 예컨대 CCTV 유무를 확인하는 장면 같은 것을 인식하는 CCTV가 나온다면 범죄예방 및 사건 해결에도 크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요즘 코엑스의 안전점검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데 애로가 많습니다. 지하에 어떤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2011년에도 중요한 국제회의가 많은데 갈수록 테러,폭파 위험에 대한 우려가 높습니다. 중요한 지하 시설물에 관한 지리정보(GIS)가 시급한 형편입니다.
최두환 KT 사장 우리의 지리정보 서비스나 위치추적 기술은 상당히 높습니다. 이 경무관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대부분 기술적으로 가능합니다. 지하 지리정보의 경우 지상에 비해 수요가 낮아 적극적으로 구축하지 않고 있을 뿐이죠. 비용 문제가 있긴 하지만 치안을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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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동영상] 포브스코리아, 스마트시티로 열띤 토론 벌여
신혜경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원장 실내와 같은 공간 내 GIS는 정부 부처에서도 활발하게 연구 중인데 아직 일선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게 의아합니다. 정부도 지능형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국토해양부에선 이를 화재와 관제 시스템에 적용하는 것을 연구 중입니다. 화재가 나면 CCTV가 자동적으로 감지해 가장 가까운 소방서에 알려주는 식이죠. 하지만 지자체마
다 지리정보를 따로 구축하고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낭비일 뿐만 아니라 정보공유에서도 효율성이 낮습니다.
장도수 한국남동발전 사장 민간기업에 있다가 공기업에 와 보니 조직 내부의 수직적인 협업은 뛰어난데 수평적인 게 잘 안 되더군요. 그래서 낭비가 많습니다. 예컨대 국내 발전회사 6개가 전사적 자원관리(ERP)를 다 하지만 서로 도입 시기나 소프트웨어가 달라 시너지를 못 내고 있습니다. U-시티나 스마터 시티도 로드맵을 짜서 모범 사례를 만들어 예산 낭비를 줄이는 게 필요합니다.
정명원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실제 정부 부처에서도 연구개발이 중복되는 게 많습니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각 연구소들이 관련 분야에서 어떤 연구를 얼마나 진행 중인지를 통합된 플랫폼에서 서로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혜경 요즘 노인들의 건강 관리 시스템에 관한 500억원짜리 연구를 발주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각 단체 간 연구에 대한 공유가없어 처음부터 다시 연구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IT기술로 비용이나 인력 낭비 없이 비슷한 연구끼리 묶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스마터 시티는 서로 엮는 게 관건입니다.
최두환 사실 우리도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IT 서비스를 개발하지만 다른 공공기관과 공유가 안 됩니다. 실제 연구가 미진한 분야도 많은데 인기 분야는 자꾸 중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마터 시티를 향한 여러 주체가 협력이 안 되다 보니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그리고 누가 먼저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스마터 시티를 잘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해 보입니다. 첫째는 지능화된 IT를 입히는 것이고, 둘째는 지휘해 줄 곳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조은희 서울시 정무부시장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연계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경기도에서 받은 제안 중 하나가 경기도 병원에 다닌 사람이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길 때 의료 기록도 바로 이동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하면 서울이 손해입니다. 경기도민은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 오지만 서울시민은 경기도 병원에 거의 안 가죠. 그런데 똑같이 시스템을 구축하면 서울시의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가 됩니다. 이런 부분은 정부에서 인센티브를 통해 조정해 줘야 합니다.
기관 간 협력과 정보 공유가 관건
사회 IT 기술보다는 서로의 연결성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는 거죠. 축적된 데이터의 패턴을 분석하기 위해 인공 지능을 부여하는 것도 강조돼야 합니다. 최근 스마트 그리드도 이슈가 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장도수 스마터 도시란 자원 낭비를 알아서 줄이는 친환경 도시에서 출발합니다. 신재생에너지를 써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수요와 공급의 접점을 찾아 잘 배분하는 게 바로 스마트 그리드입니다.스마트 그리드를 구축해 전력 손실을 매년 1조6000억~2조원 줄일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전력 절감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가 미미하다 보니 실질적인 혜택을 못 느낀다는 데 있습니다.
신혜경 스마터 시티로 얼마만큼 빨리 변할 수 있느냐는 결국 가격 정책에 의해 좌우됩니다. 정부 차원에서 마스터 플랜을 짜서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은희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선 도로 통행량을 실시간으로 조사해 막히는 구간엔 혼잡통행료를 부과해 정체를 줄인다고 합니다. 똑똑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선 시민들이 직접 느낄 수 있는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효과가 높습니다. 서울시에선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공항에서 스마트폰을 대여해 다양한 관광정보를 볼 수 있도록 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우리의 티머니 교통 시스템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뜨겁습니다. 스톡홀름처럼 우리의 티머니 같은 사례를 브랜드화해 수출할 수 있을 텐데요.
이성완 스톡홀름의 교통 예측 시스템은 IBM이 구축했고, IBM에서 이를 적극 알렸죠. 우리 기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선 글로벌 기업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IBM을 통해 티머니 시스템을 뉴욕이나 프랑크푸르트에 판다면 한국 이미지가 개선되는 것은 물론 차세대 먹을거리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이금형 버스정류장에서 도착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상당히 호응이 좋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편의성을 지향한 프로젝트들이 공공의 이익과 배치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서울시가 공원화 사업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담장을 허물고 있지만 아이들이 성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시 담을 세우는 대신 CCTV를 촘촘히 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관리센터에 자동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 가미한 친환경 도시 가꿔야
이돈태 홍익대 교수 수요자의 입장에서 스마터 시티에 접근하고 싶습니다. IT 기술이 지나치면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이슈가 생기겠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CCTV를 보면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지만 이를 새처럼 디자인하면 거부감이 줄어들겠죠. 그래서 디자인 업계에선 기술을 최대한 숨겨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히든 테크놀로지’가 유행입니다. 미국 MIT에선 창문에 태양열판을 설치했는데 투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도화된 기술을친숙하게 포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장도수 한전에서도 송배전망을 지하에 구축하고 있습니다. 많은 예산이 들지만 디자인적인 요소와 함께 비가 오면 감전사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적인 요소를 실질적인 생활과 잘 결합시킨다면 상당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정명원 우리 위원회에서 하고 있는 게 공공건물에서 에너지 절약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연구입니다. 공공건물도 중요하지만 서울시 같은 큰 도시가 탄소절감 계획을 만들어 모두가 함께 친환경 도시로 만들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요즘 슬러지(sludge) 같은 폐기물이 이슈인데 여기에 대한 연구는 얼마나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건축 업계도 친환경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습니다.
장도수 모든 폐기물은 발 산업과 연관시킬 수 있습니다. 발전을 하고 남는 재는 벽돌이나 보도블록 등 건자재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요즘 비가 많이 왔을 때 서울 시내 바닥에 물이 스며들지 않는 게 문제라고 하는데 폐기물로 만든 것은 비가 스며들 수 있는 블록입니다. 하지만 슬러지 자원을 어떻게 연구할 것이냐가 미진한 상태라고 생각됩니다. 태양광의 경우도 일본과 독일은 많이 보급된 데 비해 우리는 잘 안 쓰입니다. 이는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정책적 지원에 대한 영향이 큽니다.
신혜경 스마터 시티라는 게 결국 원전 하나 안 짓고도 전기가 만들어지고 댐을 안 짓고도 물이 가도록 하는 것이죠.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가느냐는 가격 정책에 따라 달라지게 돼 있습니다. 전기를 안 쓰면 저절로 차단되는 물건이 광고로 나오지만 전기료가 그만큼 안 비싸니까 그런 물건을 안 사게 되죠. 이런 것을 정책적으로 잘 조율해야 합니다. IT 회사들도 수요자 측면에서 고려해야 합니다. 주부들에게 ‘스위치를 내려라’ ‘플러그를 뽑아라’고만할 게 아니라 기술을 접목해 빌 게이츠 집처럼 실제 사람이 집을 나가면 냉장고를 제외한 모든 전력이 꺼지는 게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절약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그런 스마트한 단계까지 가는 게 진정한 의미의 스마터 시티가 아닐까요.
사회 이젠 고속도로나 공항 같은 새로운 인프라를 짓는 것보다 소프트웨어로 기존 시설에 지능을 부여함으로써 똑똑한 도시를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게 오늘 토론의 결론이 아닌가 합니다.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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