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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진출, 폭스바겐에 배우라

중국 진출, 폭스바겐에 배우라

▎올해 4월 열린 베이징 오토쇼에 참가한 폭스바겐.

▎올해 4월 열린 베이징 오토쇼에 참가한 폭스바겐.

30년 동안 독일 폭스바겐이 중국시장에서 이뤄낸 성과는 자동차 생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따중(폭스바겐의 중국 브랜드 이름) 중국지역총본부는 베이징 산리툰의 5층짜리 작은 빌딩 안에 있다. 독일대사관과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따중자동차그룹 집행부총재인 장쑤이신 박사는 부드러운 성격의 달변가다. 그는 따중의 중국 진출이 중국 자동차산업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1990년 독일 폭스바겐에 입사해 본사 해외기획부에서 근무했다. 1997년 1월에는 중국 주재 수석대표를 맡았다. 2004년 5월 1일 현직을 맡아 독일 폭스바겐의 중국 내 모든 인적자원과 대정부 공공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사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중국 자동차 생산은 1980년대 따중이 중국시장에 투자하면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독일 폭스바겐의 오만한 생각이 결코 아니다. 1984년 따중은 당시 상하이트랙터자동차 회사와 함께 중국 최초의 자동차 합자기업을 설립해 자동차 부품 국산화의 기초를 세웠다. “만약 이런 기초가 없었다면 국산 자동차는 생산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국에서 이익의 25% 거둬물론 폭스바겐도 중국시장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얻었다. 현재 중국시장은 이미 독일을 뛰어넘어 폭스바겐의 전 세계 최대 시장이 됐다. 연간 판매량은 폭스바겐 전 세계 판매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매년 폭스바겐의 이윤 중 약 4분의 1은 중국시장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폭스바겐이 중국에서 보낸 30년이라는 세월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상하이따중의 첫 독일 측 CEO였던 마르틴 포스트는 『상하이에서의 1000일: 독일 폭스바겐이 중국과 인연을 맺은 스토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시 우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중국에 공업 현대화를 가져오는 것뿐만 아니라 변화가 느린 볼프스부르크(Wolfsburg·독일 폭스바겐 본사가 위치한 도시)에 중국식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1980년대 중국 자동차공업이 아직도 상용차와 트럭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독일 폭스바겐은 용감하게 중국시장에 뛰어든 최초의 도전자가 됐다.

하지만 폭스바겐 직원 대부분은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 1984년 상하이따중이 설립된 이후 수많은 독일 직원이 상하이로 파견됐다. 그들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먼지 가득한 작업장과 낙후된 생산 설비가 아니라 바로 날씨였다. 포스트는 이렇게 들려줬다. “모두 상하이는 중국의 남쪽이라 춥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기온이 5도로 떨어지고 사무실에는 에어컨이나 난로조차 없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상하이 현지인은 이미 습관이 돼 두꺼운 양모 스웨터와 솜옷을 걸치면 괜찮았지만 독일인은 단숨에 적응할 수 없었다.” 결국 회사는 대량의 솜옷 외투를 비행기로 긴급 운송해 왔다.

1990년대 두 번째 합자회사 ‘이치따중’을 설립할 당시에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 독일인은 주말마다 대표 한 명을 비행기로 베이징에 보내 캠핀스키 호텔에서 요구르트, 시가와 빵을 사서는 큰 자루를 등에 짊어지고 창춘으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은 따중이 중국에서 고군분투한 생생한 모습인 셈이다.

하지만 당시 ‘중국과 독일 합작의 상징’으로 불린 이 프로젝트는 진행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독일인의 융통성 없는 완고한 성격이 중국의 기후와 풍토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중국인이 보기에 독일인은 정말 융통성이 없었다. 부속품 검사 절차와 지나친 품질 요구는 시작 당시부터 중국 측 파트너를 적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장쑤이신은 한바탕 큰 소동을 일으킨 ‘경적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당시 다른 나라와 중국에서는 경적의 사용 한도가 5만 번으로 통일됐지만 따중은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할 때 경적 사용한도를 12만 번으로 요구했다. 이건 심지어 독일인조차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중국 측 파트너는 독일산 경적의 사용한도도 단지 10만5000번밖에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중국인은 독일 측이 일부러 중국 측을 괴롭히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 폭스바겐이 보기에 이런 요구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유럽인과 달리 중국 운전자들은 계속 경적을 눌러대는(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주의시키기 위해) 습관이 있다. 차가 이것 때문에 일찍 고장 나는 것을 막으려면 경적의 사용한도를 12만 번으로 크게 향상시켜야 했다. 나중에는 기술상 문제로 경적 사용한도를 10만5000번으로 조정하는 데 서로 동의했다.” 포스트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밝혔다.

따중은 미국, 더 나아가 전 세계 공급상이 중국에 와 직접 생산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결국 중국에는 300곳의 핵심 부품 기업이 탄생했다. 그 300여 곳의 부품 공장은 지금 중국 자동차 생산의 뿌리가 됐다. 중국 시장에 뛰어든 지 20년 만에 따중은 중국시장에서 분수령을 맞는다.

20년 동안 따중은 합자회사 두 곳 ‘상하이따중’과 ‘이치따중’을 통해 중국 최대 규모의 자동차 판매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따중은 일찍이 중국 자동차시장 점유율 90%을 차지했던 눈부신 세월도 있었다. 하지만 그 좋은 시절은 20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따중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1년 따중의 중국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50%, 2005년 17.3%로 감소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따중이 중국에서 겪은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내외부 요인들이 뒤엉켜 터져나오는 중이었고, 대부분은 따중도 어찌 해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더 많은 글로벌 자동차 회사가 중국시장에서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중국시장이 2004년 갑자기 저조한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장쑤이신은 따중의 이때 위기는 대부분 정책 결정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정책 결정은 모두 독일로 가 해야 했는데, 속도가 너무 느렸다.”



현지 조달 경적을 둘러싼 논란중국 국산화 초기, 중국이 생산한 부품은 독일 폭스바겐 본사 볼프스부르크에서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문제는 테스트 기간이 길어 중국에서 근무하는 독일 직원조차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때로는 테스트 기간이 1년이 넘었지만 중국 측은 어떤 피드백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중국 측은 독일인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어 장기적으로 수입 부품에서 이윤을 챙기려는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2005년까지 따중 자동차의 모든 부품 테스트는 독일에서만 이루어졌다. 비록 효율은 향상됐지만 부품 하나를 인증 받는 데 20주 이상 걸렸다.

더욱 난감한 것은 멀리 독일에 있는 정책 결정자들이 중국시장의 특성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치따중이 설립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출시된 ‘캐디’가 대표적 경우다. 캐디는 시장 포지션이 비즈니스와 가정용 모두 적합한 다기능 세단이었다. 당시 따중의 최신 플랫폼 PQ35의 최초 제품이었다. 출시 전 따중은 이 신형이 중국시장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세분된 시장은 당시 중국에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우외환 속에서 따중은 한 차례 철저한 자기혁신을 해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조직개편이었다. 그때까지 따중자동차의 중국 대표처는 ‘아시아태평양본부’ 관할하에 있어서 본부 고위층과 직접 대화할 수 없었다. 2004년 따중은 중국에 따중자동차 중국센터를 설립했다. 동시에 아시아태평양본부를 폐지하고 ‘따중자동차중국’을 지역본부로 승급시켰다.

2005년 6월 따중은 베이징에 따중자동차그룹센터실험실을 세웠다. 이것은 따중자동차의 세 번째 해외 인증 기구로 독일의 볼프스부르크와 동등한 인증 효력을 갖는다. 이 기구는 따중 부품의 인증 속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과거 독일에서만 할 수 있었던 테스트 업무가 현재는 중국에서도 가능해졌다. 인증 소요 시간은 20주에서 평균 6~8주로 단축됐다.

기업문화도 조용히 변화 중이다. 이전에 따중 직원들은 자신이 개발한 자동차는 전 세계 최고인데 고객이 불만이라면 그건 자동차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따중은 중국시장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올해 이치따중과 상하이따중은 광둥 포샨과 장쑤에 각각 새로운 공장을 건설한다. 3~4년 후 따중의 중국 내 생산능력은 300만 대에 달할 것이다. 이것은 폭스바겐이 발표한 ‘2018전략’의 목표치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2018전략’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2018년 규모와 이익 측면에서 도요타를 추월해 전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회사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따중은 중국시장에서 매년 200만 대의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다.

따중은 인재 양성 부분에서 특히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먼저 현지 기술학교 및 직업학교와 협의해 폭스바겐에 필요한 과정과 실용적 수업을 제공한 다음 인력을 양성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학교에 입학한 이듬해 입사해 다음해엔 회사 내에서 훈련을 받는다. 그들 중 가장 우수한 사람이 채용된다.

상하이따중 설립 초기 퉁지대학의 자동차 전공은 바로 상하이따중에 인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것은 따중이 중국에서 인력을 개발하는 기본 모델이 됐다. 공장지역 현지 학교와 합작 관계를 맺어 스스로 인재를 양성하는 방식이다. 따중 ‘2018전략’은 구체적이다. 어떤 기업이 공개적으로 몇 년에 어떤 경쟁사를 뛰어넘어 1위를 차지하겠고 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현지화에 성공한 기업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다.

번역=도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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