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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인디스타’

‘홍대 인디스타’

▎인디록밴드 ‘와이낫’.

▎인디록밴드 ‘와이낫’.



#1 평일에도 홍대 ‘인디신’은 들썩들썩 “아름다운 밤입니다!”

11월 16일 밤 서울 홍익대 인근의 라이브클럽 ‘타’에서 열린 ‘술 먹는 공연’. 밴드의 리더가 잔을 치켜들었다. 관객들도 잔을 내밀며 함성을 지른다. 무대 위의 밴드는 ‘킹스턴루디스카’. 우리 대중음악계에선 생소한 ‘스카(브라스 밴드를 기본으로 하는 ‘약강약강’ 리듬이 특징인 자메이카 음악)’를 하는 9인조 인디밴드다.

2004년에 결성된 이 밴드는 홍대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인디계의 ‘그랜드슬램’이라는 3대 록페스티벌 무대에 모두 오를 만큼 팬층이 두텁다. 한 달에 10여 차례씩 행사 섭외도 꾸준히 들어오는 편이다. 이날 공연에도 200여 명이 몰렸다. 평일(화요일) 공연치곤 꽤 괜찮은 성적이다. 길게는 10년 이상 음악만 파고들었던 멤버들은 “이제야 음악하면서 그럭저럭 밥벌이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인디밴드의 분만실로 불리는 홍대 앞. 현재 이곳에서 활동하는 밴드만 700여 팀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음악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밴드는 다섯 팀 정도에 불과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킹스턴루디스카의 리더 최철욱(33)씨는 “솔직히 큰돈을 벌고 싶다면 인디음악을 해선 안된다. 우리는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음악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2 낮엔 ‘알바생’, 밤엔 ‘인디스타’ “여보세요, 네? 홍기씨 전화 맞나요?”

‘치이이익~탁! 치이이익~탁!’ 하는 소리에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자꾸만 묻힌다. 소음 사이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제가 지금 일하는 중이라서요.” 레게밴드인 ‘레스카’의 보컬 홍기(23·본명 홍현기)씨에게 건 전화였다. 2008년 결성된 레스카는 홍대 앞에선 ‘막내 밴드’ 중 하나다. 전화기 너머로 들렸던 잡음은 포장용 테이프를 떼어내 상자에 붙이는 소리였다.

인디밴드 3년 차인 그는 ‘투잡스’다. 아침이 되면 쇼핑몰의 포장 ‘알바생’이 된다. 다른 멤버들도 바리스타, 서빙 등을 한다.

“음악이 곧 나고 내가 곧 음악”이라는 홍씨는 누가 봐도 ‘음악하는 사람’이다. 수박 두 덩이만 한 크기의 털모자 안엔 레게파마를 한 긴 머리를 돌돌 말아 넣었다. 멋스럽게 기른 콧수염까지 온몸이 “난 레게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매니어가 제법 있는 ‘불나방스타소세지클럽’에도 참여했고, 요즘은 알아보는 팬도 더러 있다. 그러니까 홍대 앞에선 ‘나름대로 스타’다.

“아직은 음악만 해선 생계 유지가 안 되니까 ‘알바’를 병행하는 거죠. 일을 끝내고 연습이나 공연하러 가는 길이 제일 행복해요. 몸이 힘들긴 하지만 이런 일도 겪어 봐야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요?” 홍씨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음악만 하는 밴드는 손으로 꼽을 정도밤엔 ‘인디스타’, 낮엔 ‘직장인’. 홍대 바닥에서 이는 드문 공식이 아니다. 홍대의 ‘인디신(인디밴드들이 서는 무대를 일컫는 말)’에서 활동하는 밴드 대부분이 그렇다. 인디신에서 제법 알려진 록밴드 ‘와이낫’도 라이브클럽 ‘타’를 운영하거나 멤버들이 직장인을 상대로 실용음악 레슨을 하는 ‘멀티플레이어’다.

밴드 리더인 주몽은 “앨범을 낸 직후거나 행사출연 요청이 몰리는 시기가 아닌 ‘오프시즌’에는 음악 외의 수입이 주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인이라면 과장, 차장 달고 주택청약 부금 부어가며 경제적인 인간으로 살았겠지만, 음악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11월 6일 뇌출혈로 갑자기 숨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고 이진원씨는 홍대 인디신에선 보기 드물게 음악만 하던 사람이었다. 믹싱만 녹음실을 빌려 하고 홈레코딩으로 음반을 만들었다.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 ‘가내수공업’이었다. 작사·작곡은 물론 보컬, 코러스, 기타, 베이스, 드럼까지 혼자서 했다. 음반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우체국에 가 택배로 부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그와 절친했던 ‘타카피’의 김재국씨는 “음악이 좋아 음악만 했던, 스스로도 ‘음악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음악만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친구”라고 기억했다.

▎레게밴드 ‘레스카’ 맨 오른쪽에 서 있는 이가 홍기씨다. 그는 지난 2007년 인디음악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인 충남 논산에서 상경했다.

▎레게밴드 ‘레스카’ 맨 오른쪽에 서 있는 이가 홍기씨다. 그는 지난 2007년 인디음악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인 충남 논산에서 상경했다.



“디지털 음원 1곡당 1원” … 월정액제의 폐해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인디밴드들이 충격에 빠진 데 이어 분노까지 하게 된 건 이른바 ‘도토리 사건’ 때문이다. 그의 노래들이 입소문을 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배경 음악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음원사가 대가의 일부를 도토리(사이버 머니의 일종)로 지급했다는 말이 돌면서다. 음원사 측은 부인했지만, 그가 생전에 만들었던 노래 ‘도토리’가 알려지면서 파장은 계속됐다. “안 그래도 음원 수익 배분이 불합리한데, 그마저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었고 새삼 디지털 음원 수익구조 문제에 불이 붙었다.

“디지털 음원을 팔아서 얻는 수입은 얼마인지 말하기도 창피해요.” 인디신 출신으로 아이돌 못지않은 팬을 거느린 ‘크라잉넛’과 함께해온 드럭레코드 김웅 이사의 말이다. 그는 “크라잉넛의 수입은 대부분 콘서트와 공연에서 나온다. 음원 수입은 그것의 100분의 1도 안 될 것”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데뷔 15년에 1집만 해도 10만 장 이상 팔린 밴드치고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얼른 떠오르는 히트곡만 해도 ‘말달리자’ ‘밤이 깊었네’ ‘서커스 매직유랑단’이 있다. 미니홈피 배경음악이나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으로도 수위를 다투는 곡들인데 ‘돈’이 안 된다니.

▎지난 11월 16일 밤 8시부터 서울 홍익대 앞 라이브클럽 ‘타’에서 열린 ‘술 먹는 공연’엔 관객 200여 명이 몰렸다.인디밴드 ‘클라우드댄서’ ‘킹스턴루디스카’ ‘와이낫’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11월 16일 밤 8시부터 서울 홍익대 앞 라이브클럽 ‘타’에서 열린 ‘술 먹는 공연’엔 관객 200여 명이 몰렸다.인디밴드 ‘클라우드댄서’ ‘킹스턴루디스카’ ‘와이낫’이 무대에 올랐다.

가수·제작사에 너무나 짠 음원 사이트들 탓이다. 엠넷·멜론 등 대형 음원 사이트에서 이용자가 곡을 내려받으면(1곡당 500원) 가수나 제작사에 돌아오는 것은 200원 남짓이다. 음원 사이트가 45%를 가져가고 저작권협회와 실연권협회에 들어가는 저작권료(9%)와 실연권료(4.5%), 음원 유통 대행사에 주는 수수료까지 빼고 나면 그렇다.

여기에다 손님을 더 끌어모으려고 대형 음원 사이트들이 내놓은 월 정액제 상품이 피해를 키웠다. 내려받기(다운로드)와 실시간 듣기(스트리밍)를 합친 서비스다. ‘무제한 음악감상·월 40곡 다운로드(7000원)’, ‘무제한 음악감상·150곡 다운로드(1만1000원)’, ‘무제한 음악감상·무제한 다운로드(1만2500원)’ 같은 상품이다. 안그래도 싼 곡을 더 싸게 들을 수 있으니 월 정액제로 손님들이 몰리고 그만큼 가수나 제작사에 돌아가는 돈은 더 적어진다.

이름이 제법 알려진 한 인디밴드의 관계자는 한 음원 사이트에서 받은 정산서를 예로 들어 “스트리밍만 47만 클릭이었는데 들어온 돈은 47만원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곡당 1원을 받은 셈이다. 그는 “행사를 뛰어 받는 돈은 데뷔 때보다 10배가 늘었지만, 음원을 팔아 얻는 돈은 오히려 확 줄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명 인디밴드도 “애써 만든 곡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니 화가 나 음원 사이트들과의 계약을 보이콧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고 털어놨다.

홍대 인디레이블사들의 모임인 서교음악자치회의 최원민 회장은 “정부의 방관과 대형 음원 사이트의 불공정 계약이 문제”라며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논란과 관련해 한 음원 사이트의 관계자는 “음원 수익분배 구조에 대한 지적은 잘 알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인터넷상 음원은 무료’라는 소비자의 인식이 강해서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기획사에서 판매 조건으로 곡당 다운로드만 가능하게 하고 월정액제 상품으로 넣지 말아달라고 요구할 경우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인디음악의 경우 최근 논란이나 특수성을 감안해 사이트 노출을 늘리고 차트를 따로 만들어 제공하는 등 인디음원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시장도 ‘부익부 빈익빈’ 미디어 시장도 인디밴드들에게 또 다른 벽이다. 지상파 채널의 음악방송엔 대형 기획사가 내놓은 아이돌이 넘쳐난다. 인디 뮤지션들에게 열려 있는 무대는 EBS의 ‘스페이스 공감’, KBS 2TV의 ‘음악창고’ ‘유희열의 스케치북’ 정도다. MBC의 ‘음악여행 라라라’도 지상파로선 드물게 다양한 뮤지션을 볼 수 있던 방송이었지만 최근 폐지됐다. 케이블음악채널인 엠넷도 라이브 콘서트 프로그램 ‘A-LIVE’를 종영했다.

주몽은 “대형 기획사의 가수들은 기획사의 힘과 자본을 빌려 미디어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대형 콘서트와 CF 등으로 큰 수익을 얻어 다시 음악에 투자하는 선순환이 되지만 인디밴드들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미디어에 음악 유통 구조까지 불공정하다”고 꼬집었다. 김웅 이사는 “팬들의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매니어는 늘었지만 미디어 시장이나 수익구조는 되레 인디밴드들에 굉장히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이들 사이에선 조심스레 대안도 거론된다. 최원민 회장은 “서교음악자치회에 속한 40여 개 인디레이블이 힘을 모아 ‘공정 음원 유통 사이트’를 만드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인디밴드가 오를 수 있는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 보자는 의견도 있다. 인디문화사업단의 전용석 예술감독은 “지상파에만 기댈 게 아니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콘서트 무대를 조직적으로 연계해 소개할 만한 인디밴드를 세우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감독은 “인디밴드들은 새로운 수입창구를 만들면서 인지도도 높일 수 있어 좋고 지자체는 서울과 지방 간 문화격차를 줄일 수 있으니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윈-윈’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선 “코리안 인디즈, 독특” 관심 정작 우리 문화시장에선 인디밴드가 기를 못 펴지만 나라 밖에서 이들을 주목하는 시선이 늘어 간다. 지난 2008년 ‘도쿄아시아뮤직마켓’에서 서교음악자치회 소속의 인디레이블들이 선보인 이후 우리 인디음악이 ‘코리안 인디즈’ ‘서교’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호응을 얻고 있다.

11월 말에는 인디계에서 처음으로 ‘한·일 교류 콘서트’가 열린다. 11월 28일과 12월 4일 도쿄 시부야와 서울 홍대를 오가며 열리는 ‘서울·도쿄 사운드 브리지’다. 시부야 역시 서울 홍대 앞처럼 일본 인디문화의 근거지다.

한국에선 펑크밴드 ‘크라잉넛’과 모던록밴드 ‘보드카레인’이, 일본에선 피아노록스타일의 ‘피아노잭’(Pia-no-jaC)과 모던록밴드 ‘오또’(8otto)가 참여한다.

최원민 회장은 “우리나라 인디 음악의 시장 확대가 이번 행사의 목적”이라며 “중국, 홍콩과도 교류 공연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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