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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MBA 해외 콧대 꺾는다

국내 MBA 해외 콧대 꺾는다

“서울대·인하대·성균관대·고려대·전남대.” 이코노미스트가 국내 처음으로 ‘한국형 MBA’의 경쟁력을 평가한 순위다. 국내 명문 MBA로 꼽히는 서울대·성균관대·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은 무난하게 상위권을 차지했다. 국내 최초 ‘한국형 물류MBA’인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국내 유일의 지방 소재 한국형 MBA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이 각각 2위, 5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상위권 한국형 MBA는 해외 MBA를 바짝 추격한다. 빼어난 실력의 외국인이 입학하고, 세계 석학이 초빙된다. 이른바 ‘국제화’. 해외 MBA의 콧대를 꺾는 비장의 카드다.

#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글로벌 MBA' 과정에 다니는 한 외국인 학생. GMAT(미·유럽 경영대학원 입학시험)에서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예일대 비즈니스스쿨에 능히 입학할 수 있는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서울대 MBA 과정을 선뜻 선택했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췄다는 판단이었다. 한국형 MBA가 해외 유력 MBA를 빠르게 추격한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만 그런 게 아니다.

# 네이선 반스 웽크(미국·34)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SKK GSB 글로벌 MBA 과정에 다닌다. 그의 경력은 특이하다. 미 포틀랜드 주립대(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보험회사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다. 인디애나대 마우어 로스쿨도 졸업했다. 공학·경영학·법학을 섭렵한 웽크는 요즘 말로 ‘융복합형’ 인재다. 그런 그가 무슨 이유로 한국에 왔을까. SKK GSB의 복수학위제가 다리를 놨다. SKK GSB는 올 8월 인디애나 마우어 로스쿨과 협정을 맺고 JD·MBA(법학 석사 겸 경영학 석사) 과정을 운영한다. 해외에서 명성이 높은 마우어 로스쿨이 실력 없는 MBA와 손을 잡았겠나. SKK GSB의 국제화는 생각보다 높은 수준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해외 MBA를 따라!” 불과 몇 년 전 유행했던 말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UC버클리 하스스쿨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해외 경영전문대학원이었다. 고소득 전문 직장인으로 가는 ‘징검다리’랄까. 이들의 입지가 예년 같지 않다. 지원자는 줄고 연봉은 떨어진다.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미 GMAC 소속 332개 MBA 중 올해 지원자가 증가한 곳은 64%에 불과했다. 2008년 80%보다 16%포인트 줄었다. 해외 유력 MBA도 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와튼스쿨의 지원자가 전년비 9% 감소한 건 대표적 사례다.

해외 MBA의 콧대는 꺾였지만 한국형 MBA의 상황은 다르다. 응시율은 떨어지지 않는다. 세계적 권위의 명문 로스쿨을 졸업했거나 해외 MBA에 가도 손색없는 학생이 ‘한국형’ MBA를 두드린다. 네이선 반스 웽크처럼 말이다. 한국형 MBA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인증한 국내 MBA 13곳을 말한다. 고려대·동국대·서강대·서울대·성균관대·숙명여대·연세대·이화여대·전남대·중앙대·한양대·건국대 경영전문대학원과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등이다(한국정보통신대는 ‘한국형’ MBA였지만 2009년 2월 KAIST와 통합하면서 신입생 모집이 중단돼 제외됐다). 한국적 기업 특성에 밝은 국제적 전문인력을 만들기 위해 2006년 이후 설치됐다.



쑥쑥 크는 한국형 MBA 국제화 ‘성큼’올해로 다섯 살. 한국형 MBA는 실제로 걸음마를 떼고 비상하고 있을까. 이코노미스트 조사에 따르면 한국형 MBA의 외국인 학생 비율은 7%를 넘었다. 상위 5개 MBA의 평균은 14%에 달한다. 외국인 교수도 크게 늘었다.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의 외국인 전임교원은 전체 전임교원의 30%에 육박한다. 비전임인 초빙교수를 포함하면 60%가 넘는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의 외국인 전임교원도 전체 (전임교원의) 약 10%다. 세계 20위권 미 MBA의 평균 외국인 교수 비율이 35% 정도인 것에 비춰보면 높은 수치다. 성과도 빼어나다. 한국형 MBA의 국내 취업률은 100%에 가깝다. ‘만족하지 못해’ 중도포기하는 학생은 100명 중 5.4명에 불과하다. 연봉상승률은 20%가 넘고, 해외취업률은 10%에 육박한다.

원동력은 뭘까. 꼼꼼한 관리가 첫째 답이다. 한국형 MBA가 되려면 수많은 벽을 넘어야 한다. 주간 MBA 과정(1년제)은 국제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은 대학만 설치할 수 있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12.5명이 넘으면 안 된다. 박사과정 전임교원의 50%는 국내외 학술지에 2편 이상의 논문발표 실적이 있어야 한다. 학생 1인당 12㎡의 전용교사도 필요하다. 기준만 통과한다고 한국형 MBA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경영전문대학원 설치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한국형 MBA의 독특한 프로그램도 성장엔진 중 하나다. 한국형 MBA의 강의는 짧고 굵다. 수업기간은 대부분 1년, 집중형이다. 그렇다고 마냥 줄이는 게 아니다. 할 건 다 한다. 해외 MBA의 2년 강좌를 1년 안에 소화하는 식이다. 그래서 한국형 MBA 과정엔 방학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차별화된 프로그램도 많다.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은 의료·미디어 경영을 특성화했다.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은 브라질·인도·중국 등 신흥시장에 적합한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글로벌 브릭스 MBA를 운영한다.

또 다른 원동력은 우수한 학생과 교수진이다. 한국형 MBA의 대부분은 모집정원에 미달돼도 역량이 부족한 사람을 뽑지 않는다. 교수진이 해외에 직접 나가 우수 학생을 뽑는 MBA도 많다. 교수진은 해외 MBA에 버금간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의 ‘막강’ 교수진은 대표적이다. 이 대학원 교수진은 미 하버드대·와튼스쿨·스탠퍼드대·MIT 등 해외 명문 경영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석학이 즐비하다. 해외 교수를 초빙해 MBA 과정을 강화하는 사례도 있다. 건국대 경영전문대학원은 기술경영의 창시자인 미 스탠퍼드대 윌리엄 밀러 교수를 초청해 교육과정을 전면 손질했다.

이런 열의는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경쟁력은 현장에서 먼저 나온다. 국내 및 해외 MBA 출신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대기업이 날로 증가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MBA 출신 60명을 채용했다. 국내 MBA 30명, 해외 MBA 30명이었다. 지난해에도 MBA 출신을 40명 채용했는데 국내외 비율은 반반이었다. 삼성전자 인사담당자는 “국내 MBA 출신은 1년제 집중코스를 밟았기 때문인지 실무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며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그룹 인사담당자도 “국내외 MBA의 대우가 동등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의 글로벌 MBA 과정 수업 모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의 글로벌 MBA 과정 수업 모습.

하지만 한국형 MBA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출범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제대로 평가 받은 적이 없다. 현재로선 그들이 발표한 자료가 곧 사실이다. 발표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한국형 MBA 보도가 천편일률적인 까닭이다. 해외 MBA는 그렇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취업성과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비즈니스위크도 졸업생의 강의 만족도와 기업의 채용 만족도를 조사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형 MBA의 경쟁력을 평가했다. 출범 5년이 됐기 때문에 교육여건·성과 등을 분석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번 평가의 대상은 한국형 MBA 13곳 중 11곳이었다. 연세대·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은 불참했다.

조사 결과는 이렇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108점),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99점),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97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95점),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86점)”. 괄호 안의 숫자는 4개 분야 15개 항목의 순위를 바탕으로 산출했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은 한국형 MBA 중 유일하게 총점 100점을 넘었다. 인하대·성균관대·고려대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교육여건·연구실적·국제화·성과 등 4개 분야에서 고른 점수를 받은 게 효과를 봤다. 교육여건 분야에선 5위, 나머지 3개 분야에선 2위를 기록했다.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의 한 외국인 교수가 MOT(기술경영) MBA 과정에서 수업하고 있다.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의 한 외국인 교수가 MOT(기술경영) MBA 과정에서 수업하고 있다.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은 총점 99점을 획득해 성균관대·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을 따돌리고 2위를 차지했다.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 전임교원 1인당 연구비 수주액, 외국인 1인당 학생 수에서 1위에 올랐다.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은 87.1%로 압도적 1위였다. 2위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으로 40%가 채 되지 않았다. 전임교원 1인당 연구비 수주액은 한국형 MBA 중 유일하게 1억원을 넘겼다. 졸업생 해외취업률, 재학생 중도포기율 지표에서도 경쟁력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총점 97점을 얻은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은 3위에 선정됐다. 불과 2점 차이로 인하대에 밀렸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과 차이는 11점. 외국어 강좌 비율, 외국인 교수 1인당 학생 수, 전임교원 1인당 SCI·SCCI급 논문 게재편수 등 많은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졸업생 연봉상승률 지표에선 서울대를 따돌리고 최고 점수를 얻었다.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의 졸업생 평균 기본급은 MBA 과정 입학 전 3654만8000원에서 졸업 후 5103만2000원으로 39.6% 상승했다. 서울대의 연봉상승률은 38.0%로 조사됐다.

4위엔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이 올랐다. 총점은 95점. 이번 조사에서 총점 90점 이상을 얻은 MBA는 서울대·인하대·성균관대·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4곳뿐이다. 점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3위 성균관대와는 2점, 2위 인하대와는 4점 차였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은 연구실적 분야에서 빼어난 점수를 받았다. 전임교원의 2007~10년 SCI·SSCI급 논문 게재편수는 144편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전임교원 연구비 수주액도 172억2688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성균관대 2관왕, 국제화 1위는 세종대이번 조사에서 돌풍을 일으킨 곳은 유일한 지방 소재 한국형 MBA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이다. 86점을 획득해 중앙대·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 등 서울 소재 한국형 MBA를 따돌리고 5위에 올랐다. 전임교원 연구실적·성과 등 두 분야에선 평균치에 머물렀지만 교육여건·국제화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다음은 분야별 순위다. 연구실적·성과 분야에선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이 1위를 차지했다. 유일한 2관왕이다. 성균관대가 1위에 오른 두 분야의 2위는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이었다. 교육여건 분야에선 전남대 경영전문대학원이 최고 점수를 받았다.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동국대·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이 뒤를 이었다. 국제화 분야에선 한국형 MBA가 무너졌다.

일반 MBA 과정인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이 36점을 얻어 34점에 그친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을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세종대는 외국인 학생 비율, 외국인 교수 전임 비율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에서 꼭 검토해야 할 건 한국형 MBA의 경쟁력만이 아니다.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은 교과부의 인증을 받은 MBA가 아니다. 한국형 MBA가 출범했던 2006년 주간MBA 과정이 없어 탈락했다. 하지만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은 스스로 참여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한국형 MBA의 간판으로 종종 소개되는 일부 MBA는 자료공개까지 거부했지만 경쟁력이 높지 않았다.

한국형 MBA의 출발은 일단 상큼하다. 날개를 잘 폈고, 항로도 시원하게 열렸다. 하지만 한국형 MBA는 불투명한 게 문제다. 뭐든지 숨기면 거창해진다. 속이 빈 걸 들킬까 말이 많아지고 과장하게 마련이다. 속이 훤하게 보여야 문제를 찾을 수 있다. 그래야 개선점이 마련된다. 지난 10월 중순 한국형 MBA 평가를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세종대 MBA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형 MBA도 아닌데 애써 참여할 필요 없다”는 말에 대한 답변이었다. “우리는 한국형 MBA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공정 경쟁해서 밀리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경쟁하고 싶다. 우리가 부족한 점을 알아야 더 노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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