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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안에서 울려퍼진 희망의 합창

담장 안에서 울려퍼진 희망의 합창

▎천안교도소 교정시설 관계자는 “문화적 배려는 외국인 재소자들에게 한국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시키기 위한 또 다른 교화방법”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사동 내 복도. 국내 여느 교도소와 큰 차이가 없다.

▎천안교도소 교정시설 관계자는 “문화적 배려는 외국인 재소자들에게 한국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시키기 위한 또 다른 교화방법”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사동 내 복도. 국내 여느 교도소와 큰 차이가 없다.

11월 29일 천안교도소에서 ‘고향의 멜로디’ 음악회가 열렸다. 여느 교도소 음악회와 다름없이 재소자 34명이 두 시간 남짓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다. 그러나 이곳은 외국인만 수용하는 교도소다. 전체 수감자 517명은 33개국 출신이다. 올 2월 23일 만들어진 이 교도소의 문이 외부에 처음 열렸다.

음악회에 참석한 재소자들은 지난 7월부터 매주 월요일, 수요일 두 시간씩 연습에 매달렸다. 우플류트, 밤벨, 오카리나, 우쿨렐레 등 생전 처음 보는 악기를 배웠다. 앙상블 연주에 참가한 중국인 장무겸(23·가명)은 “처음엔 악기를 불어도 소리가 나지 않아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악기는커녕 노래 한번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음악교육이 인기 있지도 않았다. 연습 시간에 공장에 나가 일하면 훨씬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노역활동에 쓰면 한 달에 25만원가량의 돈을 손에 쥐게 된다. 중국에서 대학 졸업자의 초임 월급 수준이니 장에게는 꽤 큰돈이다. 한 캄보디아인 재소자는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 월급 수준”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돈을 벌 시간에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길 꺼린다. 교도관들의 설득을 통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34명의 재소자는 동료들의 기립 박수가 이어지자 얼굴이 활짝 피었다. 재소자들의 음악교육을 맡은 우광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진지하고 열심히 참여해준 재소자들이 자랑스럽다”고 그들을 치켜세웠다.

연주자 중에서도 ‘에이스’ 멤버로 꼽힌 장은 올 5월 이곳으로 왔다. 교도소 생활을 한 지는 1년6개월쯤됐다. 천안교도소가 생기기 전엔 목포교도소와 광주교도소, 대전교도소를 옮겨 다녔다. 그곳에선 한국인 수형자들과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음악교육을 받기는커녕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그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지만 언어와 식생활, 문화적 배경이 완전히 다른 이들은 수감생활을 더 힘들어했다. 이같이 문제점을 느끼는 외국인 수형자들 때문에 천안교도소가 생겼다.

▎응급상황 발생 시 거실 창틀마다 붙어 있는 비상벨을 누르면 교도관이 달려온다.

▎응급상황 발생 시 거실 창틀마다 붙어 있는 비상벨을 누르면 교도관이 달려온다.

한국은 점차 다문화사회로 가면서 외국인 수가 현재 120만 명에 달하고, 범죄자 수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10년 12월 현재 수용이 필요한 외국인 범죄자 수는 1266명이다(출신 지역도 45개국이다). 2005년 643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범죄자 수가 5년여 사이에 갑절로 늘었다. 열에 여섯은 중국계 수형자(63.3%)다. 대부분은 돈을 벌겠다고 온 노동자들이다.
▎도서실에 소장된 5684권의 책 중에 영어원서는 3451권으로 가장 많다.

▎도서실에 소장된 5684권의 책 중에 영어원서는 3451권으로 가장 많다.

중국 남부 푸젠성에서 가구공장의 노동자로 일했던 장은 2007년 6월 한국에 왔다. 위조여권을 만들어 친구와 함께 배를 타고 밀입국했다. 가짜 여권으로 지방의 한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돈벌이였다. 하지만 유학비자로는 취직이 불가능해지자 학교에서 무단 이탈해 인천으로 갔다. 처음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으로 일당 6만원을 받았다. “때로 한국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괴롭히기도 했지만 대체로 한국 생활은 재미있었다”고 장은 말했다. “중국에 비하면 놀거리가 많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2007년 11월 장은 더 큰돈을 벌려는 욕심에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중국에 본거지를 둔 금융사기단에 가입해 중간책 역할을 하게 됐다. 일명 ‘보이스피싱’이다. 장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중국인 근로자들의 휴대전화를 보이스피싱 발신자로 끌어모았고 돈이 입금되면 수당을 나눠 가졌다. 이렇게 장 일당이 낸 피해액은 1억원 남짓이었다. 2009년 10월 그는 전화금융 사기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외국인 수형자의 범죄유형 중 가장 흔한 경우다. 2009년 기준 약 45%의 수형자가 장과 같은 금융사기범에 해당한다. 전화 몇 통이면 큰돈을 번다는 꾐에 빠져 범죄자로 전락한 사람들이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대다수 외국인 범죄자는 국내 3D 업종에서 일하며 힘겹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범죄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겐 이들이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돌아가도록 도와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4~5인실의 감방 안에는 화장실 하나와 TV, 수납공간, 매트가 있다.

▎4~5인실의 감방 안에는 화장실 하나와 TV, 수납공간, 매트가 있다.

천안교도소는 여러모로 내국인이 수용된 일반 교도소와 다르다. 우선 국제협력과를 설치해 각 나라의 대사관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또 러시아어·중국어·베트남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전담교도관 아홉 명을 배치해 수형자들의 의사소통을 돕는다. 한 교정공무원은 “일상적인 소통을 돕지만 우울증을 앓는 재소자들의 심리상담 등을 하기엔 아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재소자들은 처음 이곳에 입소하면 3주 동안 ‘굿모닝코리아관’에서 한국문화를 배운다. 파키스탄 출신의 재소자 아잔(32·가명)은 “한국에 살면서도 일에 치여서 잘 몰랐던 문화를 새롭게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도서실에는 주한외교사절, 대학이나 도서관, 사회단체 등을 통해 기증받은 외국어 도서 5684권이 비치돼 있다. 영어 서적이 3451권으로 가장 많고 중국어 서적도 1470권이다. 외국인 수형자들은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모국어로 된 책을 읽는 게 즐거움 중 하나다. 전국 교도소 가운데 도서 대출이 가장 많다고 교도소 관계자가 말했다. 천안교도소에 매달 책을 지원하는 ‘행복공장’ 권용석 대표는 “영어나 중국어 서적은 그나마 구하기가 쉽지만 몽골어, 베트남어, 아랍어 서적은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식단도 한식과 양식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매운 음식을 못 먹거나 빵을 주식으로 하는 외국인을 배려해서다. 양식을 선택하면 식빵, 딸기잼, 샐러드, 햄버거 등이 나와 수형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슬람권 수형자들에겐 돼지고기 대신 생선을 주는 등의 종교적 배려도 한다. 김평근 사회복귀과장은 “각각의 문화적 배경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지만 워낙 다양한 국적의 수형자가 있는 만큼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음악회에 참석한 재소자들은 지난 7월부터 매주 월요일, 수요일 두 시간씩 연습에 매달렸다. 사진은 무대에 올라 아카펠라 공연을 하고 있는 외국인 재소자들.

▎음악회에 참석한 재소자들은 지난 7월부터 매주 월요일, 수요일 두 시간씩 연습에 매달렸다. 사진은 무대에 올라 아카펠라 공연을 하고 있는 외국인 재소자들.

교정공무원은 이곳이 세계 유일의 외국인 전담교도소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교도소 개소 당시 내국인 수용자를 역차별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법무부 관계자들은 “차이를 인정할 뿐 특혜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시설 면에서 기존 소년교도소를 보수해 사용하기 때문에 국내의 여느 교정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수형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15.48㎡(약 4.7평) 크기의 4~5인실과 6.48㎡(약 2평) 크기의 1인실이다. 대부분의 수형자가 4~5인실을 함께 쓴다. 감방 안에는 화장실 하나와 TV, 각자의 수납공간, 잠잘 때만 펴는 매트가 있다. 창문엔 쇠창살이 있지만 밖으로 뚫려 있어 손을 내밀 수도 있다. 각 거실 창문 틀에는 비상벨이 있고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교도관을 부른다. 교도관은 한 층당 1명 꼴로 40~50명을 담당한다. 이런 형태로 된 3층 건물의 사동(생활하는 공간)이 여섯 개 있다. 국내 교도소와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일부 덩치가 큰 외국인들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해 거실당 수용인원을 줄였다는 점뿐이다.

장의 출소 예정일은 내년 8월이다. 그 후 1주일 내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해 본국으로 강제 추방당한다. 장은 가족이 그립긴 하지만 출소 후에도 한국 생활을 계속하고 싶단다. 하지만 전과자 신분인 그의 입국을 다시 받아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장은 “막노동을 하면서 한국인들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데 불만이 생겨 큰돈을 벌겠단 욕심으로 잘못된 판단을 했다. 많이 후회한다”고 말했다. 천안교도소에서의 생활이 한국 사회에서 생활하며 생긴 오해와 분노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한몫한 듯했다. 실제로 천안교도소를 출소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출소자의 46%가 한국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답했다. 러시아 출신의 재소자 코롤렌코(30·가명)는 “비록 피해를 끼친 범죄자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배려를 아끼지 않는 한국 사람들에게 다시 나쁜 마음을 먹을 수형자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윤수 천안교도소장은 “음악으로 소통하는 모습에서 이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며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교정시설 내의 배려가 외국인 수형자의 교화를 도울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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