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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세가지 식탁

미국인의 세가지 식탁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느냐가 사회 지위를 말해주는 표지가 됐다.

아침 식사로 보통 카푸치노를 마신다. 이탈리아제 알레시 포트에서 뽑은 에스프레소에다 남편이 약한 불에 데워 손으로 직접 거품을 낸 유기농 우유를 섞는다. 집에서 구운 빵에다 버터를 발라 그 위에 수입 치즈 두 조각(네덜란드산 파라노 치즈로 상표에는 ‘뉴욕의 최신 유행 치즈’라고 쓰여 있다)을 얹어 먹는다. ‘푸드 스놉(food snob: 음식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이라 불릴 만하다. 이웃에 사는 영양사 가족은 아침에 뭘 먹을까? 그녀는 단백질 셰이크를 마시고 다섯 살 난 아들은 키노아(남미산의 메밀 비슷한 명아주과 곡물)로 쑨 죽에 달콤한 애플소스를 치고 케일 조각을 뿌려 먹는다. ‘헬스 넛(health nut: 건강에 과도하게 신경 쓰는 사람)’이라 불러도 좋다.

그 이웃의 친구 알렉산드라 퍼거슨은 최근 어느 날 아침 안락한 주방에 앉아 니카라과산 커피를 홀짝이며 ‘불우 이웃나라’를 도왔고 그녀의 두 아들은 유기농 모듬 시리얼을 먹었다. 그 집에 찾아가 식탁에 앉았을 때 닭 여섯 마리가 현관 입구에서 안쪽을 들여다봤다. 퍼거슨과 남편 데이브는 뒤뜰에서 그 닭들을 길러 달걀을 얻는다. 그들은 ‘로커보어(locavore: 먹을거리를 자신이 사는 곳에서 찾으려 애쓰는 사람)’로 불린다.

퍼거슨은 어떤 음식을 먹을지 생각하고, 식재료를 구입해 조리하는 데 하루에 몇 시간씩 할애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이클 폴란[2006년 출간한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The Omnivore’s Dilemma)’로 로카보어 운동의 바람을 일으켰다]의 팬이다. 그래서 현지에서 생산된 유기농 식품을 구입하면 가족의 건강만이 아니라 농장의 동물과 농민의 실존적 행복에도 기여하며, 궁극적으로 지구의 생존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마이클 폴란은 지미 카터 다음으로 나의 영웅”이라고 퍼거슨이 말했다. 어떤 동네에선 뒤뜰에서 닭을 키우는 파트타임 변호사를 괴짜라고 부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브루클린의 파크 슬로브에 산다. 갖가지 음식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동네다. 음식의 가치를 즐거움에 두는 사람, 건강에 두는 사람, 사회정의에 두는 사람, 이상적인 가족 생활에 두는 사람 등 매우 다양하다. 파크 슬로브에선 자녀의 도시락이 20분짜리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퍼거슨과 함께 커피를 들며 최근 들어 내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여기서 8km도 안 떨어진 곳에선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고, 끼니를 거의 전부 정크푸드(junk food: 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패스트푸드·인스턴트 식품의 총칭)로 때우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퍼거슨은 자신의 음식관이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치로 느껴질지 모른다는 점을 인정했다. 퍼거슨 부부는 파크 슬로브 기준으로는 부자가 아니다. 그녀는 파트타임으로 변호사 일을 하고 남편은 시청에서 일한다. 그런데도 소득의 약 20%, 월 1000달러 정도를 먹을거리에 쓴다. 미국 가계의 평균 식품비는 소득의 13%다(외식비와 테이크아웃 포함).

퍼거슨은 로커보어 운동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 듯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퍼거슨 부부가 테네시주의 시댁에 가면 음식을 두고 긴장이 고조된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이미 식품점에서 비유기농 사과를 샀는데도 퍼거슨이 또 유기농 사과를 구입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비유기농 사과도 얼마든지 괜찮은 데 왜 돈과 사과를 낭비하느냐는 이야기였다. 퍼거슨에 따르면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너희 집에 가면 음식 불평을 하지 않잖니? 그런데 왜 우리집에 오면 불평이 많아? 우리 집 음식이 독약은 아니잖아?” 남편 데이브는 “우리 형도 좀 더 좋은 식품을 사는 데는 돈 한푼 더 쓰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퍼거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기농 땅콩버터와 젤리를 바른 거친 잡곡빵, 요거트, 귤로 두 아들의 도시락을 싸며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유기농 식품 등 좀 더 나은 음식을 가려 먹는 게 세계에 베푸는 우리 나름대로의 자선이다. 우리는 많이 기여한다.”

최근 미국 농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 중에서 ‘식품 불안정(food insecurity)’ 가정에서 사는 사람이 17%(5000만 명 이상)다. 식품을 구입할 돈이 떨어지거나 때로는 돈을 더 벌기 전에 식품이 바닥나는 가정이라는 뜻이다. 식품 불안정은 특히 독신모 가정, 미국 남부와 대도시에서 특히 심하다. 뉴욕시에선 식품 불안정에 해당하는 인구가 140만 명이다. 내가 사는 브루클린에 약 25만7000명이 산다. 물론 식품 불안정은 주택공급이나 고용 같은 다른 경제 요소와 밀접한 관계다. 실제로 농무부가 식품 불안정 개념을 도입한 1995년 이후 그에 속하는 인구가 이번 경기침체가 시작된 2007~08년 가장 많이 증가했다(최근 발표된 2009년 자료에서도 변동이 거의 없었다). ‘굶주린다’고 분류되는 가정(농무부는 ‘식품 안정성이 아주 낮다’고 표현한다)의 비율은 약 6%로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주변에서 음식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경향, 그리고 해외의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의 곤경에 비춰볼 때 미국의 굶주리는 아이들 비율은 아무리 낮더라도 무시 못할 수준이다.

어떤 면에서 내 불평은 순진해 보일지 모른다. 어떤 나라든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부자가 언제나 원하는 바를 탐닉할 자유를 누린다. 어려운 시기엔 음식이 늘 빈부의 구분선이었다. 대공황 초기 가난한 사람들은 무료급식대 앞에 줄을 섰지만 미국의 중상류층은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다이어트에 빠져들었다. 1993년 ‘풍요의 역설(Paradox of Plenty)’을 쓴 하비 레벤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할리우드 18일 다이어트’를 따른 사람들은 매 끼니를 그레이프프루트 반쪽, 바싹 구운 토스트, 크림이나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로 제한하고, 점심과 저녁엔 신선한 채소 약간을 추가해 하루 600칼로리 이하로 살았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극단의 나라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느냐가 곧바로 사회 지위를 말해준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가장 신선하고 가장 영양가 높은 음식은 일부 계층만 이용하는 사치품이 됐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 소득 하위 20%는 지난 20년 동안 연간 1만~1만3000달러(물가상승률 감안) 수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위 20%는 같은 기간 소득이 20%나 올라 17만800달러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상위 20%는 제철이 아닌 딸기를 홀푸즈(고급 식료품 체인점으로 최근 분기 수익이 58% 늘었다)에서 사먹지만, 식품 불안정 가정은 대개 열량이 높고 대량생산되는 피자나 포장된 케이크 등 쉽게 배가 채워지는 음식을 먹는다. 푸드 스탬프(food stamp: 정부가 저소득층에 제공하는 식품 구매권)로 살아가는 미국인이 지난 3년 동안 58.5%나 늘었다.

비만은 과거엔 부자의 병이었지만 지금은 가난뱅이의 병이 됐다. 소득격차가 커지면서 비만도 늘었다. 현재 미국 성인의 3분의 1 이상, 어린이의 17%가 비만이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비만이 심하다. 물론 유전자, 환경, 활동량 등 복잡한 요인들이 비만을 일으킨다. 하지만 미 농무부의 2008년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와 여성의 경우 푸드 스탬프에 의존하는 사람이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 영국의 역학자 케이트 피켓이 이끈 연구에 따르면 비만율은 소득격차가 큰 선진국에서 가장 높다. 미국은 최고 비만국 중 하나다. 반면 소득 불균형이 비교적 적은 일본은 가장 날씬한 나라 중 하나다.

워싱턴대의 역학자 애덤 드루노스키는 오랜 연구를 통해 식단이 사회 지위를 결정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과일과 채소, 지방이 적은 육류, 생선, 곡물 등 영양가 높은 식단이 가난한 미국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가격을 무시하면서 그런 식단을 옹호하는 영양 전문가들은 경제 엘리트주의자다. 일부에선 저소득층이 영양 교육을 받지 못해 정크푸드와 패스트푸드를 주식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난한 동네가 ‘식품사막(food desert: 잘 갖춰진 수퍼마켓이 없다는 뜻)’인 경우가 있긴 해도 많지는 않다. 저소득 가정이 달고 지방이 많고 가공된 음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값이 싸고 맛이 좋기 때문이다. 드루노스키는 지난봄 발표한 논문에서 시애틀 지역의 수퍼마켓 데이터를 근거로 특정 식품 가격의 2004~08년 변화를 조사했다. 식품 가격이 전체적으로 약 25% 올랐지만 영양가 높은 식품(피망, 생굴, 시금치, 겨잣잎, 로메인 상추)이 29% 오른 반면 영양가 낮은 식품(흰설탕, 하드 캔디, 젤리빈, 콜라)은 16% 상승에 그쳤다.

드루노스키는 내게 보낸 e-메일에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선 주로 음식이 사회 지위를 반영한다. 과거엔 의복과 패션이 그랬지만 지금은 그런 ‘사치품’이 보편화됐다.” 그는 폴란이 뉴욕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을 예로 들었다. 폴란은 그 기고문에서 “캘리포니아주 샤스타 산 부근에서 채취한 곰보 버섯과 포르치니 버섯 한 바구니” 등 식사 한끼를 식재료 하나하나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드루노스키는 “폴란은 에디스 워튼(‘순수의 시대’)이나 헨리 제임스(‘여인의 초상’)가 쓴 소설에 못지 않게 예리한 시각으로 특정 사회계급의 특권을 그려냈다”고 적었다.

여기까지 쓴 뒤 아래층에 내려갔다. 우편물 속에 고급 소매점 바니스의 크리스마스 상품 카탈로그가 들어 있었다. 표지 제목이 ‘식도락으로 명절을 잘 보내세요!’였다. 각쪽마다 실제 식품을 몸에 걸친 모델이 등장했다. 2000달러짜리 붉은색 랑방 트렌치 코트를 입은 모델은 머리에 거대한 양배추를 올렸다. 녹색 프로엔자슐러 클러치백을 든 모델은 부풀린 머리에 삶은 게를 뒤집어 썼다. 그중에서도 머리에 문어를 얹고 무누 다이아몬드 펜던트(8만500달러)를 목에 건 모델의 사진이 압권이었다. 문어의 발이 어깨 아래로 처졌고, 모델 자신도 파티에 너무 오래 앉아 지친 사람의 표정이었다. 이제는 음식이 유행을 따른다기보다 아예 유행을 선도하는 듯했다.

티피니 데이비스는 우리 집에서 약 6km 떨어진 곳에 산다. 독신모인 그녀는 중산층 거주지로 재개발된 레드 후크 지역에서 국가 보조금으로 지원되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 그녀의 아파트 바로 곁에는 까탈스러운 음식 문화를 상징하는 가게가 많다. 내가 네덜란드산 치즈를 구입하는 페어웨이 수퍼마켓, 고급 빵집, 최신식 바다가재 판매점 등-. 데이비스는 때로는 집에 음식이 떨어질까 걱정한다고 말했다. 맨해튼의 케이터링 회사에서 일하며 시불 13달러를 받는다. 푸드 스탬프 수혜자이기도 하다. 자신과 두 아이의 식비로 한 주에 약 100달러를 쓴다. 때로는 회사에서 남은 음식을 집에 가져간다.

데이비스는 아침으로 뭘 먹느냐는 질문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모두 아침 6시에 일어나 집을 나서기가 바빠 주로 식료품점 음식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딸 말레지아(10)는 달걀·치즈말이, 아들 타숀(13)은 머핀(컵모양의 빵)과 탄산음료를 먹는다. 데이비스는 얼마 전까지 던킨 도넛에서 도넛 두 개와 카페 라테를 즐겼지만 뉴욕의 식당체인들이 메뉴에 열량을 표시하자 그런 음식을 삼가기 시작했다. “화학 첨가물과 지방이 많은 음식을 줄이려고 애쓰지만 너무 어렵다”고 그녀가 말했다.

사실 시간은 큰 문제가 아니다. 데이비스는 일요일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그렇게 말했다. 수퍼마켓에서 병으로 구입한 바비큐 소스를 곁들인 닭날개 튀김, 포장 박스에서 꺼낸 황변미, 깡통에 든 검정콩, 브로콜리, 올리브유와 꿀로 조리한 당근이었다. 데이비스 가족이 그렇게 집에서 요리한 저녁을 먹는 경우는 드물다. 평일엔 모두가 지쳐 귀가한다. 아이들은 숙제도 해야 한다. 한 주에 며칠은 중국집, 도미노 피자, 맥도널드에서 음식을 포장해 가져와 먹는다. 데이비스가 과일과 채소를 사는 경우는 드물다. 너무 비싸기도 하고 단골 수퍼마켓에선 신선하지도 않다. “바나나를 집에 가져와 10분만 지나면 맛이 간다. …홀푸즈는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운 토마토를 판다. 하지만 내가 가는 마켓엔 농산물이 대부분 포장돼 있고 농약을 듬뿍 먹었다. 그래서 주로 통조림 식품을 구입한다.”

얼마 전 뉴욕시에선 푸드 스탬프로 탄산음료를 구입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두고 말이 많았다. 공중보건 관리들은 비만을 줄이려면 그런 적극적인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신 조사에 따르면 뉴욕시의 경우 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 학생의 40%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다(미국 전체로는 6~11세의 36%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다). 반면 그 제안의 반대자들은 ‘보모 국가(nanny state)’적 발상이며 정부 개입의 또 다른 예라고 말한다. 더 나쁘게는 가난한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아주 어려운 문제”라고 영국의 역학자 피켓은 말했다. “사람들은 ‘내 돈을 내가 쓰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한다. 또 가끔씩은 건강이나 사회정의를 떠나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케이크와 탄산음료로 생일파티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푸드 스탬프로 탄산음료 구입을 못하게 하자는 제안을 적극 지지한다. 얼마 전 이웃의 아홉 살짜리 남자아이가 자기 엄마 앞에서 천식 발작으로 사망했다. 그 아이는 비만이었지만 엄마가 계속 정크푸드를 먹였다고 데이비스는 말했다. “본인이 음식의 열량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정부가 그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훨씬 오래 산다.”

프랑스 사회학자 클로드 피슐러는 미국인들이 프랑스인들의 생활 방식을 따르면 비만도 막고 식품 불안정도 줄어든다고 믿는다. 식품과 음식을 대하는 미국인의 태도는 역사상 다른 어떤 국민과도 다르다. 우선 음식을 영양가로 따진다.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미국인들은 주로 열량과 탄수화물, 지방, 설탕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대답한다. 식사를 하나의 사교활동으로 간주하지 않고, 음식을 공유재(식탁에서 돌려가며 먹는 빵 한 덩어리를 생각해 보라)로 보지 않는다. 반면 프랑스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주로 ‘삶의 활력’을 이야기한다. 함께 어울리는 친밀함과 음식의 고유한 맛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인들에겐 영양 집착보다 더 특이한 점이 있다. 피슐러에 따르면 그들은 음식 선택을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개인의 자유 문제로 파악하려 한다. 미국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음식(곰보 버섯이든 빅맥이든 간에)을, 원하는 곳(차 안이든 야외든)에서, 원하는 때 먹으려 한다. 물론 대다수가 똑같은 칠면조 요리를 즐기는 추수감사절은 예외다. 하지만 그 외에는 무조건 자유의지론을 신봉한다. 피슐러는 설문조사를 통해 미국 가정엔 낮이든 밤이든 함께 앉아 식사하는 시간이 정해진 경우가 드물다고 결론 내렸다. 그와 대조적으로 프랑스인의 54%는 매일 12시 30분에 점심을 먹는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의 비만율은 9.5% 선에 머문다.

어렸을 땐 부모님에게 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 달걀은 네 몫이야. 왜 안 먹니? 아프리카엔 굶주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스스로 사고할 정도로 나이가 들자 내 몫의 달걀을 먹든 먹지 않든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현지에서 생산된 식재료는 수퍼마켓에서 구입하는 식품보다 맛이 더 좋다. 영세농과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에게도 도움이 된다. 지구 환경에도 바람직하다. 개인이나 가족이 그런 선택을 하기는 쉽고, 금전적 여건이 된다면 그런 식품을 구입하면 건강에도 좋다. 하지만 격차를 메우기는 훨씬 어렵다고 뉴욕대 영양학자 매리언 네슬은 말했다. “개인적으론 신토불이나 유기농 식재료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정책으로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뉴욕 등 대도시의 로커보어 운동가들은 가난한 사람이 신선한 식품을 접하도록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푸드 스탬프 수혜자들이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이용하면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농협과 공동텃밭협회가 도시 주민들에게 신선한 농작물을 더 많이 공급하는 방안을 모색하며,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이 품질 좋은 식품을 파는 수퍼마켓을 이용하도록 특별 버스 노선도 생겨난다.

뉴욕시 기아퇴치연맹을 이끄는 조엘 버그는 이런 프로그램이 좋긴 하지만 충분친 않다고 말한다. 버그는 피슐러처럼 식품을 신발 같은 소비재가 아니라 물 같은 공유재로 간주하면 해답이 나온다고 믿는다. “미묘한 사안이긴 하지만 ‘신토불이’나 ‘유기농’을 좋은 식품의 대명사로 사용하면 지나친 단순화의 실수를 범하게 된다”고 버그는 말했다. “규모와 근로 조건, 환경 영향에 관한 더 넓은 대화가 필요하다. 하기 쉬운 말로만 논의해선 안 된다.”

로커보어의 ‘영웅’인 폴란도 그 주장에는 흔쾌히 동의한다. “한마디로 부자 농민은 가난한 소비자에게 형편없는 음식을 공급하고, 가난한 농민은 부자에게 고급 음식을 조달하는 모양새다.” 얼마 전 월마트는 현지 생산 식재료를 매장에 좀 더 많이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대형 소매점도 신선한 농산물을 저소득층도 구입 가능한 만큼씩 소량으로 판매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폴란은 이런 과일과 채소가 유기농 작물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음식과 관련해 절대론자가 돼선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선 대찬성이지만 완벽주의는 발전의 적이다.” 폴란은 당뇨와 비만을 막으려면 건강보험회사들이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식품 정책에선 연방정부 차원의 폭넓은 대화가 이뤄지기를 꿈꾼다. “음식 운동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한편 뉴욕시 기아퇴치연맹의 버그는 대형 식품회사들의 협조가 관건이라고 믿는다. 식품산업을 전적으로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그런 회사들은 한겨울에도 신선한 사과를 공급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니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과일과 채소를 가난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조치를 강구할 능력을 갖췄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대형 농산물 회사에도 사회정의를 촉구해야 한다”고 버그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서 약 3km 떨어진 클린턴 힐에 있는 자비르 술루키의 집을 찾았다. 술루키는 아침 식사로 토스트에다 살짝 녹인 치즈를 얹어 먹는다. 그는 프랑스인은 아니지만(브루클린에서 태어나 자랐다) 상당히 프랑스인답다. 매일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 어머니와 자신, 그리고 가끔씩 찾아오는 질녀와 조카의 저녁을 준비한다. 그는 가정 요리의 전통이 있는 집안 출신답게 요리에 자신감이 넘친다.

술루키와 어머니는 둘 다 당뇨가 있다. 그래서 규칙적인 건강식이 필수다. 술루키는 한 주에 식비 75달러로 최선을 다한다. “좋은 식재료를 얻으려면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특히 가격이 문제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희생을 한다.” 술루키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푸드 스탬프로 식재료를 구입한다. 동네 수퍼마켓에선 오래 돼 맛이 간 과일 중에서도 괜찮은 물건을 고른다. 얻어 탈 차가 있으면 퀸즈까지 가서 값싼 육류를 대량 구입한다. 그는 자녀에게 좋은 음식을 적당량 먹이는 일이 부모의 책임이며, 제한된 소득으로도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다.

저녁 식사로 술루키와 어머니는 다진 칠면조 고기에 소량의 다진 쇠고기를 섞어 만든 솔즈베리 스테이크(햄버거 스테이크의 일종)에다 녹인 치즈를 올려 먹었다. “칠면조 고기만으로는 아무 맛이 없다”고 술루키가 말했다. 거기에다 구운 감자와 피망, 냉동 청대콩(“살짝만 녹여야 아삭아삭한 맛이 남는다”)을 곁들였다. 후식으로 그의 어머니는 수퍼마켓에서 구입한 커피케이크 두 조각을 드셨다.

술루키는 음식 자체와, 음식이 이웃의 삶에 주는 영향을 깊이 생각한다. 그의 냉장고에는 탄산음료가 없다. 하지만 그는 푸드 스탬프로 탄산음료를 사지 못하게 하는 뉴욕시의 제안에는 반대한다. 정부가 식품·농업 보조금을 제공하고, 수퍼마켓에선 영양가 낮은 값싼 식품을 팔면서 그런 제한을 두면 위선이라고 그가 말했다. “사람들에게 정크푸드를 먹지 않을 수 없게 해놓고 그걸 먹는다고 나무랄 순 없다.” 술루키는 지역사회 운동가로서 우리가 직면한 기아, 비만, 건강 문제들을 개인이 아닌 지역사회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달려들면 실패한다. 건강한 지역사회가 건강한 사람을 만든다.” 술루키가 주말이면 쌀과 콩을 섞어 조리한 음식을 커다란 용기에 담아 집 부근의 무료급식소에 가져가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With IAN YARETT and JESSE ELLISON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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