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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따뜻한 한국’ 만든다

베트남에 ‘따뜻한 한국’ 만든다

▎ 문영기 1959년생 아이오와주립대 경제학과 뉴욕공과대 경영학 석사 대진정밀화학 전무이사 1996년~ 유진크레베스 대표이사

▎ 문영기 1959년생 아이오와주립대 경제학과 뉴욕공과대 경영학 석사 대진정밀화학 전무이사 1996년~ 유진크레베스 대표이사

“저도 닉처럼 될 거예요.”

띠엔이 사고 후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이지만 전 세계에 삶의 가치와 희망을 전해온 닉 부이치치를 만난 직후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알루미늄 문을 설치하는 일을 하던 베트남 소년 띠엔은 올 초 큰 화를 당했다. 고압전선을 건드린 동료를 돕다 자신이 감전된 것이다. 이 사고로 띠엔은 한쪽 다리와 두 팔을 잃었다. 그의 나이는 불과 16세. 힘든 환경에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던 띠엔이었지만 갑자기 변한 자신의 모습에 적응할 수 없었다.

사고 이후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띠엔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문영기 유진크레베스 대표였다. 평소 심장병을 가진 베트남 어린이들이 한국에서 수술 받을 수 있도록 돕던 문 대표가 띠엔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의 도움으로 띠엔은 한국에서 10여 차례 수술을 받았다. 이제 의수와 의족을 달아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됐다.

문 대표는 “겉으로 보기에 제가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박하게 사는 우리가 그 아이에게서 배울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매출 5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인 유진크레베스를 운영하고 있다. 유진크레베스는 유럽이나 미주의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기를 만든다. 기존에 은으로 만들던 스푼, 포크 등 금속제 식탁용품을 스테인리스로 만들었다. 현재 생산량 기준으로 스테인리스 식기 분야 1위다. 세계적인 금형, 연마기술을 보유해 미국과 유럽에서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인 가구 제조·유통업체인 이케아(IKEA)와 백악관에 양식기를 공급하는 명품 브랜드 레녹스(LENOX) 등에 납품한다. 최근에는 액세서리 시장에도 진출했다. 부품 평가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 코치(COACH)와 계약을 하고 가방에 부착하는 액세서리를 납품하고 있다.



꾸준한 사회공헌이 가장 중요1990년대 초 해외사업을 구상하던 문 대표는 동남아 5개국을 돌며 어느 나라에 공장을 지을지 고민하다 베트남을 골랐다. 공산권 국가인 데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거의 없을 때라 주위의 만류가 심했다. 하지만 한국과 비슷한 베트남 문화와 젊고 활기

찬 사람들에게 끌렸다. 중국에 비해 완만한 성장이 예상돼 인건비 상승이 가파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1998년 호찌민 인근 수출자유구역에 공장을 설립해 본격적인 제품생산을 시작했다. 길 건너편에 제 2공장을 지으며 사업을 확대해 나갔고 2008년에는 명품 브랜드 액세서리를 제조하는 제 3공장까지 지었다. 하루 25만 개, 연간 8000만 개의 양식기를 생산해 100% 수출하고 있다. 공장 설립 13년 만에 100명 남짓했던 직원 수는 2500명으로 늘었고 매출은 100배 이상 증가했다.

문 대표가 베트남에서 자리를 잡은 건 꾸준한 사회공헌활동 덕도 컸다. 지역사회와 베트남 정부의 신뢰를 얻었다. 공장 내 노사분규가 생기면 베트남 노동부가 직접 조정에 나서줄 정도다. 문 대표는 “인허가, 대금 지급, 계약 변경 등 위기가 많았지만 베트남 사람이 먼저 도와줬다”고 자랑했다.

그는 회사 설립 이후 다양하고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펼쳐왔다. 한국선의복지재단, 여의도순복음교회, KT&G 등과 협력해 형편이 어려워 제때 심장병 수술을 받지 못한 베트남 어린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무료로 수술해준 것이 대표적이다. 2001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새 생명을 얻은 베트남 어린이는 180명에 이른다. 단순히 수술만 해주는 것이 아니다. 문 대표가 사회공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꾸준함이기 때문이다. 봉사를 하겠다는 사람이나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은 많지만 장기적으로 사후관리까지 책임지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는 수술 받은 어린이의 가정에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진학과 취업문제까지 신경 쓰고 있다. 금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수술을 받고 돌아간 아이들을 재방문해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띠엔은 현재 베트남으로 돌아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졸업 후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그는 하노이에 코리아적십자병원을 지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연간 1만5000명의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인 의사를 파견해 현지 의료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다낭에는 태권도 전용 체육관을 지어 지역 학생들이 무료로 태권도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한국어 교사를 파견해 한국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길도 열었다. 문 대표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베트남 정부로부터 2004년 복지훈장, 2005년 체육훈장 등 총 4개의 훈장을 받았다. 베트남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13년 전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문 대표 역시 회사의 성공만을 생각했다. 베트남에 없는 큰 기업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뛰었다. 그런 덕에 사업이 성공했지만 사회공헌활동의 열매도 달콤했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고 회사를 키우는 데 열중하기보다는 지역사회와 함께 커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내년에 유진크레베스를 비롯해 선의복지재단, 한국심장재단 등 그동안 공헌사업에 동참해온 모든 민간단체를 아우를 수 있는 총괄기구를 만들 계획이다. 더욱 전문성 있고 체계적인 사회공헌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문 대표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리고 함께하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기업은 더 적극적으로 사회공헌사업에 투자해야 하고, 정부는 착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사회공헌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ODA(공적개발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성장한 첫 번째 나라인 만큼 정부는 물론 민간 차원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 모든 활동이 크게 보면 세계 속에 따뜻한 한국을 알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유진크레베스의 도움으로 심장병 수술을 받은 어린이는 180명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가족과 친척, 지역사회까지 고려하면 베트남에서만 수만 명이 혜택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그 수만 명의 사람이 한국이 보내준 사랑에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기업 소개는 제쳐두고 사회공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그에게 ‘기업가 맞으시죠’ 하고 물었더니 ‘사업도 잘한다’며 웃는다. 그의 넉넉한 웃음에서 행복한 기업가의 얼굴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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