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에서 소통으로 대변신
관리에서 소통으로 대변신
#1.“애플 직원의 목표는 세상에 없는 꿈의 제품을 만드는 거랍니다. 구글 직원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끌어모으는 게 꿈이랍니다. 그렇다면 삼성 직원의 꿈은 무엇입니까?”
2010년 11월 23일 경기도 용인 삼성인력개발원. 2년4개월여 만에 복원된 삼성의 컨트롤 타워 미래전략실의 첫 워크숍이 열렸다. 김순택 부회장은 미래전략실 재출범을 계기로 외부 인사들에게 삼성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외부 인사들의 직언은 가감 없이 미래전략실 직원들에게 공개됐다. 삼성 직원의 꿈이 무엇이냐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을 받은 김 부회장의 표정은 일순 바뀌었다. 워크숍에 참석한 미래전략실 사람들 사이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삼성이 더 이상 ‘삼성의 미래’가 아닌 ‘삼성 직원의 미래’를 그려야 한다는 도전을 감지하는 순간이었다.
이재용 사장 “젊고 밝은 삼성 만든다”“언제까지 국내 최초니 세계 최고니 할 겁니까? 존경 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선 자화자찬보다 신뢰구축이 필요합니다. 서민 마음속을 파고드는 건 이제 기술이 아닙니다.”
#2. 1997년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대표가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회의 안건은 삼성전자의 새로운 광고 시안. 15초짜리 광고 ‘또 하나의 가족’ 시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대다수 임원은 종이인형으로 만들어진 광고 초안에 부정적 의견을 쏟아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로봇이 등장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종이인형인 데다 흑백 TV에 시청자의 기억에서 멀어진 김일의 박치기를 누가 기억하느냐는 반감 때문이었다. 이런 비판을 잠재운 게 윤 대표의 한마디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기업 광고부터 변해야 한다’는 변화의 필요성, 소비자와의 공감대 형성이었다.
차갑고 폐쇄적인 이미지의 쇄신. 하지만 변화는 녹록지 않았다. ‘2등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일방적 캐치프레이즈로 굳어진 이미지는 단번에 변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또 하나의 가족’ 시리즈는 15년간 이어졌다. 다시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될 즈음 삼성에 특검이 들이닥쳤다.
2007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과 삼성의 컨트롤 타워인 전략기획실의 해체. 과거 삼성을 대변하는 모든 상징이 퇴장했다. 전문경영인들이 전략기획실을 대신해 삼성을 이끌기 시작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삼성은 또 한번 위기에 봉착했다. 삼성은 외부적으로는 경제 한파, 내부적으로는 임직원의 사기 저하라는 두 가지 과제를 떠안았다. 이 회장과 두뇌 역할을 담당했던 전략실의 부재. IT(정보기술)산업의 빠른 융복합으로 급변하는 시장환경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삼성의 DNA인 ‘쇄신과 변화’가 절실했다.
삼성의 새로운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코드는 ‘두근두근 투모로(tomorrow)’였다. 삼성은 2009년 젊은 층을 겨냥해 만든 새로운 그룹 광고를 시작하면서 삼성의 신사업 등을 집중 소개했다. 젊고 밝은 삼성의 이미지를 심어주자는 제안은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아이디어였다. 아버지인 이 회장이 누차 강조한 ‘창조적 조직문화’와 일맥상통하면서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방법을 응축한 캐치프레이즈였다.
삼성은 조직문화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재용 사장이 가장 먼저 수술대에 올린 건 복장이었다. 2008년 10월 삼성전자는 비즈니스 캐주얼을 도입했다. 당시엔 청바지와 운동화는 제외됐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삼성전자 직원 사이에선 면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삼성전자를 시범 케이스로 자율 출퇴근제도 역시 도입했다. 하루에 정해진 8시간만 근무하면 출퇴근은 자유롭게 했다. 이 제도는 삼성SDI·삼성전기·에버랜드·제일기획 등 계열사로 속속 전파됐다.
이재용 사장과 더불어 삼성전자 경영을 맡은 최지성 부회장은 사업장 리모델링도 착수했다. 구글처럼 자유롭고 편한 근무환경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각 사업장을 공원과 분수가 있는 테마파크형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R&D(연구개발) 단지로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담당하는 수원사업장이 첫 대상이었다. ‘디지털시티’로 이름을 바꾼 수원사업장엔 근처 하천으로 흘러 드는 물길이 생기고 길을 따라 산책로가 들어섰다. 야구장과 풋살장을 세웠고, 유명 브랜드 커피숍과 피자집·빵가게가 생겨났다. 기흥사업장은 ‘나노시티’로, 탕정사업장은 ‘디스플레이시티’로 속속 바뀌었다.
“SBS는 어제(2010년 10월 27일) 저녁 8시 뉴스에서 리제트 리가 삼성그룹 상속녀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삼성전자 북미법인의 공문을 발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략) 그 문서가 위조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는 몇 가지 증거를 더 발견해 SBS에 사실관계를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삼성 블로그에도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삼성의 상속녀와 마약 운반’이라는, 이목을 잡아 끄는 기사가 보도되자 삼성은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삼성 블로그(www.samsungblogs.com)에 올렸다. 삼성 블로그는 삼성이 외부와 소통하기 위해 만든 기업 블로그다. 소셜네트워크사이트인 트위터와 함께 온라인에서 소통 창구가 되고 있다. 삼성은 온라인상의 빠른 대응으로 상속녀임을 주장하는 리제트 리 논란을 빠르게 잠재웠다.
“열심히 일하던 시대는 저물었다”삼성은 내부적으로 온라인 홍보의 룰도 세웠다. ‘경청하되 상황이 발생하면 있는 그대로 신속하게 알린다’는 것이다. 2010년엔 논란거리에 대한 대응 기간이 하루였다면 2011년엔 이를 한 시간 안으로 줄인다는 목표도 세웠다. 대외 소통방식의 변화와 함께 내부 소통작업에도 들어갔다.
최지성 부회장은 지난해 말 7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워크 스마트 콘퍼런스’를 열었다. 최 부회장은 2시간에 걸쳐 온라인 질문까지 받아가며 자율 출퇴근제, 비즈니스 캐주얼 착용, 사업장 변화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열심히 일해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회사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하지 마라”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 “개인의 삶과 업무를 균형 있고 스마트하게 관리해 업무의욕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한 계열사 사장은 최근 삼성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근 삼성의 움직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다. 다만 변화의 속도가 빨라 보이는 건 삼성을 둘러싼 시장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앞으로 10년간 지금까지 삼성이 변한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라질 것이다.”
‘초일류 삼성’ ‘창조적 조직문화’ 구축을 줄곧 외쳐오던 삼성의 본격적 변신 실험이 시작됐다. 이제 삼성인의 꿈이 어떻게 실현될지 지켜볼 차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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