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핀 중국인 관심은 건강
살림 핀 중국인 관심은 건강
향후 5년간 중국의 국민경제와 사회발전의 방향과 토대가 될 12·5 규획이 올해 시작된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가 의료보건 개혁이다. 최근 중국의 급속한 고령화 진행과 무질서한 의료보건 시스템, 낮은 의료보험 보장 등의 문제는 사회통합과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갈수록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다 나은 의료보장 제도를 요구하는 사회적 입김도 시간이 흐를수록 거세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우선 농촌지역 의료환경 개선부터 착수하고 있다. 2008년 11월 정부는 농촌지역 위생관리 시스템 개선사업에 48억 위안을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9년 4월에는 의약위생 시스템 개혁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의료보장 시스템, 의료 및 공공위생 서비스, 의약품제도, 국·공립병원 등 5개 분야의 개선을 위해 대대적인 수술을 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8500억 위안(약 145조원)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다.
중국 정부가 이렇게 대대적인 의료개혁에 나서고 있는 것은 전 국민 의료보험 확대와 의약품 이용 관련 시스템 개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병원 가기 힘들고 비싸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중국인이 생각하는 의료현실이다. 실제 많은 의약품 가격이 정부 보조 없이는 일반 서민으로선 쉽게 사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 최근 고물가로 인한 민생고로 안 그래도 힘든데 환자들은 의료비용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직접 부담해야 하니 그만큼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값비싼 치료나 장기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빚을 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3년에 걸쳐 진행되는 의료 시스템 개혁 작업이 마무리되면 중국인은 지금보다 쉽고 저렴하게 의약품을 구입하고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위생부 장마오 부부장은 “앞으로 의료비의 개인부담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갈 것이며, 12·5 규획 기간 중 개인의 의료비 부담비율을 30% 이하로 낮춰 국제적인 수준에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정보화에 IBM·MS 등 군침중국의 의료개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우리 의료 관련 업계에는 신천지가 열리는 셈이다. 최근 맥킨지는 현재 중국의 의료 시장 규모가 GDP의 5% 수준인 2400억 달러 정도지만 향후 10년 내 600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2009년 세계 5위이던 중국 의약품 시장은 2013년 780억 달러 규모의 3대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의료기기 시장 역시 2000년 이후 연평균 20% 이상 성장해 현재 세계 3위 규모에서 내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2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대대적인 투자로 인해 의료설비 및 기기, 진료 및 병원관리 시스템, 의약보건 서비스 등 각 분야에 걸쳐 거대한 시장이 창출될 전망이다.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진단기기, 혈압측정기, 심전도 검사기,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 가정용 휴대 의료기기 시장의 폭발적 증가가 예상된다. 치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캡슐형 내시경, 레이저 수술장비 등을 비롯해 PACS(의학영상정보시스템) 등 IT(정보기술) 융합 전문제품 시장규모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IT 기반의 의료 정보화는 기존에 병원이 자체적으로 추진했으나 앞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주도될 전망이다. 특히 정부는 의료 인프라가 미비한 농촌지역을 대상으로 의료 정보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IT 컨설팅회사 IDC에 따르면 2010년 중국 의료산업의 정보화 관련 투자비용은 120억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07~11년간 중국의 의료 정보화 투자액의 연간 성장률은 17%를 상회한다. 시장이 커지는데 관련 기업이 가만있을 리 없다. IBM, 마이크로소프트, 중국의 노이소프트(Neusoft·東軟) 등 IT 기업들은 의료 시스템 정보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담조직을 구축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원격의료와 전자의료 시스템도 관심대상이다. 중국은 농촌 및 벽지의 원격의료 발전을 적극 추진할 예정으로 원격진단과 온라인 검진을 위한 화상통신 시스템과 회진 소프트웨어 개발 및 도입에 열중하고 있다. EMR(전자차트)과 OCS(컴퓨터 처방시스템) 프로젝트 등을 중심으로 병원 정보화 추진을 통해 농촌지역 환자들이 굳이 대도시 병원까지 오지 않더라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중국 의사가 쓴 진단 내용은 알아보기가 힘들다는 의미의 ‘천서(天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리감이 있다. 환자들이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구축을 원하는 주요 이유다.
일찍이 케어스트림헬스(Carestream Health), 지멘스 등이 농촌 의료 정보화 사업에 뛰어들었고, 노이소프트는 의약위생서비스발전센터를 설립해 전자의료기록 분야 진출 기회를 노리고 있다. IBM은 광둥성 중의원과 손잡고 EMR 시스템 표준화 작업을 추진 중이다. 델은 기존 주력분야인 PC 판매에서 벗어나 의료컨설팅을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삼고 차이나텔레콤과 연계해 EMR 시스템 구축작업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병원 내 전자의료정보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GE는 중국 정부와 공동으로 뇌졸중 질환 검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밖에도 지멘스, 필립스, 시스코, 올림푸스, 캐논 등 다국적기업과 레노보, 팡정(方正), 융유(用友) 등 로컬기업이 호시탐탐 진입 기회를 노리고 있다.
제약업계 역시 거대한 중국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노바티스가 상하이생명과학연구원과 공동으로 당뇨병 치료제 R&D센터를 설립한 것을 비롯해 머크, 로슈, 릴리 등 다국적 제약회사도 중국에 R&D센터를 세우고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국내기업 중에서는 북경한미약품이 돋보인다. 2010 제1회 한중기업협력대상에서 기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북경한미약품은 최근 3년간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중국 어린이의약품에서 소아용 정장제와 진해거담제 등 시장 1위 제품을 2개 보유하고 있다. 특히 취약계층에 대한 의약품 지원 및 각종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투자기업 중에서 모범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의료시장의 확대에 따라 우리 기업의 진출 기회도 늘어나는 반면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중국 정부의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농촌지역과 중소도시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이 중요하다. 우리 기업들은 다기능 첨단제품 위주로 마케팅을 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필수기능과 합리적인 가격대의 농촌 특화제품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미완의 대지인 농촌지역은 잠재력이 크고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 치열하다는 이점도 존재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농촌과 보건소가 상부에 전자의무기록을 보고할 때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전자의무기록 전용디자인을 설계해 운영원가를 낮추고 입력 효율성을 높여 재미를 보고 있다. 역발상 제품도 속속 출현하는 추세다. 기존 선진 의료장비 메이커들은 각종 첨단기능을 장착한 고가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지만 중국 기업들은 핵심적인 기능만 갖추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린 중저가 설비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다국적기업의 동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GE 헬스케어가 중국 R&D센터를 통해 개발한 X레이 장비가 좋은 예다. 이 장비는 중국 현지사정에 맞춰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3차원 촬영기능이나 전신 스캔기능과 같은 고급 기능을 빼 가격거품을 확 줄였다. 이들 제품은 굳이 고가의 장비가 필요치 않은 농촌지역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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